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쪽이 마무리가 되었을 때, 그의 옆에 가까이 갔었던 할아범은 자리를 탈탈 털고 휘적이며 세이나의 옆으로 걸어왔다.
“끌끌끌~ 이 할애비가 오늘은 무척 기분이 나쁘구먼~”
“뻗혔어?”
“그려 뻗혔다.”
할아범이 화가 나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세이나는 그를 말리지 않고, 순순히 긍정해주었다.
“근데 할아범. 저것들 마력 쓰는데 괜찮겠어?”
“매일 매일 기사라는 애새끼들을 상대해주다보니 이골이 났다. 마력이라는 거 별거 없드만.”
“그럼 상관없겠네.”
끄덕이는 세이나와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바이안을 눈에 담은 할아범은 한창 먼지를 일으키며 전투를 치르고 있는 곳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그 근처의 테이블을 한번 손으로 스윽 훑어 간단히 잡히는 식기류인 스푼과 포크를 골라잡았다.
“끌끌끌. 언제꺼정 시간을 끄냐.”
한창 전투중인 곳의 한 가운데에 도착하니 할아범을 발견한 적이 지체 없이 곧 바로 허공에 몸을 띄운 상태로 공중에서 할아범에게 검을 찔렀다.
할아범은 그 검을 피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 사내의 검이 할아범의 이마를 뚫을 정도까지 다가왔을 때에 슬쩍 목을 트는 것으로 피하니 공중이었던 지라 그대로 할아범과 사내의 몸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한 놈.”
1초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의 타이밍에 쥐고 있던 것 중 포크를 돌려 잡고 그대로 사내의 목을 꿰뚫고 뽑자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며 할아범의 옆으로 모로 기울어져 쓰러졌다.
“끌끌끌~ 목숨을 거는 싸움은 시간 끌어서 좋을 거 없다고 내가 말 허지 않았냐.”
할아범의 그 한 번의 무위와 여유로운 말투의 힐책에 전세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쫄면 뒈지죠. 어르신.”
“끌끌끌”
할아범의 참전에 기사들은 비죽 웃으며 인사를 해왔고,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드란체 후작이 불편한 연회복을 대충 벗어 던지고 추가로 끼어들었다.
“어잇차~ 어르신 그쪽으로 갑니다.”
드란체 후작은 자신의 주먹으로 명치를 가격당해 울컥 피를 토하는 적을 그대로 냅다 할아범에게 집어 던졌고, 할아범은 오야~라고 대답을 해주며 날아오는 놈의 목에 포크를 쑤셨다.
그 둘은 서로에게 공을 던져 주고받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죽이 척척 맞아 신나게 토스해가며 멱을 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우루루는 전세를 돌리기는 어렵다 판단하고 세이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제 더는 있을 필요가 없겠네요. 다음에 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직도 벗어나는 것은 쉽다는 듯이 하는 말에 하일은 바짝 긴장을 하며 경계했다.
세이나가 역할 배치를 정해주면서 당부한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에서의 최종보스는 그 여자임이 틀림이 없을 테고, 그 새끼의 측근일 확률이 높은 이상, 돌파하는 한수는 무조건 숨겨 두고 있을 것이니, 그녀를 잡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 한수를 조심하라 하는 말이었다.
긴장을 하면서 주변을 훑어도 적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이미 알아서 다 섞여 상대하고 있는 중이었고, 어디에서도 숨어 있는 인물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지만, 주군의 말을 곱씹으며 쥐고 있는 검에 힘을 주었다.
그때 우루루가 걸고 있던 귀걸이의 한쪽이 자연스럽게 빠지며 바닥에 톡하고 데구르르 구르자 예민하게 주변을 경계하던 하일은 그 귀걸이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두어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돌풍처럼 몰아치는 위압감에 하일은 서둘러 검을 세워 검 면에 손을 얹어 막았지만 그대로 공중에 크게 날아버렸다.
그 귀걸이가 신호였는지, 바닥이 쩍하고 갈라지더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인이 나타나 위로 솟구치며 그대로 하일을 가격했다.
“커헉!”
검이 너무도 간단히 부러지고 들어오는 묵직한 충격이 가슴에 가해지면서 공중에 날아버린 하일은 몸을 가눌 세도 없이 홀의 바닥을 거칠게 굴러야 했고, 바로 일어나려했지만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커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허억... 미친..”
정면에 나타난 거인은 키가 거의 5미터 그 이상으로 보였다.
