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사귀냐고.”
잔잔한 음성과는 달리 설이누나의 눈은 마치 밤늦은 강가의 반딧불처럼 환히 빛나고 있었다. 크고 검은 두 눈동자에 담긴 흥미로움이 생기를 가득 머금은 채 천천히 나를 압박해왔다. 흡사 검은 불꽃이 밀려드는 듯 것만 같았다.
“아…… 에이, 무슨.”
놀란 내가 곧바로 부인했음에도 설이누나는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다가와서는,
“뭐 있지? 뭐 있네. 뭔데? 진짜 사귀는 거야?”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었다.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뭔데? 뭔데? 말해봐, 빨리.”
어떻게든 결론이 나기 전까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던 게 불과 이틀 전이었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음에도 모두 다 참고 넘겨왔었다. 차인 거 아니냐고 놀림당하는 게 두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당장의 내가 어떤 조언을 듣고 어떤 답을 찾든지 간에 결국엔 해가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고백했는데 걔가 다음에 만날 때 답해 준다고 했어. 그게 내일인 거고. 근데 사실 답을 해줄지 안 해줄지도 모르는 상태야 ”
그럼에도 설이누나에게 털어놓아버린 건 글쎄…… 무엇 때문이었을까. 혈관을 따라 돈 술기운이 주문한 용기 대신 애먼 감정을 북돋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면 이대로 헤어지기엔 왠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가는 걸음을 붙잡으려 깊숙이 숨겨뒀던 마음 속 이야기를 대뜸 끄집어내기라도 했던 걸까? 어쨌거나 분명한 한 가지는 설이누나의 그 검게 빛나던 두 눈동자 앞에선 그 무엇도 감출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진짜로?”
“……어.”
“내일 대답 들으러 가는 거야?”
“……그런 셈이지.”
“오늘 내내 아무 말도 안하더니…….”
설이누나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흘겼다. 이상하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볼 때보다 압박감이 줄어들어있었다.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 건가 싶었다.
“그랬구나, 그랬어.”
설이누나는 고개를 쳐들고 몇 차례 말없이 가만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다시금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이라고? 고백을 안 받아줘도?”
“……금방 헤어질 수도 있긴 한데, 그냥……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어쩌면 해는 내가 고백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해 대답해주기로 했다는 것조차 까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거나.
“그럼 내일 어떻게 됐는지 알려줘. 밤늦게라도.”
“……잘 되면 그럴게.”
“못 되도 알려줘. 나 궁금할 것 같으니까. 전화해 꼭.”
설이누나는 그 말을 끝으로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설이누나의 가는 뒷모습을 가만 지켜보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쯤 발길을 돌렸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설이누나의 눈이 굉장히 묘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다락방에 숨어든 밤손님처럼, 크고 깊은 눈동자 속에 은밀히 숨겨진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나를 당혹케 하는 한편, 심장을 자극시켜 두근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한참 동안이나 심장이 뛰어 당황했다. 나는 그것이 오늘의 일 때문인지, 아니면 내일의 대한 걱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한참동안이나 잠을 설치다 날이 밝아올 새벽 즈음에서야 간신히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나 지금 대답 안 할래.”
“……왜?”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면서도 ‘헷’ 하고 웃었다. 해는 전혀 진지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 언제?”
“일단 스테이크 먹을래.”
“먹고 나면 얘기해 줄 거야?”
“음…… 아니?”
“……뭐야 그럼. 대답 안 해줄 거야?”
“오늘은 안할래.”
그러곤 냅다 스테이크 가게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부끄러워 그런 건지, 어색한 대화를 빨리 끝내려 그런 건지. 어쩌면 정말로 스테이크가 빨리 먹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멀어져가는 해를 보며 천천히 걷다가도, 결국엔 따라 뛰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다음에 만나면 대답해줄게.”
