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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축귀의 검
작가 : 후우우우니
작품등록일 : 2017.12.4

세조 10년 현덕왕후의 저주로 나병에 걸려 문둥이가 된 세조.
설상가상으로 왕에 오르며 저지른 짓들이 다시 세조와 조선에 앙갚음으로 돌아온다.
적의 무기는 위대한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을 주문으로 사용하여 고대의 악한 마법을 되살린

"언문주"

언문주로 조선과 조선의 7대 임금 세조의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적들.
그들로부터 국가의 안정을 지키고 사악한 주법을 막기 위해 언문주를 사용할 줄 아는 새로운 국가기관을 창설하는 데

그 이름은 "축귀검" 이었다.

 
3. 피끝마을전 6. 전멸(다리)
작성일 : 17-12-15 12:12     조회 : 36     추천 : 0     분량 : 1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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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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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의 미소가 반 정도 굳은 얼굴로 항현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어째 기운이 다르신데요?”

 “.......”

 

 항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화가 많이 나신 거예요?”

 “.......”

 

 여전히 말은 해명만이 하고 있었다.

 

 “그...... 제 극(戟)에 찔리신 여자 분, 정인이신가요?”

 “!”

 

  항현이 숨을 짧게 들이 마신 그 순간 바로 화살이 날아가듯 튀어나갔다.

 해명이 등 뒤의 극을 꺼내 겨우 항현의 사인검을 막았다.

 불꽃이 튀기는 데, 해명은 그것이 칼에서 튄 것인지 항현의 눈에서 튄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광조는 두 발의 갑각(鉀脚), 사묘각으로 연봉우의 칼을 막아냈다.

 산 사람의 운동량을 이미 넘은 연봉우의 칼놀림은 이미 검술이나 어떤 무술의 경지가 아닌 어떤 기관의 움직임과 같았다.

 호흡과 호흡의 사이도 없었고 기와 기의 흐름에 파고도 없었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피에 젖어 한에 젖어

  산마다 골마다 짐승뿐이네

  맑은 하늘이 먹장구름불러

  자신의 눈을 가리니

  구름속 뇌룡의 번갯불이

  더러운 악을 태워멸하노라

  악멸뇌룡참-!”

 

  붉은 불, 푸른 번개가 연봉우를 향해 날았다. 광조는 빨리 옆으로 몸을 날려 그 기운에 휘말리지 않도록 피했다.

 연봉우의 왼손의 외침이 떠르르 진 안을 메웠다.

 

 “충신의 맑은 영혼은 어떤 권력도 침탈하지 못한다-!”

 

  귀곡성이 보호막으로 작용하여 악멸뇌룡참을 막아냈다.

 전혀 뇌룡참의 충격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충격을 온전히 다 받은 것도 아니다.

 옆으로 몸을 던져 뇌룡참의 기운을 피한 광조는 준모에게 한 마디했다.

 

 “내게 먼저 귀띔이라도 해 주세요! 말려들 뻔 했잖아요!”

 “충분히 피할 시간이 있어서 아무 소리 안 했는데? 그 정도 실력은 되잖아?”

 

  준모의 대꾸에 광조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 말이 끝난 동시에 연봉우의 장검격이 광조를 덮쳤다.

 광조도 준모에게 트집을 잡긴 했지만 실제, 가장 큰 문제는 인간같지 않은 연봉우의 공격력이었다.

 

 “나는 충신이다-! 어린 임금을 다시 옥좌로 회복시키리라-!”

 

  짧은 말만 반복하는 연봉우는 역시 연봉우가 살아있을 때의 연봉우가 부활한 것이 아니었다.

 얼이 살아 있다면 설득하여 성불시켜 보려던 수빈은 이내 단념했다.

 대신 빨리 쓰러뜨리고 항현은 돕는 것으로 다시 전술을 세웠다.

 

 “광조씨 잠깐 시간을 벌어줘요!”

 “제가 지금 계속 하고 있는 게 그거거든요?”

