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황태자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도 지금까지의 짜증을 풀지 못해서 씩씩대고 있었다.
혹여, 그런 자신을 보일까봐 기사들도 시종들도 모두 물리고 홀로 분을 삭이고 있는 중이었다.
“짜증나. 왜 그 자식은 끝까지 좋기만 하는 거야. 넌 좋아할 가치도 없어. 끝까지 제 욕심만 부려 남들에게 피해주기를 꺼리지 않는 놈 주제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순투성이지만, 본인은 의식하지 못한다.
다음대의 황제가 되는 황태자의 자리를 황제의 능력을 이어받은 바이안이 아닌 그가 가졌다.
지금은 대현자의 권한으로 특별의례라는 명목으로 황자로 돌아갔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기사였고, 바이안이 황족이 아니게 되었었을 때, 그는 황족으로 많은 것을 누렸다.
그는 부모의 옆에서 관심을 받았지만 바이안은 제대로 받지도 못했고, 스스로 거부하기까지 했다.
주인도 없었던, 공백의 기사단에 들어가 죽을 정도로 힘들다는 훈련을 받으며 몸이 거칠어지는 생활을 하는 바이안과는 다르게, 좋은 음식과 푹신한 침대에 잠을 자며 그의 피부는 상처하나 없이 곱고 윤이 났다.
황자로써, 이제는 황태자로서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감히 함부로 못한다면, 바이안은 황족이 받는 존중은커녕, 동료들과 부대끼며 지내왔다.
그는 밑의 사람들에게 편하게 명령하는 입장이라면, 바이안은 좋지 않은 명령이라도 고개를 숙이고 이행해야하는 입장이다.
그런 거대한 차이가 있는데 어떤 것을 보고 욕심을 챙긴다고 하는 것인지, 그 모순의 의문점을 알 길이 없는 행동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우루루에게 경멸만 더 늘려주었다.
주인님의 명령만 아니라면 바로 돌아갔겠지만, 남아서 돌아가는 상황의 모든 것을 지켜봐야하는 입장이라 저것을 언제까지 봐야하는지 오히려 자신이 짜증난다.
그렇다고 우루루의 그 속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잘 키워 썩힌 쓰레기. 재활용도 안 될 정도로 완벽하구나.”
자신들이 그를 어렸을 때부터 저리 되게 만들었고, 완벽한 쓰레기라며 자신 나름의 칭찬과 명언을 뱉지만, 황태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 말소리는 작다.
“그대의 인형이 어찌 움직인다고 하는지 정도는 알려주게.”
순식간에 평정심을 돌려놓은 황태자는 우루루의 앞에 앉아 진중히 물어왔다.
우루루는 그가 황태자의 자리에 괜히 있는 것은 아닌지, 아둔하더라도 멍청하지는 않나보구나 생각했다.
특정인물에 한해서만 아둔해 보일 정도로 머리가 굳고 타당치 않는 시기와 질투를 할 뿐이지, 확실히 그는 나름 주변에서 현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찌 움직일 것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웃기는 소리로군.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어찌 행동하라 하는 것인가?”
황태자의 타당한 지적에 나름대로 덧붙여 주었다.
“제가 명을 한 것은 지극히 간단한 것입니다. 인형이 최고라 생각하는 포인트, 틈이 보이면 알아서 죽이겠지요.”
“흐음~”
그녀의 대답에 지그시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여도 그 정도로는 어렵지.”
“명령할 때 말이 길거나 조건이 길게 되면 오히려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합니다. 명령은 간결하게 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죠.”
우루루의 대쪽같이 두루뭉술 대충 지껄이는 말에 따로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대들은 대현자가 그리도 방해스러운가?”
“존재 자체가 방해입니다.”
황태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우루루의 조직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다.
무엇을 목적으로 움직이는지는 저도 알지 못해도, 자신에게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굳이 캐물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태 그들과 상관도 없어 보였던, 대현자를 굳이 방해다 지칭하는 이유가 오늘따라 무척 궁금해져왔다.
대현자가 방해라면 그 존재의 크기만큼의 거대한 목적이 있음이 오늘 확실하게 느꼈다.
그렇다고 제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굳이 척을 둘 행동은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는 묻지 않았다.
“뭐, 대현자가 죽기만 한다면 나로서도 좋겠지. 9년 전 아니, 이제는 10년이 되었나? 그자식이 완전히 무너져 아무것도 안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그때의 표정을 보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볼 수 있겠어. 상상만 해도 통쾌하군.”
세상의 균형을 위해 정상에 우뚝 서있는 이의 다음 대 후계자가 할 소리가 아닌 말이 자연히 튀어나온다.
그에게 세상의 균형의 중책이나, 그것을 함께 나누어 짊어지는 대현자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음이 여기에서 더욱 두드러져 나왔다.
“우연이란 것이 참으로 어이가 없지 않나? 꼴도 보기 싫은 놈의 약혼녀가 죽었다 싶더니, 그 자식이 들어가 있는 기사단의 주인인 대현자로 다시 만났다니. 쯔.. 재수 없긴.”
독백이나 다름없이 바뀐 그의 혼잣말을 들으며 우루루는 속으로 대꾸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 이루어낸 천생연분, 운명으로 엮인 하나뿐인 인연이라고 하지요.’