스테이크를 먹을 때에도, 가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아무 말 없더니 집 앞에 도착해서야 겨우 그러고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우리 금요일 날 이유정교수님 만나야 되잖아.”
“그 이후에.”
“그게 언젠데?”
“내가 연락할게.”
적어도 일주일, 아니 어쩌면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이유정교수와의 약속이 있었던 그 다음날 아침에 곧바로 연락이 왔던 것이다.
-일요일에 뭐해? 나 먹고 싶은 거 생겼어!
설마하니 그새 까먹은 걸까? 아니면 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까. 먹고 싶은 게 생겼다며 들떠 얘기하는데, 결국 아무런 말도 꺼내보지 못한 채 불쑥 약속을 잡고 말았던 것이다.
‘틀림없지 뭐.’
약속장소가 가까워질수록 회의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기대하지마,
내색하지마,
불편해하지마.
나는 줄곧 이 세 마디만을 되뇌었다.
저 멀리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해가 보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눈과 고개를 한시도 가만두지 못하는 평소와 달리, 제자리에 차렷 자세로 가만히 서있는 것이었다. 주먹을 꽉 움켜쥔 채였다. 설마 화가 난 건가 싶어 재빨리 시간을 확인해봤으나 딱히 늦은 것도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괜한 불길함에 멈칫하고 있을 무렵, 때마침 나를 본 해가 내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러곤 인사도 없이 손을 덥석 잡더니, 멈춰서 있던 버스 안으로 나를 황급히 밀어 넣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버스기사가 인사하는 해에게 고개 숙여 답례하곤, 곧장 문을 닫고 버스를 출발시켰다. 해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어디 가는 건데?”
“잠깐만…….”
“어? 왜?”
“말 시키지 말고 있어봐.”
“……?”
자세히 보니 해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한쪽 손이 배위에 다소곳이 올라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아니…… 급한 일도 없는데 그냥 잠깐 들렸다 가면 되지 뭘…….”
“아저씨한테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되냐고 계속 졸랐단 말이야. 말 이제 그만.”
그러곤 안정을 찾으려는 듯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해 보였던지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버스는 한강 다리를 건너 쏜살같이 달렸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미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씻겨주었다. 강물에 반사된 햇살은 별처럼 반짝거렸고, 푸름과 맑음이 공존하는 하늘은 참으로 가을의 그것이었다.
“나도 볼래, 바깥.”
어느새 불쑥 다가온 해가 고개를 틱 내밀고 있었다.
“잔잔한 것들 좀 봐야겠어.”
“좀 괜찮아지긴 한 거야?”
내 물음에 인상을 팍 쓰더니,
“몰라서 물어? 지금 조금이라도 긴장 풀면…… 후우…… 워프, 워프.”
깨알 같은 주문에 피식 웃음이 났다.
“잘 써먹고 있네. 근데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으면 더 자극되겠다. 자리 바꿔줄까?”
“싫어. 안 움직일 거야. 최대한 조심히, 최대한 가볍게. 네가 한 말이잖아.”
전에 한 번은 둘이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배가 당장 아픈데 화장실까지의 거리가 제법 멀다고 가정할 경우, 최대한 빨리 뛸 것인가 아니면 최대한 살살 걸을 것인가. 해는 뛰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그날 저녁에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침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찾아 뛰기 시작한 해가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섰던 것이다. 해는 한참을 심호흡한 뒤 다시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느릿느릿 걸어가던지 마치 마실 나온 백세 할머니라도 된 것만 같았다. 해는 이후 단 한 번의 뜀박질도 못했으며, 볼일을 보고 나온 후엔 엄숙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때도 언급했다시피,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동태적(動態的) 균형이야. 네 상황을 끊임없이 살피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동태가 명태야?”
“……어?”
“황태가 명탠가?”
“……글쎄, 다 같은 거 아닌가?”
그러곤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심한 표정으로 창밖을 흘기더니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아, 회 먹고 싶다.”
