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황궁에만 있어서인지, 세일리아가 안내한 집안 내부는 낡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세일리아는 차를 내와 두 부부에게 한 잔씩 건네고 맞은편에 앉아 둘을 마주보았다.
“여기부터 상당히 무례할 것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아이의 상담 케어 선생님으로서 그 아이의 부모님께 잔소리를 퍼부을 예정이거든요.”
세일리아의 사는 곳을 둘러보던 황후는 움찔하다가 자세를 바로하고 얌전히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황후는 세일리아가 목소리의 톤이 고저 없이 나오는 것을 들을 때면 그녀가 조금 무섭다.
이윽고 긴장을 바짝 하고 있는 두 황제부부를 향해서 세일리아의 잔소리 융단폭격이 무서운 속도로 연달아 터졌고, 세상의 지존이라 칭하는 황제마저도 고개가 수그러지는 경이로운 잔소리 능력이 발휘되었다.
세일리아가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직업은 한 개가 아니었다.
하늘과 대륙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탐구하고 연구하는 황궁소속의 전문학자라는 것이 그녀의 실제 직업이지만, 간간히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해왔었다.
하지만 세일리아가 정작 인정받고 모두가 한번은 자신들의 집에 와주었으면 하면서 바라고 모실정도로 유명해진 직업은 바로 아이들의 상담 케어였다.
처음 몇 번 공부를 가르쳐 주기 위해 들어갔었던 집에서 배우는 아이들의 문제점을 체크하고 도와주던 것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소문이 났고, 그녀의 손이 탄 가정이 하나 둘 좋아지면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거쳐 간 아이들은 백이면 백 못 되진 아이들이 없었고, 그 아이들은 그녀를 제 부모보다도 무척이나 따르고 믿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정점인 황제라도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그녀의 말에 고개를 숙여야 했으니, 기사들을 물린 이유가 있었다.
혼이 빨려다나갔다가 들어온 두 부부를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오자, 둘은 곧바로 황궁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바쁜 업무량과 일정으로 잠깐의 시간을 내어 대륙으로 내려오는데 무리를 한 것과 진배없기에 내려온 일정은 짧았고, 그러기에 서둘렀다.
밖으로 나와 허리를 숙이며 세일리아는 다시 한 번 예를 다한 인사를 했다.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한 듯싶습니다. 폐하. 그리고 황후마마”
“그리 말하지 마. 네 덕분에 우리 아들이 무사한 거잖니.”
황후는 환하게 웃으며 세이나의 어머니인 세일리아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녀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때, 기다렸던 바이안이 조심히 그들에게 가까이 걸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은 몰라보게 많이 변해있었다.
늘 어딘가 외소해서 걱정했었는데 그동안 잘 먹고 잘 잤었는지 살이 오르고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며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에 처음에 의아해 하기도 했지만 다행이었다.
하지만 세일리아에게 신랄하게 혼이 났음에도 자신의 남편은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이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아들을 나무란다.
이이가 정말하며 뭐라 해주고 싶다가 아들의 옆에 꼬옥 붙어있는 세일리아의 딸과 안 떨어지겠다는 바이안을 보니 황후의 눈에 순간적으로 이채가 띄었다.
핑크빛이 몽글몽글 퍼져 푸욱 파묻힌 자신의 아들을 보면서 대륙에 내려오기 전까지 세일리아와 주고받았던 계획을 실행할 타이밍이라 판단을 내렸다.
고개를 들고 세일리아와 눈짓으로 수신호를 보내고 황제의 팔에 부드럽게 제 팔과 몸을 감겨들면서 나긋하게 설득을 빙자한 우김을 시작했고, 이에 맞춰 세일리아도 끼어들어 그녀의 무기를 꺼내들어 황제를 공략했다.
황제가 굳건히 세운 성은 난공불락은 아닌가 보다.
황제는 황후의 설득에 못이기는 척 허락을 하면서 1년이라는 자유로운 시간을 나름 위엄있게 하사하는 척 했고, 뛸 듯이 좋아하며 방방 뛰는 아들이 흐뭇하면서도 미안함이 가득 들었다.
살짝 의기소침해진 황제를 돌아가는 길에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잘했다는 칭찬을 해줌과 동시에 등 뒤에 엄지를 척 세워 올리며 계획성공을 세일리아에게 보이면서 자축했다.
한편, 바이안의 품에 폭 안겨 황제 내외가 돌아가는 모습을 세이나는 살짝 멍한 모습으로 지긋이 지켜봤다.
