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나의 고른 숨소리가 일정하게 들릴 때, 바이안은 자신의 팔을 안고 잠들어 있는 세이나의 손을 조심히 풀고 침대에 내려와 이불을 덮어주었다.
누가 업어가도 깨지 않게 잘도 자고 있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그래도 혹시나 깰까봐 뒤꿈치를 들고서 살살 걸어 나온 바이안은 아직 자고 있지 않은 세일리아의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응? 바이안? 왜 잠이 안 오니?”
인기척을 확인한 세일리아는 상냥하게 바이안을 맞이했다.
그런 세일리아의 한결 같음에 조금씩 눈치 보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오늘은 다시 그것이 도진 것인지,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인 채 쉬이 자신의 볼 일을 꺼내기가 어렵다.
머뭇대는 바이안을 재촉하지 않고, 끈기 있게 가만히 기다려주자 작은 입술이 달싹인다.
“왜... ...봐요?”
힘겹게 간신히 꺼낸 말은 목소리가 잠기기라도 했는지,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세일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이안의 앞에 바짝 다가온 뒤에 자세를 낮추어, 바이안의 키 높이에 맞춰 주었다.
바이안은 타이르지도, 재촉하지도 않는 세일리아의 상냥함에 무언가 목을 타고 위로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바짓단을 꽈악 움켜쥐고 고개를 들어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세일리아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췄다.
“왜 안 물어봐요? 내가 누군지 어떤 앤지 왜 안 물어보는데요? 왜 안 쫒아내고 잘해주는 거예요? 우으윽 큽.. 나... 나.. 안 궁금해요?”
무엇이 저리 원통한지 얼굴이 붉게 달아 올라 힘을 준 눈에는 절대로 울지 않겠다는 다짐인양 빨갛게 충혈 되었다.
세일리아는 따지듯 외치는 바이안의 한을 귀담아 들으면서 두 팔을 벌려 바이안을 감싸 안아 왼손으로 등을 토닥이고 오른 손으로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올릴 수 있게 도왔다.
“물론 궁금하지요. 먹는 것은 무엇을 좋아할까, 무슨 색을 좋아할까, 어떤 놀이를 즐기고 어떨 때 잘 웃을까, 오늘은 어떤 꿈을 꾸고 일어났을지, 또 어떤 장난을 궁리하고 있을지 전부 궁금하지요.”
토닥임도 안겨있는 따뜻한 품도 세일리아의 다정한 속삭임들에 참고 있는 무언가가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쩌적하고 부서져버렸다.
“흐어어어어엉~ 으아앙~”
“시간이 지나면 우리 바이안이 이모를 믿고 어떤 것이든 말 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단다. 이렇게 착하고 다정한걸.”
더 쏟아내라고 하는 듯 그녀의 다정함은 바이안에게 이제 참지 않아도 된다고 응원했다.
“흐끅 저는요... 흐윽.. 안 나빠요. 하지 말라고 해서 흐읍.. 안 했..는데 욕심쟁이래요. 나요 나는요. 흐어엉~”
이 많은 것을 이리 작은 몸으로 혼자서 어찌 다 감당하고 있었던지, 바이안의 도와달라는 비명 섞인 울부짖음은 달이 뜨고 지기시작해도 쉽게 멈추지를 못했다.
아기처럼 제 품에 웅크리고 안겨서 잠든 바이안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팅팅 불어있었다.
세일리아는 토닥이는 것을 유지하면서 바이안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있지만 그녀의 얼굴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 심각해있었다.
바이안이 울먹이며 한 말들이 엉망인 것도 있어서 다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간단히 넘길 수는 없는 사안들이 가득했다.
“카이덴.. 태어나고 걷기 시작했을 때 잠깐 봤었던 그 아이가.. 아무리 그래도 땅의 끝에서 밀어 떨어뜨리다니...”
잠든 바이안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모든 것을 다 털어내어 개운한지 입 꼬리가 작게 올라가있다.
자신이 살짝 움직이자, 바로 반응을 한 바이안은 그녀의 품속으로 꼬물꼬물 파고들어 안겼다.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조금 더 줘서 그의 머리를 꼬옥 안고 자신의 머리를 살포시 기댔다.
