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안에게 호되게 당한 뒤로 카이덴은 쭈욱 조용히만 지내오다가 오랜만에 배를 잡고 신나게 웃어댔다.
바이안이 갑자기 쓰러져 기절했다는 소문이 나고 몇 일 뒤에 겨우 눈을 뜬 뒤로는 방안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는 숨만 쉬는 인형인 마냥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식에 속이 뻥 뚫릴 정도로 개운했다.
“벌 받은 거야. 하늘도 네가 나쁘다고 벌을 준거라고. 아하하하”
매일이 즐거웠고, 매일이 보람찼으며, 하늘은 자신의 편이라 믿었다.
그러다가 일 년 뒤에 갑자기 방밖으로 뛰쳐나온 바이안의 행보에 잠깐 움찔하기는 하였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스스로가 황족이기를 포기하며 기사단, 그것도 주인도 없이 명맥만 유지하며 황족과는 전혀 동떨어진 세상인 공백의 기사단에 입단을 했다는 말에 바이안의 어리석음을 칭찬하고 축하했다.
“이제야 제 주제를 안 것이다. 기사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만, 그 곳이면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 오랜 세월 주인도 없는 기사가 명예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느냐. 최강의 기사단이라 불리 운들, 아무것도 없으니 텅 빈 네놈과 꼭 어울리는구나.”
현궁의 연무장에는 때 아닌 소란스러움으로 들썩였다.
“단장님 이게 말이 됩니까?”
“이제 막 땅에서 뽁하고 고개를 내민 어린 싹을 밟아 뭉갤 셈이 아니면 말도 안 됩니다.”
하극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기사들의 성화에 단장은 수하들에게 어떠한 설명도 없이 묵묵히 받아내기만 하면서, 이번에 막 들어온 두 아이를 견습기사로 들였다.
자신들에게도 빡쎈 훈련을 하루만 받아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사경을 해매일 것이 자명해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목검을 들고 말똥한 눈으로 연병장에 서있는 모습에, 반대로 자신들이 입에 거품을 생성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한 명이야 그 카시어스가니까 어떻게 버틸 수도 있다 칩시다. 그 곳이야, 워낙 유명하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체력과 무예를 길러왔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전 황족이라도 저 새하얗고 얇은 몸을 보십시오. 악명이 자자한 저희들의 훈련을 어찌 버팁니까?”
대륙 하늘 아래에서 뛰어놀던 바이안도 햇빛에 조금은 그을린 피부라 하더라도 기사들의 사이에 있으니 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인다.
기사단 안에서도 나름 냉정하다 정평이 나있는 한명의 똑 부러진 말에 모두는 격하게 끄덕이며 그의 편을 들었지만 단장은 두 아이를 받아들인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기사들은 이번에 견습으로 들어온 두 아이가 싫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둘이 걱정이 되었기에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더는 듣지 않겠다는 단장의 으름장에 할 수 없이 불만을 속으로 삼키며 넘어가야 했다.
모두가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돌아갔을 때, 단장은 홀로 남은 알바트론의 어깨에 손을 얹어 두 번 토닥이고 나서 자리를 비웠다.
알바트론은 단장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아듣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서있기만 하는 둘을 지긋한 눈으로 유심히 살폈다.
꼬꼬마들이 얼마나 버틸지 조마조마하며 둘을 지켜보던 기사들은 마력을 일체 쓰지 못하는 지옥의 행군을 제일 끝에서 따라오는 두 아이의 모습에 안절부절 하기도 몇 일이었다.
두 아이는 입에 개거품을 물고 기절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바닥을 기어서라도 쫒아 오는 것은 기본이었고, 손과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지다 못해 피가 배어 나와도 끝내는 완수를 해내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당장에라도 도망가기 바쁠 텐데, 맹수들의 가운데 떡하니 던져 놓았더니 제 몸에도 들기 무거운 검을 꽉 쥐고 도망은커녕 죽어라 덤벼드니, 죽기 직전에 자신들이 막아 도와주어야 했지만, 피범벅에도 검을 놓지 않는 독함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나중에는 아이가 가질 수 없는 그 독함에 질리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기사들은 둘을 빠르게 받아 들여 주고, 하나씩 챙겨주며 도움을 주었지만, 특히나 바이안의 끈질김에 한편으로는 언제 시체를 치우게 될지 이제나 저제나 불안해했다.
