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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더럽(The Love)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9.9.3


"나, 다른 사람 같이 좋아해도 돼?"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관계와 사랑
그것의 시작,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하여.

#대학생 #캠퍼스물 #악의꽃 #섹슈얼리티 #조별과제 #폴리아모리

 
4. 가을 하늘이 맑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맘때쯤 지상엔 마땅히 눈 둘 데가 없기 때문이다(1)
작성일 : 19-09-18 01:45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7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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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었어.”

 

  “아냐, 뛰어가면 돼!”

 

  “여기서 거기까지 어떻게 2분 만에 가.”

 

  내 말에 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2분 만에 갈 생각 없는데?”

 

  그러고 헐레벌떡 달려가는 해를 보며 ‘출석을 가나다순으로 부르는 건 정말이지 부당하기 짝이 없는 행태’라 욕하면서도, 결국 나는 해를 따라 저 언덕너머의 교양학관 건물을 향해 죽어라 뛸 수밖에 없었다.

 

  해와 함께 듣는 수업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부터 시작하는 ‘욕망과 섹슈얼리티’라는 교양과목이었다.

 

  물론 성(性) 그 자체에 대해 흥미가 없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성(性)에 관한 것을 이론적으로 학습하고 싶지는 않았다. 성교육을 받을 나이는 이미 옛 저녁에 지났고(대학에서 그런 것을 가르치지도 않겠지만), 내가 성(性)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기심이라는 게 사실 중학생 남자애들이 가진 것과 그리 다를 바 없는 것이었기에, 굳이 ‘성적욕망의 발동기제’ 라든지 ‘성(性)역할의 패러독스’니 하는 고차원적인 성교육(?)이 내겐 그리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나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섹스’니 ‘자위’니 하는 단어를 듣고 말한다는 게 무척이나 거북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런 성(性)적인 것을 터부시하도록 교육되어왔기에 그런지는 몰라도(그것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창피함과 함께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기 때문이었다. 내게 좀 더 그에 관한 급진적인 의식이 생겼다거나, 혹 스스로 바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또 모를까 굳이 그러한 강의를 먼저 찾아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처음 해가 이 강의를 함께 듣는 게 어떠냐고 권유해왔을 때 이것보단 차라리 공통교양인 ‘글쓰기2’나 같이 듣자고 말했던 것이다.

 

  “글쓰기 괜찮지 않아? 어차피 필수라 우리 졸업 전엔 무조건 들어야 하는 거고, 그럴 거면 차라리 시간 있을 때 들어두는 게 낫지 않을까?”

 

  “난 아직 준비 안됐어.”

 

  “뭐가?”

 

  “글 쓸 준비.”

 

  “……아니 이건 그냥 수업이잖아. 그것도 무조건 들어야 하는 거. 글을 무슨 요 시- 땅! 하고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도 싫어. 난 쓰고 싶은 게 없으면 아무것도 안 써. 못 쓰기도 하고.”

 

  무슨 대단한 작가님 납셨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해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해의 표정이 무척이나 단호하기도 했고, 실은 나 역시도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없으면 글은커녕 문장 한줄 제대로 적어내지 못하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이 강의를 들으려는 이유는 또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재미있을 것 같잖아.”

 

  그러고 씩 웃는 표정에 그만 깜빡 넘어가고야 말았던 것이다.

 

  강의실 안엔 100명이 넘는 인원들이 더운 열기를 뿜어내며 앉아 있었다. 무리를 지어 떠들고 있는 이들, 조용히 강의계획서를 펼쳐놓고 있는 이들, 핸드폰에 열중해 있는 이들…… 행동은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다 묘한 기대감에 들떠있는 모습들이었다. 아마 지난 번 오리엔테이션 때 교수가 보여준 행동과 말 때문이리라.

 

 

  *

 

 

  “대개 성(性)을 다루는 과목들이 그러하듯 이 과목 역시도 수강신청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을 텐데…… 학생은 어떻게 들어왔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단상 위를 서성거리던 교수가 느닷없이 앞에 있던 안경 쓴 남학생을 가리키며 물었다.

 

  “죽어라 클릭 했습니다!”

 

  남학생의 대답에 강의실에 있던 많은 이들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그만큼 이 강의를 듣고 싶었던 이유가 뭐예요?”

 

  “어…… 저…… 흥미로울 것 같아서요.”

