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녀들이 깨끗한 물과 천을 들고 분주한 가운데, 황제는 황후가 있을 방문 앞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이제나 저제나 둘이 무사하기를 바랐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방안에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리며 한명의 시녀가 문을 열고 환한 표정으로 황제에게 읍했다.
“경하 드리옵니다. 폐하. 건강한 황자님이십니다.”
“황후는? 소 손가락, 발가락은?”
“모두 다 잘 붙어 계십니다. 물론 황후마마도 건강하시구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이미 한번 느껴본 사랑하는 생명의 탄생일진데 두 번째도 너무 벅차 더는 가만히 있지 못한 황제는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가 누워서 아기를 안고 있는 황후의 환대를 받았다.
“고생했소. 황후.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후후. 폐하. 솔직해지시죠? 저보다 아기가 먼저라고 이마에 쓰여 있습니다.”
“허..허흠. 크험.”
부끄러워져 괜하게 헛기침을 내더니, 이제 막 태어나 고운 천에 둘둘 싸매어 눈을 감고 색색 잠이 든 아기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고놈 쭈글쭈글 한 것이 참 못생겼다.”
“어머? 막 태어났으니 당연하지요.”
“허허허”
“우리 둘째. 바이안~ 아빠가 참 못 됐다. 그치?”
서로 세상이 행복하다는 듯이 웃고 떠들 때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서둘러 달려온 카이덴이 조심히 안으로 들어왔다.
“어마마마, 아바마마.”
쭈뼛대며 가까이 온 카이덴을 두 부부는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주었고, 황제는 카이덴을 안아 들어 자신의 무릎에 앉혀 아들이 편히 볼 수 있게 시선을 맞춰주었다.
“우와~ 이게 아기에요?”
“그럼~ 이제 카이덴은 형이네?”
황후가 꺼낸 형이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지만 주변은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나.. 남자예요?”
“그래. 황자가 앞으로 형으로서 잘 이끌어 주거라.”
앉아있는 카이덴의 머리를 투박한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주는 황제의 온기를 느끼면서도 카이덴은 눈앞의 아기와 황후를 조심히 번갈아가며 보았지만 마음이 좋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셈이 해주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인지, 여기저기 핏자국들이 묻은 천들을 시녀들이 치우는 모습도, 황후의 얼굴도 핼쑥하고 창백했고, 온 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힘든 기색이 보이는 모습이 셈이 했었던 말 그대로였기에 아기를 내려다보는 눈이 고와지질 않았다.
그러다 작은 움직임에 움찔하며 빤히 내려다보자, 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그 손을 입으로 쏘옥 하고 가져가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환하게 폈다.
“우와~ 다 조그매.”
신기해하는 아들이 너무 귀여워 황후는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카이덴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카이덴은 손가락으로 조심히 아기의 볼을 콕 터치하자마자 휙 하고 손을 빼고 너무 작아 부서질 것 같은 아기가 잘 못 된 건 아닌지 조심히 살폈다.
그런 카이덴의 모습을 즐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무르익고 그렇게 모두에게 축복받는 바이안이 탄생했다.
“저기... 셈.”
“예. 황자전하.”
요즘 카이덴은 셈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셈을 부를 때도 힐끔대며 조심했다.
셈은 그런 그의 태도가 변한 것에도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지 그는 늘 평소 했던 대로 무릎을 꿇어 자신이 모시는 황자의 시선에 맞춰주었다.
“그... 있잖아.”
“네.”
셈이 짓는 미소와 분위기가 평소와 같은 것을 확인한 카이덴은 조금은 안심하고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아기라는 거 되게 작아.”
“네.”
“마막~ 꼬물거리는데, 되게 귀여워.”
“네.”
몇 번 말을 꺼내도 반응이 변함이 없어서, 이제는 신이 나서 아기자랑을 했고, 셈은 가만히 다 들어주었다.
“그래서, 셈이 했던 말 있잖아. 그거 아기가 그럴 거라고 생각이 안 드는데..”
“황자님.”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게 불러주는 셈의 목소리이건만 카이덴은 움찔 어깨를 떨며 웃고는 있지만 차가운 셈의 눈과 마주쳤다.
“지금은 당연히 그렇겠지요. 조금만 지나보시면, 하나하나 다 나올 것입니다.”
“그치만..”
“소인이 황자님께 허튼, 말을 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이내 고개를 푸욱 숙이고 우울해 하는 황자의 모습에 만족을 하고 셈은 자리에 일어나 다음 일을 하러 잠시 나갔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알겠습니까. 물론 당신도 어떤 말이 옳은지 알기에는 너무 어리시구요. 후후”
그의 혼자 하는 말은 주변의 듣는 이가 하나 없어 자연히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졌다.
카이덴은 오늘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달음박질이 어느 때보다 가볍고 빨랐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황후궁의 안을 다시 한 번 빠르게 달려 가 방문을 열었지만 방안에 황후는 보이질 않았다.
황후는 집무로 잠시 자리를 비웠기에 그 방안에는 이제 앉을 수 있게 된 바이안만이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바이안을 돌봐야 할 시녀도 아주 잠깐 나간 틈인지라 카이덴과 바이안 단 둘만이 있게 되었다.
카이덴은 바이안을 발견하자마자 잔뜩 찌푸렸지만, 그걸로 끝내고 미련 없이 바로 등을 돌려 나가려 했다가 바이안이 들고 있는 물건이 눈에 박히자, 잔뜩 화가 나 씩씩거리며 바이안의 앞에 섰다.
