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는 늘 방에서 공부에만 몰두하는 카이덴을 찾아갔다.
장남이라는 것에 너무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든 황후는 세일리아의 조언을 상기하며 아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카이덴. 공부도 좋지만 나가서 바람도 쐬고 놀기도 하려므나.”
“어마마마 저는 책을 읽는 것이 좋은걸요.”
카이덴을 유심히 보던 황후는 카이덴이 그저 장남이라는 무게에 아이 같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는 것이 느껴지자 부드럽게 입매를 올렸다.
“책이 그리 좋으니?”
“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상대와 대화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카이덴은 지금 자신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신이나 아이의 들뜬 표정으로 열심히 설명을 했고, 황후는 그 말을 경청해 주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주고 이해해라. 칭찬을 해주며 자신감과 성취감을 키워줘라. 부족함이 보이더라도 나무라지 말 것이며, 스스로 채울 수 있도록 그 환경을 조성해 주어라. 등 세일리아가 해주었던 말들을 카이덴과 에바에게 열심히 이행하며 요즘 황후는 더 많은 시간들을 아이들에게 할애했다.
그리고 세일리아가 특히나 카이덴과의 시간을 가지며 사소한 것이라도 알려주기를 희망을 하기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바이안처럼 도움이 되려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세일리아와 통신으로 상담도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물론 틈틈이 카카리아에 내려가 바이안을 만나서 두 아이에게 쏟는 애정을 똑 같이 쏟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덕분에 요즘 황후는 매일이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고, 황제와 단 둘이 함께 할 때는 바이안과 세이나 이어주기 작전을 모의 하며, 언제든지 두 모녀를 천공의 땅으로 데려와 살 수 있게 황궁에 거주지를 만들기 위한 회의를 이어갔다.
“역시 제일 좋은 방법은 그것이겠지요?”
“그렇지 않겠소. 약혼을 딱 해버리면 누가 뭐라 하겠소.”
“호호 서로 좋다는데 싫다 하지 않겠죠.”
황제는 둘째를 좋은 방향으로 바꾼 세이나의 천진함과 영특함,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찾아보기 쉽지 않은 신기한 분위기와, 한번 보면 귀엽고 사랑스러워, 폭 빠지게 만드는 매력적인 세이나를 다른 사람이 채가기 전에 미리 찜해 며느리로 기필코 데려오리라 다짐하며, 황후에게 세일리아에게 억지를 부려서라도 납득시키고 기정사실로 만들어오라면서 아내의 ‘두 모녀, 우리 가족 만들기’작전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재미가 없으면 시간이 느리게 가고, 즐거우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빠르다고 체감하게 된다는 말처럼 1년은 금방 지나갔다.
바이안은 어쩔 수 없이 황궁으로 돌아갔지만, 가끔이라도 좋으니, 카카리아에 내려가고 싶다고 황제와 황후의 허락을 구하려했다.
하지만 바이안보다 빠르게 카카리아에 내려가고 싶을 때에 마음껏 내려갔다 올 수 있게 특별 허락이 떨어졌고, 덕분에 황궁에 있어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론과도 오랜만에 만나서 놀기도 하면서 내려갈 날이 가까워지면 대륙에 빨리 내려가면 좋겠다며 하루 종일 들떠 있기도 했다.
한편 2황자가 황궁에 돌아왔다는 소식이 카이덴에게도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왔을 때 카이덴은 갸웃하며 의문이 생겼다.
“응? 아들은 나 하난데, 황자가 또 있다고? 무슨 소리지?”
카이덴은 주변의 시종, 시녀들이 하는 말에 진심으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황제와 황후에게 태어난 아이들은 자신과 에바 뿐인데, 갑자기 둘째 황자가 나타났다는 말이 너무 뜬금없어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안개가 낀 머릿속에 조금씩 그 안개가 걷히며 불쾌함이 서서히 올라왔다.
“......바이안?”
기억에도 없는 이름이 떠오르자, 아니 기억에서 완전히 잊어버린 바이안에 대한 것들이 한꺼번에 떠오르자마자 아이가 짓기에는 너무나 기괴할 정도의 잔인하고 흉측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못된 놈. 네 놈이 끝까지 욕심을 채우려 돌아 왔구나. 용서 못해.”
방을 박차고 나가 바이안을 찾아 그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복도를 빠르게 걸어가자, 마침 멀리서 황후를 만나러 달려오고 있는 바이안과 마주쳤다.
바이안은 카이덴과 마주치자마자 잠시 멈칫했지만, 자신을 노려보며 이를 가는 카이덴을 슥 하고 없는 사람인양 그를 무시한 채로 그대로 달려갔고, 생전 처음 겪는 바이안의 행동에 벙 쪄버린 카이덴은 바이안이 눈앞에서 사라졌음에도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방으로 돌아와 온갖 물건들을 집어 던지는 것으로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역시나 화는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더 커졌다.
