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상황을 주시하고만 있던 인물 중에 한명인 황태자는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기사들을 노려보다가 우루루의 대답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
“뭐? 그게 할 말인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우리 주인님은 크게 신경도 쓰지 않지요.”
그녀의 말의 의미는 뻔했다. 단순히 가지고 노는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고 하는 말이었으니 그의 분노는 오죽할까.
“그쪽은 이미 다 끝이네요. 전부 들켰나 본데 그대로 있어도 되나요?”
칼날이 없는 방향으로 갸웃하는 우루루의 건조한 표정과 행동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
“내가 잘못한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들킬만한 일을 한 것이 어디 있다고! 아바마마 저는 억울합니다.”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말로 들리기도 하지만 황태자의 눈은 진심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기에 첫째를 내려다보고 있던 황제는 충격을 받았다.
알고 나서 바라보니 그의 말과 표정, 행동 모든 것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카이덴!”
첫째의 이름을 크게 외친 황제의 노기에 황태자는 움찔하며 그를 쳐다보자, 황제는 화를 참듯 이를 물다가 입을 떼었다.
“그동안 네가 저질렀던 패악의 증거들은 모두 모아졌다. 그런데도 짐의 앞에서 감히 시치미를 떼려 하는 것이냐?”
황제는 제발 잘못 단 단추이기를 바라며 황태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패악? 패악이라니요? 저는 평생에 죄를 지어 본 적이 없는데 어찌 그리 말씀을 하십니까?”
“허...”
진심을 담은 그의 눈동자에 이제는 황제 자신도 깨달을 수 있었다.
카이덴은 깨어진 단추였다.
성정만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쩍쩍 부서져 있는 깨어진 단추라고, 그것도 조금이라도 손을 써 볼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메울 구멍이 하나도 남지 않은 단추다.
“13년 전, 누구도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천공의 땅의 끝에 바이안을 밀어 떨어뜨린 것도 네가 한 짓이 아니라고 할 테냐?”
급격하게 변한 상황에 불안하게 주변을 보던 황후는 황제의 발언에 큰 충격을 받아야 했고, 그 충격으로 뒤로 쓰러져 버렸다.
다행히도 옆에 에바가 있어서 쓰러지는 그녀를 잡아 조심히 뉘일 수 있었다.
“바이안. 바이안. 또 네놈이냐? 온갖 착한 척으로 주변에 피해자인 척 군 것이냐? 네 노옴!”
불똥이 오히려 바이안에게 날아가는 황태자의 행태에 황제는 말문이 막혔다.
13년 전에 갑자기 사라진 바이안을 겨우 찾았다 싶더니 대륙에서 발견 되었고, 상황 전후를 물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만 하는 바이안 덕분에 그동안 어찌 된 것인지도 몰랐다.
무엇도 알 길이 없이 바이안을 찾을 때, 간간히 대륙으로 내려가는 학자들의 짐에 숨어 들어갔다는 흔적으로 바이안의 가출로 정리가 되었었다.
그때에 그 말도 안 되는 증거를 믿어서는 안 되었다.
지금껏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바이안의 탓으로 돌리며 황태자 그 자신이 피해자가 되어있다.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싶은 황제는 명을 기다리는 노엘경을 불렀다.
“죄에 차별이란 없네. 반항할 시에는 무력으로 제압하게.”
“명을 받듭니다.”
황제가 명을 내리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은 황태자는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억울함과 배신감으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마력을 개방해 자신을 제압하기 위해 다가오는 기사들을 압박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비록 황제의 능력을 물려받지는 못했으나, 엄연히 황족이고 황태자이기에 그의 마력은 상당히 압도적이었다.
겨우 마력을 뿜어내는 것뿐인데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기사들을 뒤로 하고 노엘경이 앞으로 나서며 분노에 이성을 잃어가는 황태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어렸을 때, 그리 착했었는데 안타깝구나.”
어차피 대화를 해도 말이 통하지 않을 테니 바로 제압을 할 준비를 하자, 황태자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마력을 다리에 집중시켜 그대로 미끄러지듯 순식간에 그의 지척에 다가가 왼 편을 잡아 그대로 내리꽂으려했다.
“하~”
하지만 작은 한숨과 한번 눈을 깜빡이는 순간의 시간에 땅에 강하게 내리꽂힌 것은 황태자였다.
“크학.”
노엘경은 그의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무릎으로 등을 강하게 눌렀다.
“편하게만 살고 있던 네 녀석을 제압하는 데에는 굳이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간단 하단다.”
“크윽..”