“아 아우~ 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장난감을 카이덴이 오자 신이나 손을 저으며 꺄륵 웃는 바이안이 못마땅하다며 카이덴은 그 장난감을 뺏어들고 그대로 밀어 넘어뜨렸다.
“이걸 네가 왜 가지고 있어? 이거, 이거 내 장난감이잖아.”
갑자기 사라진 장난감에 멍하게 있다가 그대로 휙 하고 뒤로 발라당 넘어져 제 몸보다 큰 머리가 바닥에 꽁하는 충격에 바이안은 조금씩 꿈틀 하더니 이내 눈에 한가득 물을 채워 빼액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거 내거란 말이야.”
울어대는 바이안에게 한 번 더 성을 낸 카이덴은 그대로 달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엎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간식을 챙겨들고 들어온 셈을 발견한 카이덴이 들고 있던 장난감을 셈의 옆으로 휙 하고 집어 던졌다.
“전하?”
“기분 나빠. 저거 나 이제 필요 없어. 버려줘.”
“아끼시던 장난감 아니세요?”
간식을 한쪽 테이블에 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장난감을 조심히 들어보이자, 카이덴은 불퉁거렸다.
“셈 말이 맞아. 내 장난감인데 제 것 인양, 막 가지고 있는 걸 봤는데, 정말 기분 나빠.. 우씨 내가 제일 아끼는 건데.”
“정말, 버려도 괜찮겠습니까?”
셈은 조심히 카이덴의 안색을 살피며 물어보니, 강하게 필요 없다며 말하고 침대에 다시 엎어져 버려서 셈은 알겠다며 그 장난감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터벅터벅 황자의 방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간 셈은 들고 있는 장난감과 똑같은 장난감을 꺼냈다.
“아이들은 다루기가 참 쉽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일 테니까요. 아기가 남의 것을 탐내 봤자 얼마나 탐내겠습니까. 특히나 장난감이야 쥐여 주면 다 좋다고 하는 것이 아기인데, 그냥 심심해서 똑같은 장난감을 쥐여 줘 봤거늘, 이게 이렇게 되네요.”
장난감 두 개를 대충 들고 황자의 놀이방에서 나와 셈은 소각로에 휙 하고 던져 그대로 불을 지펴 장난감을 태웠다.
황후와 황제가 주는 물건들이야 그렇다고 넘어가도, 한 번씩 자신의 물건이 바이안에게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카이덴은 잔뜩 화가 나 뺏으며 괴롭혔고, 돌아온 뒤에는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그 물건들을 버렸다.
카이덴의 처음 반응이 나쁘지 않기에 몇 번을 반복해주니 의외로 순조롭게 바이안에 대한 불만과 미움이 쌓였다.
“왜 내 물건만 욕심 부리는 건데?”
“그때 소인이 말씀 드렸지요.”
“내가 형이라서?”
“네. 앞으로 점점 성장 할수록 전하 것을 전부 뺏으려 들 겁니다.”
이제는 셈의 말이라면 전부 듣는 카이덴은 애꿎은 침대를 꽈악 움켜쥐었다.
“황후마마께서 심성이 고우셔 함부로 하지 못하시겠지요. 그리고 홀로 상처를 받고 고생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치만..”
“전하. 싹은 미리 잘라야 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자라지 못하게 해를 가리고 눌러야지요.”
언제 옆에 와 있었는지, 셈은 카이덴의 옆에 앉아 그의 머리를 자상하게 쓸어주며 나긋하게 달래 주었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셈의 속삭임이 어느덧 3년이 되었고, 이제는 완연히 자신에게 기울어진 카이덴은 참 착하게도 말을 잘 듣는 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 예뻤다.
읽을 책을 황궁 도서관에서 받아 안고 복도를 걷고 있는 카이덴의 뒤로 조그마한 발소리가 따라왔다.
그 소리가 뭇 귀에 거슬리지만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걷자 그 작은 걸음도 서둘러 따라온다고 토타토타 달리다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지만 다시 벌떡 일어나 쫒아왔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카이덴은 뒤를 돌아 쫒아오는 작은 아이를 차갑게 노려봤다.
“왜 쫒아오는데? 저리안가?”
“효..횽..”
“왜? 또 뭐 뺏어갈려고? 저리가.”
조막만한 손으로 바짓단을 그러쥔 채로 카이덴의 눈치를 보면서 쩔쩔매는 바이안의 모습이 기가 차는지 더 말하기 싫다며 다시 등을 돌려, 가려던 길을 가려했다.
“나...나. 욕심 업져. 가지고 싶은 고 업져....”
“뭐?”
“그..그니까...”
아직 더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는데도 카이덴은 그런 바이안을 놓고 더는 쫒아오지 못하게 달려 그 자리에 벗어났다.
혼자 남겨진 바이안은 고개를 푸욱 숙이고 지금까지 참은 것도 용하게 더는 참지 못한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얼굴 전체를 적시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거도 안 가지게. 나 미어하지마.”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리기라도 했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세상 무너지게 울었다.
“나느녀 꼬박꼬박 씻구. 이제 안 더러워. 흑 흡. 흐어엉 욕심두 업구여. 훌쩍, 얌전히.. 흐끅 있으께여. 머두 히끅. 불행하지 안케 가까이 안가여. 흑 미어만 하지... 흐극 마여. 흐어엉”
자신의 형에게 하고자 했었던 나머지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곳에서 터지듯 울음과 섞여 서럽게 외쳤지만 정작 들어주길 바랐던 사람은 봐주지도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