그 키만큼 크게 부풀은 근육은 마치 따로 살아 숨을 쉬고 있기라도 하는지, 꿈틀대는 장면이 자연스럽지만 징그럽게 와 닿았고, 하일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벌린 입에는 숨을 내 쉴 때마다 하얀 김이 세어 나올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하일은 한 대 맞은 충격보다도 어디에도 숨길 수 없는 저 거구가 자신의 눈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었다.
은신에 관계된 능력은 자신의 가문이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진데, 어떠한 방식으로 숨어서 대기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하다 바닥에 뚫린 구멍을 보고 알아 챌 수 있었다.
홀의 바로 밑에 있는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저 거구를 생각해 보면 단순히 점프 하는 것만으로도 위로 올라오기는 쉬웠으리라.
“나랑 네놈은.”
자리를 털고 일어난 하일은 거구에게 느릿하게 걸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그런 하일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보던 거구는 하일이 말을 하다 말더니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자 서둘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뒤편의 머리 부분이 쭈뼛거리며 어깨 죽지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닿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언제 뒤를 잡았는지, 높이 점프를 하고 부러진 검을 내려친 하일과 시선이 맞물렸다.
아무리 검이 부러졌다고 해도 검 날이 무딘 것은 아닌지라 베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근육이 마치 갑옷인지 꿈틀거리며 검 날을 튕겨냈다.
그 반동과 함께 하일은 어쩔 수 없이 한참을 떨어진 곳에 착지하고 거구를 노려봤다.
“역시 상성이 최악인 것 같군.”
그러며 조금 전에 하다 만 말을 이어서 붙여주었다.
하일이 적의 감각을 교란시키며 신속하게 공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더라도 그 적이 검이 통하지 않아 곤란하다면, 거구의 입장에서는 뻔히 보고 있는데도 그를 당연하게 놓쳐버려 마땅한 공격을 하지 못하니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갈 것이 뻔해서, 서로가 좋지 못한 상대였다.
하지만 대치는 그리 길지 않았다.
거구는 미련 없이 우루루에게 다가가 손을 펴 그녀를 잡고, 조심히 자신의 어깨 위에 앉을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주변을 경계하며 언제든지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제일 가까운 테라스 쪽에 등을 보이고 우루루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우루루는 이 상황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것인지 태연하게 있는 세이나에 대한 흥미가 상당히 커져서 바로 돌려 빠져 나가는 것을 조금 미뤘다.
“다들 지금의 저를 적극적으로 잡지 않는 것을 보니 이것도 예상 하신 건가요? 몇 수를 읽고 계신 것인지 놀랍군요.”
처음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자신들을 경계만 할 뿐 그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기사들을 훑어보며 감상을 입에 올렸다.
“딱히 읽어서 한 것은 아니야. 단지, 관찰 한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추리 한 것 뿐이거든.”
턱을 살짝 치켜 올리고 작게 모로 기울이면서 어깨를 으쓱하며 과장스럽게 표현했다.
“단순히 관찰이라기엔 놀랍습니다. 당신과 저와의 접점이라고 부르기도 이상하겠지만, 그 연무장에서의 잠깐, 그것도 대화도 일체 없었지요. 그리고 오늘 이 자리뿐인데, 처음부터 저를 노렸더군요.”
마지막 말과 함께 부러진 검을 대충 들고 서있는 하일 쪽으로 스윽하고 고개를 돌리며 자신을 노린 것을 눈으로 지적했다.
“저기 말이야. 내가 뭔가를 할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 질문에 일일이 설명만 해주다보니까 매우 입이 아픈데. 너한테도 설명 해줘야하니? ‘범인은 너다!’라고 지정한 부분 설명 필요? 너한테? 굳이? 적인데?”
“......”
눈을 똥그랗게 뜨고 손으로 에구 고생 한다 내 주둥이라며 입술을 토닥이니 누가 보더라도 놀리고 있다.
“너 잡을 생각 굳이 없으니까 귀찮다. 그냥 가라 쉭쉭”
이제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손으로 대충 휘저으며 보내버리려 하니 기세등등한 살기를 뿜는 틈바구니에서 대치중인 상황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에 재수 없는 놈과 마주쳐서 언짢아져 빨리 헤어지려는 형국이다.
주인의 추가적인 명령대로 대현자라는 인물이 어떠한지 어느 정도 파악을 위해 계속 말을 건 것도 있는데, 정작 마주한 대현자의 성격이나 행동을 정리할 수가 없어 표정이 없던 얼굴에 모호한 그림이 새겨진다.
