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성이 자리에서 앉아만 있자 동파는 한마디를 물어보았다.
“대감, 하나 여쭙겠습니다. 저는 지난 나지운의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 때의 사건에 대하여 제게 더 말씀해 주실 것이 없으십니까?”
“그런 게 어디 있겠나...... 그 때 조사해 간 게 다 일세. 내 종놈 중에 썩을산이란 놈 하나와 똥칠산이란 놈 하나가 그 나지운이란 놈이랑 술자리에 시비가 붙어 한 대 탁 치자 나지운이란 놈이 억 하고 쓰러져 죽었다네.”
“이 일은 나무와 관련된 일도 있습니다. 나지운의 선산에서 나무를 베어 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일은 당시의 보고에는 없던 일인데요.”
“......”
황창성이 말없이 앉아 있다가 겸연쩍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에~ 그러니까 말이야, 그 일,...... 그러니까 내 종놈들이랑 그 나지운이랑 싸움박질이 나중에 주상 전하에게까지 알려져서 나도 크게 야단을 맞았다네....... 그러고나니 나도 약이 올라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사람을 좀 놓아 알아 봤더니 그 놈이 자기가 가진 조그만 산에 나무를 심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키운다고 하더군. 그래서......”
말을 쭝얼대며 이어가던 황창성이 갑자기 한 군데서 더는 나가지 못하자 동파는 솜씨 좋게 재촉했다.
“말해 주십시오. 어차피 내친걸음이잖습니까?”
다음 말을 주저하던 황창성은 동파가 웃는 낯으로 곰살궂게 채근하자 이길 수 없다는 듯이 얘기를 이어주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나무들 다 베어내고 약 좀 올리려고 열 냥(1냥 약 20만원, 열냥= 100만 원쯤?) 보내 줬지. 모자라면 더 주마하고......”
“예, 그런데요?”
“근데 그 나무들이 보통 나무가 아니었다더라고, 그 나가 놈의 아이들이 어릴 때 병으로 다 죽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죽은 자식의 이름을 붙이고 부부가 쉴 때마다 찾아 정을 대던 정붙이 나무였다더군.”
“아하~”
“나무가 베어졌다는 것을 알고는 그 날로 바로 상심하여 죽었다더구먼. 나도 아차싶었다네. 미안했지만 이미 늦은 걸 어쩌겠나?”
동파가 얘기를 당사자에게 직접 듣고 상황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했다. 그러나 하나 더 궁금한 것이 있어서 나무 위에서 밑의 범에게 돌 던지는 심정으로 동파는 질문을 던졌다.
“저도 그 썩을산이와 똥칠산이 폭행치사 사건을 압니다. 당시 조정에 말이 꽤 돌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사건의 고발을 지역 관아에서 안 받아주어 그 처인 윤씨 부인에 온양에 온천을 가신 주상 전하께 직접 고변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랬지.......”
“근데 그 윤씨 여인은 나무가 그리 된 후 어떻게 했습니까?”
“모르네. 주상 전하께 직접 고변을 한, 간 큰 여자이니 나도 신경 좀 곤두세웠는데 남편 장례치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하더군. 나도 못 찾았어.”
“추적을 좀 해 보셨군요.”
“나도 좀 미안하고 캥기더구만. 그 처에게라도 뭐든 보상을 해야지 않은가 해서......”
동파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설마 그 여인에게 해꼬지라도 하신 건......”
“예끼! 아닐세! 이 사람아!”
파묻었다 생각한 일이 다시 벌여진 상황에서 황창성은 살인죄라고 덮어 쓸 까봐, 동파가 말을 제대로 맺기도 전에 역정을 내어, 동파 얘기의 없는 끝을 끊었다.
동파도 더는 캐묻질 않았다.
일반 수사 행정이라면 더욱 그 내막을 캐고 여타 범죄의 여부를 물어봐야겠지만 그것은 현재 동파의 업무는 아니었다.
“예, 알겠습니다. 불쾌한 기억을 다시 상기시켜드려 송구합니다. 대감.”
“어험~! 흠~!흠~!”
황창성이 소리를 꽥, 지르고도 여전히 나가질 않고 있었다. 그래서 동파가 다음 말이 나오도록 자신이 먼저 말의 앞 자락을 깔아 주었다.
“대감께옵서 따로 하명하실 일이 있으시옵니까? 있으시다면 하명하소서.”
“험! 저..... 그것이 말 일세...... 험! 험!”
“......”
암말도 않고 기다리는 동파에게 황창성은 적잖이 겸연쩍은 얼굴로 물어 보았다.
“그..... 남자아이인가?”
“예?”
“그 임신한 아이가 남자인지..... 혹시 모르시는가?”
“아~ 예~”
동파는 자신이 저간의 사정을 캐어 물으면서도 혹시 황창성은 미쳤다는 풍문을, 아랫사람에게 폭행을 휘두른다는 풍문을 자신이 직접 몸으로 확인하지 않을까 적잖이 신경이 쓰였는데 의외로 고분고분 대답을 해주어 의아한 중이었다.
어쩐지, 그렇게 고분고분한 이유가 따로 물어 볼 말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마 남아일 것입니다. 원귀가 그 회임하신 아이와 우상을 착각했다는 것은 아마도 남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 그럴테지? 그지?”
얼굴이 환하게 펴진 황창성은 콧방귀까지 그릉그릉대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원귀는 그럼 해치운 건가? 쫓은 게야?”
“아직은 분명히 확인이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어제 그집에 나타났던 원귀는 분명히 쫓아냈다고 합니다.”
“음......”
