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안이 대륙에 내려갔다가 오는 날에는 에바가 유독 안절부절 못하며 바이안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황궁에서도 간식이라면은 사족을 못쓰는 것으로 유명한 에바인지라, 바이안이 챙겨오는 대륙과자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 기대감이 얼마나 컸으면 바이안이 제 방으로 들어갔다는 소리와 함께 시녀들을 억지로 물리고 비밀통로로 쪼로록 달려가 과자를 냉큼 받아 올 정도였다.
오빠가 반가워서인지, 과자가 반가워서인지 이미 과자가 우선순위가 된 모습이지만 그 순수함이 사랑스럽다.
그 날, 저녁식사 시간 전이니 과자는 후에 먹으라는 바이안의 당부가 있었지만, 어린 아이들의 참을성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에바는 침대 밑 틈으로 쏘옥 들어가 숨어서 과자를 입에 털어 달달하고 고소한 맛을 한껏 즐겼다.
혹시나 해서 몰래 쫒아온 바이안은 역시나 참지 못하고 먹고 있는 에바에 작게 키득였다.
숨는 다고 숨은 것 같지만 침대에 깔린 실크이불이 볼록 솟아 있는 에바의 엉덩이까지는 못 가려 주어서 형태가 고스란히 보였다.
과자 한입에 씰룩이며 흔들리고, 과자 한입에 동동거리는 발에 맞춰 흔들려 귀여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모인 저녁식사 시간에 깨작이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에바의 행동에 황후는 걱정스러워했다.
혹, 몸이 좋지 않냐는 그녀의 질문에 둘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움찔했고, 무언가 감을 잡은 황후는 웃으며 속으로 에바가 섭취하는 간식의 양을 줄여야겠다며 에바가 들었으면 충격으로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지을 결정을 내렸다.
우당탕탕 큰 소리가 집안 가득 울렸고, 방에서 도망치듯 달려 나온 소란의 원인인 바이안은 의아해하는 세일리아에게 잡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방안의 눈치를 살폈다.
“바이안?”
“그.. 어... 다녀오겠습니다.”
“어머?”
아침밥도 거를 기세로 후다닥 집 문을 거칠게 재치고 나간 바이안은 마력을 사용해 튀어 나가듯 집에서 멀어져버렸다.
잡을 세도 없이 일어난 상황에 당황도 잠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눈에 불을 키고 바이안을 찾는 세이나 덕분에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바이안이 마력을 사용하게 된 뒤로 수시로 발발하는 강해지기 훈련을 가장한 세이나의 학대의 현장이 일상처럼 자리 잡아갔고, 바이안이 한 번 크게 다친 뒤로는 오늘처럼 쫒고 쫒겼다.
어린 아이가 만지기에는 흉흉한 것들도 있기에 위험 할 수 있는 물건들을 제지하고 한껏 뭐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다루면 안 된다고 설명도 했지만, 자신의 딸이 가끔 보이는 모습은 아이의 그것이 아닌지라 차단할 방도가 마땅치 않음은 물론이요, 바이안 강해지기 프로젝트가 은근히 체계적이고 계산적이라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천하의 세일리아라 하더라도 설득에 더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그 훈련이 바이안의 발전에 크게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안의 자체적인 재능 일 수도 있지만 그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해내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튀어나가듯 사라진 방금 전만 해도 사람이 하늘을 날 수도 있다는 것을 바이안 스스로 보여주려는 것처럼 하늘로 사라졌다.
여기서 세일리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한발 늦어 바이안을 놓쳤다는 것에 툴툴대는 자신의 딸의 관심을 다른 것으로 돌리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압수하는 것이다.
압수하여 대충 본 물건들에 이런 것들도 사용 할 수 있다는 것에 혀를 내두르며 다른 의미로 세이나와 바이안이 천생연분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런다 하더라도 부모로서 무조건 막아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천생연분 하나만은 긍정적으로 은근슬쩍 인정했다.
현제 바이안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크게 성장을 하여, 차기 황태자로 거론 될 정도로 의젓하고 멋있어졌다.
일주일 이상을 포식자인 세이나에게 도망치는 나날을 보낸 작고 가련한 초식동물이 되었던 바이안은 황궁으로 돌아와 그동안의 피로를 풀 듯 늦잠을 자고 비척이며 일어났고, 눈을 뜨자마자 주변에서 시중을 드는 시녀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았다.
영문을 몰라 하는 바이안에게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좋아라하는 시녀들이 알아서 떠들어 댔다.
“오늘 황자님께서 황태자로 책봉 되실 거라고 결정이 났어요.”
“요리장님도 경사스러운 날이라며 힘이 잔뜩 들어가서 케이크를 준비 중 이랍니다.”
“켁.”
