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주군의 할아버님으로 존중을 했었다면, 황제폐하와의 무승부를 일궈낸 그의 대련을 고스란히 목도한 기사들에게 지금은 할아범을 존중을 넘어서 존경하고 그의 가르침에 목을 매었다.
하지만 할아범은 꼼짝도 하지 않으니, 안달 난 기사들은 서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졸라댔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줄줄줄 나열하기도 했다.
강한 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무인이 가지고 있는 부분이지만, 공백의 기사단들은 강함의 열망이 어떤 기사들보다도 진하고 강해서 끈덕지었다.
마력이 있고 없고 에서 신체적인 단련의 차이가 분명함에도 할아범의 무위는 그들이 생각하는 수위를 넘었다.
거대한 검을 자신들도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할아범은 가볍게 휘두름은 물론이요, 그 검을 들고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훈련을 통해서 강해졌기에 실전을 몸으로 쌓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할아범은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쌓아온 실전으로 만들어진 그만의 무위에 이미 홀딱 반해버렸다.
그때 한명의 기사가 눈을 번쩍이며 할아범에게 마지막 설득을 시작했다.
“저희들은 더 위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어르신도 강함을 추구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희들은 주군을 모시고 지키는 기사들입니다. 저희들이 강해지는 것이 주군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허리를 두드리던 할아범은 동작을 멈추고 열심히 설파해댄 젊은 기사를 지그시 내려 보았다.
“방금.. 살짝 통했네. 쩝”
하나 뿐이 없는 가족인 세이나를 들먹이며 지키기 위해서 강해지고 싶다는데 어떤 부모가 싫다 하겠는가? 할아범은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었다.
“끌끌끌. 나는 마력이 없으니 순수한 무력으로만 덤비거라. 그리고 나는 봐주는 것은 읎어.”
할아범의 허락을 얻어낸 기사들은 화색을 띄우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리고는 벽에 대충 세워두었던 검을 어깨에 걸치고 그들의 연병장으로 털레털레 걸어갔다.
“허허허 시종에게 차와 다과를 준비해 달라 부탁 해야겠구먼~”
후대가 없었던 남작은 이미 예전에 자신의 가업이었던 사업을 제자에게 물려주었었고, 지금은 늙어서 할 일이 없는 일상이 대부분이라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미진 구경거리가 생겼다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갔다.
연병장에서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던 기사들은 할아범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타난 할아범을 보자마자 단장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에게 우루루 몰려가 허리를 깊숙이 숙여보였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끌끌끌끌”
그들의 인사를 대충 받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할아범 뒤로 의기양양한 세 명의 기사들은 그날 설득에 성공한 영웅이 되었다.
단장은 할아범의 등장과 기사들의 열기에 그들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고, 걸어가서 할아범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그랴~ 내가 허락도 없이 여기에 와도 되는지 모르겠구먼~”
할아범의 말에 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께서는 언제든 오셔도 됩니다. 아니, 오히려 모두를 대표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끌끌끌”
단장의 환대에 만사가 귀찮은 그라도 기분이 좋았다.
할아범은 자연히 연병장의 중심에 섰고, 기사들은 큰 원을 그리며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누구먼저 할겨?”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호명해 달라는 아우성에 할아범은 귀를 후벼 파며 소리쳤다.
“야 이늠들아. 귀때기 떨어진다.”
저희가 언제 시끄러웠나요? 저희들은 얌전하고 착한 학생이예요라는 눈빛으로 할아범에게 선택되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기사들의 눈빛에도 압도 되지 않는지, 휘휘 대충 둘러보다가 손녀딸을 들먹이며 설득했던 조금 전의 기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려~ 말 나온 김에 네늠 부터 혀라.”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가운데로 튀어나온 기사는 자세를 잡고 기사의 예를 취해보였다.
“끌끌끌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리들 좋아 하는지 원~”
혼잣말을 하던 할아범은 눈앞의 기사가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그 속내를 읽었다.
