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리아는 대륙에 내려와 한 번도 꺼내 본적이 없던, 천공의 땅과의 유일한 연결점인 문자를 보낼 수 있는 통신도구를 꺼내 식탁에 내려놓았다.
“후... 이렇게 보내게 될 줄이야.”
황궁에 있을 지금은 황후인 아멜리아언니에게 그녀의 아들이 자신의 집에 있다는 작은 문구를 적어 보낸 후에 답장을 기다리면서 찢어진 바이안의 옷을 정리하다가 멈칫하더니 소매를 가까이 들어 살폈다.
“옷이 낡았어? 소매도 그렇고, 묵은 때가 지워지지 않을 정도라니... 황자잖아. 이상하네.”
식탁에 팔을 세워 이마를 받쳐 살짝 숙인 상태로 다른 손은 식탁을 톡톡 두드렸다.
“검소하다고 해도 황족인데, 언니가 아이를 차별할 일은 없잖아. 그러고 보니, 아이가 혼자 갑자기 나타난 것도 걸리네.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려고 하는 건가?”
고개를 저으며 일단 바이안이 깨고 살피자며 주변을 정리했다.
다음날이 되어 눈을 뜬 바이안은 옆에 느껴지는 온기에 조그마한 요정을 내려다보며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가, 여신이라고 불려도 부족할 정도로 예쁜 여인이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괴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상황에 눈만 끔뻑이다 후다닥 침대에서 일어나 멀리 떨어졌다.
“죄 죄송합니다.”
“음?”
갑자기 움직여서 온몸이 욱신하고 쑤셔 올라오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끙끙 대는 바이안을 가만히 관찰하던 세일리아의 눈썹이 살짝 비틀렸다.
남의 집에서 실례를 하고 있으니, 당황할 수 있어서 사과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그렇게 넘어가지 않았다.
작은 방안 침대에서 허겁지겁 벗어나 바이안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자리는 구석, 그 중에서도 창가에서 떨어져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곳이다.
구석과 그늘로 알아보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이 가려져 보이지 않게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적인 행동이고, 고개를 숙이며 눈치를 살피는 것이 당황스러움보다도 버릇에서 기인되어 퍽 자연스럽다.
딱딱하게 굳어 서있다고 해도 엄지손톱을 세워 오므린 다른 손톱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하면서 긁는 것이 불안증에서 오는 그만의 버릇인 듯 보였다.
“하~ 언니 도대체 무슨 상황인거래.”
들리지 않게 작게 숨을 뱉듯 내쉰 세일리아는 아직 환자인 바이안을 억지로 침대에 눕힌 후에 죽을 쑤어 가져다주고 불안해하는 바이안을 달래고 달래서 간신히 쉬게 해주었다.
그리고 답신이 왔나 하며 살폈지만 그날 답은 받지 못했다.
둘째 날, 아이들을 식탁에 앉히고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러 들어간 세일리아는 틈틈이 아이들이 있는 곳을 살폈다.
세이나는 과자를 한 아름 식탁에 놓고, 다람쥐가 먹이를 채우는 것처럼 두 볼이 빵빵하게 될 정도로 쑤셔가며 먹다가 뜨거운 시선에 고개를 기울여 바이안의 눈과 맞추자 바이안은 흠칫하며 눈을 돌려 피했다.
“오빠 안 먹어?”
“으 응?”
“과자”
“아니야. 안 먹어.”
둘이 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세일리아는 수건으로 손에 묻은 물기를 닦고 잠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연락용 도구를 만지작거렸다.
바이안이 과자를 먹고 싶어 하는 눈이지만 남의 집에서 눈치를 본 다기에는 심할 정도로 거부하며 밀어냈고, 타인이 자신의 몸을 터치하는 것에 상당히 예민하면서 창백해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그럴 때마다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반대로 죄를 지은 양 걱정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그 모든 것들을 눈으로 모아서 머리로 정리하여 결론을 내리니, 여러 의미로 걱정이 쌓여버렸다.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그나마 조금 낫겠지만, 타인에 의한 정신적인 압박이나 학대에서 나오는 행동들이 왜 있어. 아... 위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언니야아..”
세일리아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있다가 그대로 주륵 미끄러지듯이 쭈그리고 앉아 머리에 손을 얹고 끙끙댔다.
황궁에서는 요 몇일, 커다란 소동에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소리 소문도 없이 2황자가 증발하듯 사라진 사건에 발칵 뒤집힌 황궁에 때 아닌 비상령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황후는 침대에서 일어날 기운도 없이 끙끙 앓아누웠다.
