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에라고 편하게 불러도 될까? 그래도 왔으니까, 풀건 풀어야지.”
그녀의 말에 로이에는 이제는 어찌되어도 상관없게 느껴져서 고개를 저었다.
“후.. 지금 와서 더 하기에는 이젠 제가 바보 같아 질 것 같아서 그만 둘래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주 직을 물려받은 놈이 쉬는 날이나 휴가 때, 한 번도 고개를 들이밀 생각도 하지 않고, 기사니까 오지 않는 것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지만, 편지한통이라도 보내줘야죠. 그러다가 오랫동안 아무 소식도 없다가 작위를 잃어버리고 추방당했다는 소문도 다른 사람들의 입으로 듣지를 않나, 타인들에게 돌 맞는다고 저희 집안 뇌 주름이 쫙 펴지는 것도 아니지만, 복귀를 했으면 했다고 알려는 줘야지. 그것도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걸로 알고, 무사한지 걱정하는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는지, 한참 뒤에 편지가 겨우 왔다 했더니, 나 출세했다. 잘했지? 라니.... 하아~~”
이제는 됐다고 하는 로이에는 그동안 쌓였던 불만들을 속사포처럼 다다다 늘여놓았다.
“다 말했는데?”
로이에라는 여인은 아무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임이 틀림이 없다.
“미안하다.”
론도 자신이 얼마나 대충이었는지는 인정을 하는 부분인지라 조금 전과는 다르게 누그러진 말투로 로이에의 말에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그 뒤로는 화기애애하게 다과를 즐기며 소소한 잡담이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공백의 기사단에 여자는 없는 거야?”
로이에는 자신의 오라버니에게 이상하다며 묻자, 론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주었다.
“없어. 근데 그건 왜?”
론 뿐만 아니라 다들 너무 태연하게 있으니 로이에는 조금 황당했다.
“없는 것이 말이 되?”
“공백의 기사단에 대한 것은 로이에 너도 잘 알지 않냐? 500년 동안 주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옥 같은 훈련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들어왔다고 쳐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이들도 부기지수야. 누가 들어오려고 하겠냐? 들어가려고 해도 보장 받기가 어려운 곳이 이곳이라고 유명한데. 여자라고 다르겠어?”
“그래서인지, 여기사들에게 완전히 인기가 없어.”
모두는 로이에가 왜 저러나 하고 생각을 해보지만 그녀가 무엇을 짚고 넘어 가려는 지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있고 없고가 문젠데.”
끄응하며 신음을 흘리던 로이에는 조그마한 대현자를 힐끔 보면서 그녀도 왜 그러는 거지? 하고만 있기에 다시 그녀의 두 손을 덥썩 잡고 들어올렸다.
“대현자님. 저 미친놈 말고, 저를 넣어주세요.”
“응?”
“제가 대현자님의 기사가 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옆에서 꼭 지켜드릴게요.”
세이나의 크고 예쁜 눈이 깜빡인다.
“로이에!”
그때 론이 처음으로 큰소리로 동생에게 소리쳤다.
이번에는 단순하게 남매간의 다툼이 아니게 될 것이 자명해 보여서 바이안이 론을 손으로 말려서야, 론은 애써 진정하며 입을 떼었다.
“네 스스로 기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 말을 하지 않았나? 어디에도 들어가기 싫다며. 나는 너의 그 생각을 굳이 막지도 않았을 뿐더러, 강요도 하지 않았다. 허니, 단순히 기분적으로 내 뱉는 너의 말은 들어줄 수가 없다.”
지금의 론은 기사가 아닌, 한 가문의 가주로서 그녀를 타박했다.
하지만 로이에는 그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밝혔다.
“난 내 눈으로 내가 지키고 모실 주군을 선택하고 싶었을 뿐이야. 목숨을 걸고 지켜드려야 할 주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면 과연 마음까지 바칠 수 있겠어? 오만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것이 싫었을 뿐이라고.”
로이에의 말은 분명 오만한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곳에 있는 이들 모두는 그녀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하일팀 같은 경우에는 현궁의 주인이 돌아왔다며 돌은년이 자리를 차지했었을 때, 주인의 말도 못할 행태에도 억지로 명령을 따랐고, 그들의 충성심에는 망설임도 생겼다.