시녀들이 경사스러운 날임을 어필했지만, 하품을 늘어지게 뱉어 내던 바이안의 단말마 같은 소리로 뚱한 마음을 표했다.
“그딴 거 하고 싶지 않은데.”
다음 대의 황제가 되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바이안은 황태자 자리를 귀찮은 짐짝 취급했다.
시녀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눈치와 센스로 무장하여 바이안의 성격을 꿰고 있고, 황후의 신임과 인정을 받아 툭하면 월급 폭탄에 혼절을 해대는 바이안의 유모 겸, 전속 시녀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황제폐하 다음으로 제일 강하다고 하는 자린 데도요?”
다른 시녀들은 눈치 채지 못할 작은 움찔거림을 절대로 놓치지 않은 시녀는 역시 통한다며 쐐기를 박았다.
“게다가 가장 멋지죠.”
“...멋져?”
“아마 내려가셔서 자랑하시면 멋있다고 좋아하실 텐데...”
누구를 딱 지칭하지 않아도 무조건 통하고 바이안에게 유일하게 멋있다는 단어와 함께 반응시키는 사람은 단 한명, 비공식으로 소수에게만 알려진 작은 황자의 어린 약혼녀였다.
“흐흥~ 그럼 뭐.. 므흐흐”
내려가서 세이나에게 자랑하고, 볼 뽀뽀를 받을 상상에 발을 앞뒤로, 상체가 좌우로 절로 움직였다.
콧노래를 절로 부르면서 평소에 잘 보여주지 않는 아이의 천진함을 한껏 뽐내어 시녀들의 눈요기를 도왔다.
황태자 책봉에 2황자가 확실시 됐다는 소식에 모든 사람들이 축하하고 기뻐할 때, 단 한명 카이덴만이 기뻐 할 수 없었다.
“개자식 더러운 자식. 살아서 기어들어오더니 이제는 하다하다 그 자리까지 차지하려해? 너 같이 탐욕스러운 새끼가 감히 그 자리에 올라? 으아악”
목청껏 소리를 질러도 머리끝까지 오른 분노는 가라앉지를 않는다.
애꿎은 바닥에 발을 쾅쾅 구르고, 물건들을 부셔도 해결이 안 됐고, 오히려 제 분에 더 불을 붙였다.
“황제의 능력이라는 아바마마의 능력도 훔쳐 제 것으로 만들더니, 네 놈의 욕심은 어디까지 뻗는 것이냐? 젠장 그때 뒤졌어야 했어.”
땅 끝 절벽에 바이안을 밀어 떨어뜨린 뒤로 망가진 카이덴에게는 바이안에 관해서 제대로 된 사고와 논리를 할 수가 없었고, 그의 말은 모순과 이질감을 잔뜩 품고 있었기에 그의 분노를 만약 누가 본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풀어 줄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져있다.
아이들의 방은 궁 하나에 다 있어서 황제가 가족끼리 축하하자고 모두를 불러 이동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카이덴과 바이안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카이덴은 공정치 못한 결과로 바이안을 향해 쏘아대기 위해 무섭게 짓쳐 들어갔다.
“더럽고 욕심 많은 네가 감히...”
카이덴은 다짜고짜 쏘다대는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덤덤히 자신을 바라보는 바이안이 그의 말을 심드렁하니 잘랐기 때문이었다.
“응. 나 욕심 많아.”
‘세나를 욕심냈으니까.’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자신에게 더 길길이 날 뛸 준비를 하는 카이덴에게 마저 말을 할 기회를 뺏듯이 바이안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
“이익~ 황태자는 네깟 것이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냐.”
손가락질을 하며 방방 뛰는 아이 같은 생떼에 바이안은 어이가 달아나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댔다.
“그럼 네가 하든가.”
“..뭐라고?”
“나 그 자리 솔직히 관심 없고, 크게 하고 싶지도 않거든? 그렇게 욕심나면 너 가져.”
세이나가 멋있다고 하는 것만 아니라면 관심이 생기지 않기에 바이안의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의 말에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며 깔보는 말투가 카이덴의 속을 더 긁어댔다.
그래서 평소처럼 주먹을 쥐고 때리려 했지만 바이안이 한 발 더 빨랐다.
바이안은 발을 뻗어 카이덴의 옆의 복도의 벽을 강하게 발길질 하자 콰앙 소리가 귀를 때렸다.
온 몸을 굳히고 식은땀을 흘리며 눈만 돌려 바라본 벽에는 쩌적하고 금이 가 돌가루가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너 하.라.고. 귀찮게 하지마.”
넋이 나가있는 카이덴을 무시하고 팩하고 지나쳐 지나가자 바이안이 사라진 후에 스르륵 무너져 내려 주저앉은 카이덴은 몸을 벌벌 떨며 부서진 벽이 마치 자신인 양, 충격에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다.