처음 겪는 충격과 고통에 몸부림을 칠 때, 노엘경은 마력을 봉인하는 수족구로 그를 묶었다.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질 수밖에 없던 황태자는 조금 상태가 나아졌는지 세이나의 어깨에 기대어 앉은 상태로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는 바이안과 시선이 엮이자마자 발광을 했지만 다시 그에게 가까이 다가온 노엘경이 발로 턱을 차버리고 그대로 까무룩 기절했다.
이미 온전한 정신이 아닌 단장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틈을 노리고 있는 상태에, 황태자 쪽이 일단락이 지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얌전히 앉아있는 우루루가 경탄스럽다.
“대단하네. 보통 도망칠 궁리를 할 텐데, 재밌는 걸 보는 것처럼 보고 있네?”
감탄성을 넣어주며 하는 말에 우루루는 검을 겨누고 있는 하일을 흘끔 눈동자만 움직여 본 뒤에 별거 아닌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쓰레기의 말로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도 재미있으니까요.”
“얻을 것도 다 얻은 것 같은데, 아직도 당한 척 얌전히 앉아만 있을 거야?”
세이나의 직구에 우루루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어머나 라며 짐짓 놀란 척을 했지만 눈이 움직이지 않아 그 모습이 어색했다.
“주변의 상황을 보아도 저희가 졌는데, 얻었다니 무슨 소릴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천하 태평한 우루루의 행동에 보답이라도 하듯 세이나도 그녀가 한 대로 눈은 그대로 입을 동그랗게 모아 손으로 가리며 행동을 똑같이 취했다.
“벗어날 자신이 없지 않는 한은 너의 그런 태도가 쉽게 나오지는 못해. 그렇지 않니들?”
왼손을 슬쩍 올리며 엄지와 중지를 붙인 상태에서 우루루 외에 구석 여기저기에 웅크리고 무서운 척 떨고 있는 이들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하며 관찰하는 이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세이나의 시선이 가는 방향과 말에 우루루는 이것까지 간파를 했다면 더는 있을 필요가 없을 듯 해 주변에 신호를 보냈고, 그 신호와 동시에 시종과 몇 귀족들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세이나도 거의 동시에 붙인 손가락을 마찰시켜 딱 하는 신호를 보내자 세이나의 주변에 서있던 모두 역시 그대로 달려나가 그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휘유~ 세상에 주군이 하는 말이 다 맞네.”
“혹시나 적이 다수일 경우에 신호를 주겠다더니, 아~ 역시 주군이 적이 아닌 것에 감사한다.”
카시어스 남매는 세이나의 호위담당이라서 굳건히 서있기만 했고, 로이에는 처음 보는 세이나의 위용에 다시 반해버렸다.
노엘경은 크게 벌어진 상황에 황제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심히 의향을 물었다.
“저희도 거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네. 세이나 그 아이가 저 부분은 맡겨 달라더군. 우리는 만일의 상황에만 대비하면 되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기사들을 황후와 황녀의 호위로 돌리며 주변에 배치시키고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세이나의 주변을 에워싸듯 호위하고 있던 기사들이 빠지고 둘만 남자, 흔들거리는 몸으로 가만히 있던 단장이 다시 움직였다.
“내가 할 테니, 로이에 넌 제대로 호위해라.”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론은 앞으로 성큼 나서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듣지 못하셔도 하나 말하고 싶습니다. 존경했습니다. 단장님.”
허리에서 검을 뽑아 그에게 겨누자 단장은 그대로 몸을 들이 밀었다.
“큿..”
론은 설마 겨누어진 검에 찔려도 상관없이 다가올 줄은 몰라서 자신도 모르게 검을 틀어 빼버렸고, 그것이 독이 되어 그대로 주먹을 허용해버렸다.
론은 얼굴에 주먹이 닿자마자 그대로 회전하며 바닥에 널브러져버렸다.
“크하~ 검을 꺼낼 머리도 없는 분인데도 역시 단장님은 단장님이네. 아야야”
입안이 상당히 많이 찢어졌는지 작은 실선처럼 피가 입가를 타고 한줄 흘렀지만, 언제 널브러졌냐는 듯 씩씩하게 일어나 자세를 다듬었다.
“확실히 동의한다. 뒈지기 싫으면 사적인 감정은 접는 것이 좋다는 거.”
그리고는 다시 검을 겨누며 억지로 여유로운 척 웃어보였다.
“고로 안 봐드립니다. 단장님.”
피아구별을 못하는 사람이 상대일 때, 어떤 방식으로 나갈지 몰라서 매우 까다롭던가, 매우 단순해져서 상대하기 쉽던가, 둘 중의 하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장은 전자에 속했다.