 

  광조가 퉁명스레 말을 하자 수빈은 눈썹을 한 쪽 세우고는 준모에게 자기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광조가 연봉우의 칼을 발로 막는 동안, 수빈은 준모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준모는 수빈과 얘기를 맞추며 연봉우를 다시 관찰했다.

 

  항현의 사인검이 정통 군검법을 시전하자 두 자루의 철극을 가진 해명이 오히려 몰리기 시작했다.

 진전격전, 진전살적(전진하며 적을 공격)의 검격이 쉴 새 없이 들어갔다.

 속도가 빠르고 무게를 확실히 실어 던지는 군대식 전투 검법에 해명은 기본적인 체중과 체력에서 떨어지는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다.

 

 ‘젠장! 무장이라는 건 굉장하군! 전날의 싸움은 뭐였단 말인가? 한 수 접고 있었다는 건가?’

 

  해명은 두 자루의 철극을 한 손에 하나씩 붙잡고 싸우던 방식을 바꿔 두 자루의 뒷 고리를 연결했다. 그리고 던지듯, 돌려 휘둘러 원심력을 이용하여 항현을 공격했다. 그러나 항현은 그런 원심력을 실린 공격조차 되 튕길 만큼 검력이 뛰어났다.

 되 튕기는 반동력을 이용하여 계속 철극을 휘둘렀지만 항현은 그런 공격을 막으며 해명의 정중선으로 표두압정(표범의 머리를 누르듯 위에서 아래로 찌름)세로 짓쑤시고 들어갔다. 그 때!

 

 “두텁고 단단한 태산이 걷는도다

  귓가에 겁없고 당당한 호통친다

  하늘을 보지 않고 땅의 그늘만 찾으니

  대지의 어린 꽃을 빈틈 없이 지키노라

  대해호강기(大亥護强氣)-!”

 

  해명의 왼손에서 거대한 둥근 기운이 솟아나듯 만들어 지더니 그대로 항현을 힘으로 밀어냈다.

 항현이 칼을 든 오른손을 올려 머리부터 허리까지 우내략의 자세에서 칼을 내려 그 강기를 받았다.

 뒤로 밀리는 항현, 우전보(오른 발 앞)의 자세로 왼 발을 힘을 주어 버텼다.

 그런 방어의 한 수 때문에 해명에게 공격의 기회가 생겼다.

 해명이 놓치지 않고 철극으로 가볍게 항현의 허벅다리의 바깥을 찔렀다. 그리고 바로 거둬들였다.

 

 “푸-웈-!”

 “......”

 “놀랐습니까? 이건 사해벽강패입니다. 돼지의 해, 돼지의 월, 돼지의 일, 돼지의 시에 만든 사각신령구지요.”

 

 항현은 말없이 왼손으로 허벅지에 찔린 상처를 만져보고는 피를 입술에 발랐다.

 

 “제 쌍철극은 뭔지 아세요? 사술상우극이라고 합니다. 개의 해, 개의 월, 개의 일, 개의 시에 만들었죠. 상우극(上吽戟), 위를 물어뜯는 극이죠. 전 반드시 이유의 가슴에 이걸 박아 넣을 겁니다.”

 “......”

 “나 참! 뭐라고 대답 좀 해요-!”

 

  항현이 다시 아무 대꾸 없이 사인검을 앞세우고 덤벼들자 해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신경질적인 고성을 한 마디 쏘아 붙였지만 항현은 아랑곳없었다.

 아무 말 없이 해명을 다시 몰아붙이자 해명은 다시 몰리기 시작했다.

  피는 항현이 흘리고 있었지만 해명의 숨이 턱까지 차올라 도리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광조씨-! 교대-!”

 

  연봉우의 기계적인 연속 검초를 발로 상대하던 광조는 뒤로 힘껏 뛰어 연봉우와의 간격을 띠었다.

 그 사이를 준모와 수빈이 같이 들어갔다.

 광조는 한숨 돌렸다.

 확실히 산 사람이 아닌 연봉우는 싸우던 상대가 바뀐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앞에 싸울 상대가 나타나면 검을 들이대고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혹은 도망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베고, 베고, 또 벨 뿐이었다.