오죽하면 관이라도 예쁜 것으로 해주자며 돈을 따로 모으기까지 했으니 그 정도가 더했다.
“아~ 저거 또 시작이다.”
“야 누가 좀 말려봐라. 저러다 반대로 검도 못들 정도로 망가지면, 기사가 되는 의미가 없잖아.”
큰 훈련이 없는 자유시간만 되면, 바이안은 새벽부터 밥을 먹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검을 손에 놓지 않고 단순한 동작이라도 검술의 기본기를 쉬지 않고 연마했다.
손에 물집이 여러 번 터져서 붕대를 칭칭 감아놓았지만, 검술연마를 빙자한 혹사를 멈추지 않아 붕대는 피와 진물에 축축이 젖어있었다.
문제는 기절을 수시로 하면서도 당연하다는 것처럼 다시 기어 나온다는 것이었다.
자신들도 독종이라 자부했지만 바이안의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놓을 정도다.
바이안은 숙소에서 눈을 뜨면 자리에 일어나 머리에 세기 듯 거울을 마주 보면서 다짐 섞인 말을 읊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세 가지 의무. 잠은 짧게. 밥은 왕창. 무조건 훈련.”
붕대를 새롭게 갈아도 의미가 없는 제 손으로, 현제 진검보다는 가벼운 목검도 쥐기 힘들다 하더라도 이를 악물고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검을 그러쥐었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횡으로 검술의 가장 기본기뿐이라도 멈추지 않았다.
기사들은 이미 한 번씩 돌아가며 바이안의 무리한 훈련을 말려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는 행동이라 서로 말만 하며 지켜만 보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딱 한명, 알바트론만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여태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이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오~ 차기 기사단장이 드디어 말려보시게?”
모두가 실패를 하였는데 과연 다음 대의 기사단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알바트론이 성공할지 말지에 모두가 매우 흥미롭게 주시하는 가운데, 알바트론은 자신이 가까이 다가와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바이안을 한심하게 내려다보다가 차가운 한마디를 한숨처럼 내뱉었다.
“멍청한 놈.”
쫙 핀 손바닥을 허리께의 높이에서 뒤로 빼자, 동료들은 화들짝 놀랐다.
“저 미친놈. 마력을 손에 왜 모아?”
“죽일 셈이냐?”
동료들이 자신을 말리려 튀어 나오면서 뭐라 하든, 그에겐 알바 아니었다.
뒤로 젖힌 손바닥을 그대로 바이안의 배에 가격했고, 바이안은 어쩌지도 못하고 바람에 시달려 날아가는 나뭇잎처럼 멀리 날아가 바닥을 길게 쓸어 자빠진 채로 그대로 기절을 해버렸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너무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알바트론, 그는 바이안 같은 부류를 다루는 방법을 잘 알았다.
이런 과격한 방식으로 말리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멈추지도 않을 것이고, 다른 동료들이 했던 대로 말린다면 오히려 더 부채질 하는 꼴이 되어 바이안은 진짜로 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기절한 바이안을 한 팔로 짊어진 알바트론은 옆에서 눈만 끔뻑이는 론을 무심하게 돌아봤다.
“네 놈도 계속 할 테냐?”
론은 알바트론의 무시무시한 시선에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살기위한 본능이 발동되어, 대답보다 빠르게 머리를 좌우로 휘저어 그러지 않겠다 하자, 알바트론은 따라오라고 한마디 툭 던진 뒤에 숙소로 돌아갔다.
침대에서 눈을 뜬 바이안은 전신을 겁박하는 통증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두 다리를 딱 붙이고 계란 쥐듯 쥔 양손을 그 위에 얌전히 얹어 허리를 곧추 세워 눈치를 슬슬 보고 있는 론과, 그 옆에서 자신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알바트론에 의아해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힘겹게 자리에 앉으니 알바트론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어찌하여 기사가 되려 하신 것입니까?”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것뿐입니까?”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알바트론은 아이라고 하기에는 감정의 무언가가 결여된 무미건조한 말투와 행동, 대답 속에 숨어있는 어떠한 감정을 캐치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잠시간의 침묵의 시간이 지나가고 알바트론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말씀 드리지요. 지금 황자님께서 하시는 것은 강해지기도, 기사가 되기에도 어리석은 행동을 하시고 계십니다. 지금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시면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실 겁니다.”
