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는 들어와서 지혁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오싹하리 만큼 화난 표정- 눈 안 깊이가 안보이는 깜깜한 눈동자-
같은 동양인이라고 다 같은 검은 눈이 아닌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
이런 , 솔직히 자는줄 알았다-
물론 테라스에 나가서 만난 , 그 사람은 의외의 만남이긴 했다.
기대 안한 만남이기도 했고-
지혁이 자신을 내 쫓을까 맘이 살짝 조마조마 해 졌다.
그러나 입에서 나온 이야긴 , 적어도 내 쫓겠다는 이야긴 아니었다. 몹시 거칠긴 했지만
"대체 뭐지? ..."
지혁은 어디에서부터 이야길 시작해야 할지 감도 서지 않았다. 장하임과 이야길 나눈것? 아니면-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아주 손톱 만큼이라도 하민이를 조금은 잊어버렸던 시간이 있음을?
언제나 내 맘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던 죄책감에 대한 설명? ... 아니면........
마음속에 들끓는 내 생활을 거침없이 건드리는 이 앞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분노?
이 인간에게 대체 이 원인모를 분노를 어떻게 쏟아내야 할까-
대체 어떻게 쏟아내야- 눈곱만큼의 정당함이라도 실릴까....
지혁이 짜증을 참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쥐자 제이미는 눈치를 보는 듯 눈을 아래로 보냈다가
기껏해야 조용한 소리로, 개미만한 소리로 항변하는것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 이야기 안했어요-....... 특별한 얘기를 할 만한 시간도 없었구요-"
그 말이 오히려 장 하임과 자신의 사이를 파악했다는 말로 들렸다. 그래 자신의 불찰이었다.
하민이 어머님의 말을 들어 드리는게 계산 착오였는지도- 아니면 맘 어딘가가 약하게 물러진 것이
이런 일을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냥 혼자만 알고 싶은 손톱만한 숨구멍이였다. 병원에서 받아온
진통제를 먹었더니 너무도 피곤했고 잠시 쉬고 있는데 , 의식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자신의 집에선 없는 일이었고- 눈을 들어 본 창엔 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장하임이 떠오른건-
테라스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스친건 그때였다. 그제야.... 그런 생각을 했다.
"됐어- 내가 당신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녀는... 일로 아는 사이야-"
지혁이 변명처럼 들리지 않길 간절히 바란 말은... 안타깝게도 제 귀에도 변명처럼 들렸다-
제이미의 표정은 이렇다할 변화가 없었다-
"일로요?"
하민이 어머님이 뭐라곤 설명 안하셨던 모양이다.... 지혁은 이를 갈듯 덧붙였다.
"내가......... 작가야- ... 저 여잔 삽화가고.. 그림 그리는 사람-..."
제이미는 속으론 놀랬다. 하민이가 편지에서 한 말이긴 했다. 글 쓰기 좋아하고 재능 있어 보인다고..... 그렇다고 정말
작가가 되었을 줄이야.....
"어떤 책인가요?"
지혁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알 필요 , 없어- 바깥에서도 내가 작가란걸 몰랐으면 하거든..... "
제이미는 속으로만 살짝 웃었다. 열심히 항변하네... 내 쫓길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유들유들한
자신의 성격을 못 견뎌하는것 같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이렇게 대했을 것이다. 오히려 도와준다는 식으로
얘길 꺼내자 저 남자는 폭발했었으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했다면 이 사람과의 거리는 좀더 좁혀졌을까?
그보다 왜 일 같이하는 사이인 저 여자가 옆집에 사는거지? 그런것까지 묻는다면-
정말 이 남자는 완전 .. 뒤집어지겠지?
말이 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저 남자에겐 항변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저 날 내보내면 될 일이지-
이래도 저래도 정말 위험한 남자다- 예민하디 예민한..
"..... 그래요?"
"그래-"
"제가 저 여자를 만나서- 화났나요?"
제이미가 던진 직구가 지혁의 맘에 돌이킬수 없는 파도를 일으켰다. 겉으론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지만 그랬다.
화 내선 안된다. 저 여자랑 나는...........