  수빈은 광조에게 시간을 벌게 한 후 준모와 연봉우를 정지시킬 방법을 강구했다. 그리고 광조와 교대하며 준모가 앞에 수빈이 뒤에 서서 연봉우를 상대했다.

 

 “하늘이 노여워 눈을 감는다......”

 “역적의 피로 산과 강을 물들일 것이다-!”

 “하늘을 덮는 큰 날개여

  흙을 날리는 큰 바람이여

  나무를 뽑고 바위를 날려

  꽃잎아래 나비를 지켜라!

  취조구축진”

 

  준모가 구름을 부르는 풍운호성의 주를 읊으며 연봉우의 칼을 대적했다. 연봉우의 왼손이 쥔 머리에서 귀곡성이 터져 나오면 취조구축진의 주문으로 뒤의 수빈이 준모를 보호했다.

 방금 전까지 귀곡성을 내공력으로 계속 버티며 연봉우의 칼을 상대했던 광조는 수빈과 준모의 연계 행동을 보며 입을 실쭉 내밀었다.

 

 “......하늘이 슬퍼 뜨질 않는다......”

 “충신열사만이 살 자격이 있노라-!”

 “취조구축진-!”

 

  준모의 풍운호성주가 계속 되며 진지의 머리 위 하늘은 검은 구름이 돌음질치며 모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괴로워 보질 않으니 구름이 그렇게 검게 덮혔노라-!”

 “난신적자야-! 목을 씻고 기다려라-! 연봉우가 간다-!”

 “취조구축진-! 준모씨! 지금-!”

 

  귀곡성을 방어한 수빈이 준모에게 신호하자, 준모가 모둠뛰어 수빈의 머리 위를 넘어 수빈의 뒤로 물러났다.

 연봉우의 정면에 드러난 수빈의 정수리를 향해 연봉우의 큰칼이 내리꽂혔다. 그러나!

 

 “파캉-!”

 

  수빈이 다친 팔을 들어 방어주의 널로 그 칼을 막았다.

 널에 써놓은 방어의 주문과 금줄의 영험묘력으로 큰 칼의 날카로움을 막았다.

 다만 수빈의 다친 팔이 연봉우의 힘을 버티지 못했다.

 서서히 연봉우의 힘에 수빈이 주저앉았다. 다음 순간, 수빈 뒤의 준모가 수빈을 훨씬 뛰어 넘어 염봉우의 양어깨 사이, 연봉우가 왼손에 쥔 그것이 원래 있었어야 할 자리에 서서 그대로 사진도를 쑤셔 박았다.

 

 “한울님의 눈이 땅의 그늘을 굽어보노라!

  굴음님의 숨이 악의 어둠을 살펴보노라!

  천룡님의 뜻이 마의 비겁함을 노려보노라!

  벼락을 부른 이곳에 밝음만이 깃들어 어둔 그늘 없노라!

  집전파사격-!”

 

  준모는 주문을 마치고 사진도를 박아둔 채 바로 옆으로 뛰어 내렸다.

 준모가 불러 모은 구름에서 뿜어진 모든 벼락줄기가 사진도로 떨어지며 모였다.

 집중된 번개가 연봉우의 몸 안 깊숙이 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아아-------!”

 

 연봉우가 순식간에 불이 붙어 커다란 화톳불이 되었다.

 염통이 몇 개든 더는 살아날 방법이 없는 형태로 죽어갔다.

 준모도, 수빈도, 광조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내구한계를 벗어난 공격력에 소멸되어가는 연봉우의 비참한 비명이 훨훨 일어나는 불처럼 하늘로 솟아 울려 퍼졌다.

 

  항현의 왼쪽 허벅지에 상처를 내고는 저울을 맞췄다고 생각한 해명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항현의 공격은 전혀 기세에 꺽임이 없었다.

 

 “대해호강기-!”

 

  모를 때는 강한 공격이 되었지만 알고 나니 사해벽강패는 공격보다는 방어구였다.

 둥근 곡면을 따라 몸을 한 걸음만 무르면 전혀 해가 되질 않았다.

