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대련이 있은 후의 늦은 밤, 세이나의 집무실에 정기적인 회의를 위해서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입을 달싹하고 떼는 이가 한명도 없었다.
자신들의 주인이 소파가 아닌, 업무를 보는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이나가 무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중인지라 그녀를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모두가 가만히 있어도 세이나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생각도 않던, 의외의 인물이 연결 되어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마주본 시간이 짧아서 이유까지는 모르겠단 말이지.”
한 손으로 이마를 받쳐가며 마음에 걸리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갔다.
“거기다가 생명의 빛을 외칠 것 같은 인물은 나만 보면 혼탁했다가 맑아졌다가 하는 것도 확실히 알겠고... 둘.. 셋? 숫자는 적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핵심인물인 건 맞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모두는 꿈적도 하지 않고 계속되는 세이나의 혼잣말이 끝나서 궁금증을 풀어주기를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지만, 한계까지 다가와 참기가 힘들어 질 때 즈음에 고개를 든 세이나가 앉아서 자신의 얼굴을 뚫을 기세로 쳐다보고 있는 모두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에 일어나 그들이 앉아 있는 소파로 털썩 자리를 옮겼다.
“뭘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들이 와도 몰라요?”
평소라면 더 가볍게 치고 들어올 론이 세이나의 진지함에 맞춰 질문했다.
“응. 오늘 주의해야할 인물을 찾아봤다고 할까? 그 정리.”
간단한 대답에 내포된 뜻에, 모인 이들은 놀랐다.
“설마, 적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오늘 폐하와 어르신의 대련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의도 하신 겁니까?”
하일의 감탄에 세이나는 옹? 하면서 입모양과 눈 모양을 동그랗게 통일 시켰다.
“아닌데? 나 그렇게까지 머리 쓰지는 않았는데? 물론, 의도치 않았어도 상황이 만들어지면 활용은 하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전부는 아니더라도 얼추는 알 수 있잖아.”
이리 말을 전해도 하일의 눈은 천재를 보는 눈이라 나 천재는 아니라니까 라며 작게 반항 하듯이 중얼댔다.
“파악이 끝난 거지?”
분명 부드럽게 묻는 바이안의 목소리에 은근한 살기가 배어나왔다.
“얼추, 한 80프로 정도. 그렇다고 해도 진짜 적과의 연결점이나, 그들이 정말로 적일 것까지 예상해도 중요한 부분이 비어있으니 전부는 아니야. 100프로가 아닌 시점에서 내 예측이 완전히 틀릴 수도 있다는 점도 무시하면 안 돼.”
“난 주군의 예측이 틀릴 거라고는 생각도 안 든다.”
론의 대꾸에 모두가 끄덕이자 세이나는 고맙기는 한데, 날 너무 신용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 틀리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어진다.
이제는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심복이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말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어, 바이안을 특정지어 보았다.
“반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뭐든지.”
자신에게는 늘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평소에는 감정에 티를 많이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 때문에 하나도 놓칠 생각이 없어서 날카롭게 관찰했다.
“황태자.”
아주 미세하게 그의 어깨가 움직였다.
“엘라이어 진 카이덴.”
황태자의 풀 네임을 부르자 역시나 작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자기감정을 철저히 숨길 수 있는 바이안이라서 확인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저 움직임은 거의 몸에 베인 본능적인 움직임일 것이라는 예측이 왔다.
주변에 앉아 있는 하일과 론은 주군이 왜 갑자기 황태자를 찾는지 의문이었지만, 모여서 하는 회의의 목적이 확실히 있다 보니, 이내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설마. 황태자가 연관이 있다고 하는 거야?”
존댓말이 익숙해져 가던 론은 순간적으로 예전의 버릇처럼 세이나에게 말을 놓았지만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그건 아직 아니야. 황태자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냥 가능성으로 놓아 두었을 뿐이니까.”
론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이안을 노려보듯 눈동자를 고정한 채로 대답하니, 바이안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문도 나쁘지 않고, 사람들의 존경도 나름 받고 있는 인물이잖아. 거기다 사람도 좋더구만.”
“......”
“물론, 내 눈에 보기엔 겉으로만 이지만.”
마무리 같은 대답에 모두는 신음을 삼켰다.
“반. 둘이 무슨 일이 있는 사이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바이안은 세이나에게 아무것도 숨길 생각도 없었던지라 오히려 반대로 뭐라 말을 표현해야 할지 어려워졌다.
“후~ 억지로 묻지는 않아. 아니면 모두가 있는 곳에서는 어렵다면 물릴 수도 있어.”
“괜찮아.”
살짝 잠겨 들리는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단순히 둘만의 문제일 수도 있어서 나도 묻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미안. 적과 아님을 확실히 하려면 물어봐야겠어.”
공과 사는 확실하게 하는 세이나의 몸짓과 말에서 오는 그녀의 카리스마는 위에 서 있는 이라는 것이 납득이 된다.
그 것은 분명 타고 난 것이리라.
“그가 적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적의가 내가 아닌 반을 향하고 있다는 것.”
