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손을 들어 보이며 생긋 미소 짓는 세이나의 손을 받쳐 들고 자연스럽게 그녀를 에스코트 하면서 황궁의 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궁에서 벗어났을 즈음에 세이나가 바이안을 불렀다.
“이렇게 잡고 가니까 불편하다. 그치?”
“불편해?”
세이나는 자신의 불편하다는 말에 심각하게 궁리를 하는 바이안에게 피식하며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빠르기에 바로 손을 고쳐 잡았다.
손을 아래로 편하게 한 뒤에 마주 잡았고, 앞뒤로 붕붕 흔들었다.
“역시 이게 최고지.”
늘 잡아 왔었던 손, 그 손을 잡고 함께 마을의 여기저기를 달리기도 했었던 그 손이 그 때와 지금도 우리 사이에 변한 것이 없다면서 다시금 잡혀져 서로를 이끌기에 마음이 생크림으로 발라져 부드럽고 달달해진다.
문제는 홀에 가까이 도착 할 때까지 자연스럽게 함께 마주 보다가도 순간적으로 휙 하고 고개를 완전히 돌려버리는 바이안의 이상행동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이나는 오빠가 정말 오늘 왜 저러나, 끝나고 나중에 따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태자궁의 제일 큰 방안에 황태자는 연회에 나갈 준비를 마친 뒤에 마무리로 작은 병의 뚜껑을 열고 손목과 귀 밑에 적당량을 묻혔다.
그 뒤에는 아낌없이 옷의 이곳저곳에 뭍이며 마무리했다.
“정말 이런 것이 그런 효과가 있다니, 신기하군.”
“멀쩡한 이들에게는 어딘가에서 맡아 봄직한 향수일 뿐이지요.”
황태자의 파트너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루루는 그의 말에 나름 건조함을 추가해 친절히 대답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리 쉽게 무너질까?”
저번에 분명히 대충이라도 설명을 해주었건만, 아직도 저런 의구심을 표현하니 답답해진다.
“물리적이든, 자의적이든 정신적으로 다친 사람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완벽히 낫는 경우는 보지 못했으니까요.”
황태자는 이미 비어있는 빈병을 탐구하듯 이리저리 돌려보며 의심을 하고 있는 행태에 보고 있는 우루루는 어이가 없어졌다.
있냐고 해서 있다고 했고, 달라고 그래서 주었더니 이제는 또 저러고 있다.
어찌 마음에 들겠는가, 그래도 오늘로 자신의 일도 끝날 테고 주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황태자와의 인연도 여기서 끝이라며 나름 위안했다.
연회가 열리는 홀에는 이미 중요인사들이 모여 서로 여기저기에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번 연회는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어서 중요한 요직을 맡고 있는 이들 중심으로 초대되었고, 그들의 노고를 푸는 형식으로 주체되어서인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아서 모여 즐기는 이들도 여유로웠다.
“대현자님과 2황자전하 드십니다.”
입구 쪽 바깥에서 쩌렁하게 입장을 알리는 외침에 홀에 모여 있던 모두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이 곳에 모인 인사들 중 대부분은 예전 신성한 의식의 날에 그 자리에 있었고,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지켜본 이들이었다.
하지만 세이나가 대현자의 자리에 올라 간 후에는 알현신청에도 묵묵부답에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었다.
최근에야 드물게 사람들을 마주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대현자의 존안을 뵌 것은 아닌지라 아직도 여전히 신비롭고 궁금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다들 이번 연회에서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세이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준비를 조금씩 해왔고, 세이나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증폭되어 열리는 입구에 집중했다.
문이 활짝 열리며 들어오는 둘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 번 감탄을 하고, 그 둘의 주변을 호위하는 공백의 기사단의 위압적인 모습에 두 번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연회 같은 자리에 참석할 때 무장을 한 호위를 대동 할 수 있는 이들은 황제와 대현자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예식용 가검을 차고 입장을 하는 것이었지만, 이번에 황제와 대현자 사이에서 모종의 말이 오고 갔기에 그들이 차고 있는 검은 실제로 사용되는 검이었고, 그 것은 이번에 온 귀족들은 알지 못했다.
누가 보아도 평화롭기 그지없는 입장일 뿐인지라 주변에는 순수한 감탄만이 터져 나왔다.
