5. 황창성
준모는 툇마루에 끙끙대며 누워 있다가 결국 소르르 잠들었다.
잠시 후에는 도로롱 도로롱, 작게 코까지 골았다.
항현은 그 모습을 처음에는 한심하게 보다가 문득, 마음을 고쳐먹은 듯, 다시 그 모습을 보며 싱긋 미소지었다.
수빈도 주저앉아서 숨을 크고 천천히 쉬다가 곧, 몸을 일으켜 툇마루에 올라앉았다. 그리고는 벽에 조용히 기대어 눈을 감고 계속 숨을 조절했다.
하룻밤 새 여윈 듯한 얼굴에 두 눈 밑은 검게 죽어 있었다.
항현이 다가가 괜찮냐고 한 마디 물어보려는 데 그 집 하인들이 들이닥쳤다.
엉망으로 파헤쳐진 뒤뜰을 보고 아무 말도 못하는 그 집 하인들에게 유일하게 자기 발로 서 있는 항현이 식사를 부탁했다.
“조반상 좀 부탁하오. 밤새 귀신과 싸웠다오.”
“!......”
귀신이란 말을 듣고는 하인들은 대답도 못하고 어마뜨거라, 허겁지겁 뒤뜰에서 물러났다.
물러가면서도 그 눈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온 놀라움, 그런 놀라움의 원인에 느낀 공포, 그리고 그런 공포를 준 인물인 항현과 누워있는 툇마루 위의 둘에 대한 작은 적개심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익숙한 눈빛들.
항현은 다른 둘을 좀 더 쉬게 내버려두고 안채의 집주인에게 뒤뜰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나갔다.
안방에서 김씨의 기척은 느껴졌지만 아직 바깥으로는 안 나오고 있었다.
항현은 꽃살문에 붙인 수빈의 은신의 부를 떼고 부적을 떼었다고 말을 드렸다.
소녀가주 김씨가 안에서 겁먹은 얼굴로 두 눈을 두리번거리고 쭈뼛거리며 걸어 나왔다.
“......어제 밤에는 소리가 무섭더이다......”
“예, 일단 어제 약간 손을 보았으니 한 동안은 괜찮을 것입니다. 낮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제 동료들에게 요깃거리와 쉴 곳을 좀 봐주십시오.”
“예, 아랫것들을 시켜보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필묵과 서한을 보내줄 사람 하나를 준비해 주십시오. 본청에 연통을 넣어야 겠습니다.”
김씨는 그래주마고 말을 하고는 항현에게 밤에 일을 물어보았다.
“어제의 그...... 원귀는 어떤 자던가요?”
“글쎄요. 자기소개를 따로 하진 않았으니 저희도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예~ 다만 양태 갓을 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우상 대감을 계속 찾더군요.”
“......”
“혹여, 어제 저희에게 말씀해주신 나씨라는 자 외에 다른 짚이는 것이 있으십니까?”
항현이 넌지시 묻자 김씨는 고개를 좌우로 힘없이 저었다.
“저는 다른 것이 없지만 우의정을 찾는다니 그쪽은 차고도 넘치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혹, 궐에서 다른 풍문같은 것을 아시는 것이 없으신지요.”
김씨가 항현에게 되레 물어본다.
귀신이 나왔는데 어느 귀신인지 모르겠다니, 피곤한 항현이 씨익 웃어버렸다.
웃으면서도 혹시 비웃음으로 보여 김씨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염려되었지만 밤새 싸움에 항현도 많이 지쳐 있었던 지라 예를 차릴 여력이, 웃음을 감출 여력이 없었다.
항현의 막을 힘을 넘어서 나온 피식 새어나온 웃음이 우스웠는지, 짚이는 귀신이 너무 많은 사내에게 시집온 자신의 신세가 우스웠는지 김씨도 힘없이 풀풀 너털웃음을 지어 버렸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낮고 힘없는 웃음을 서로를 보며 풀어 놓았다.
곧, 항현은 안채에 황창성이 쓴다는 서재로 안내되어 그곳의 지필묵을 제공받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황창성과 이 집 부인의 저간 사정, 어젯밤 확인한 목령 나모가비의 존재, 혜수빈과의 만남, 성준모의 능력등, 비교적 자세하고 정확하게 보고서를 작성했다.
항현이 보고를 작성하고 서재를 나오자 아직 앳된 댕기머리 소년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찰을 이 아이에게 주시지요. 심부름을 잘 하는 아이입니다.”