 

  “뭐가?”

 

  “뭐…… 이것저것……?”

 

  “이것저것 뭐? 섹스?”

 

  “……예!?”

 

  남학생이 당황하며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물론 내가 그런 얘기들을 자주 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강의에서는 조금 자제하려고 해요. 소문 듣고 온 사람들은 아쉽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어. 나, 혼났거든.”

 

  “누구한테요?” 하고 뒷자리의 누군가가 큰소리로 물었다.

 

  “있어. 여기 높으신 분. 막 성을 내길래 무서웠어. 술자리에선 그렇게나 귀여운데 말이지.”

 

  그러고 씩 웃어 보이는데, 놀라울 정도로 짜릿한 미소였다. 그렇게 느낀 게 나만은 아니었던지,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장난 아니다 저 교수님.”

 

  “그러게, 정말.”

 

  해의 말에 답하면서도 내 시선은 줄곧 교수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마흔 초중반 정도로 보였으며, 165cm 정도 되는 키에 늘씬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짧지 않은 긴 웨이브 머리를 하고 있었음에도 왠지 모를 보이쉬한 매력을 풍기는 게, 무척이나 묘한 느낌을 주는 여성이었다.

 

  “강의계획서는 다 읽어 왔어요?”

 

  그녀의 질문에 수강생들이 모두 “네” 하고 말했다. 이렇듯 우렁찬 대답은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것이어서, 나는 이 많은 청중들의 마음에 순식간에 불을 지른 저 대단한 여성을 다시금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거기 적혀 있는 게 이 강의의 계획이고 목표이긴 해요. 우리는 프로이트를 공부할 것이고, 성(性)과 젠더의 차이에 대해서도 다룰 것이고, 어쩌면 사회에 만연한 고착화된 성역할에 대해 탐구해볼 수도 있겠죠.”

 

  거기까지 말한 다음, 그녀는 길게 한 번 숨을 내쉬고는 눈앞의 학생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제법 장난기가 섞인 눈이었다.

 

  “하지만…… 중간 중간 좀 더 색다른 걸 알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조금 더 실생활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그런 것들…… 아, 물론 여러분들이 모두 원하고 동의한다는 가정 하에 말이지만.”

 

  “원합니다!”

 

  “원해요, 교수님!”

 

  교수는 “뭔 줄 알고 원한데?” 하고 말하면서도 입을 막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런 다음, 갑작스레 한쪽 손을 번쩍 들더니 “자,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혹시 말해줄 수 있는 사람?” 하고 수강생들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름다우십니다!”, “예뻐요!”, “매력적이에요” 하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들에 호응하는가 싶더니, 짐짓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지루하고, 평면적이며, 식상하기 짝이 없는, 대단히 천편일률적인 찬사들이네요. 하품 나와, 하품. 보여요? 아- 하암-.”

 

  “……귀여워.”

 

  과장되게 입을 벌리는 교수를 보며 해가 말했다.

 

  “왜, 반했어?”

 

  “어…… 그럴지도 몰라.”

 

  나는 해가 마치 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교수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해가 어느 인물에 대해 이토록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걸 여태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는 평소 여러 많은 것들에 관심을 두는 편이었지만, 기이하게도 ‘사람’에 관해선 인색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사람에겐 웬만해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으며, 여러 차례 본 사람임에도(어느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이나 사장님 같은) 그를 기억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데 이게 또 카페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을 때완 조금 상반되는 모습이라 한 번은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내가?”

 

  본인은 전혀 의식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대충 유야무야 넘어갔던 적이 있는데, 별안간 생각지도 못한 때에 해의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재차 보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 신경 좀 썼단 말이야. 자, 나를 자세히, 그리고 섬세하게 파악하도록 해봐요. 내 머리카락, 안경, 귀걸이, 옷, 구두. 그리고 눈 좋은 사람은 매니큐어에 집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물론 여기서 내 패션 포인트를 찾으라는 건 아니에요. 우린 그에 대해 토론할 건 아니니까.”

 

  갑작스레 강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모두들 말없이 교수를 보는 데에만 열중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떤 식으로 봐야하는지에 대해 힌트를 하나 주자면…… 자, 여학생들은 알 거예요. 오늘 내 머리에 얼마만큼 공이 들어간 것인지를. 화장대 앞에서 1시간을 넘게 머리에만 매달려 있었어. 볼륨도 주고, 결도 살리고. 내가 왜 그랬을까?”