시녀장이 조심스럽게 들어와 그런 황후를 살피며 그녀를 불렀다.
“황후마마. 연락이 온 것이 있사온데”
“..다음에 보겠네.”
아들의 실종에 힘들어 하고 있건만 눈치 좋은 시녀장이 오늘 따라 눈치가 없어진 것인지, 다른 소식을 들고 와 기분이 몹시 언짢아졌다.
“급한 전갈일 때 보내는 붉은 빛이라 챙겨왔습니다.”
“....이리 주게나.”
화는 조금 났지만 황후라는 자리의 의무는 져버려서는 안 되기에 억지로 상체를 일으켜 발신인을 확인했다.
“세일리아?”
다른 때 같았으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던 친한 친구인 세일리아의 연락에 뛸 듯이 기뻐했겠지만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너도 참.......!!”
씁쓸하게 웃으며 읽어 내려가던 황후는 너무 놀라 숨이 막힐 뻔 한 충격에 숨을 애써 고르며 서둘러 답을 보냈다.
“아..아들.”
그 시각, 방에 쭈그리고 앉아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타이밍 좋게 황후에게서 연락이 왔다.
[바이안이 정말 그곳에 있는 것이니? 당장 채비해서 내려갈 테니까 어디인지 알려줘. 아들, 내 새끼 있는 거지?]
다급하게 써 내려간 듯 본론만 말하고 끝나면서 아들 걱정만 하는 글에 황후가 아들을 학대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들이 대륙에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는 것이 확실해졌다.
세일리아의 추측에 황후는 자신의 아들이 학대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오랜만에 엄마가 아니라 본업으로 돌아가야겠네.”
[언니. 내가 지내는 곳은 남쪽의 제일 후미진 카카리아라는 작은 마을의 언덕이 있는 곳이야. 그런데 갑작스럽겠지만, 이 곳에 오는 것은 조금 미뤄주길 바랄게. 언니 아들 나한테 잠시만 맡겨 주면 좋겠다. 당장이라도 아이가 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나 선생님으로서 하는 말이야.
몇일 동안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인데, 지금 그 아이가 아는 사람은 누가 되었든 아무도 안 만나는 것이 언니 아들에게 좋을 듯해.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조금 더 알게 되면 해줄게. 무례한 말이지만 나를 믿고 맡겨 줄 수 있을까?]
세일리아의 답신은 빠르게 황후에게 날아갔고, 황후는 아들을 찾았다는 안도보다 더 큰 안도감이 찾아와 침대에 편히 몸을 눕혔다.
몇 년 동안 마음 쓰고 힘들었던 아들의 극심하게 사람을 꺼리는 이유모를 상태와 성격에 늘 고민이었고, 드디어 도와줄 한줄기 구원이 나타난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들의 곁에 있어주니 마음을 놓았다.
사라진 아들이 어떻게 세일리아의 곁으로 간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제 다 잘 될 거라고 확신이 들면서 활짝 웃어주는 아들을 보게 될 것이라는 믿음에 묵은 체중이 쑥하고 내려간다.
“세일리아가 하는 말에 허투루 하는 말은 없으니, 믿고 기다려야지. 바이안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말일세.”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후후 세일리아는 아니라고 하지만, 상당히 유명하지 않는가. 과연 이곳 땅에 그녀를 모를 사람이 있을까.”
시녀장은 안색이 조금 좋아진 황후의 열을 다시 한 번 재본 후에 황제를 불러달라는 말을 듣고 허리를 숙인 후 황제를 모시러나갔다.
세일리아는 황후의 허락뿐만이 아니라 황가의 허락까지 받고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방문을 살짝 열어 식탁의 두 아이를 응시했다.
“이 곳 환경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거야. 게다가 내 딸이 있으니까 효과는 더 강렬하지.”
중얼거리며 바라보는 식탁에는 지금 작은 실랑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왜 안 먹어? 먹고 싶다 잖아.”
“응?”
세이나는 불만을 볼과 눈에 나눠 담고 바이안을 쏘았다.
하지만 바이안은 세이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바이안이 의문스러워 하는 것을 깨달은 세이나는 폭하고 작게 한 숨을 내쉰 뒤에 손가락으로 바이안의 눈을 찌를 듯 가리켰다.
“얘가 먹고 싶다고, 과자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왜 안 먹어?”
자신을 꿰뚫듯 들어온 다그침에 무척이나 놀란 바이안은 자신의 눈을 쓸며 볼을 부풀리는 세이나를 흘끔 봤다.
