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순이 현실적 보상책을 언급하고 나왔다.
“죽은 병사들에게 보상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내가 사재를 출연해야 않겠소? 나 또한 반드시 그리 할 생각이고......”
현영휘가 사재 출연을 얘기하자 김종순은 공무 상의 진퇴를 물어보았다.
“영상의 직위에는 계속 계실 생각이십니까?”
“이 무슨......!”
열받은 황창성이 또 한바탕 쏟아내려는 데에 현영휘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이어 현영휘가 부드럽게 대답을 했다.
“내 거취는 오로지 주상전하의 결정에 따를 일이오. 물론 사람의 목숨을 오천이나 상한 것은 큰일이나 일반 백성의 학살이 아닌 군을 출동시켜 입은 패퇴이니 동원 자체의 죄만은 아닐 것이오. 또한 동원령의 월권 문제 또한 주상전하의 치죄에 따를 뿐이지 그 어떤 자에게 책망받겠소. 그저 상의 명을 받들 뿐이오.”
법리로는 타당한 듯 했으나 어찌 들으면 무조건 임금에게 미루는 비겁한 책임회피기도 했다.
그런 부분을 논박할 줄 알았던 김종순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향후 더 이상, 축귀검과 왕실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병사들의 유족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보상의 규모와 정확한 전달만을 확인하면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당의 대간들이 모두 놀라 김종순을 쳐다보았다.
저 꼬장꼬장한 늙은 선비가 이렇게 물러서다니?
현영휘가 겸연쩍게 웃었다.
일종의 항복선언과도 같이 여겨져 기쁠 만도 했지만 도리어 조정의 행정을 영의정인 자신이 문란케 했다는 자조에서 기쁘지만은 않은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갑작스레 김종순이 큰 소리로 말을 덧붙이고 나섰다.
현영휘를 포함한 조당의 모두가 놀라 김종순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 오천여 병력을 단 하룻 밤새에 전멸시키는 상대의 방법과 그런 적을 단지 네 다섯으로 막아내는 축귀검의 방법으로 볼 때 정규 병력으로는 그들을 상대한다는 것이 무리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따라서,”
“따라서?”
현영휘의 반복반문에 김종순이 다음 말을 이었다.
“그들의 상대에는 정규군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이묘사를 상대할 떼에는 온전히 전문적으로 축귀검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묘한 뒤 끝을 보이는 김종순의 청에 현영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의외의 사헌부의 양보에 그날의 조당회의는 그 전의 상황에 비하면 평화적으로 끝났다. 다만 이젠 전담하여 해명과 기이묘사를 상대해야하는 동파가 약간의 부담감에 앞섶을 조금 풀어 헤쳤을 뿐, 병사들의 유족들에 대한 보상 문제만 현영휘가 사재로 전담하는 선에서 조당회의는 마무리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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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빈은 잠깐의 말미를 얻었다. 그녀는 금강산의 자신이 자란 절에 갔다 오기 위함이었다.
“어머니, 저 다녀왔어요!”
절의 요사 한 귀퉁이에서 한 비구니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수빈을 반겼다.
“내 딸이 왔구나! 어서오너라!”
늙은 비구니의 이름은 혜감, 법명인 것이 분명하나 본디 이름이 뭐였는지는 수빈도 모르고 있었다.
수빈은 방안으로 들어가 봇짐에 이리저리 싸놓은 물건들을 풀어 방에 벌려 놓았다.
꿀과 과자, 향낭과 비단옷들이었다.
“이게 다 뭐니? 어디서 이렇게 많은 것을 가져왔어?”
“나랏일을 하게 된 보람이죠. 어머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오늘 저녁을 해드릴게요.”
“먼 길 와 놓고 쉬려마, 무슨 부엌에를 들어가니.”
부엌 아궁이의 불을 넣는 수빈을 말리면서도 수빈의 입에서 나랏일이란 소리에는 늙은 비구니의 얼굴에는 근심의 빛이 떠올랐다.
“나라에서 새타니의 재주가 필요하다니? 별난 일이로구나. 네게 몹쓸 소리하는 흉한은 없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비구니, 혜감의 걱정에 수빈은 그저 웃으며 대꾸했다.
“헤헤헤, 나랏일이라니까요? 제가 같이 일하는 분들도 계셔서 전혀 제게 나쁜 소리하는 사람이 없어요.”
“아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혜감은 수빈의 웃음의 밑을 뚫어 보았다.
언제나 슬프고 힘들어도 늘 밖으로는 웃기만 하던 아이라 지금의 웃음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얼마간의 재물을 받아오고 행색도 초췌하지 않은 것을 보아 고생이 자심하지는 않은 것도 같았다.
“......하지만 모르는 게지, 모르는 게야........”
“네? 뭐라 하셨어요? 어머니?”
“아니, 아니란다......”
혜감은 간만의 반가운 딸의 해후에 걱정만 하고 있을 수가 없어 곧 자신도 부엌에 들어가 같이 저녁을 준비했다.
두 사람만이 먹을 저녁을 둘이 같이 차리는 행복. 찬을 차리고 밥을 씻어 솥에 넣은 후 아궁이에 불을 살렸다.
밥이 익을 동안 수빈이 손, 발을 씻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혜감이 벗은 옷을 받아 가다 어깨의 상처를 보았다.