“......”
바이안도 자신이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기에 알바트론의 말에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바이안은 멈출 수도 없고, 멈출 생각도 없었다.
강해지기 위해 해야 할 방법을 모르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지금 멈추게 된다면 분명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릴 것을 아는데 어찌 멈출 수 있을까.
바이안은 어떻게 해서라도 기사가 되어야 하고, 최고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만을 머리에 가득 채워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세이나가 가장 멋있다고 했던 기사였고, 그 아이와의 많은 약속들 중에 유일하게 지킬 수 있는 마지막 하나이면서 이제는 자신의 단 하나 남은 꿈이었다.
“기사가 되고 싶으십니까?”
“네.”
“강해지고 싶으십니까?”
“네.”
잠시의 고민도 없이 거르지 않고 나오는 단호한 대답은 분명 진심이리라.
알바트론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후에 그대로 자리에 일어나 문가로 걸어가며 말을 꺼냈다.
“진심이시라면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푹 쉬십시오. 그리고 내일부터 저한테 오십시오.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알고 있는 강해지는 법을 전부 전하께 때려 넣어드리겠습니다.”
바이안은 강해질 수 있는 길이 나타나자, 타오르는 눈동자로 그의 등에 시선을 고정했다.
알바트론은 그런 바이안의 시선을 느꼈지만 모르는 척 무뚝뚝하게 덧붙였다.
“만일, 제 말을 무시하시고 다시 그런 어리석은 훈련을 하신다면 어떠한 것도 가르쳐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이안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멀뚱하게 앉아서 그럼 저는요? 저요! 저도요. 라며 자신도 데려가 달라면서 존재감으로 열심히 조르고 있는 론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론이 바이안 대신 감정을 가득 담아 반짝이며 기대했다.
두 아이의 대조적인 성격과 성향을 떠나서, 서로 다른 두 아이의 모습이 퍽 귀여워 피식하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자연스럽게 걸쳐졌다.
“로트론 네놈도다. 오히려 내일 부터가 진짜 지옥이 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씩씩한 론의 대답에 알바트론의 입 꼬리가 조금 더 말려 올라갔다.
“아~ 또 시작했다.”
“저거, 아동학대 아니냐? 누가 좀 말려봐.”
“그럼 네가 말려봐라.”
“미쳤냐? 저 자식을 힘으로 이길 놈이 여기에 누가 있다고, 나 죽기 싫다.”
예전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말리네 마네 하며 떠들게 되는 눈앞의 둘이 셋이 된 장관에 기사들은 서로 아웅다웅 다툰다.
그리고 다시 돈을 모아 관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고 머리를 싸매더니 얼마를 모아야 할지 심각히 의논했다.
어른과 아이 둘의 힘의 차이는 무시한 알바트론은 전혀 봐주는 일 없이, 바이안과 론을 있는 대로 날리고 던지고 검으로 두들겨 팼다.
“독기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를 말하며 바이안을 집어 던진 후에 커다란 기합과 함께 덤벼드는 론의 정수리를 목검으로 후려쳤다.
“로트론. 나 지금 공격합니다라고 적에게 일일이 알릴 셈이냐?”
바닥에 꽥하는 단말마와 함께 엎어진 론에게 으르렁 대다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짓쳐들어오는 바이안을 다시 집어 멀리 던지자마자 바이안과 연계해 들어오는 론도 같은 방향으로 던져 둘을 예쁘게 포개주었다.
“서로 등을 맡겨야 하는 동료와의 호흡은 칭찬하지요. 하지만, 그런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바트론은 동작이 크다. 힘이 너무 들어갔다. 등 쉬지 않고 둘이 힘이 다해 움직이지 못할 정도까지 혹사 시켰다.
꼼짝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먼지투성이로 누워 기절해있는 둘을 각각 한 팔에 들쳐 안고 대롱거리며 제 팔에 흔들리는 둘을 숙소로 데려가 침대에 던져서야 그 날의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