“우리 바이안은 참 강한 아이였구나. 무서웠을 텐데 용케도 무사히 나한테 오구. 용기 있는 멋진 아이네. 여기서는 원 없이 너의 자신을 다 보여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단다.”
어스름히 해가 뜨려는 조짐이 보이자 세일리아는 바이안을 안아 들고 세이나가 자고 있는 방의 침대에 뉘인 후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펜과 노트를 꺼내어 작은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바이안이 털어 놓았던 말들을 노트에 적어가며 하나씩 정리하고 기록했다.
“첫째가 둘째에게 가지는 시기와 질투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찝찝한 내용들이 있는데, 직접 찾아가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삼자인 어른이 개입되지 않는 이상은 말이 안 되는 것들 투성이야. 이정도의 사안에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니... 너무 의심스럽잖아.”
절로 미간이 좁아지며,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하아... 둘의 문제를 부모에게서 완벽히 차단했다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무슨 목적으로 어째서, 왜 아이들의 사이에 끼어 좀먹고 들어갔을까..”
왼 손은 바쁘게 책상을 두드려 생각의 리듬을 만들었다.
이정도의 문제라면 당장에라도 황제부부에게 알리는 것이 타당하지만 세일리아는 너무 울어 히끅대는 바이안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미루기로 했다.
“혹, 부모님한테 말...”
“안 돼요. 싫어요. 히끅 더는 짐 되기 싫어요. 히끅 저 때문에 아프다고 구기는 얼굴 싫어요. 히꼭 말 히끽 안 해요.”
퉁퉁 부어서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을 들어 필사적으로 말리는 모습에 새끼손가락 걸고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말하지 않겠다 약속을 했었다.
세일리아의 지론에 설령 아이들이라고 해도 약속을 한 것은 지킨다였다.
상처 많은 아이와 약속을 한 뒤에 그 아이를 위한 답시고 부모에게 말을 했다가 들키게 된다면 자신을 믿고 겨우 해가 있는 곳으로 스스로 걸어 나온 아이는 한 번에 무너지는 신뢰감과 배신감에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가 웅크릴 확률이 크다.
아이도 어른도 상관없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을 하는 세일리아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황제부부에게 계속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이 사안은 절대로 그냥 넘겨서는 안될 정도로 심각했으니까.
아이 스스로가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꺼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등을 밀어주는 역할, 그리고 그 용기에 힘을 주고 편이 되어줄 수 있게 아이의 옆에 서서 지지해 주는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을 생각이다.
“카이덴의 상태도 걱정이네. 카이덴의 이상 행동도 직접 봤으면 좋겠지만, 위와 여기는 오간다고 오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후~ 바이안이 나에게 온 것이 천운이구나. 우선은 아이가 본래 가지고 있고 성장했어야할 주체와 성향의 확립이 시급하니, 두 분이 내려오시면 어떻게든 설득해서 못 데려가게 해야겠어. 거기다, 삼자가 어떤 목적으로 이리 한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황궁은 바이안에게 독이야.”
한참을 아이들의 상태 진단과 계획 등을 차례로 정리해나가다 보니 어느덧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에 날을 샌 후유증일까,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하며 풀어도 어깨와 머리가 오늘따라 무거웠다.
세일리아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 놓은 뒤로 바이안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갔다.
자신의 주장도 강해졌고, 사람들의 시선에 조금씩 당당해졌으며,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려했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도 함께 생겼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독특함으로 무장한 세이나에게 푸욱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떨어질 생각도 하지 않고 붙어 다니더니, 어느새 물들었는지 지금은 마을 최고의 장난꾸러기인 알과 쌍벽을 이루는 사고뭉치 개구쟁이로 등극한 것이다.
좌 알, 우 바이안, 그 중심에 떠받들어지는 세이나 정말 최고로 환상적인 문제아팀의 탄생이다.
오늘도 아이들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마을 아이들과 뛰어 놀다가 헤넬아주머니의 특식이다라는 외침에 메뚜기 떼가 지나가면 남아나는 것이 없다는 것처럼 순삭할 기세로 모두들 달려 나갔고 그 사이에 바이안도 함께 뛰었다.
그러다 문득 달리던 발이 느려지며 앞서가는 아이들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여기서는 내 것을 가져도 당연하다고 해. 여기서는 내 옆에 누가 있어도 나쁜 일이 없어. 나는 위에 있는 것보다 여기에 있는 게 좋아.’