“이미 네가 할 일은 끝났잖아.”
“그렇지요.”
“이 자리에서 나에 대한 파악을 더 할 필요 있어?”
“글쎄요.”
“게다가 네들이 뿌렸다고 생각했던 저것은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니, 미련도 없어 뵈는구만.”
“네. 주인님의 심심풀이용 인간 놀이일 뿐이었죠.”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토스하다 마지막에 기절한 황태자를 가리키며 넘기니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으며 다시 돌려주는 말에 생각도 하지 않던 부분이라 은근히 놀랐다.
단순히 심심풀이로 사람의 인생을 헤집어 놓았다니, 그 한명으로 인해 다른 이들의 인생도 망칠 뻔한, 것만으로도 심각하지만, 하필이면 그 상대가 황족이니 그 비중의 무게는 더 컸다.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황제도 물론 당연히 대화를 듣고 있었을 테니, 세이나는 슬쩍 황제의 안색을 살피기 위해서, 돌아보았고, 역시나 그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황제의 좋지 못한 모습에 작게 한 숨을 내쉬며 장난스러웠던 표정을 정리하고 다시 우루루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직접적으로 머리를 건드려 사람을 조종하는 네 능력도 대단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세뇌가 더 무섭지.”
우루루는 세이나의 말 속에서 자신의 능력 또한 짐작하고 있다 하는 것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주인님이 싫어하실만하네요.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제거하는 것이 이롭다 생각이 드니까요.”
느긋했던 우루루에게서 경계하듯 긴장하는 것이 세이나에게도 느껴졌다.
“가능하니?”
피식하며 입 꼬리를 비틀어 올려 묻는 세이나의 질문에 우루루는 순순히 대답했다.
“아니요. 이 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만, 당신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세이나의 주변에 호위하는 기사들의 면면과 그들이 뿜어내는 마력과 지켜봤던 실력들에, 최강의 기사단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바로 공백의 기사단을 왜 떠올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기에 쉽게 인정했다.
특히나 약효가 거의 떨어져 가는지,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 바이안이 세이나의 옆에 바짝 붙어서 흉흉한 기세를 뿜기 시작하고 있기에, 자칫 잘못 덤볐다가는 반대로 자신들이 화를 면치 못할 것이 자명했다.
우루루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에게 큰 방해가 될 존재를 그를 위해서 명령을 받지도 않은 일을 해 자멸하는 그런 어리석은 이는 아닌지라 더는 아니다 싶기에 거구의 귀에 돌아가자 명령을 내려 바로 테라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 참. 가기 전에 그 자식에게 이거 하나만 전달해줄래?”
“무언가요?”
갑자기 급하게 불러 세우는 세이나에 의문스럽게 물었고, 전달 받은 우루루는 전해주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알려 드리자면, 저희들과 연관이 있는 자들은 여기에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애초에 저희들은 수하들을 심어 놓을 정도로 약하진 않아서요.”
“우와~ 대단한 자신감.”
남은 잔당들이 있을까 찾지 않게 해주려고 하는지 마치 친절을 베풀 듯 묻지도 않은 것을 알려주는 우루루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럼..”
우루루는 고개를 숙여 작별을 고하며 세이나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눈에 넣었다.
특히나 보란 듯이 그녀의 이마에서 붉은 자태를 뽐내는 현자의 돌을 재차 확인 하듯 노려보는 상태로 거구는 신경도 쓰지 않고, 거침없이 밖으로 뛰어내렸다.
적이 도주를 시작하는 데도 관심 없이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세이나의 모습에 짐짓 당황한 노엘경은 황제를 불렀다.
“폐하. 쫒아야 합니다.”
황궁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인지 금방이라도 명령을 받자마자 뛰어나갈 기세를 보였지만, 세이나는 팔을 들어 보이며 막았다.
“지금 쫒는다고 잡지 못해요. 그리고 만약, 막아선다 하더라도 이 쪽이 피해만 입을 뿐,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지금은 아끼세요. 노엘경.”
황제도 묵묵히 동의하는 모습에 이리 허망하게 적을 놓쳐야 하는 것인가에 잘 표하지 않던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필요한 것은 다 얻었소?”
“네. 폐하. 그 이야기는 정리를 하여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 지금은 이 일이 먼저겠지..”
황제는 자신의 현재의 심중을 숨기지 않고 아프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로 바닥에 쓰러져 기절해 있는 그의 첫째 아들 카이덴을 내려다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