그래서 저녁에 억지로 바이안을 찾아가 다시 한 번 바이안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발길질과 주먹질로 분을 풀며, 바이안을 부정했다.
사람이 없을 때를 노린 카이덴의 폭력을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묵묵히 받아내던 바이안은 카이덴이 돌아가자 욱신거리는 몸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무렇지 않다며 몸을 일으켜 손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세일리아 이모 말이 맞아. 난 나쁜 거 하나도 없어. 내가 최고고, 제일 잘났어.”
보이는 부분을 빼고 고루 잘 두들겨 팬 카이덴의 실력에 겉으로는 멀쩡한 모습으로 태연하게 히죽 개구쟁이로 돌아갔다.
“별거 없네. 히히”
예전에 카이덴을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며 카이덴을 별거 아닌 사람으로 열심히 폄하했다.
카카리아에 내려가면 오늘 잘 이겨낸 자신을 세일리아 이모가 분명 칭찬해 줄 것이란 생각을 하자 조금 전까지 무서웠던 마음이 반대로 좋아졌다.
대륙에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던 바이안은 서로의 방이 연결되어 있는 작은 비밀통로를 이용해 에바의 방으로 살금살금 이동했다.
성인이 이동하기에는 작고, 아이들이 이동하기에는 조금 큰 비밀통로는 예전 황제가 아이들을 위해 궁에서 모험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비밀 통로였다.
현 황제가 늘 홀로 있는 바이안을 위해서 스스로 비밀통로를 찾을 수 있게 몰래 도와주었던 것이었고, 바이안은 여전히 잘 활용했다.
에바의 방안 구석의 벽에서 작은 움직임이 생겼고, 그 곳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바이안은 에바의 방에 에바만 있는 것을 확인하고 속삭이듯 에바를 불렀다.
“에바야~”
“오라버니!”
“쉿!”
갑자기 구석에서 등장한 바이안에 반가워 소리 지르다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쉿 하는 바이안에 자신도 똑같이 쉿 하며 쪼로록 달려왔다.
그리고 에바는 비밀통로를 신기하게 보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우와 우와 우와”
“히히 신기하지?”
“응 신기해.”
비밀통로로 대뜸 몸을 밀어 넣고 당장이라도 탐험을 하려는 에바를 잠시 말렸다.
“내가 길 잃어버리지 않게 있다가 알려줄게. 아무한테도 이런 문 있다는 거 알려주면 안 된다.”
비밀을 꼭 지키겠다며 격렬하게 끄덕이는 에바의 대답에 만족한 바이안은 개구지게 씨익 하얀이를 잔뜩 드러냈다.
“나 보고 싶으면 이 문 이용해. 그리고 우선 이거 받아.”
몰래 찾아온 목적을 이행하기 위해 뒤에서 주섬주섬 예쁘게 싸인 종이봉투를 에바에게 건네주었다.
“대륙에서밖에 못 먹는 과자지롱.”
“진짜?”
“쉿~ 시녀들한테 들키면 혼나.”
종이봉투를 받고 갸웃하던 에바는 과자라는 말에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가 조용히 하라는 바이안의 소곤거림에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눈과 코와 입을 잔뜩 모아 쉬잇 한 후에 신나서 봉투를 열어 안을 확인하고 좋아했다.
헤넬아주머니가 싸준 과자를 챙겨 올라오자마자 에바에게 넘겨준 바이안은 좋아하는 에바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꼈다.
“내가 내려갔다가 올 때마다 가져와 줄게.”
“오라버니 최고. 멋쟁이.”
“훗~ 내가 좀 멋지지.”
의기양양하게 에바의 칭찬을 고스란히 받으며, 다시 주변을 살피고 비밀통로로 에바를 데리고 들어가 길을 알려주면서 에바의 모험을 서포트 해주었다.
에바는 오물오물 과자를 먹으면서 바이안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탐험을 하다 보니, 상당히 많이 챙겨온 과자를 게 눈 감추듯 순삭해버려 매우 아쉬워 손가락에 뭍은 과자 가루를 입으로 가져가 쪽쪽 빨았다.
집무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류와 전투를 벌이던 황제는 벽에서 느껴지는 작은 인기척 두 개에 피식 입가를 올렸지만, 눈치 채지 못한 척 아이 둘의 인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와~”
“아바마마 바쁘신가 보다.”
“응. 우리 쉬잇~ 해야대.”
“우리가 온 거는?”
“우리만 비밀 쉬잇~”
“이번에는 어디로 가고 싶어?”
“어마마마.”
“쉬잇~”
“쉬잇~”
황제는 소곤대며 간질이는 예쁜 두 아기새의 지저귐에 업무의 피로가 싸악 가시는 것을 느끼자마자 다른 곳으로 금방 자리를 옮기는 아이들이 조금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