다시금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오늘 황태자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고 예를 차리는 카이덴 황태자, 하지만 바이안이 자신을 향해서 웃을 때,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내비쳤다.
그는 잘 숨긴다고 했겠지만, 세이나의 관찰력에 놓칠 리가 없다.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이상하게도 바이안이 즐거워하는 모습이나, 웃을 때마다 불쾌함이 갈수록 많아졌다.
바이안이 자신에게 바짝 붙어 있고, 황태자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기에, 거의 모를 수도 있는데, 의식의 끝에 바이안을 두고 있는 것인지 반응은 즉각적이다.
어째서 바이안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수하게만 놓고 따지면, 바이안 자체를 부정하는 듯 했다.
특히, 바이안은 자신의 동료와 세이나에게만 감정을 내비치는 사람인데, 우연히 황태자와 마주치게 될 때마다 차가운 얼음마냥 변하는 바이안의 행동도 놓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세이나의 입장에서는 집안 사정일 수 있어서 모른 척 하려 했다.
순수하게 바이안을 싫어하는 것이라면 그의 약혼녀였던 자신을 향한 시선도 부정적이어야 할진데, 호기심어린 시선도 걸리면서, 무언가를 아는 듯한, 그의 눈빛을 그냥은 넘어 갈 수가 없었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적과 연결이 되어있지는 않은 것인지 까지 의문을 가져봐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와 나는 특별하다고 할 것은 없어.”
무미건조하게 나온 바이안의 대답이 말하고 싶지 않아서 나온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나온 말이 맞겠지만, 형님도 아니고 타인처럼 그라 지칭한 것에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어른이 되어 바이안의 몸도 마음도 성장하여 과거 자신의 생각과 해왔던 생활이 잘 못되었다는 것은 본인도 알지만, 거의 몸에 베어버린 것이라 아직도 그와 마주치면 작게라도 굳거나, 경계하는 것은 이제는 거의 본능적이다.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입을 다물자, 세이나는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세이나에게 방금의 말로도 충분했다.
“하일경. 황태자의 뒤를 조금 캐주겠어?”
“알겠습니다.”
“하일경에게는 늘 미안하네. 이런 일만 시키고.”
너무 미안해서 사과하니, 하일은 당연한 일이라 대답했다.
“아닙니다. 주군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저희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아! 특히, 오늘 황태자의 옆에 함께 온 여자도 같이 봐줄 수 있으면 더 좋고.”
다른 의미로 걸리는 사람이 황태자의 여자였다.
황제폐하와 황후마마는 보기 드물게 연예후의 결혼이었다.
후궁도 두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무척 아끼는 사이라서 자식들도 웬만하면 정략적인 결혼이 아닌 서로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기를 바랄 정도며, 황족으로 태어난 의무에서 그것만이라도 자식들이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하시는 분들이다.
그 덕분인지, 여태껏 여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서 약혼녀가 없던 황태자가 갑자기 맞선을 본다며 많은 귀족여성들을 만났다는 소문은 현궁에도 쉽게 들려왔다.
혼기를 놓쳐도 무감각했던 그가 자리가 자리인지라 책임감에 한 맞선으로 유추해도 되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그가 데려온 여인과의 분위기는 두꺼운 벽이 쳐져있었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없다고 하여도, 맞선을 보고 만난 사이, 게다가 맞선은 억지로 진행 된 것이 아니라서 모이는 여성들은 모두 자기 의지로 맞선을 신청했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황태자라는 자리의 크기가 있으니, 그의 자리를 보고 오는 여인들도 많기에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 하나라도 있을 것인데 전혀 없었고, 반대로 부모가 억지로 떠밀어 와서 우연찮게 황태자의 눈에 들었는가 하기에는 황태자도 심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
서로가 관심이 하나도 없이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 여인은 감정을 내비치지 않아서 캐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황태자가 그녀에게 무신경함을 넘어서 엮이고 싶지 않아하는 부분을 왜인지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만약, 그 여인이 적이라고 가정을 해놓고 비교를 한다면 황태자를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세이나의 결론이었다.
“아무래도 찾은 것 같단 말이야. 내 생각이 맞으면 이제 움직이겠어.”
적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몰라서 기사들이 잔뜩 주변에 날을 세워도 세이나는 아직 움직일 생각도 없어 보인다고, 경계심도 없이 여태 느긋하게 지내왔지만, 움직임이 보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직 움직이지 않을 거야의 말이 움직인다로 바뀐 주인의 말뜻에 모두 단체로 쉬는 날은 없애고 그녀의 호위를 바짝 할 계획을 정했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면서 생각 없이 움직여 보이는 세이나라도 세이나의 머릿속은 쉬지 않는 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들은 그녀의 말을 허투루 들을 생각은 없다.
모두의 눈빛이 확 돌변해 긴장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진지해진 론을 보면 가장 잘 와 닿는다.
“우와~ 든든해라. 나도 참 복 받았어.”
세이나만의 믿기에 나오는 유쾌한 말에 모두의 어깨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