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이나는 한번이라도 대현자를 보기 위해 들리는 이들의 알현 신청서를 들여다 보며 조금씩 만나기 시작했다.
현궁에 드나들면서 자신을 보기를 희망하는 귀족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귀찮은 것을 싫어하다보니 다 거절하면서 무시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나름 적극적이었다.
“끄으응~~ 나한테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들 못 봐서 안달이야.”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론은 황당하게 물었다.
“나한테 잘 보여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건 알아. 그런 거라면 황제폐하께 갔겠지. 휴..”
장르를 나누어 분류를 하나하나 하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주군의 지혜를 빌리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하일은 주군의 머리를 알기에 그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뭔 놈의 지혜? 왜 다들 내가 천재라고 오해 하는 거야? 나도 모르는 것도 있고 하지 못하는 것도 많아. 대현자라는 이름이 그렇게 만드는 건지는 몰라도, 정작 대현자가 되는 인물들은 그런 걸로 되는 게 아니라고.”
투덜대는 세이나와는 다르게 모두는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단체로 떠름하게 자신을 보는 시선에 더 투덜댔다.
“우이~ 예를 들면 만약 전쟁이 났을 때, 난 하등 도움이 안 된다고. 병법이나 그런 건 잼병이란 말야. 그런 건 케리프씨가 잘 할 걸?”
이번에는 단체로 고개를 모로 기우린다.
“...나 놀리는 거?”
그러니 단체로 좌우로 붕붕 젓기 시작하는데 짜 맞추듯 똑같다 보니, 진짜로 놀리는 것 같았다.
문제는 히데아마저 함께하니, 론에게 물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론을 째려봤다.
“왜 나만..”
론은 자신만 향해서 째려보는 이유를 몰라도 억울함이 올라왔다.
뿌루퉁한 채로 다시 신청서를 읽어나가며 분류하던 세이나는 음흉하게 웃어댔다.
“흐흐흐흐.”
갑자기 무섭게 웃는 세이나에 모두 의아해 할 때, 세이나는 펜을 들고 꺼내든 종이에 무언가를 휘갈겨 써 내려가더니 고이 접어서 히데아에게 넘겨주었다.
“이거 바로 넘겨줘.”
히데아는 받아든 쪽지를 들고 수신인을 확인한 후에 조용히 인사하고 도도도 밖으로 나갔다.
“카시어스가는 진짜 재미있는 집안인 것 같아.”
신청서를 읽던 세이나가 왜 생뚱맞게 자신의 집안에 대한 감상을 꺼내는지 론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순간 오싹하고 자신도 모르게 팔에 닭살이 오소소 올라왔다.
[내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무례하다고 하지 않을 테니, 바로 쳐들어 와도 좋네. -하이론 세이아나-
추신. 파이팅!! ]
세이나의 답장을 받아들고 읽고 있던 이는 벌떡 자리에 일어나 쿵쿵 발소리를 거칠게 내면서 옆에서 도도도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자신을 안내해주는 히데아 시녀장을 따라갔다.
세이나의 집무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은 예의도 없이 다가오는 사람을 막으려 했지만, 히데아가 손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오히려 반대로 그들을 막았다.
시녀장이라고 하더라도 기사보다는 밑이었지만 히데아는 이미 시녀장 이전에 주군의 심복이나 다름이 없어서 그들은 그녀를 동급으로 대우하고 있었기에 얌전히 그녀의 말을 들었고, 막는 것이 없어지자 아주 씩씩하게 집무실의 문을 잡아 뜯을 기세로 벌컥 열어 재꼈다.
안에 있던 모두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크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세이나 빼고 단체로 화들짝 놀라면서 세이나의 주변을 경계했다.
“야이, 씹어 먹어서 삼키면 배탈 날 것 같은 썩은 주댕이야악!”
쩌렁쩌렁하며 울리는 큰소리에 세이나는 짝짝짝 작게 박수치며 꺄르륵 웃었다.
순식간에 세이나의 근처로 온 히데아는 세이나가 적었던 답신을 론 빼고 모두에게 보여주었고, 답신과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모두는 꺼내들었던 검을 갈무리 한 뒤에 세이나의 뒤의 벽에 몸을 기대며 이죽였다.
론은 뻐끔대는 붕어가 되어 자신에게 무척 익숙한 사람을 멍하니 보았다.