한편 태연한 척 지나친 바이안은 작게 떨고 있는 양 손을 꼬옥 잡고 스스로 자신을 다독였다.
“나 강해졌어. 잘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응. 나는 멋있다. 나는 멋있다.”
카이덴에 향한 두려움이 몸에 베여있는 바이안에게 방금의 행동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최면을 걸듯이 반복적으로 자신을 칭찬하면서 떨리는 몸과 마음을 진정시켜갔다.
“응. 네 말대로 난 최고야. 방금 나 멋있었어. 히히”
세이나가 늘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생각하며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인지하게 되자, 자신감이 한껏 솟아났고, 이제는 어깨를 쫘악 피고 허리를 곧게 펴 당당히 걸을 수 있었다.
세일리아는 바이안 전용의 상담 일지를 마무리하며 어깨를 휘휘 돌려 뻐근함을 풀었다.
“이제 이정도면은 그 아이 스스로 맡겨도 될 정도로 왔나?”
한 숨 같이 숨을 길게 뱉으며 한시름 덜었다며 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궁극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는 풀린 것이 아니니, 위로 다시 올라가면 카이덴이랑 함께 보면서 전체적으로 해결을 해야지.”
지금의 바이안이라면 분명 한 발 앞으로 내디딜 용기를 품을 정도로 성장을 하였다고 굳게 믿고, 위로 다시 올라오라는 황후의 설득에 못 이긴 척, 그동안 천공의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나씩 해오며, 그렇게 이사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황후와 꾸준히 대화를 하면서 따로 적어 놓은 카이덴 전용의 상담 일지를 꺼내어 바이안의 일지에 겹쳐 놓았다.
아직은 빈 공백이 많은 카이덴의 일지도 머지않아 가득 채워질 것이고, 꼭 화기애애한 가족을 만들어 주리라 다짐하다 문득 자신의 입장에 피식하며 쓴 약을 입에 물고 한참을 우물거리듯 웃었다.
“내 자신도 정작, 아버지와 좋지 못하게 헤어졌는데, 다른 가족을 케어 하기 위해 움직인 다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학자로써 대륙에 잠시 내려왔을 때, 우연히 만나 연을 맺고 사랑을 나눈 사내와 함께 하고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 쓰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면서까지 그가 사랑하고 살아가던 이 마을에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비록 남편이 일찍 죽어 함께한 기간은 짧았더라도 행복하고 후회는 없다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반대하던 아버지를 외면할 정도로 매정하지 못해 늘 마음 한켠에 죄스러운 마음을 가득 담고 있었던 세일리아였다.
물론, 다시 천공의 땅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까지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이 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일구고 살아온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딸의 고향이기에, 딸이 마을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에 혹시나 힘들어 하지 않을까, 위에서 적응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위에는 세이나를 사랑해줄 사람들이 있었고, 곧 세이나를 안아 볼 자신의 아버지이자, 세이나의 외할아버지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믿기로 했다.
“올라가면 세이나 손을 잡고 찾아뵈어야겠지? 후후후 세이나를 보자마자 예뻐서 좋아 죽을 지도 모르겠네.”
가족에 대해서는 그 가족이 제일 잘 안다고, 좋지 않은 헤어짐이라 하더라도 평생을 보지 않고 살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기도 했으며, 자신의 아버지는 정도 많고, 여림을 잘 알기에 아마 이번에 올라가면 못이기는 척 만나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족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어서 대륙에 내려와서도 하이론이라는 성을 그대로 써왔고, 태어난 세이나에게도 물려주었다.
“아! 다른 의미로 아버지 기절하시는 건 아니시겠지?”
손뼉을 짝하고 마주치다가, 새삼 드는 걱정이 불쑥 나타나 멋쩍게 웃어버렸다.
자신과 딸을 만나주고 안아줄 것을 믿지만, 처음 만나는 손녀딸이 2황자의 약혼녀라고 하면 기절한다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부친이 걱정이 된 세일리아는 오랜 친구이자, 친한 언니인 황후의 도움을 받아 미리 밑밥을 깔아야겠다는 결론에 올라가자마자 황족찬스를 쓰기로 다짐했다.
“이것이야 말로, 궁극의 사돈 혜택이지. 후후”
이미 사돈혜택은 황궁의 한 편에 준비 만땅으로 자신과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짐과 몸만 오라며 집과 그 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준비가 되어있다고 협박을 빙자한 아첨에 후의 생활의 불편함은 없기에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키득 이던 때, 자신이 평생 느껴 본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과 함께 질척이며 다가오는 공포와 오한에 오싹 몸을 떨면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 딸! 세이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마을에 놀러 나간 세이나가 위험하다고 세포하나하나가 시끄럽게 경종을 울려, 창백하게 핏기가 가신 상태로 허겁지겁 문을 열고 딸이 있을 곳으로 달려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