“엄마가 오빠랑 나눠먹으라고 했는데, 이러면 못 먹잖아...”
이제는 고개를 푸욱 숙여 불평하다가 갑자기 번쩍하고 들어 바이안을 향해 활짝 핀 아기 꽃처럼 웃었다.
노을을 담은 붉은 눈동자를 품은 눈이 예쁘게 휘면서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이 말아 올라가 작은 배를 만들어 보이자, 심장이 쿵하고 울림이 일어난 듯한 착각에 움칫 놀라버렸다.
“오빠 하나, 나 하나, 오빠 하나, 나 하나...... 하나 남네. 히히 오빠가 더 어른이니까 오빠 거.”
열심히 과자를 두 뭉치로 나누고 고된 일을 마치고 뿌듯해 하는 어른처럼 세이나의 면면이 밝았다.
도대체 세이나가 무엇을 하는지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바이안에게 두 손으로 쭈욱 하고 과자 한 뭉치를 밀어주었다.
“오빠 거.”
세이나가 자신의 앞에 가까이 밀어 코앞에 당도한 과자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거절하려다가 그 행동을 눈치 챘는지, 눈에 잔뜩 힘주고 강렬하게 노려보는 세이나의 시선의 압박에 움찔하다가 바짝 굳었다.
“오빠 거.”
“나는..”
“오. 빠. 거.”
“그..”
“오우 빠아 거어.”
“저..”
“오읍쁘악끄어.”
무섭다. 분명히 요정같이 귀여운 아이였는데, 지금은 너무 무서워 뻣뻣하게 굳어 삐그덕 거리는 양 손으로 과자를 제 앞으로 조금 당겨 안는 시늉을 했고, 갑자기 파앗 하고 빛이 나듯 환하게 웃기에 졸았던 마음이 풀어졌다.
“내거..”
이내 과자를 한 개 집어 들어 보이자 옆에서 세이나가 자신을 향해 기대에 찬 시선으로 집중하고 보기에 왠지 거절하는 것 보다는 호응을 받아 주는 것이 더 기뻐 할 것 같다고 변명하며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지?”
“응. 맛있어!”
처음이 어렵지 한입 베어 문 과자의 달콤한 맛을 알게 된 입은 손을 움직이게 시켜 입안으로 열심히 옮겼다.
바쁘다는 듯이 먹는 바이안에게 경쟁심이라도 들었는지, 세이나도 양 손을 써가며 과자가 입안에 남아 있음에도 바쁘게 입속으로 과자의 이사를 도왔다.
“세이나 거.”
자기 몫의 과자를 번쩍 들고 외치자 바이안도 똑같이 따라했다.
“바이안 거.”
“오빠 거.”
“세이나 거.”
이번에는 서로 상대방의 과자를 가리키며 신나게 부르다 하얀 이를 잔뜩 드러내며 씨익 웃더니, 동시에 누가 제일 빨리 먹는가로 과자 전쟁이 발발했다.
바이안은 먹다가도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처음 느끼면서 지금 이 감정이 싫지 않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비록 먹으면 금방 없어지는 과자였지만, 눈치도 보지 않고, 처음으로 제 것이라 당당하게 말하면서 취했다는 것이 그 감정을 불러들인 것이지만 어리고 처음이라 바이안이 인지하지는 못했다.
문틈에서 쪼그리고 양손을 세워서 꽃받침모양으로 턱을 괜 채로 둘의 케미를 지켜보고 있는 세일리아는 엄마미소를 열심히 얼굴에 그리고 색칠했다.
“받아들이는 것이 꽤 긍정적인데? 생각보다 빨리 좋아질 수도 있겠네. 본래 가지고 있는 성격이 낙천적이거나, 하나라도 마음 둘 곳이 있긴 있었나보구나.”
앞으로 시작할 상담의 내용으로 머리에 넣고 추가하면서 가만히 끄덕였다.
“후훗~ 역시 내 딸이라고 해야 하나, 밀어 붙이는 것이 참 대단해. 웃기는 거는 저거 알고 한 건지, 모르고 한 건지... 후후”
바이안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집어서 한 행동인 것처럼 그가 지금 결여되어 있는 부분을 건드리고 이끌어 낸 자신의 딸에게 감탄을 했다.
그리고 둘이서 꺄르륵 웃으며 꽁냥이를 지켜보면서 세일리아는 두 주먹을 쥐고 주먹 고개 짓으로 손목을 좌우로 까딱였다.
“잘한다 잘한다 우리 딸~ 더해라 더해라 우리 딸~”
세일리아만의 ‘쉿! 몰래 하는 응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