김씨가 권하자 항현은 보고서를 주면서 궐내 기관 축귀검의 제조, 좌부승지 박동파 영감에게 전해 달라고 말해 주었다.
아이가 몇 번 항현 앞에서 그 이름들을 되뇌어 분명히 외운 것을 확인받았다. 항현은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윽고 서찰을 받은 아이가 떠나자 항현은 조반을 차린 행랑채로 갔다.
빈 행랑방 두 개에서 준모는 이미 방 하나에 자리를 잡고 이미 퍼질러 자고 있었다.
항현은 수빈과 준모를 억지로 깨워 식사를 조금이라도 뜨게 했다.
준모는 노골적으로 짜증을 냈고 수빈은 항현 눈치를 보아 어거지로 입안에 약간을 떠 넣었다.
“전 그럼 옆방으로 가 쉬겠습니다.”
지친 수빈이 대충 던지듯 한마디를 내려놓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그녀를 배웅하여 방을 잠깐 나갔다오자 준모는 이미 죽은 듯이 다시 자고 있었다. 그리고 코고는 소리가 진동을 했다.
사진멸악도의 사용자라 그런가, 용이 코를 골면 이런 느낌이리라 싶은 그런 코골이였다. 항현은 방을 나와 행랑 툇마루에 누워 단전에 힘을 모으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내 항현도 정좌한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정오가 되기 직전에 동파는 아이에게서 항현의 서신을 받았다.
어제도 자신이 등청하기도 전에 사라져서 오늘은 들어오면 한 마디 해주려고 했는데 오늘은 아예 출근도 하질 않아 오전 내내 언짢았던 차였다. 그러나 서신을 보고는 상황을 이해했다.
‘상황이 심각하구만......’
이미 돈의문 쪽 우의정이 말한 집에서 한바탕 축귀행을 벌였다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입궁을 못하고 그 집에서 거한다는 소식도 서신에 들어 있었다.
동파는 항현과 준모를 업무로 인한 출장으로 기록하고 이내 다른 셈을 하기 시작했다.
‘빨리 가길 잘한 셈이군.’
동파는 우의정에게 할 말이 생긴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이 나씨 성을 쓴다는 누군가의 사단을 들은 것도 같아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동파가 중참을 들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와 한참 기억을 더듬다보니 나지운이란 이름이 기억이 났다.
‘그래, 그래. 나지운, 썩을산이 똥칠산이 그래, 그래 생각난다......’
궐 밖의 다실에서 차와 떡을 조금 시켜 먹고 다시 궐로 들어가며 당시 공문들을 뒤지려던 참에 우의정 황창성이 축귀검 전각으로 들어왔다.
“졸개들은 엇다 팔아먹고 혼자 있는 게냐! 국록을 먹는 자들이 입궁조차 안했다면 끌고 가 다 쳐 죽일 일이로다! 어디 있는 게냐!”
아무리 아랫사람이라도 조금은 언짢을 만한 어조의 황창성의 말에 동파는 비굴하지도 뻣뻣하지도 않도록 솜씨 좋게 받아냈다.
“대감! 어서 오십시오! 안 그래도 찾아 뵈오려던 참에......”
걸죽하게 노성을 터뜨리며 들어온 황창성을 동파는 공손히 의자에 앉혔다.
“날 만나려고 했다고? 어째서? 지금 여기 관원들이 자리를 비운 것은 무엇때문인가? 혹시 나와 관계가 있는 겐가?”
이미 맡겨 놓은 일이 있던 입장이었으니 만나려고 했다는 동파의 말은 필시 그 결과보고이리라 생각한 황창성은 이유를 따져 물었다.
동파가 맘만 급한 황창성에게 어제의 상황을 보고한 항현의 서신을 기초로 어젯밤의 상황을 풀어 설명해주었다.
가만히 얘기를 다 들은 황창성은 눈이 확 찌푸려져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동파는 이렇게 감정이 흐트러져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때 답을 얻어야할 물음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창성은 성질이 변덕스럽고 상황에 걸맞지 않은 거친 행동을 많이 하여 미친 놈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
저간 사정을 캐물어 봐야할 지 동파는 고민하였다.
“그러니까 나지운이 놈의 원귀가 붙은 것 같다.”
“예~”
“그리고 그놈이 나로 착각하고 있는 건 그 아이가 가진 내 아기 때문이다?”
“예~”
동파는 아이가 가진 아기라는 표현에 실소가 났지만 그 웃음을 꿀꺽 삼키고는 최대한 예의바르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