움직이기 편하게 가벼운 상의와 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굴곡이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머리는 짧게 쳐서 짧아도 물빛 머리가 부드럽게 찰랑인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굳은 머리로 멍하니 있는 론에게 쿵쿵 거칠게 다가온 그 여인은 론의 귀를 있는 대로 잡아당기며 위에서 아래로 쭉 내렸다가, 다시 위로 쭉 잡아 올렸다.
“네가 아주 미쳤지? 어? 집안 말아먹어도 유분수지. 그러고도 네가 가주냐? 이 뇌 파먹은 무뇌아야.”
“으다닷.”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지라 론은 머리에 안개가 끼어서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너한테 못 맡기겠다. 백작 위 내놔. 똥만 싸지르는 똥 쟁이야!!”
귀가 뜯어질 것 같아질 때 론은 그녀의 손을 치며 빠져나와서 주군의 앞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자신의 여동생을 막으려 했지만, 모두가 이죽이죽 웃으며 구경하고 있는 장면에 조금 전의 세이나가 꺼낸 말이 겹쳐지며 상황파악이 끝나버렸다.
세이나가 허락한 무례였던 것에 무언가 크게 잘못 된 것 같기도 하면서 주인에게 버림받은 동물의 심정을 그 순간 이해해버렸다.
손이 쳐지며 멈칫한 그녀는 주먹으로 론의 얼굴을 가격하려하자 론은 획 왼쪽으로 틀어 피하면서, 바로 손바닥을 펴 명치를 가격하려 했다.
그녀는 그의 뻗은 팔을 순간적으로 짚고 위로 몸을 띄워 점프를 하더니 그의 뒤를 잡아내었고, 몸을 쭈그려 한 쪽 발로 그의 다리를 걸었다.
그 연계에 론은 덤블링 하듯이 뒤로 몸을 재치더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짚고 넘어가 뒤를 뺏었다.
“휘유~ 무가 집안이 괜히 되는 게 아니네.”
둘의 대결을 지켜보며 휘파람을 불며 하는 말에 하일이 간단하게 카시어스가를 설명했다.
“가장 오래 되었기도 하고, 대대로 명망 있는 집안으로 유명하니까요.”
론에게 간단하게 져버린 그녀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분함을 표현했다.
“이제 그만하지? 더 이상은 무례함을 내가 주군 대신에 물을 거다.”
“허락 받았거든? 네가 지금 이렇게 무게 잡는다고 해도 하나도 안 무섭다. 눈알 뽑아서 갈아버려도 보일 놈아.”
“....하아~ 그래서 뭐? 왜 갑자기 나타나서 성질인데?”
머리가 지끈대니 자연히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작게 으르렁 거렸지만 그의 여동생은 그르릉 하면서 입으로 론에게 덤볐다.
“네가 가주면 내가 왜 이러는지 네 놈이 제일 잘 알 거 아냐.”
이제는 서로 입으로 대결을 시작했다.
둘의 모습을 관찰하던 세이나는 쫙 핀 손 위로 주먹을 쥔 손을 들고 통하고 쳤다.
“늑대와 재규어!”
바이안은 그런 세이나가 귀여워서 피식 웃다가 허리를 숙여 세이나의 얼굴에 자신의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세나야. 이제 슬슬 그만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
세이나는 다시금 둘이 주먹다짐을 하려하자, 바이안과 하일을 번갈아 보고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주었고, 둘은 동시에 튀어나가 둘의 앞에 서서 검 집을 세로로 들어 막았다.
자연히 소강상태가 되어 세이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의 소파에 털썩 앉아 론의 여동생을 보면서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통통 쳤다.
세이나의 뜻을 알아챈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허리를 숙이며 심장에 손을 얹고 예를 보였다.
“저의 무례함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현자이신 하이론 세이아나님을 뵙습니다. 소녀 카시어스 로이에라 하옵니다.”
“응. 반가워.”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며 다시 옆자리를 손으로 치자 로이에는 샤샥하며 세이나의 옆에 바짝 앉았다.
“쯔..”
론은 예의를 시궁창에 버린 듯한, 자신의 여동생에 혀를 찼고, 세이나는 그런 론의 모습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스쳐지나갔다.
“히데아 간단한 다과를 준비 해 주겠어?”
“네. 세이나님.”
히데아가 물러가고 모두 각자 빈자리에 앉았다.
“론. 그러게 왜 그랬어?”