하임과 마찬가지였다. 지혁도 이렇다하게 우리의 사이는 '무엇' 이다란 정의를 내릴수 없으니까-
장하임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자신만 어렴풋히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내 감정조차 명확히 모르는것은
멍청한 일이다..... 알지만 그 감정을 인정할수도 없다, 두 사람 다 사랑한다는 것은 비겁한 자들이나 하는
정말, 지혁 자신이 용납할수 없는 비겁하고 치졸한 일이다. 설사 내 감정이 그렇다는 걸 스스로 확인한다고 해도-
나는 그 일을 장하임에게 차마 말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비겁해지고 싶진 않으니까-
"..... 내 주변에 당신의 존재를 설명하기가 힘드니까-.. 되도록이면 조용히 지내다가 갔으면 좋겠군-"
"네- 물론이죠-"
지혁의 입에서 간신히 나온 반론에 제이미는 두 말없이 물러났다- 제이미가 소파에 벌렁 드러눕자 지혁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안의 장농에서 깨끗히 세탁 된 담요를 가져다 주었다.
어쩔수 없이 꼼꼼한 남자라니까-..
제이미는 그걸 받으며 말 없이 웃었다. 그 웃음이
지혁의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지혁은 결국 그날 밤도 잠을 설쳤다.
-
다음날 아침 , 아침 일찍 일어난 듯 주방에서 시끄런 소리가 나서 나갔더니 제이미가 또 부산을 떨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려는 모양이었는데... 아침이라......
정말 성가시군,
지혁은 거의 100번째로 저 남자를 자신에 집에 들인걸 후회했다.
아침 해가 드는 부엌에선 한번도 피어난적 없는 훈김이 가득했다
지혁에게는 당연히 건너뛰는 일과 중 하나가 되었건만- 내가 먹지 않으니 당신도 먹지 말라고 하기엔 너무 이기적인
이야기 인것 같아 지혁은 말 없이 돌아 들어가- 세수를 하곤 벌써 지저분 해진 듯한 머리를 간신히 빗으로 빗었다.
머리는 아직 여전했지만 지혁의 맘엔 너무나 끈적이는 느낌이었다. 찝찝한 맘을 억누르며 부엌으로 향해 말 없이 커피 한잔을 내렸다-
제이미는 부산스럽게 뭘 뒤집다가 그제야 지혁을 본듯
인사를 건냈다- 여전히 악의따윈 없는척 하는 얼굴-... 방긋 웃으면서
정말 없는건지- 없는 척 하는 건지 알수야 없지만
"잘 잤어요?"
지혁은 말 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먹을래요-? 스크램블 밖에 없지만-"
제이미는 싱긋 웃으며 말을 건냈다.
"아니 난 됐어-"
지혁은 제이미를 쳐다 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됐다는 말에 제이미는 빤히 지혁을 바라본다- 아직도 자신이 불편하단걸 믿을 수 가 없다. 어떤 곳이건 제이미는
쉽게 친해지곤 했다. 성격이 바뀌며- 자신을 인정하며 달라진 것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원체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민이 탓은 아니다- 하민이와 떨어져 있던 사이 생긴 버릇중 하나기도 했다.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는 것-
유들유들해 졌다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 그러기엔 자신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자신은 모난 구석이 꽤나 있었다.
맘 속에 모난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물론 내 앞에서 말간 얼굴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저 남자 만큼은 아니지만-
"앉아요- 앞에 "
지혁은 컵을 들고 다른곳에 향하려다 제이미가 굳이 의자까지 빼 놓자 , 어쩔수 없이 앞에 앉았다.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을 먹는다. 찬찬히 지켜보면 지켜 볼 수록 , 묘한 생김새다-
자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제이미가 고개를 들었다.
"뭔가 물어봐도 될까요?"
질문은 달갑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 사람도 참 넉살도 좋다-
자신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구는 사람 곁에- 아무리 보답 차원이라도 있기 힘들텐데..
나라면 그랬을 텐데-
지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저를 받아 주신 것은 하민이 어머니 때문인가요?"
입에 닿은 커피의 온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훅 들어오는 질문이었다.
"그래"
지혁의 입에서 자신도 못 믿을 만큼 힘없는 대답이 새어나왔다.
제이미는 웃는 얼굴을 내려놓고는 격의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그랬군요"
역시, 역시라고-
내 마음의 아량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본 듯한 그 말에 지혁은 복잡한 심경이였다.
지혁은 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제이미가 자신을 면밀히 살피는 걸 느낄수가 있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그렇게 빤히 바라보는건 그만하지-"
낮게 , 주의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힘 없는 말투로 덧붙이는게 고작이었다.