단지, 주인이라는 것 하나에 참고 또 참았었던 그들이기에 그녀의 말이 어떤 부분에서는 정론으로 다가왔다.
기사인 자가 감히 주인을 고르고 판단을 한다? 하지만, 억지로 몸을 움직여 따른다 하여도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특히나, 세이나의 직속 호위 기사단이 된 하일팀들은 그것을 다른 기사들보다도 더 크게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다른 이들은 돌은년의 명령에 움직였지만, 그들은 감히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몸과 마음이 가는 세이나를 선택하고 주인으로써 지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에 와서 네가 공백의 기사단에 들어 올 수 있을 것 같아?”
“하긴.. 카시어스가가 어떤 집안인지 알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제 들어오기엔...”
하일도 론의 말에 한 표를 던지자, 세이나는 잘 모르는 부분이라 살풋이 인상을 지었다.
“반. 늦게는 못 들어가는 거야?”
세이나가 설명을 구하자 바이안은 부드러운 말투로 찬찬히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 기사단에 입단하기가 제일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기사견습생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하고. 또, 그 안에서 한 번 크게 걸러져.”
“지옥이 따로 없지.”
처음 자신들이 들어와서 받은 훈련들이 떠오르니 다들 두 번은 싫은 표정이다.
“물론, 후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그만큼 기사로 들어오는 시험은 더 힘들고, 견습생의 기간을 빼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 엄격해. 그 시험 한번 봤다가 죽는 녀석들도 나올 정도야.”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바이안 마저 부정적일까? 세이나는 그들의 그 훈련이나 시험의 강도가 상상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공백의 기사단이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강해지는 것에 목을 매는 것이라는 거다.
현재에도 자신의 할아범에게 팔 다리가 똑 하고 부러지고 떼구르르 굴러가도 다시 해달라고 덤벼들었고, 할아범이 자신에게 그들을 칭찬하는 부분도 비명 한번을 지르지 않더라, 된 녀석들이여 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로이에는 강렬한 눈으로 자신의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내비쳤다.
“카시어스 백작님. 저 역시 카시어스가의 사람입니다. 그깟 시험에 제가 눈 하나 깜짝할 사람이 아닌 것은 누구보다도 백작님이 제일 잘 아실거구요.”
“......”
철없기만 한 동생이라 생각했었던 론은 로이에가 어느새 저리 성장했었는지 오늘에 와서야 와 닿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이라서 위험한 일은 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기에 쉬이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짚고 넘어가야 할 것. 대현자님은 여성입니다. 적어도 한명이라도 지켜드릴 수 있는 무력을 가진 여자가 필요해요.”
로이에는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지를 못하는 이들의 모습에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여자와 남자이기에 오는 차이점은 분명히 있어요. 만약 대현자님이 화장실에 가셨을 시에 습격이 온 다면요? 대현자님이 목욕을 하시러 욕실에 들어가셨을 때, 따라 들어가실 수 있나요? 그곳에서 습격이 있다면요? 눈치를 채더라도 적이 빠를까요? 당신들이 빠를까요?”
여자가 없이 남자들끼리만 부대끼며 뒹굴다 보니 당연한 부분임에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지라 모두 상당히 크게 쇼크를 받아버렸다.
아무리 오랫동안 평화로웠다지만, 자신들은 대현자의 목숨을 노리는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허점을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 오싹하고 소름이 돋아버렸다.
“아! 나도 생각하지 못했네. 그럴 수도 있구나.”
세이나가 손뼉을 짝하고 마주치며 밝게 인정하니 로이에는 자신이 더 들어와야겠다는 결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자리에 일어나 세이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심장에 얹은 후에 그녀의 손아래에 자신의 손을 조심히 놓았다.
“저, 카시어스 로이에. 하늘의 눈과 귀이시며 누구보다도 고귀하신 대현자 세이아나님께 감히 청합니다. 당신의 기사로서 옆에 설 수 있는 영광을 주시기를.”
세이나는 주변을 슬쩍 보니 다들 그녀의 말에 납득한 듯 조용했다.
그리고 그녀의 무위를 인정하고 있기도 했기에 가만히 있기도 했다.