그의 특징인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고, 마력으로 단순하게 육체적인 능력을 향상시킨 것뿐인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대충 지르는 주먹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들어와 허를 찌른다는 것이다.
몇 번의 공방이 오가던 중, 론이 검을 앞으로 내지르자 그 방향으로 흐르듯이 타고 내려와 얼굴을 바싹 붙여 시야를 가리며 무릎으로 론의 옆구리를 찍어 날렸다.
발차기를 할 때에 몸의 다른 다리로 중심축을 만들어 내지르기에 움직이는 방향만 주시하면 알 수 있지만, 단장은 시야를 가리고 똑바로 서있는 상태에서 차 올린 것이라 아무 방비도 못하고 맞아야했다.
“이거 완전 사기잖아! 어떻게 알아?”
바닥에 주르륵 밀려 넘어진 론은 맞은 곳에 손을 얹고 상체를 벌떡 일으켜 옆구리를 쉽게 내 준 것이 분한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털레털레 가까이 온 할아범이 대답해주지 못하는 단장대신 대답해주었다.
“사기 아니여. 가능하지. 저 바바라. 몸이 이미 정상이 아닌데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뒈져.”
뇌에서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게 제제 하는 부분이 마비가 되었는지, 단장이 뻗어 올린 다리는 기이하게 비틀려 있었고, 바닥으로 다시 내릴 때에 우두둑하며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귀 속을 긁어댔다.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보기 힘들어지겠다 싶어서, 온갖 인상을 찌푸린 채로 론은 성큼성큼 기절해 있는 황태자에게 다가가 그의 겉옷을 대충 잡아 찢듯 벗겼다.
“정석은 개나 주라지.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는 이상은 기절도 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나중에 치사하다고 욕하지 마십쇼.”
몇 번의 공방 끝에 단장의 상태 파악은 끝이 난 것인지, 단순하게 대치해서는 답이 없음을 직감한 후에는 빨랐다.
주머니에서 모양이 일정한 동그란 작은 돌멩이를 꺼내 들고 자신도 황당한 듯 중얼댔다.
“설마 이런 식으로 쓸 줄은 몰랐네.”
왼손에 돌멩이를 말아 쥐고 마력을 규칙 없이 마구잡이로 돌멩이에 뻗어내자, 곧 버티지 못하고 터질 듯 진동이 일었고, 뻗어진 하나의 줄기만 그 돌의 표피를 감싸듯 얇게 감싼 후에 그대로 단장에게 날렸다.
겨우 작은 돌멩이라 피하지도 않고 있을 때, 퍼엉 하면서 폭발을 일으켜 단장은 그대로 얼굴에 정통으로 가격 당했다.
그 잠깐의 사이에 론이 그의 지척에 다다르자마자 옷을 들고 있던 오른 손을 한껏 뒤로 뺀 자세로 단장의 얼굴에 그대로 들이밀고 뒷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면서도 밀어 붙이는 손의 힘을 빼지 않으니 자연히 단장의 뒤통수가 바닥에 쿵하고 세게 부딪혔다.
바닥에 넘어져 꿈틀하며 일어나려던 단장은 점차적으로 움직임이 멎었고, 잠잠해져서야 손바닥을 탁탁 털며 일어난 론은 가까이에 있는 황궁기사에게 마력을 봉하는 수갑 남는 것이 있는지 물어 받은 뒤에 잠든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단장에게 채웠다.
생각보다 단장을 쉽게 제압이 가능 했던 것은 바이안이 쓰러지고 모두가 황태자에 시선이 집중 되었을 때, 세이나에게 슬쩍 물어봤었던 것이 컸다.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하게 했냐 물어보니, 향수에 향도 쓰지도 않는 놈이 코를 테러하려는지, 온몸에 뿌리고 나왔다고 세이나가 지적을 해준 덕과 회의할 때 정신이나 뇌에 관한 강의를 들었던 참인지라 단장의 뇌 손상이 이상이 아니기에 분명 똑같이 통할 것이 자명하여 그대로 한 행동이 정답이 되었다.
단장에게 수갑을 채운 뒤에는 그를 부드럽게 안아 올려 세이나와 바이안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는 세이나의 옆에 뉘였다.
“어떤 의미로는 황태자에게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하나 더 늘어버렸네.”
황태자가 의도적으로 건드렸다는 증거가 향수에 있다는 것은 단장과의 싸움으로 사용한 옷가지 덕분에 하나 더 추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