“뭐여? 함 들어 볼텨?”
무인에게 무기란 자신의 몸과 같은 것이라서 아무에게나 함부로 건네 줄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들어보고 실감하고 싶은 마음을 감히 표출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할아범은 쉽게 건네주었다.
그러니 누가 그것을 거절할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한 기사는 할아범이 가볍게 툭하고 넘겨준 검의 손잡이를 잡고 들다가 그대로 팔이 땅과 가까워졌다.
“!!!!!”
마력을 몸에 돌리지 않으면 휘두르기가 버거운 엄청난 무게에 할 말을 잃어버렸고, 그제야 할아범의 무위가 예사가 아님을 몸으로 깨우칠 수 있었다.
“끌끌끌~ 뭐가 이리 약한겨?”
다시 그 기사에게서 검을 받아 들고 어깨에 걸친 뒤에 본격적인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연병장의 한쪽, 나무그늘에 어느새 자리를 깔고 앉아서 차를 홀짝이며 남작은 젊은이들이 뿜는 열기를 즐겼다.
“젊은 것이 좋은 거지~ 아암~”
할아범이 연병장에서 기사들의 훈련을 맡아 주고 있다는 보고는 얼마 안 되서 세이나에게 올라왔다.
“할아범이 몽둥이를 들고 나갔다고?”
“예.”
하기 싫어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인 할아범의 연병장 행차에 세이나는 책상을 탁탁 두드렸다.
“할아범이 웬일이래?”
세이나의 호위단인 이들은 그 소식에 살짝 몸을 떨었다.
“오~ 처음으로 흔들리네? 할아범 효과가 상당하구만?”
그녀의 말에 어색하게 웃는 그들에게 씨익 마주 웃어보이다가 보고를 올린 시종에게 다시 집중했다.
“우리 궁에 의원들이 몇몇이야?”
“다섯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밑에 있는 이들까지 합하면 30명 쯤 있사옵니다.”
갑자기 생뚱맞게 의원을 찾는 그녀의 의도는 뒤에 바로 나왔다.
“구급약들 싸그리 챙겨서 한명도 빠짐없이 연병장에 가라고 해.”
“예?”
세이나의 명령에 시종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해버렸다.
“할아범이 몽둥이를 들고 한 번 시작하면 그냥은 안 끝나. 심하면 뼈가 부러지는 녀석들도 나올 거야. 그것도 줄줄이”
“허.... 핫! 예.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순간 멍을 때리던 시종은 아차 싶어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후다닥 퇴장했다.
세이나는 할아범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기사들을 걱정했다.
“전력이 부서지는 소리가 콱콱 들리네.”
“그만큼 대단하신 분 이시니까요.”
기사들의 순수한 감탄성에도 자신만이 아는 할아범의 성향에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대현자님. 황궁에서 노엘경이 오셨사옵니다.”
“엥?”
황제 직속인 기사단장이 자신을 갑자기 왜 찾는지 몰라도 일단 들어오게 하자, 노엘경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무슨 일인가?”
세이나의 물음에 노엘경은 난처한 표정으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희 쪽 기사들이 공백의 기사단만 그런 혜택을 받느냐며, 부럽다고 단체로 훈련을 거부하는 바람에. 후...”
“...헐”
자신도 보고 받은 것이 방금 전이었는데 어떻게 소식이 벌써 황궁에까지 미쳤는지 신기했다.
그 후에 나올 말이 예상이 되는 세이나는 세삼 할아범의 인기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자신도 가늠이 어려워졌다.
“폐하께서는 재미있어 하시기만 하시고, 저에게 떠넘... 크흠! 죄송합니다. 대현자님의 허락을 구하고자 이리 왔습니다.”
세이나는 벙쪄 영혼 없는 웃음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하...하하하....우와~ 하하하”
“미리 알현을 신청하고 오는 것이 예의인줄은 아옵니다만,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이리 무례를 저지르는 것에 사죄드립니다.”