나는 그러고 다시 또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는 해를 보며 처음엔 감탄사를 연발했고(배 아프다면서 동시에 회를 탐낸다고?), 다음엔 앞자리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뒤돌아볼 만큼 큰 소리로 웃었으며, 마지막엔 아주 조용히, 주위의 그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해는 역시나 달라진 게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은 행동에, 똑같은 말투였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도, 또 그럼으로써 우리의 사이가 전과는 조금, 혹은 아주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평소와 별 다를 것 없이 해를 대하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있었으나,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그저 해의 평상심에 동화된 것뿐이었다. 그래, 단지 해의 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에 말이다.
“얘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싶으면 일단 옷을 봐. 힘줘서 꾸몄는지 아니면 별 생각 없이 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테니까. 신발도 확인해. 구두인지 운동화인지. 여력이 되면 머리 한 거랑 화장한 것도 살펴보고.”
“걔 원래 화장 안하는데요?”
“그러면 더 구별하기가 쉽지. 아니다 화장은 너무 티 나려나? 그래, 옷! 옷밖에 없다.”
나는 다시 한 번 천천히, 그리고 주의 깊게 해를 살펴보았다. 평소에도 줄곧 봐왔던 차림이었다. 노란 체크무늬 남방에 긴 청바지, 노란 얼룩이 희미하게 묻어 있는 하얀 운동화. 물론 여전히 긴 생머리 그대로였고, 화장은커녕 그 흔한 비비크림 하나 바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선임의 조언은 그가 자신했던 것만큼이나 내게 커다란 확신을 심어주었다. 해는 내게 별 관심이 없다.
역시나 노련함은 무시할 수가 없는지 해는 기어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용변을 잘 참아내었고, 그곳에 가서는 자리를 잡기에 앞서 화장실부터 찾았다. 우리가 그냥 화장실만 잠깐 쓰려고 들린 사람들인 줄 알았는지 종업원이 화장실만 안내해주고는 휙 사라져버렸던 탓에, 나는 별 수 없이 입구에 멍하니 선 채로 가만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아담하면서도 고풍스런 분위기의 음식점이었다. 당장은 가득 찬 손님들 때문에 조금 번잡스럽긴 했지만 그럼에도 곳곳에 비치되어 있는 크고 작은 분재들과 목재가구들, 내 몸 반만 한 액자 속에 걸려있는 서양화들이 부드럽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자연스레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게 되었는데, 구석구석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목각인형들이 하나같이 자길 찾아보라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주인의 솜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인테리어 하나하나에까지 손길이 닿아있는 게 놀라웠다.
마침 두 팀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동시에 두 자리가 비게 되었다. 한 쪽은 창가 옆이었고, 또 한쪽은 예쁜 분재가 놓여있는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창가자리를 선호하긴 했으나 2인 전용석이라 테이블이 좁았고, 또 왠지 해가 분재 옆을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을 치워 달라 말한 뒤, 메뉴판을 받아 살펴보고 있을 즈음 해가 왔다. 비로소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은 얼굴이었다.
“화장실 완전 깨끗하고 좋다?”
“그래서 그렇게 만족스런 얼굴이었군.”
해는 말없이 ‘헷 하고 웃었다.
“메뉴 골랐어?”
“네가 봐둔 거 있을 거 아냐. 먹고 싶은 거 생겼다며.”
“응. 스파게티. 끈적끈적한 거. 너는 피자 골라.” 그러고는 “여기 버섯피자가 맛있대” 하고 덧붙였다.
“그거 먹어 그럼.”
“너 괜찮아?”
어차피 자기 먹고 싶은 걸로 다 골라왔으면서 묻기는. 너스레 떠는 모습이 앙증맞았다.
주문을 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피자가 나왔다. 손님에 비해 일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아 오래 기다려야 할 줄 알았더니 의외였다.
“엄청 빨리 나오네?”