“당신은 어찌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우루루의 질문에 황태자는 입가를 엷게 올려 보인다.
“내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그대의 인형이 알아서 할 터인데 내 힘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군.”
“저희들의 주인님은 확실히 움직이길 바라고 계십니다.”
“하~ 처음에는 스푼만 얹으면 된다더니,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움직여라?”
“제가 건넨 말에 틀린 것은 없습니다.”
황태자는 한쪽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소를 진하게 그렸다.
“그대들에겐 그렇겠지. 우연을 가장해서 틈을 만들어 인형이 확실히 죽일 수 있게 하고 모르척하든, 만일 인형이 암살에 실패 했을 시에는 내가 직접 움직여 죽여라. 대충 그런 뜻인 것은 안다.”
“완전히 멍청이는 아니네.”
우루루의 아주 작은 소리는 황태자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좋지 않은 혼잣말을 한 것은 대충 눈치 챘지만, 굳이 신경 쓸 가치가 없기에 무시했다.
“그 자식의 약혼녀이기도 했고, 별로 관심도 없었지만, 틈틈이 만나볼까? 그리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대들이 그리도 신경을 쓰는 대현자가 새삼 궁금해졌기도 하니 말이야.”
자리에 일어나 시종을 부르는 황태자의 행동은 이제 그만 나가보라는 축객령이었다.
우루루도 미련 없이 자리에 일어나 방을 나서려하니 뒤에서 황태자가 말했다.
“과거의 인연이 어땠든, 이번 일을 끝으로, 이제는 그대들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의 말에 목례만 하고 나간 우루루는 지나가는 이가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거닐면서 황태자의 말에 뒤늦게 혼자 대답했다.
“다시 마주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 후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을 테니까요.”
철통경호를 위해서 하일팀들이 반반 나누어 2교대로 세이나를 호위하고 있어 눈에 띌 법도 하지만, 하일팀들은 이미 대현자 직속 호위 기사단으로 자리를 굳혔기 때문에 이상히 여기는 이들은 없었다.
단지 이상한 점이라 한다면, 일주일 동안 그 팀의 대장인 하일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지만 그의 능력 탓인지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다.
“....과보호..”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 눈이 튀어나오다 못해 뿌리까지 뽑혀 굴러다닐 듯이 부릅뜨고 호위하는 덕분에 세이나는 본의 아니게 궁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황궁으로 놀러가기도 하고 틈틈이 산책도 즐겼지만, 주인인 자신의 말은 완전히 무시한 채로 반대로 산책금지, 외출금지를 당해버렸다.
“어흑~ 히데아아아아아”
역시 이럴 때는 히데아에게 잔뜩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최고라며 옆에 서서 자신을 케어해주는 히데아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고 그녀의 배에 얼굴을 묻은 채로 부비부비를 시전했다.
“답답하시죠?”
자신의 마음을 빠르게 캐치하고 배려해주는 것은 히데아가 최고라고 만끽하고 있는 세이나의 등을 히데아는 토닥이면서 살살 달래어주었다.
“나. 차라리 시녀로 돌아가서 감자 깎을래에..”
칭얼대던 세이나는 자신이 한 말에 잠깐 멈칫했다.
“응? 뭔가 데자뷰 같은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녀의 중얼거림에 히데아는 절로 푸훗 하고 웃어버렸다.
처음 대현자가 되고 업무의 지옥에 시달리고 있었던 세이나가 분명 비슷하게 자신을 안고 했던 말이었다.
주인인 세이나는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니 지금의 상황이 오죽 답답하랴, 하지만 세이나를 지키는 기사들을 휘 둘러보아도 작은 것도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 달래주는 것밖에 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내가 분명히 말은 하기는 했지만, 그런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법이 어디 있어? 완전히 감금이잖아. 크게 계획을 잡고 움직일 것이 뻔한데, 굳이 암살자를 보낸다거나 하겠냐고. 뿌우~”
“그래도 다 세이나님의 안위를 걱정하셔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알지... 그래도 답답해. 그냥 하극상이라고 확!”
“후후 안 그러실 거면 서요?”
정곡이었다. 답답해서 그냥 해 본 말이었고, 자신을 너무 잘 아는 히데아가 세삼 대단해 보인다.
자신과 히데아가 나누는 말을 모두 들었을 것이 뻔해도 기사들의 움직임엔 변화가 없다.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서 창틀에 대충 걸터앉아 있는 론도 평소라면 말대꾸 배틀을 신청했을 텐데도 그의 얼굴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슬쩍 론을 봤지만 변동이 없으니 이럴 때는 내심 장난 좀 걸어주지 싶자, 작게 한숨만 나온다.
“론”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론은 자리에 일어나 세이나에게 바짝 다가왔다.
“하명하십시오.”
“아...적응 안 된다.”
론의 입에서 하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참 어색하게 다가왔다.
“저기 있잖아. 나..”
“안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안됩니다.”
끝내는 세이나의 얼굴이 오묘하게 구겨진 채로 그대로 머리를 책상에 박았다.
“과보호 반대. 전부 설명해 줬는데도, 방콕을 시키다니, 단체로 너무하다고~”
“그렇다 하더라도 어찌 될지 모르니까, 안됩니다.”
자신의 말 하나하나를 믿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적이 움직일 것이라고 괜히 말 했나 후회가 물씬 샘솟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