 물론 그 호신강기를 뚫기가 상당히 힘들었지만 그 호신강기도 숨이 턱에 찬 해명의 기에 연동하다보니 향현의 주문으로 그것을 밀어 붙일 수 있었다.

 

 “귀문을 지키는 영수여!

  이 세상을 떠도는

  가지 않는,

  가지 못하는,

  가야만 하는,

  가여운 넋을 인도하라!

  귀인일진격-!”

 

  일진격이 사해패의 호신강기를 뚫지는 못했지만 해명 자체가 뒤로 밀리며 태세를 무너뜨렸다.

 

 “어...... 엇-!”

 

  해명이 뒷걸음질 쳐 대해호강기가 사라지는 순간, 번개의 세례가 후방에 떨어졌다.

 커다란 비명이 집결군, 진 안을 가득 메우자 해명은 연봉우의 최후를 짐작했다.

 더 이상 항현에게 밀려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해명이 항현을 해치우고 쓰러진 둘을 데리고 이 자리를 피하고자 승부를 걸었다.

 

 “대해호강기-!”

 

 다시 사해패의 호신강기로 항현을 밀어내자 이번엔 항현이 바로 밀어 내질 않고 그 기의 벽에 시선을 두었다.

 해명이 그런 항현을 노려보며 주문을 읊었다.

 

 “북서쪽 해지면 금잔디 바래지다

  활줄이 파고든 가는 목이 밤내 운다

  주검위의 봉분은 산자의 의무거늘

  봉분조차 못 가진 어린왕의 설움을

  이빨 드러낸 용맹의 개가 분노에 겨워 짖노라......”

 

 “동북방 지옥문을 지키는 범의 성난 울음

  괴로운 인생에 괴로워하는 산자들의 울음

  남겨진 원한에 격노하는 남은 자들의 울음

  불길에 몸을 태울 죄인들의 두려운 울음

  달님만이 위로하며 소리 없이 우노매라......”

 

  해명은 왼손의 사해패를 앞에 대고 호신강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입으로 읊조린 주문을 출사하기 바로 전에 해제할 것이다.

  그에 맞서는 항현은 해명이 아닌 호신강기 그 자체를 보고 있었다.

 눈은 해명을 잡고 있었지만 그 간격을 더욱 세밀히 보고 있었다.

 

 “.......”

 “.......”

 

  이미 항현의 해일같은 공격에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해명은 차분히 항현을 살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죽이리라!’

 

  체력은 남았으나 신령구를 둘이나 운용하는 상대를 반드시 잡아야하는 항현은 해명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슨 기이묘법이 펼치더라도 해명의 숨은 끊겠다는 결심이었다.

 

 ‘반드시! ..........돌려준다!’

 

  해명은 계속 호신강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기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싸움의 시작은 해명에게 불리한 셈이었다.

 해명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격돌의 시작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자신이 유리한 점도 있었다.

 항현은 이미 호신강기를 발끝으로 밀어내며 간격을 미세하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하고 있었다.

  해명이 판단이 섰다.

 

 ‘가로, 그리고 숨통을 끊는다.’

 

 호신강기를 자신의 안에 수용하며 힘이 이미 주문을 마친 주법의 힘이 되도록 해야 한다.

 순식간에 해내어 항현이 손을 쓸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각오가 섰다.

 판단과 각오가 만난 순간!

 

 “선풍술연격-!”

 

  사해패의 강한 기운이 순간 사라지자 해명은 사술극을 가로로 그었다.

 항현은 머리를 아래로 숙여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사술극이 그 자리에서 떠 고속으로 회전했다.

 회전 반경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절단하는 날선 철극의 날이 회전하며 그 자리에 떠 있었다.

 그것은 한쪽 철극 뿐이었다.

 쌍철극의 나머지 한쪽을 해명이 거머쥐어 엎드리다시피한 항현의 등 한 복판을 바라보았다. 회전의 사이로 던지기 직전이었다.

 

 “끝이다-!”

 

  날카로운 해명의 기합-! 절체절명-!