그 말에 제이미가 다시 웃었다.
"기분 나빴나요? 미안해요- 전에 당신 얼굴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어디서?"
날카롭게 되 묻자 제이미가 손동작으로 왜 이러냔 식으로 손으로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가, 무슨 말 할때 마다 그럴 껀가요? "
"......."
"예전에 하민이가 사진 보내준적 있었어요-"
"...."
하민이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사진은 셀수도 없을만큼, 많았다. 우린 툭하면 폴라로이드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으니까-
서로를 , 우리의 눈엔 서로가 너무나 놀라운 피사체였다. 종일 셔터를 눌러대도 그 순간의 즐거움이 설마
사진을 늘어놓고 수다를 떨때의 즐거움에 비했을까.... 종일도- 내내도... 영원히 즐거울것만 같은 순간들이었다.
제이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물론 처음 봤을땐 당신 인줄도 몰랐어요- 지금과 , 뭐랄까-"
얼굴을 가르치며 휘적휘적 손가락을 젓는다.
말이 바로는 떠오르지 않는 듯 단어를 찾으려 골몰한다.
"느낌..... 그래요, 느낌이 달라서..."
당신이 지적하지 않아도 아는 이야기다. 하민이는 그대로일지 모른다-
변한건 나 자신이다. 이 모습 그대로 그때의 하민이를 만난다면- 아마-
하민이는 나를 그렇게 , 따뜻하게 바라봐 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마- 서로를 모른채 스쳐 지나가서 서로 다른 인연에 매여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처음 만남과 같았다고 해도..... 그렇게- 한번 뿐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민이에게는 건방져 보였을 내 첫인상이 ... 차라리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였다면 하민이는 더욱 더 도망치고 싶었을 테니까,
도망이라면 다행이지... 나와 두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꽃같은 아이였다 , 세상은 이상해서
응달에 꽃이 피는 일은 잘 없다-
달과 해가 같은 하늘에 있지 않은 것 처럼-..
지혁은 잔을 내려놓으며 한마디를 덧 붙였다
"아침엔 일 때문에 회의가 있어-... 있어도 상관없지만 나가주면 더 좋겠군-"
장하임보다, 제이미가 장하임에게 할 이야기들이 더 신경쓰였다-
불필요하게 우리 사이에 생채기를 낼 질문들 , 마음에 담아서 고통스러운 것은 나 하나면 족한 질문들...
제이미는 싱긋 웃었다-
"그렇군요- 그럼 고양이를 데리고 외출해도 될까요?"
지혁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 물었다.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군-
둘은 거실에서 밤을 보내며 꽤나 친해졌는지 까망이는 격의 없이 제이미의 발치 쪽에서 자다 깬듯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의자위에 못 올라가게 해서 내 앞에선 그런 적 없었는데 말이다.
"..... 걔는 왜?"
제이미는 싱긋 웃었다. 말미마다 저러니 이젠 지친다-
"아무래도 병원...... 가서 그 뭐죠? 병 걸리지 않게 맞는?"
억양이나 말투는 정말 자연스러운데, 생각보다 단어는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예방주사"
"그것도 맞힐 겸? 아니면 간식이나 좀 사줄까 해서.. 바쁘셔서 잊지 않으셨나요-? 이 동네 어귀에 병원이 있던데요....."
눈치도 빠르고,
오지랖도 넓고- 게다가 길눈도 밝은 모양이군... 지혁은
왠지 모를 씁쓸한 뒷맛은 이제 그만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선- 툭 한마디를 덧붙였다-
"케이지에 넣어서 가던가- 어깨 끈 매고가..."
제이미는 씩 웃었다. 이렇다니까- 이런 부분에서 다른 사람들도 맘이 확 녹아버리는 거겠지
따뜻한 나라에서 추운날은 반갑지 않겠지만- 얼어붙는 추운 나라에선 따뜻한 날이 단 하루라도 반가운 법이니까-
테라스에서 봤던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고- 옅게 느낀다- 저 남자는 아닐지 몰라도-... 그 여자의 마음은
어쩌면 호감을 넘어섰을지도,
누구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내 친구 하민이만 멈춰있다-
하다못해 죽도록 시간을 잡고 있는 이 남자에게도 시간은 흐르건만-
제이미는 다른 말 않고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
김박사는 의자를 젖히며 피로를 해소하고자 따라놓은 커피 향을 즐겼다-
아내가 보내 놓은 문자 내용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오늘은 그의 결혼 기념일이었다.