[저 아이가 이번 대 황제.]
[안타까운 아이야]
[이것 또한 우리들이 어쩌지 못하는 인과율인걸까?]
[그거, 운명이라고들 하지 않니?]
[그렇게 말을 한다면 세이나에게 딱 달라 붙어있는 저 아이의 아들이겠지.]
[그렇겠지. 세이나에게 이끌려 이 곳으로 날아 왔으니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일세.]
머리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로 가득 들어차 살짝 미간이 찌푸려진 세이나의 왼쪽 눈 전체가 마치 충혈이 된 듯 희미하게 붉었다.
그리고 너무 시끄러워지자 얼굴을 바이안의 가슴에 묻고 그를 포옥 껴안는 것으로 그들의 시야를 차단했다.
‘우웅... 시끄러’
황제부부가 천공의 땅으로 돌아 간지 그렇게 오래지 않아 둘은 적은 수행인원만을 데리고 다시 세일리아의 집에 방문했다.
“어마마마~”
“아유~ 예쁜 내 새끼”
황후는 자신의 품을 거부하며 떨어지려는 바이안 덕분에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여 그동안 쌓아 놓은 애정을 한껏 푸는 것인지, 바이안을 꽈악 안고 놓아주지 않을 심산으로 한참을 부벼댔다.
“음 좋네. 많이 좋아졌어.”
세일리아는 보기 좋은 가족을 확인하며 숙제 하나를 풀었으니, 다음 숙제를 꺼낼 준비를 했다.
따뜻한 햇살아래 두 엄마들은 함꼐 볕을 쬐며 그동안 풀지 못했던 이야기보따리를 활짝 열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한편, 황제는 오랜만의 휴식에 집 앞에 간단히 놓여있는 나무의자에 앉아 투박한 나무테이블에 팔을 걸치고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만을 쫒던 중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아래로 숙이자, 테이블에 두 손을 걸치고 얼굴을 빼꼼히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조그마한 소녀와 마주쳤다.
“심심해요?”
“허허허 심심할 것이 무에 있겠니.”
“심심한데?”
세이나는 심심하지 않다라고 말을 하는 아저씨는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니 황제는 살짝 찔렸다.
평소에 휴가라는 것 없이 업무에 찌들어 살다가 이번에야말로 이 핑계로 휴가를 내겠다며 벼르고 벼루어서 간신히 시간을 내어 내려왔지만, 여자들만의 시간에 남자는 끼는 것이 아니라며 깔끔하게 자신을 버린 황후 덕분에 혼자가 되었고, 이런 시간에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모른 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던 것을 들킨 듯 했다.
“그럼, 내가 재밌는 문제 내 줄까요?”
“문제?”
“응.”
요 조그마한 아가씨가 한참 어른인 자신에게 문제를 내주겠다하니 무척 귀여우면서 썩 유쾌했다.
“그래 무엇이냐?”
아이와 이리 노는 것도 좋겠다 싶어 내 보라 하자 세이나는 신나서 바닥에서 이것저것 주워 테이블에 올렸다.
작은 나뭇가지 두 개를 나란히 놓아 강을 만들고, 넓고 판판한 작은 돌을 그 사이에 놓더니 배라 칭했다.
그리고 동그랗지만 각자 모양이 다른 돌멩이 6개를 꺼내어 문제를 설명했다.
“이 강은요, 이 배로밖에 이동을 못하는 강이구요. 배는 2명밖에 못 타요. 여기 이사람들이 무사히 건너편에 건너야 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아이들이 내는 문제이니 적당히 어려운 척 해주며 놀아주려 했는데, 이게 웬걸, 은근히 체계적이고 처음 보는 방식에 매우 흥미로웠다.
“여기 세 명은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사람이고, 여기 세 명은 보통사람 이예요. 괴물사람이 보통사람보다 숫자가 많게 되면 무조건 잡아먹어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여기 건너편으로 이동하면 되요.”
설명을 듣던 황제는 자신만만하게 돌을 잡았다.
“허허허 참 재미있는 문제를 알고 있구나. 어디보자.”
막힘없이 돌멩이를 이렇게 저렇게 이동하다 중간에 멈칫했다.
“아.. 잘못 갔.. 이런 죽었구나. 다시 한 번..”
황제의 지근거리에서 함께 문제를 듣던 기사들과 시종, 시녀들의 고개가 절로 황제의 손으로 이동했다.
두 번 만에 문제를 푼 황제는 호탕히 웃으며 어떠냐? 말을 꺼냈지만 세이나는 없었다.