 항현은 사인검을 쥔 손에서 돌려 잡았다.

 새끼손가락 쪽에 칼날이 오도록 잡고 회전하는 사술극 회전중심을 엄지 손가락쪽의 손잡이 끝으로 밀어 쳐냈다.

 회전하는 한쪽 철극이 항현의 타격에 떠오르며 해명의 얼굴어름으로 날아갔다.

 

 “웃-!”

 

 회전하는 사술극이 튀어 오르며 해명의 얼굴에 피를 내었다.

 해명은 마지막 기억하는 항현의 위치에 자신이 쥔 사술극을 내려찍듯, 질렀다.

 손에 걸리는 느낌이 가벼웠다.

 항현의 전립이 날아가고 상투가 풀어져 머리가 내려왔다.

 

 “귀인참월격-!”

 

  역수로 잡은 사인검을 손안에서 회전시키며 걷어 올렸다. 밝은 빛이 달처럼 휘돌아 간 자리에 해명의 가슴에서 뿜어지는 피 보라가 뭉게뭉게 따라 올랐다.

 

 “흐-억~!”

 

  해명이 가슴을 부여잡고 몇 뒷걸음 후에 쓰러지자 쌍철극, 사술상우극이 하나씩, 따로따로 항현의 좌우로 떨어졌다.

 

 “이거..... 제가 좀 우습게 봤네요. 전날에는 아무래도 체포를 하려다보니 사정을 두었던 거군요....... 오늘은.....?”

 “.......”

 

  항현은 아무 말 없이 쓰러진 해명에게 다가갔다.

 해명이 말 없는 항현에게 투정하듯 말을 뿌렸다.

 

 “아이- 참-! 정말 아무 말도 안할 거예요? 너무 하네-! 정말-!”

 “......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음산한, 메마른 항현의 낮은 음성이 다음 말을 이었다.

 

 “...... 어차피 죽이기로 한 상대.......”

 

  해명이 그 말을 듣고 올려다보자 항현의 두 눈은 깊은 동굴 같았다.

 그 안에 촛불 하나가 켜있는 것 같았다.

 촛불하나 켜진 것 같은 깊은 동굴 같은 눈. 맹수, 짐승의 눈이었다.

 

 “아~ 그 여자를 다치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 후회하는 어조의 해명의 말에 미동도 않는 항현이 오른 손에 쥔 사인검을 왼 어깨로 올리며 베야할 해명의 목 언저리를 정확히 봤다.

 

 “가거라-!”

 “안돼-!”

 

 베려는 순간, 어마어마한 전음이 항현, 수빈, 준모, 광조의 머릿속에 울렸다.

 

 “전음!”

 

  항현은 머리에서 종이 울리는 듯한 전음에 당황하여 해명을 베지 못했다.

 진문의 끝, 시체들이 즐비한 저 너머에 검은 장옷으로 몸을 덮은 여인 하나와 털 조바위(여자아이들이 쓰는 쓰개)를 쓰고 검보라 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항현이 다가가 신원을 확인하려 했으나 다시 머릿속에 종이 울렸다.

 

 “안돼-!”

 “헉-!”

 

  단순히 전음이 큰 정도가 아니라 듣는 자들의 기혈이 들끓었다. 수빈도, 준모도, 광조도 항현과 마찬가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또박또박 걸어 항현과 해명사이로 걸어 들어온 둘은 해명을 바라보았다.

 장옷의 여자가 해명의 팔을 잡아 부축해 올렸다.

 옷감 사이에 고여 있던 피가 일어나는 순간 땅으로 흘러 떨어졌다.

 

 “오라버니, 많이 아파?”

 “응~ 운이야. 오빠 조금 아파......”

 “후으응~”

 

  아이가 울먹이자 해명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달랬다.

 

 “왜 울어? 운이가 언문주로 고쳐주면 되는 데......”

 “그래도 그 전까진 아프잖아......”

 “오빠, 참을 수 있어-!”

 

  짐짓 안 아픈 척, 너스레를 떠는 해명이었지만 옆의 장옷 여인에게 체중은 대부분 싣고서 서있었다.