어느 타이밍에 치고 들어갈 것인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재고 있을 때 밝은 색의 가벼운 드레스차림의 에바황녀가 세이나에게 반갑게 다가왔다.
“언니~”
“에바야. 언제 돌아 온 거야?”
“으음.. 어제?”
가까이 다가온 이들이 없기에 서로 편하게 부르며 안부를 물었다.
“밑에서 진전은 좀 있었어?”
케리프와의 사이에 대한 진전을 물어보자 에바는 두 볼을 손으로 감싸고 수줍게 웃어보였다.
“조금? 에헤헤”
도시를 함께 거닐며 데이트 한 것이 떠올랐는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에바는 여기에 보는 눈들만 없었다면 방방 뛰면서 얘기 했을 것이지만 나름대로 꾸욱 참았다.
후에 에바는 세이나의 꾸민 모습을 연신 칭찬을 하다가 옆에 서서 같이 웃고 있는 자신의 둘째 오라버니에 시선이 이동했다.
“오라버니도 사람이었구나.”
“푸훗~ 설마 그거 칭찬으로 하는 말이지?”
에바의 조금 어긋나 보이는 감탄성에 세이나는 키득댔다.
“그럴 수밖에. 내 기억에 오라버니가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는 모습은 오늘이 처임이야.”
새초롬하게 허리에 손을 얹고 어깨를 살짝 으쓱여 보인다.
“음. 보기 좋아. 어울려.”
엄지를 치켜 올리며 칭찬을 하자, 자연히 서로 쑥스러워 하는 모습에 연애를 이제 막 하는 커플처럼 어색한 것이 예쁘게 빛이 난다.
에바를 시작으로 현궁의 주요 인사들이 차례로 인사를 왔고, 다른 이들도 슬쩍 끼어 세이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관심어린 행렬에 겨우 끝이 보이자, 아무리 세이나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바이안은 그런 세이나를 데리고 한쪽에 가지런히 진열 되어있는 간식들과 음식들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우와~ 난 왜 이제 봤다니.”
손을 마주치며 좋아하는 모습에 바이안은 접시를 들고 직접 골라 담아주었다.
“아 그거 나 알아.”
세이나의 입맛취향을 잘 아는 바이안이 알아서 담고 있을 중간에 이제 막 들어 올린 과자를 아는 척했다.
“기억하네?”
“당연하지. 반 오빠가 잔뜩 가져왔을 때 맛있어서 그날 다 먹었었잖아.”
“그리고 역시나 또 혼났지만.”
추억이 서려 있는 과자여서인지 양껏 담아 올리고 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한 후에 앉아서 즐겼다.
“이 과자 엄청 좋아했었는데 맛도 그대로야.”
“주방장이 바뀌지 않았으니까.”
잔뜩 쌓아 놓고 즐기고 있었는데, 문제가 하나 생긴 것이 생각보다 양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는 것이었다.
손으로 과자를 집으려다 멈칫한 세이나는 자신의 주변에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기사들을 스윽 돌아보았다.
멋있게 무게를 잡으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입가에 뭍은 부스러기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호위는 철저히 해야겠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맛있는 냄새가 풍기면 당연히 허기가 지고 먹고 싶어지는 충동이 일수밖에 없겠지만, 기사인 그들이 앞 뒤 분간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서 충분히 그런 유혹이야 쉽게 뿌리 칠 수는 있다.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 분위기가 바뀐다고 해야 할지, 세이나에게 완전히 물들은 행동이었다.
물론 몰래 쏙하고 빼먹는 것을 시작한 것은 보지 않아도 론이다.
“은밀하게 완벽하게?”
세이나의 시선에 괜히 뜨끔한 론이 슬쩍 어색하게 웃으며 손에 묻은 가루를 살살 털었다.
“아하하. 오빠 우리 한 번 더 챙겨 오자.”
즐거워하는 세이나에 만족스러운 바이안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간식을 담으러 이동을 했다.
식도락에 푹 빠져있는 세이나들과는 반대로 다른 한 쪽에는 가만히 있어도 눈에 뜨이는 두 명의 노인이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끌끌끌 이것도 괜찮구먼~”
“그러게 내 뭐랬는가? 오면 즐거울 거라 하지 않았는가?”