세이나의 저격에 론은 내가 왜? 라는 표정으로 여동생을 노려봤지만, 로이에는 세이나를 등에 업고 오히려 당당하게 어깨를 쫙 폈다.
“하~ 아이고 골이야...”
로이에가 알현 신청서에 뭐라고 적었기에 저럴 수 있는지 론은 자신의 뇌의 주름이 쫙 펴지는 것 같았다.
세이나는 자신의 옆에 바짝 앉아서 아직도 한 번씩 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로이에를 가까이에서 보니 론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느낌에 그녀가 퍽 귀엽게 보였다.
그리 생각이 드니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곱슬거리는 물빛머리를 쓰다듬었다.
“에?”
로이에는 갑자기 머리에 닿는 부드러운 쓰다듬에 깜짝 놀라 세이나를 쳐다보다가 자신을 향해서 생긋 웃는 세이나에게 한 순간에 넋을 놓았다.
“아깝다....”
“...응?”
“아! 죄 죄송합니다.”
로이에는 감히 대현자에게 한 말실수에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쿡쿡쿡 완전 달라. 외모도 성격도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와 닿는 게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어? 못 참겠다. 꺅~~”
세이나는 자신의 감상을 솔직하게 말하고 로이에의 얼굴을 와락 껴안고 그녀의 머리위에 얼굴을 비볐다.
조금 전까지는 무게 있고 지혜로워 보이는 분위기가 범접할 수 없어보였었고, 그와 동시에 조그맣고 귀여워 보호본능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던 대현자님이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귀여워서 미치겠다며 순식간에 그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편한 친구 사이처럼 부드러워졌다.
로이에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며 잡힌 상태로 눈동자만 돌려 주변을 살폈지만, 이미 다들 익숙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기사들은 딱딱하게 각이 잡혀있는 모습이 일반적인데, 세이나의 분위기가 바뀌자마자 다들 무언가 풀어진 태도로 편히 있었다.
물론 자세만 편했지 그들의 눈은 언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튀어나갈 기세는 놓아둔 상태였다.
로이에는 지금 이 상태에서 자신이 어찌 행동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어색하게 손만 허공에서 버둥대다가, 세이나가 만족해서야 품에서 떨어질 수 있었다.
로이에는 이제는 에라 모르겠다며 세이나의 양손을 덥썩 잡아 살짝 들어올렸다.
“아까워요. 대현자님! 어째서 입만 산 저 녀석을 기사로 옆에 두시는 거예요? 더 좋은 기사들이 많은데, 아깝다고요.”
“저 저, 미친...”
론은 다시금 자신을 깔아 내리는 여동생의 행태에 제대로 말이 나오지 못했다.
“로이에 적당히 해.”
론의 나무라는 소리에도 로이에는 세이나를 꽈악 껴안으며 마치 더러운 것에서 그녀를 지키는 양, 론에게 이를 보였다.
조용히 앉아서 테이블에 깔아진 차를 마시던 바이안은 로이에에게 안겨있는 세이나의 모습을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자신도 몰랐던 질투가 올라왔다.
‘나도 안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데....’
그러자 자연히 그의 몸에서 푸확 하고 마력이 주변에 뿜어지자 전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적당히 하거라.”
“.....네.”
로이에는 그의 압도적인 마력과 위압감에 스륵하고 세이나를 풀어주며 바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처음에 자신의 무례를 제지하기 위한 행동이라 짐작했지만, 그의 표정하나 없는 얼굴에 박힌 눈은 부러워 미치겠다고 쓰여 있어 보이니, 뭐지? 싶어서 다시 한 번 세이나를 포옥 껴안자 푸왁~ 놓으면 스르륵, 팔짱을 끼고 몸을 밀착하니 푸왁~ 놓으니 스르륵, 손을 마주 잡아 들어 보이니 푸아 하다가 쏘옥 하고 들어갔다.
“...손까지는 괜찮은 거구나.”
“풋. 아하하하 아햐햑~~”
로이에와 바이안을 번갈아가며 보던 세이나는 둘이 너무 귀엽고 웃겨서 이제는 큰 소리로 웃어댔다.
주변에서도 풋 하고 작게 웃었고, 세이나의 앞이라 짜증을 최대한 참고 있었던 론도 큭큭 거렸다.
시작이 어쨌든 그 덕분인지, 분위기는 상당히 좋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