“오빠 빨리 가자. 늦으면 없어.”
달려 나가다 바이안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알아챈 세이나가 돌아와 그의 손을 잡고 재촉했다.
이끄는 작은 힘에 몸을 맡기고 멈췄던 걸음을 빨리해서 이미 다들 간식을 하나씩 입에 우겨넣고 있는 친구들을 향해 달렸다.
‘세상을 낳고 돌보시는 하늘의 어머니 라이트리아 여신님. 처음 가지는 제 욕심을 들어주세요. 이 곳을 알게 해준 요정님을 저에게 주세요. 이대로 쭉 세이나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저는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어요.’
“야 네가 늦게 오니까 세이나도 못 먹잖아.”
알은 두 개를 잡아 가까이 온 바이안에게 던지듯 건넸고, 바이안은 바로 잡아 챈 뒤에 하나를 세이나에게 넘겨주고는 개구지게 웃었다.
“잘했군. 알경. 앞으로는 네 개를 준비하게.”
“어쭈?”
짐짓 근엄한 척 놀리니 역시나 알이 바로 덤벼든다.
이제는 일상인지 다들 알과 바이안의 장난식의 투닥임을 볼을 빵빵하게 간식을 물고 흥미진진하게 관전했고, 싸움을 건 당사자인 바이안의 얼굴은 누가 보더라도 행복함이 가득한 표정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해사했다.
작은 언덕의 옆에 자리 잡은 아담한 집 앞에 화려한 일단의 무리들이 서 있었다.
“황제폐하와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세일리아는 황제에 대한 예를 올리면서 그 무리의 중심에 고고히 서있는 두 황제부부를 맞이했다.
“오랜만일세.”
이미 얼굴을 아는 사이인지 그녀를 대함에 어색함이 없다.
“황제폐하, 그리고 황후마마 황자님을 데리러 어려운 발걸음을 하신 줄 아옵니다.”
언제 예를 보였냐며 허리를 꼿꼿이 세워 황제의 눈을 직시했다.
“지금 시간부터 아주 잠시간 그 자리를 놓으시고 한 아이의 부모로서 소인과 대면을 청하옵니다.”
“허락하네.”
세일리아의 전 직업과 명성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황제는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바로 알고 그러하겠다 허락을 했다.
그에 세일리아는 둘을 집 안으로 안내를 했고, 자연히 주변에 시립해 있던 기사들이 따라 들어오려 하자 바로 제지했다.
“황족의 사적인 이야기의 자리입니다. 기사분들은 들어오심을 삼가 주십시오.”
“아니 될 소리를 하는가?”
그 중 일행을 이끄는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가 험악하게 세일리아를 나무라자 들어가려던 황제가 근엄하게 명령했다.
“그대들은 밖에서 대기하라.”
“하오나 폐하.”
황제의 말에도 호위의 임무를 맡은 그들은 명을 거두어 주십사 청했다.
“움직임을 멈추세요.”
가녀리지만 딱딱한 음성이 기사들의 귀에 꽂히자, 누구라 할 것도 없이 현제 서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세일리아의 마력이 담긴 목소리가 귀를 때리자마자 꼼짝도 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눈만 끔뻑일 뿐이다.
“아, 세일리아 화났다...”
황후는 웃고는 있지만 저 웃음은 화가 났을 때의 웃음인 것을 아는지라, 당황하는 기사들을 스윽 외면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무언가 단단히 혼이 날 것임을 예감했다.
세일리아는 자신의 능력을 좋은 쪽이 아닌 이상 타인에게 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하지만 정말 화가 났을 때에는 저렇게 한 번씩 능력을 보이는데, 만약 나쁜 마음을 먹고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면 세일리아를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가만히 기다려 주세요. 오래 안 걸립니다.”
총총 걸어 다시 두 부부를 안으로 안내하고 들어가 문을 닫으니, 밖에 서있는 기사들은 다른 난감함에 쩔쩔맸다.
“풀어는 주시오.”
“대 대장님.. 소변이.. 셀..”
“....참아라.”
이미 들어가 사라진 뒤라서 볼일이라는 것이 끝나고 나왔을 때에야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