황창성은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생각하다가 결국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아직은 이 정체불명의 기관의 사람들을 함부로 다루면 안된다는 결론이었다.
“알겠네, 그러면 좀 더 수고해주시게.”
“물론이옵니다. 분골쇄신하오리다. 대감.”
어조를 과장하여 읍하며 말하자 황창성은 그게 걸렸던지 동파를 다시 살짝 겁을 주었다.
“만일 아기에게 일이 생긴다면 정말 각오해야 할 게야.”
협박을 들은 동파는 안으로 성이 났지만 오히려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허리를 굽혀 물음을 던져 황창성에게 지지 않았다.
“물론이옵니다.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길 마다하진 않을 것이옵니다! 다만 귀신이 저주나 흉행이 오묘하여 아기와 부인, 양 쪽중 하나만 지켜야 한다면 어찌 하오리까? 입이 방정입니다만 만사 불여튼튼이니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우선보호대상을 어디로 삼을지 하명하여 주소서”
“!”
허리 굽혀 인사하는 상대가 되레 갑갑한 질문을 던져 자기 허를 찌르자 황창성은 당황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 정말 보통이 아니로다.’
황창성은 자신이 힘이 세고 억세다보니 다른 힘센 자들을 겁낸 적이 없었다.
두 팔로 대적하여 싸우는 자라면 이기면 거느리고 지면 숙이면 그 뿐이니까, 그보다는 이렇게 지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는 약점을 찌르고 들어오는 자들을 더 겁을 내는 편이었다.
머리 좋고, 말 잘 하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웃는, 이런 자들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이길 수도 없었다. 그저 피로한 싸움을 계속 하게만 되는 것이다.
이 박동파라는 자도 자신에게 언제나 예의를 지키고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자였다. 다만 그 확실한 예의범절은 자신을 경외 한다기보다는 그 스스로를 지키는 자기 방어라는 느낌을 더욱 주는 자였다.
황창성이 껄끄러워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허나 이리저리 시비를 걸고 집적대봤으나 전혀 걸려들지 않았다.
더구나 정삼품의 당상관, 함부로 손찌검을 하기도 뭐했다.
‘할 수 없군. 아쉬운 건 내 쪽이니......’
황창성은 살며 별로 해본 적 없는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알아서 해주시게. 어미가 살면 자손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요. 아들이 생긴다면 그 어미도 소임은 다하는 것이니 둘 중 하나만 구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 닥친다면 반드시 하나만이라도 구해주시게.”
속으로는 두드려 패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속과는 다른 부드러운 어조로 부탁같이 지침을 내려주었다. 그러자 역시 박동파도 부드럽게 받았다.
“알겠사옵니다. 대감. 제 방정맞은 예상은 그저 맞을 수 있는 상황의 하나일 뿐, 그러나 저희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대감의 부인과 그 자손을 양쪽 다 지킬 것이옵니다. 맡겨 주시옵소서.”
황창성은 다시 허리를 굽혀 읍을 하는 동파에게 더는 도발이나 겁박을 하지 않았다.
“말 만이라고 고마우이. 그럼 수고해주시게.”
황창성은 묘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전각을 나갔다.
박동파도 허리를 펴고 일어나 나가는 우의정의 뒤를 배웅했다. 그리고는 승정원에는 출장으로 보고하고 자신도 일찍 퇴궐했다.
돈의문(한양의 서대문) 밖에는 성벽을 따라 병졸, 궁인, 관노, 갖바치 등등 각종 재인들이 가가호호 모여 살아갔다.
나라에서, 성 안 귀인들의 필요로 이리저리 쓰여야 할 각종 물자와 봉역들을 제공하며 살아가는 중인, 양인, 천인들의 마을이었다.
어느 날, 그 곳에 왠 반가의 마님이 한분 들어오셨다.
귀밑 머리가 희끗희끗했지만 딱히 하고 사는 일도 없이 먹고 살았다.
가끔 남의 집 삯바느질이나 도와주고 남의 집 잔치에 손 좀 보태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여인은 자신을 그저 윤씨라고만 했다.
결코 자신의 과거 이야기는 하질 않았다.
벌이는 고향의 가산으로 보내오는 재물로 해결한다 하는 데, 그럼 고향에서 살지 왜 한양, 타향에서 고되게 사느냐는 질문에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하던 말대로 가끔 하인인 듯한 사람이 곡식이나 재물을 갖다 주는데 또 그럴 때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기품이 제법 보였다.
그렇게 본가의 재물이 오고 나면 주변에 이리저리 떡을 쪄 나누고 주변을 청하여 함께 즐겼으니 그 수상함을 깨름직해 하던 사람들도 더는 의심 품지 않았다.
밤에 도성 안이 뭔가가 시끄럽고 번쩍거리던 그 다음 날도 윤 씨는 아낙네들과 빨래를 하며 수다를 떨고 간식을 만들어 동네 정자 나무 밑에서 아낙들과 나누어 먹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날 밤, 그러니까 돈의문 안에 김 씨 네에서 축귀행이 벌어졌던 그 다음 날 밤, 축시(새멱 1시~3시)가 지난 시간에 왠 초립을 쓴 사내 하나가 동네로 들어갔다.
희한하게도 그 사내가 동네에 걸어 들어오는데 동네 개들중 단 한 마리도 짖지 않았다.
고요한 밤 공기를 가르며 들어온 남자는 싸리 문을 훌쩍 뛰어넘어 윤 씨네 집안으로 들어갔다.
“부인, 부인.”
낮고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방 안의 윤 씨를 깨웠다.
“오셨습니까?”
윤씨가 서둘러 방으로 남자를 들였다.
초립을 벗은 남자는 어린이같은 동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