어린 날의 자신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다른 가정을 가진다는 일은...
그보다도- 더 상상 못한 일은 , 첫사랑에게 품은 연정이 지금까지도 희미하게 남아서-.. 그녀의 아이까지
걱정하게 되는 것이었다. 지혁이의 일이 왠지 마음 한 구석에 걸려 내키질 않았다. 괜찮을까?
그 비서의 어쩔줄 몰라하는 목소리가 떠오르고...... 지혁이가 오롯히 그 모든걸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고 하고도- 약속을 망설이게 된다.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고-
정신과 의사로써 지혁이는 처음에도- 지금도 이상했다.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 직면하면
극단적이 된다- 그건 누구나 그렇다- 보통의 실력 없는 의사들은 우울증을 '일시적인' 마음의 감기라 생각한다.
그래서 미혼자면 결혼하라고- 그래서 결혼하면 아이를 낳으라고 충고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바쁘다 보면- 일상에 바빠지면
감정 타령할 여유가 없어진다는 건데...... 좋게 말하자면 안정감.. 그것으로 원하던 안정을 얻는 다면야 그 치료는 완벽한 것이다.
그러나-김박사의 생각은 달랐다. 우울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항상 안에 내재되어 있다- 언제 자신이 모습을 드러낼지를
천천히 기다리면서- 누구나 우울함은 품을수 있다 , 그러나 그 우울증의 손에 칼이 들려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다.
지혁이는 보통 남들이 고통스러워 달아나고 부인하고 부정하고 비명을 지를때 , 누구보다 독하게 그 시절을 견뎌냈다.
박사라면서 멍청하고 어리석게도 처음엔 그래서 지금은 부정하는 시기이거니 했다- 그게 아니라는걸 나는 그 아이 어머니로 인해 알았다.
그 아이가 그녀를 꼭 빼닮았다고 생각하고 나니 더 알만했다. 그제야 그 아이의 속이 조금은 보였다 ,
아이는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을 경멸하고 있었다- 죽고 싶다는 맘이 가득했겠지만 죽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 바탕은 책임감이었다.
자신이 사라지고 나면 남을 제 힘으론 숨도 못쉬는 처지가 된 그녀를 모두가 돌보지 않을거란
불안감- 다른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흐르더라도 자신은 흘러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려 하는 것- 그 책임감이
미련한 사랑이 죽고싶은 의지까지도 꺾어 놓은 것이었다. 피하지 않고 미련스럽게 자신에게 떨어지는 송곳같은
우울감이 내리는 비를 그대로 그는 죽어라 맞고 있었다.
그 맹목적인 사랑에 김박사는 놀랐다. 오히려 지혁이의 감정은 사고 후에 더 견고해졌다고 생각 할 만큼 그 아이에겐
책임감이 그 아이 안의 가장 큰 질서였다. 아이가 전에 찾아와 자신이 이상해 지기 시작했다는 그 이야길 꺼냈을때
드디어 주변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였다- 아무리 미련을 가져보아도 그 아이는 깨어 날수 없을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들의 시간은 흘러야 했으니까- 지혁이도 이제 나아가야 했으니까-
그러나 오랫동안 멈춘 시계속에선 산 그 아이의 기억속엔 , 시간속엔 뭐가 그리도 미련과 죄책감이 많은지
그 아이는 한걸음 - 한걸음 나설때 마다 수십번 수백번 자신의 걸음을 의심하고 또 스스로 자신을 죄책감에게
죽어라 두들겨 맞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김박사에겐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알아봐도 아무리 환자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젋은 날의 연정- 그것이 그토록 순수하고 열정으로 가득 찬 것임을 알았다면-
포기하지 않고 열정으로 부딫혀서 결코 깨질리 없는 것을 깨는 어떤것임을 알았다면-
나와.. 정옥이는 달라졌을까? 다른곳에 서 있을수 있었는가?
김박사는 자신의 바보같은 멍청한 생각에 그만 피식 웃었다. 그럴리가 없다.
가장 다른 전제가 있었으니까
그녀는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두 아이는 서로를 미치도록 사랑했다는 것- 둘 밖에 서로 둘 만이 유일했다는 것
정적을 깨고 간호사 인터폰 소리가 낮게 울리고 김박사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들어올 결벽증 환자를 상담할 준비를 했다.
언제나 처럼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