“잘 팔리는 것들이라 미리미리 준비해 뒀나봐.”
확실히 주위의 많은 이들이 같은 것을 먹고 있긴 했다.
나는 눈앞의 피자조각 하나를 집어 조심스레 입안에 넣었다. 버섯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즐겨먹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 버섯피자 자체가 다소 생소한 것이어서 조금 긴가민가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오?…… 우와!”
“맛있어? 맛있어?”
“장난 아닌데? 엄청 맛있다!”
“진짜? 진짜? 나도 먹어볼래!”
한입 베어 물자마자 고소한 풍미가 진득하니 새어나와 후각을 설레게 했고, 도우의 쫀득함과 버섯의 말캉함이 기묘한 조화를 이뤄 식감도 재밌었다. 무엇보다 버섯 위를 수북이 덮고 있는 치즈와 샐러드의 고운 자태가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만족시켜주었다.
해도 나를 따라 한입 슥 베어 물더니,
“와! 맛있어! 좋아, 좋다!”
그야말로 행복 가득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근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자고 한 거야?”
“음…… 추천 받았어.”
“추천?”
“응. 요기 주위로 맛있는 것들 엄청 많이 있대! 다 가보자, 다!”
추천을 받아 왔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해는 먹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새로운 맛을 찾아나서는 데엔 꽤나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맛집도 본인이 가본 적이 없다면 대개 꺼려하곤 했다. 이상하게 먹는 쪽에서만 그랬다.
뒤이어 나온 크림 스파게티 역시 대단히 맛있었던 까닭에, 우린 한동안 말없이 먹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나 교수님한테 연락했어.”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올 때쯤 해가 불쑥 말을 꺼냈다.
“누구?”
“이유정교수님.”
“진짜? 벌써? 결국 했네?”
“응.”
“뭐라고 하셨어?”
“그냥. 나 괜찮은 거냐고, 그날 잘 들어갔냐고.”
“넌 뭐랬는데?”
“……죄송하다고.”
“전화로 대화 한 거야?”
“응.”
머뭇머뭇 말을 꺼내며 점점 울상이 되어갔을 해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따로 또 만나기로 했어.”
“어…… 정말?”
대충 그런 식의 대화가 오고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금방 약속을 잡을 줄은 몰랐다.
“근데 당장은 아니고…… 중간고사 이후에나 시간되신데. 너랑 같이 퀴즈 맞혔던 학생들도 봐야 되고 해서.”
그럼 아직 확실한 약속까진 아니란 소리였다. 그럼 그렇지.
‘오늘은 장난이었지만 사람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유정교수가 지나가며 슬쩍 던졌던 말이 여태 신경이 쓰였기 때문일까, 난 해의 실망어린 얼굴에 살포시 안도했다.
“근데 왜 이렇게 그 교수님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야?”
내 질문에 해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그럼 관심이 안가 넌?”
“아니 뭐…… 물론 특유의 매력이 있긴 하시지만 그렇다고 막 너처럼 쫓아다닐 정도는 아닌데?”
“흥, 그건 네가 보는 눈이 낮아서야.”
그러곤 막 씩씩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본인의 가치를 스스로 하락시키고 있다는 건 알고서 하는 말일까. 내 의미심장한 눈초리가 마음에 걸렸던지 해는 머뭇머뭇 말을 덧붙였다.
“그냥 좀 더 친해져보고 싶어. 대화도 많이 나누고, 같이 놀러 가보기도 하고……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이건 뭐 거의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수준 아닌가?’
해의 얼굴은 어느덧 꿈꾸는 사람의 그것으로 변해있었다. 몽롱하니 흐릿해져가는 눈과 가운데로 쏙 모아진 입술을 보아하니 상상으로나마 함께 나들이라도 떠난 듯싶었다. 이때의 해에겐 어떠한 말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묻고 싶었다.
나는 네게 있어 좀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