 

 “종희누나, 나 졌어요. 헤헤.....”

 “그러시며 강해지시는 거예요.”

 “.....하.....하하....... 그런가?....하하.....”

 

  해명을 기대게 하고서 옆으로 살짝 움직여 떨어진 사술극을 하나, 주워주자 해명이 그것을 지팡이삼아 겨우 혼자 섰다.

 혼자 선 해명을 두고서 다른 사술극과 쓰러진 다른 이들, 비합과 건암을 일으켜 깨웠다.

 그 긴 행동을 하는 동안 항현과 축귀검의 인원들은 꼼짝달싹을 못했다.

  제지하려 움직이면 여지없이 머릿속에서 큰 종소리와도 같은 전음이 울렸다.

 

 “안돼-!”

 

  전음은 마치 최면술처럼 움직임을 마비시키고 몸 안에 내공기혈을 휘저어 놨다.

 버틸 수가 없어 항현조차도 한 무릎을 꿇고 주저앉을 정도였다.

 

 “운이야~, 운이 누이야~, 이젠 가야하는 데 우리가 다 아파서 우릴 나를 하인들이 필요해.”

 “이 사람들을 깨울까?”

 “응, 응, 그걸 해줘......”

 

  아이가 주저앉아 있는 항현을 지나 진의 중앙까지 종종걸음으로 뛰어나와 숨을 있는 데로 들이마셨다. 그리고,

 

 “호~옵~!

  사루와~ 사루와~ 나보러 또 사루와~

  한들한들 돌아와 짚신당혜 신고서

  졸린 눈 비비고서 하얀 옷은 벗고서

  꺽은 꽃이 시들면 가는 향기 잡고서

  사루와~ 사루와~ 나보러 또 사루와

  사루가지안으리~ 친구같이 가누나~”

 

 아이가 예뻤다.

 많아 봐야 열 살에서 위아래를 셀 정도의 꼬마 여자아이였다.

 노래하기 전 숨을 가슴 한가득 삼켜 넣는 모습은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노래했다.

 동요였다.

 아이의 앙증맞은 콧소리에 또박또박 가사를 힘주어 부르는 모습에 칼을 쥔 손이 부끄러웠다.

 칼 대신, 저 고운 입에 넣어줄 엿 한 조각, 과자 하나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마친 순간, 주변이 갑자기 웅성거렸다.

 웅성거릴 일이 없는 장소였다.

 산 사람이 없는 학살의 현장이 왜 웅성거릴까?

 죽은 집결군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마에 “삶”자가 좌우, 위아래로 뒤집힌 글자로 나타나 안에서 솟구치는 피에 의해 새겨졌다.

 당파에 벙거지를 쓴 졸오의 시체도 있었고 갑주를 두르고 환도를 든 갑사의 시체도 있었다.

 창귀호에 내장이 파헤쳐져 내장이 쏟아지는 철릭장교들도 있었다.

 그들이 모두 일어났다. 공평한 죽음을 넘은 귀갱시로.....

 

 

 “으어어어~”“크우우우우~”

 

  수빈은 경악했다. 저 고운 아이가! 이 많은 시체들을 귀갱시로-!

 항현은 있는 힘껏 일어났다.

 아이가 일어나는 항현을 봤다.

 항현의 머릿속에 전달되는 엄청난 전음!

 

 “안돼-!”

 “으아아아아아-!”

 

  항현이 단전에 힘을 모아 기합을 지르며 양 무릎을 힘으로 폈다. 힘으로, 어거지로 일어났다.

 기합 소리에 놀랐는지 일어나는 것에 놀랐는지 화들짝 놀란 꼬마 계집아이가 흐느끼며 장옷 여인에게 뛰어가 안겼다.

 

 “아아아앙~ 종희~”

 “움~ 안 무서워요~ 안 무서워~ 아기씨~”

 

  눈만 보이는 장옷의 여인이 아이를 안고 항현을 매섭게 노려봤다.