“부디 그대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세이나의 허락에 만족한 듯 로이에는 그녀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후에 로이에는 자신이 한시라도 빨리 돌아 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서둘러 나갔고, 남은 이들은 앉은 그 자리 그대로 우리 심각해요라고 이마에 써 붙였다.
“다들 그게 그렇게 충격적이야?”
“당연하죠. 하~ 기사 실격이다. 우리들...”
론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것보다도 로이에 괜찮을까? 시험 보다가 죽을 수도 있다며.”
내심 로이에가 걱정이 되어서 묻자, 론이 애써 웃어 보인다.
“체술 적인 면은 제가 더 강하지만, 마력의 운용 면에서나, 가지고 있는 능력은 저보다 뛰어납니다. 뭐, 지금이야 그것도 제가 더 위지만요.”
론이 어깨를 으쓱하며 로이에를 칭찬했다.
예전에 세이나가 해준 조언 덕분에 눈에 띄게 강해져있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는 그도 한수 물러나기도 했었다.
“죽기는커녕, 멀쩡하게 걸어 들어와서 별거 아니네? 하면서 웃어댈걸?”
“헤에~”
바이안도 인정하는 말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카시어스가 사람들은 괴물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대목이었다.
“들어오면, 어디로 소속이 되는 지도 중요한데.”
“물론, 우리 팀으로 들어오게 해야지.”
기사들의 인사권한이야, 단장이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 보다 위에 있는 가디언 이라는 둘이 있으니 직속호위 팀에 집어넣는 것은 쉽다.
그리고 유일한 여기사로서 세이나의 바로 옆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자리 잡게 해 주는 것은 단장도 바로 납득 할 것이었다.
방안에 나있는 작은 테라스에서 세이나와 바이안이 나란히 앉아서 모처럼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구구~ 질투 했었져요?”
낮에 있었던 바이안의 귀여운 행동에 그를 슬쩍 놀려댔다.
그러자, 즉각적인 반응으로 입을 살짝 삐죽이는데 그것 역시 너무 귀여웠다.
짓는 표정 없이 입술만 톡, 튀어나와서 꿈틀대는 그 모습을 영구히 보전하고 싶어졌다.
“둘 다 여잔데 질투가 났어?”
“그치만.. 껴안잖아.”
“응? 나도 로이에 한번 끌어안았었잖아.”
번갈아가면서 껴안은 부분을 지적하자 더 투덜댔다.
“세나가 하는 것은 어떤 거든 상관이 없지만, 그 반대는... 나도 참는데.”
말이 뒤로 갈수록 작아지면서 궁시렁 대던 바이안은 갑자기 휙 하고 몸이 끌려가지더니 그대로 세이나의 품에 머리를 박았다.
“뭐야 그게. 킥킥킥 그럼 내가 오빠를 두 배로 더 껴안아 주면 되지요~”
“세 세나!”
세이나의 가슴팍에 코를 묻게 된 바이안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그녀의 체향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 그를 놓아주지도 않은 채로 세이나는 계속 대화했다.
“스토킹은 제일 잘 하면서 왜 이렇게 빈틈이 많나 모르겠네. 그래서 둘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행동으로 허용하는 범위를 맞춘 거야? 손잡는 것까지만?”
“그건..”
아직도 혼미해서인지 말을 제대로 이을 수가 없는 바이안은 다른 의미로 죽을 것 같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머리 위에서 키득거리는 세이나의 웃음소리와 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그제야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니, 그대로 세이나의 허리를 살짝 끌어안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하... 좋다. 지금도 나는 꿈만 꾸는 것 같아.”
지금의 여운을 느끼면서 나직이는 바이안의 말에 세이나는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자세로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심히 그의 머리를 토닥이는 세이나의 얼굴은 미안함으로 구겨져서 슬프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혼자 둬서 미안해. 오빠가 나밖에 없다는 것은 알지만, 또 혼자 두게 할 것 같아서 미안해.’
바이안의 정수리에 작게 입맞춤을 한 세이나는 그의 머리를 제 무릎에 편히 뉘이고 머리칼을 쓸어주며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노래를 부르자, 바이안은 그 품에서 눈을 감고 그대로 몸을 맡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