“끌끌끌”
처음에 연회이야기를 들었을 때, 할아범은 답답한 옷과 답답한 분위기는 질색이라며 거절을 했었지만, 남작이 살살 달래며 할아범의 하나하나를 다 챙겨 주었다.
특히 연회에 맞춘 옷이 없기에 남작이 손수 불편함이 없는 디자인으로 맞춰서 입혀주었고, 온갖 종류의 술을 즐길 수 있다는 말로 꼬드겨 그의 취향을 맞춰주는 모습이 훌륭한 마누라였다.
농담으로라도 뱉은 말도 말이라고 그 말이 씨가 된 듯 이제는 누가 보더라도 남작은 할아범의 천생배필이다.
할아범과 하이론 남작은 이미 세간에 유명인사였다.
대현자의 할아버지들이라는 타이틀도 있었고, 특히 할아범과 황제의 대련이 소문으로 돌기 시작한 뒤에 바로 기사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소문이 더해져, 대대로 무가 집안인 귀족들은 틈틈이 할아범과 한마디라도 말을 섞기 위한 기회를 노렸다.
용기 있는 자가 선점을 한다고 화려하게 차려 입은 복색과는 딴판인 거대한 몸집을 가진 장신의 중년남성이 언제 가져 왔는지, 술이 가득 담겨진 말 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할아범의 앞에 내려놓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르신. 드란체 미하일이라 합니다.”
“끌끌끌끌”
남작이 새로 쥐어주는 술잔을 홀짝이며 호승심에 이글거리는 중년인에게 사람 좋은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허.. 자네 이제 완전히 손녀딸보다 더 인기인이 되었구먼.”
남작은 자신을 소개한 이의 신분을 금세 알아차린 후에 새삼 할아범이 산처럼 거대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난 그런 거 잘 몰러~”
드란체 미하일이라는 남성은 후작 이였고, 무가 집안으로는 카시어스백작가와 쌍벽을 이루는 집안이었다.
다만 카시어스백작가 보다 한 계급 위인 후작위에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카시어스 쪽에서 대대로 백작까지가 딱 좋지 그 위부터는 할 일이 많아서 몸을 단련하는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이유로 업적을 세워도 그 자리에 머물러서 생긴 차이였다.
그리고 두 집안의 공통점은 신분적인 체면이나, 격식보다는 순수한 강함과 강한 자와의 무력의 겨룸을 더 좋아하고, 그 무력을 좋은 곳에 쓰는 것을 최고의 자부심으로 여기기에 대대로 큰 요직까지 올라가는 기사를 배출해왔다는 것이다.
“어르신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이제는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이 되는지 할아범은 말해 보라며 여유롭게 대충 벽에 등을 기댔다.
“어르신만 허락해 주신다면 검을 한 번 섞고 싶습니다.”
“크~ 좋구먼~ 끌끌”
술잔을 순삭 하듯 완샷을 한 뒤에 남작에게 건네주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종류의 술잔이 손에 쥐여진다.
새로운 잔을 받아 든 후에 할아범은 고개를 숙이고 부탁을 하는 드란체 후작에게 술을 권하며 대답해주었다.
“끌끌 나는 언제라도 괜찮은디, 집 주인이 내가 아니라서 말이여, 손녀딸에게 허락받고 다시 말하게나.”
“물론입니다. 어르신. 가까운 시일에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끌끌끌”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동화가 되어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가 되었고, 후작은 즐거운 한때를 느끼며 중간에 살짝 살짝 세이나가 있는 쪽에 시선을 두었다.
대현자의 옆에 호위하고 있는 카시어스가의 젊은 백작, 아직 한창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높은 자리에 까지 올라갔고, 거기에 카시어스의 성을 가지고 있는 이가 그까지 합해 두 명이나 대현자의 측근으로 있기에 그의 투지는 활활 타올랐다.
‘대현자님께 부탁드릴 때 백작과의 대련도 한번 청해봐야겠군. 내 아이들도 어서 컸으면 좋겠구나.’
젖살이 통통히 올라 기저귀 탓에 퉁퉁한 궁둥이를 씰룩이면서 작디작은 장난감 목검을 휘저으며 집안을 활보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까지 생각의 방향이 바뀌자 아이 바보가 되어 헤프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