“아니~! 이게 뭐니? 아주 깊은 상처가...... 꿰맬 만큼 깊은 상처를~!”
수빈은 아차 싶었다. 내내 잘 숨겨서 집을 떠날 때까지 들키지 않으려 했건만, 의외로 상처가 빨리 아물어 아프질 않자 자신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머니, 아니에요. 이건......”
“......”
혜감이 상처를 보고는 아무 말도 못했다.
비단옷을 여럿 가져온 것이 공짜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머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런 상처에 능통하신 분이 다 치료를 해주셨구요. 꼼꼼히 꿰매주셔서 조금도 덧나지 않고 잘 아물었어요.”
“보기로는 창상(칼같은 것에 베이고 찔린 상처)같은데 그런 상처에 능통하다니, 남자니?”
수빈이 입을 꼭 다물고 눈길을 돌리며 대답했다.
“......예......”
혜감은 그런 수빈에게 짐짓 엄격한 어조로 말해 주었다.
“남자는 안 된단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아가?”
“......예......”
풀 죽은 소리로 대답하자 혜감이 그런 수빈을 딱하게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상처 받을까봐 그러는 거야. 너도 잘 알잖니?”
“......예......”
간만에 집에 온 수빈에게 모진 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서 혜감은 맘이 아팠다.
어째 이런 얘기를 했을까 후회가 들었다.
얼른 마른 수건을 챙겨 씻은 수빈에게로 다가갔다.
“미안하구나, 어디 상처를 좀 보자꾸나. 정말 잘 나은 거니? 덧나지는 않고?”
“......예, 이젠 다 아물었어요.......”
수건으로 손을 잡아준 혜감은 그대로 수빈을 살며시 끌어 안아주었다.
“내 예쁜 딸이 상처 입는 것이 싫어서, 이 엄마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래. 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래. 내 맘 알지?”
“......예, 알아요......”
혜감은 끌어안은 품안의 수빈을 다시 열어 수건으로 얼굴과 어깨의 물기를 닦아 주었다. 수빈이 멋쩍게 혜감을 보고 웃자 혜감도 받은 웃음을 다시 나눠주었다.
자매같은 모자는 말없이 배시시 웃음을 주고받으며 저녁상을 마저 차려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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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귀검에 출근한 항현은 만사가 트릿하고 짜증만 났다.
준모도 지루해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기관이 하는 일이 하는 일이다보니 평시에는 달리 할만한 일이 없었다.
무기의 보수와 손질도 언제나 자신들의 이미 여러 번 반복하다보니 이제는 날을 세우다 날이 사라질 지경이었다.
전각 안에는 귀신보다도 무서운 지루함이 가득했다.
“형님, 그냥 퇴근해 버릴까요? 나가서 술이라도 한잔 하시는 게......”
항현도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니나 제조도 없는 관청에서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이 본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참고 있었다.
“준모, 아직 축귀검이 기관으로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네. 할 일이 없다고 근무지를 이탈하여 음주난행을 일삼으면 좌부승지 영감의 체면은 뭐가 되겠나? 며칠은 더 이런 날이 반복될게야.”
이런 날이 더 반복이라는 말에 준모가 의자에서 입을 헤 벌리고는 퍼져 버렸다.
‘수빈 아가씨는 이제 안 오시나......’
항현이 전각안에서 하늘을 올려보며 멍한 눈으로 양털 구름의 덩어리들 수를 세고 있을 때 동파가 왔다.
동파는 승정원의 좌부승지다 보니 축귀검에 자주 올 수는 없었다.
별명(다른 명령)이 없이는 가끔 들러 전각의 서책이나 청결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다였다. 오늘 온 것도 그저 점검을 하고 출근한 적 있다는 수결(손으로 한 서명) 한 자락 남기기 위해서였다.
“아~ 뭣들 해? 할 일없으면 청소나 하지 않고!.”
“돌 바닥에 빗자루 자국 나겠어요! 청소만 하는 청소기관입니까? 축귀검은?”
잡일하는 사인 아이들이 다 불평을 한다.
동파는 점검표에 수결 처리를 넣으며 말했다.
“귀신 잡는 관청에 일 없으면 귀신도 없고 세상도 좋다는 게지. 그저 전각이나 잘 정리하고 일을 기다리시게. 일 없을 때는 없을 때를 즐기시고.”
아이들의 불평에도 동파는 빙글빙글 웃으며 받아주기만 했다.
“좌부승지! 여기 계시다하여 왔네. 계시는가?”
말이 씨가 된다더니 항현과 준모가 일어나 눈길을 전각의 문을 향하자 거기에는 잘 모르는 당상관이 하나 서있었다.
“대사헌 대감!”
놀라기는 동파도 마찬가지였다.
칠반천역이라 절대 인정 못한다던 축귀검의 기관 인정에 가장 난적이었던 양반이 지금 축귀검의 전각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대사헌이란 말에 행여 책이라도 잡힐라 의자에 퍼져있던 준모도, 창문에 기대있던 항현도 벌떡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고 꼿꼿이 바르게 섰다.
너무 뻣뻣한 그 모습에 대사헌 김종순이 도리어 겸연쩍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허허허~ 너무 놀라지들 말게. 내 신변에 기이한 일이 생겨 조사를 청하려는 것이니.”
국가기관으로 정식 출범한 축귀검의 첫 일거리는 참으로 의외의 손님이 가지고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