허공에 잘난 척을 한 꼴이 되 멋쩍어 하던 중에 품에 무언가를 꼭 안고 집에서 나와 다시 자신에게 달려온 세이나는 테이블에 알록달록한 물건들을 쏟아냈다.
“이번에는요, 무서운 가족문제에요. 아우~ 무서워.”
“호오~”
과장스럽게 몸을 떨며 세이나 나름의 흥미 유발을 한 후에 조막만한 손으로 설명했다.
이번 문제 역시 비슷한 유형의 문제인 강을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듣는 중 처음 매우 쉬웠던 문제보다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싶어졌다.
세이나의 설명 후에 다시 자신만만하게 문제를 풀었지만, 이상하게 자꾸 잡아먹히자, 아이가 낸 문제라는 것도 잊고 어떻게든 풀겠노라 집중을 했지만 또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아니.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를 잡아 먹... 크으..”
자신도 모르게 성을 내다 이번에야 말로라 다짐하며 집중을 하는 사이 구석에서 큰 소리가 황제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풀었다! 으하하하”
“......”
함께 듣고 있던 수하들이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세이나가 내준 문제를 풀어 보던 중, 한 명이 다 풀자 신이나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다가 눈을 작게 뜨고 노려보는 황제의 째림에 서둘러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살살살 눈치를 살폈다.
수하가 풀었다는 말에 승부욕이 발동 한 것일까? 이제는 오기보다는 분노를 담아서 푸는 것 같았다.
모두가 웅크린 자세로 문제를 풀고 있자, 세이나는 그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뿌듯해졌다.
“재밌나보다.”
골을 내며 다섯 번 만에 패턴 유형을 찾아 푼 황제의 의기양양함에 지켜보던 세이나는 숙제를 다한 아이를 기특하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으로 헤죽 웃었다.
“허허허 다 풀었는데, 뭐 없느냐?”
짓궂은 황제의 물음에 세이나는 선물을 주겠다며 손을 까딱이며 황제가 허리를 숙여 자신의 시야에 맞추게 했다.
조그마한 손으로 바이안과 꼭 닮은 황제의 금발에 손을 얹고 토닥였다.
“참 잘했어요~”
세이나는 자신의 엄마가 늘 칭찬을 할 때 해주는 행동을 하고 매우 만족해서 쌔액 웃더니, 바이안이 부르자 쪼로록 달려가 서로 어울려 놀기 시작했고, 혼자 남겨진 황제는 그저 허허롭게 웃었다.
지고하고 고귀하며 정점에서 모두가 우러러 보고 함부로 하는 이가 하나도 없는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이 없다.
황제가 가만히만 있어도 그에게 풍기는 위엄에 어린 아이라도 어려워하며 쉬이 고개를 들지를 못하건만 어린 세이나는 전혀 영향도 받지 않고 그를 편히 대했다.
작은 손이 닿은 부분이 따뜻했다.
그 몽글거리고 부드러운 기분을 은근히 즐기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눈에 담았다.
오후 즈음에 황제인 자신의 남편을 왕따시킨 것이 조금 미안해져서인지 황후는 그를 불러서 셋이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고 볕을 쬐며 소소한 대화를 이어가는 가운데, 황제는 조금 떨어져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고정 한 상태로 세일리아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일과 세이나에 대해 말을 하며 아이가 똘똘하다 칭찬을 했다.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칭찬을 들으면 싫어하는 부모는 없다고, 세일리아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누구 딸인지 참 야무지다 생각하고 있는 세일리아에게 황제가 그런 문제를 언제 가르쳤냐 물으니 그녀는 가르친 적이 없다했다.
“저희 딸이 조금 특이한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저도 한 번씩 놀랍니다. 어쩔 때는 오래 산 어른인 듯한 지혜를 보이는데, 부끄럽지만 제 자랑이기도 합니다.”
자신과 딸을 내리며 겸손을 가장한 내 딸은 잘났어를 은근한 자랑으로 포장을 예쁘게 하는 세일리아의 말을 경청하며 황제는 탐이 난다는 강렬한 눈으로 세이나를 쫒았다.
그 강렬한 욕심이 떨어져 있는 곳까지 닿았는지, 바이안은 이글거리며 세이나에게 고정시키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의 눈빛에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껴서, 바로 세이나를 꾸왁 안아들고는 눈을 부릅뜨고, 볼을 잔뜩 부풀린 상태로 제 아버지를 경계하며 안 뺏기겠다는 일념으로 슬금슬금 부모님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씩 더 멀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