세이나는 위엄이고 무게고 뭐고 다 집어 던져 발로 콱콱 지르밟아댔다.
옆에 서있던 바이안이 세이나를 살짝 흔들어서야 간신히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 할아범이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네. 노엘경. 황궁 기사들이 현궁의 연무장에 출입하는 것을 허락은 해줄 테지만, 황궁에 있는 의원들을 차출할 만큼 최대한 차출해서 데리고 가주게.”
노엘경은 왜 의원들을 데리고 가라는 것까지는 몰라도 그녀의 말대로 하기로 하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고 바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세이나는 바로 시종을 불렀다.
“너는 연무장으로 가서 알바트로스... 아니, 알바트론경에게 황궁의 기사들도 받아 들여 달라고 전하 거라.”
“예.”
일이 일단락이 지어진 듯하자 세이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으아~ 폐하는 뭘 아시고 나한테 넘기시는데? 아주 현궁이랑 황궁의 무력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단체로 씨를 말릴 일이 있나... 흐미~”
그런 세이나의 심정을 달래주려, 바이안은 조용히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할아범은 나도 신기할 정도의 먼치킨이란 말이다...”
먼치킨이 무슨 말인지 알지는 못해도 주군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독백이었다.
세이나의 허락 덕분인지, 그날 다시 한 번 민족(기사)대 이동이 이번에는 황궁에서 현궁으로 이어지는 광경을 선사했다.
이유나 목적이 어찌 되었든 처음으로 황궁과 현궁의 기사들이 서로의 연무장을 한 번씩 교류하면서 후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유대감이 쌓이는 세이나만 웃지 못 할 결과를 낳게 된다.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들은 황궁의 기사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고 애정하는 검을 들고 현궁의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아버렸다.
한쪽에 자리를 잡은 의원들은 속속들이 들어오는 부상자들을 옮기며 허겁지겁 그들을 치료하는 모습이 마치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듯하였고, 연병장의 중심에 존경해 마지않은 어르신인 할아범은 또 한명의 희생자를 신이 나서 밟으며 마침 예쁘게 팔을 똑 하고 부러뜨려주고 있었다.
“끌끌끌~ 전쟁에 나가면 한방에 죽것어~ 팔이나 다리가 잘려나가도 쫄지 마러라. 쫄면 뒈지는겨.”
그래서 일부러 부러뜨리는 것이야라며 다음에 뼈가 붙어도 검을 쥐는 것에 지장이 없게 해주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 광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기사단들의 우두머리인 알바트론단장은 자비가 없는 할아범의 행동에도 감히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르침을 달라며 매달린 것은 자신들이었고, 사선을 넘나들며 실전을 겪어온 할아범에게 그 가르침이 필요하다고까지 외쳤던 몇의 기사들 덕분에 자신들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맞기에 책임자인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숨만 폭폭 쉬는 것이었다.
예전에 바이안과 론이 세이나를 두고 천공의 땅으로 압송을 당할 때 순순히 따를 수 있었던 이유가 지금의 결과를 보면 납득이 된다.
새로운 부상자인 기사를 의원들이 질질질 끌고 갈 때 오랜만에 오랫동안 몸을 써서 찌뿌드드한 몸을 풀던 할아범은 다른 복색의 기사들이 커다란 목장의 소떼들처럼 몰려 온 것을 보자마자 눈이 커지더니 방방 뛰었다.
“야, 이늠들아! 늙은이 뒈진다!!!”
할아범도 사람인지라 체력에 한계가 있어서, 일방적인 폭력이 되어 보이는 훈련은 날을 길게 잡고 꾸준히 지속되었고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덕분에 붕대를 칭칭 감고 돌아다니는 기사들이 현궁과 황궁의 지천에 널렸고,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요즘 유행인가 할 정도로 넓게 퍼지고 늘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