 해명이 사술극 한 짝으로 짚고 서서는 손을 들어 여인을 제지했다. 그리고 항현에게도 상냥하게 얘기했다.

 

 “여기까지만 하시죠. 저희도 더는 욕심 없습니다. 여기의 귀갱시들을 몰고 저희도 이동할 겁니다.”

 “귀갱시를 몰고? 허튼 소리! 아무데도 못 간다-!”

 

  투지만만한 항현을 보며 장옷의 여자가 해명에게 간단한 의견을 개진했다.

 

 “죽이고 가죠?”

 

 해명이 말도 않고 고개만 홰홰 돌려 의견을 거부했다. 그리고 말은 항현에게 이었다.

 

 “이것만 말씀 드릴께요. 저희는 이유(세조)가 한 그대로 혁명을 일으킬 겁니다. 그래서 적당한 전주 이씨 하나 세워 왕을 바꿀 거예요. 그럼 우리는 공신이죠. 그리고 그 왕과 거래를 하는 거예요. 우리 같은 난힘자들의 그 존재를 확실히 인정받는 거예요. 칠반천역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의 지도계층으로서,...... 지금 관복을 입고 우리를 잡겠다고 이유의 개로 뛰어 다니며, 어린 왕이 어떻게 죽었는지, 늙은 선대왕의 고명대신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두 눈 꼭 감은 당신이 우리보다 더 현실적인, 그리고 더 이상적인 명분이 있나요? 한 번 묻고 싶군요?”

 “......”

 “있어요-!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존재를 사회에 인정받을 거예요!”

 

 아무 답을 못한 항현을 대신해 팔을 목에 건 수빈이 대꾸를 했다.

 

 “.....음...... 저....... 그.....적때 찔렀던 것, 미안합니다......”

 

 희한한 타이밍에 사과한 해명을 째려보며 수빈이 해명에게 답을 했다.

 

 “우린 이 나라에 필요한 존재가 되려는 거예요. 이런 식의 기이묘사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필요한 사람들이 된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를 조정과 사회가 받아들여 줄 꺼예요.”

 “기이묘사로 혼란하게 하는 사람들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건, 우리를 죽이겠다는 건가요?”

 “못할 거 없지. 네가 수빈 아가씨를 찌른 그날, 이미 결심은 섰다. 확인한 것처럼......”

 

  항현이 낮게 중얼거리듯 대답하자, 아이를 안은 장옷여자의 눈빛이 한층 험악해졌다.

 그 여자의 어깨를 해명이 잡아 끌었다.

 같은 순간, 수빈이 해명의 말을 험악하게 받아 친 항현의 한 팔을 붙들고 잡아 끌었다.

 항현이 진정하고 물러나자 수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꼭 우리가 당신들을 죽일 필요 없죠. 당신들이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조정에 투신하여 다른 기이묘사를 해결한다면 어때요? 우리는 정말 대체가 불가능한 전문적 재인들이잖아요? 반드시 이 조정에 당신들도 자리가 있을 거예요. 분명히!”

 “훗~!”

 

  해명은 신음하듯 웃었다.

 항현도 밖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수빈의 말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핫-! 일단 얘기는 이쯤에서 끊도록 하죠. 기억은 하자구요. 우리는 어디만큼 논의를 전개했는지, 우리는 또 만날 테니 그 때 다시 얘기하죠.”

 

  군복을 입은 귀갱시들이 비합, 건암, 해명, 그리고 아이를 안은 장옷 여자를 손으로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항현의 한 팔을 수빈이 꼭 잡았다.

 지금은 보내줘야 할 때라는 의미였다.

 귀갱시의 손가마 위에서 해명이 항현에게 다시 소리쳤다.

 

 “아마도 우리를 죽이는 날이 이유에게 당신들이 죽는 날이 될 겝니다. 우리가 없어지면 당신들도 그들에게 더 필요한 존재가 아니니까-!”

 

  항현이 해명의 외침에 대꾸도 안하자 해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귀갱시의 손가마위에 들어 누웠다.

 음침한 사자의 행렬이 소백산 자락을 타고 올라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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