 

  “자…… 잘 보이고 싶어서?”

 

  누군가가 허겁지겁 말을 내뱉었다.

 

  “누구? 내가 자기한테?”

 

  교수는 “흥” 하고 한 차례 코웃음을 치더니,

 

  “내 관심을 받으려면 자기도 노력이 좀 필요하겠는데?”

 

  쏘아붙이는 말에 또 한 번 강의실이 웃음으로 들썩거렸다.

 

  “숱 많은 머리카락은 건강의 징표인 동시에 에로스의 표상이에요. 머리카락이 음모와 연동하는 시각적 매개체로 작동하기 때문이죠. 발터 벤야민이란 독일의 언어철학자는 옷의 페티시즘이 바로 머리카락에서 시작되었다고 봤어요. 잠시만…….”

 

  그러고 말을 멈춘 교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고정한 다음, 손목에 감아뒀던 고무줄로 두어 번 묶었다. 포니테일 스타일이었다.

 

  “서양 미술사를 살펴보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다거나 풀어헤친 여성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대개 여신이거나 마리아 같은 초월적 존재들인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죄다 섹슈얼리티의 화신들이지.”

 

  이어 교수는 학생들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자기는 여신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거야. 자기도, 또 자기도.”

 

  “어…… 죄송합니다.”

 

  교수의 시선을 받고 당황한 남학생이 머뭇머뭇 한 마디 하자 그녀가 곧바로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아니, 나한테 죄송하다 할 게 뭐 있어? 스스로에게 미안해해야지.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면 다 자기 손해인 거야. 안 그래요 여러분?”

 

  “네!”

 

  “맞아요!”

 

  “자, 이제 대충 뭘 하려는 건지 짐작들 가죠? 우리 수업은 욕망과 섹슈얼리티의 관한 것이에요. 상징과 은유를 해석하거나, 대상을 직관적으로 파헤쳐서 그 안에 숨은 성(性)적 욕망을 찾아내는 것이죠. 나는 오늘 총 5가지의 의도를 품고서 차림새를 꾸며봤답니다. 머리카락은 그 중 하나인 것이고. 물론 단순히 풀어헤쳤다고 해서 내가 비너스나 마리아를 표현해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아직 밝히지 않은 것들과 조합을 이룬 것이지. 어때, 찾을 수 있겠어요?”

 

  “네!”

 

  이윽고 교수는 자신을 좀 더 가까이서 보게 해주려는 듯 단상에서 내려와 교실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바람에 군데군데 소란이 일 정도였다.

 

  “어렵다.”

 

  “응, 어려워.”

 

  “혹시나 추정되는 게 있다하더라도 그에 맞는 기본 지식이 없으면 도저히 찾아내지 못하겠는데?”

 

  나 또한 교수가 내 옆을 스쳐지나갈 때 눈에 불을 켜고 그녀를 관찰해봤으나 딱히 의미심장한 뭔가를 발견해내진 못한 상태였다.

 

  “웅…… 근데 실은 나 조금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긴 한데…….”

 

  “아, 정말? 뭔데?”

 

  그러자 해가 다소 자신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교수님 저 뿔테 안경 쓰신 거랑 검정 스타킹 신으신 거…… 일부러 페티시 같은 걸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가장 기본적인 것들로만. 지금 막 포니테일로 머리 묶으신 것도 그렇고. 야동에서 단골로 나오는 소재들이잖아.”

 

  “으음…… 그래?”

 

  나는 그 말을 듣곤 ‘아, 혹시 그쪽으로 잘 아세요?’ 하고 물으려다가 그냥 참기로 했다. 해는 언뜻 보기에도 교수에게 굉장히 몰입해있던 상태라, 내가 당장 어떤 말을 한다 하더라도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향수도 엄청 자극적인 걸로 쓰셨어. 너 옆에 지나가는데 훅 들어오더라. 그런 거 좋아하실 것 같지는 않은데…… 오늘 일부러 뿌리고 나오신 것 같아.”

 

  “그럼 매니큐어는? 저 보라색. 주목해서 보는 게 좋다고 하셨잖아. 어, 이쪽으로 한 번 더 오신다.”

 

  교수가 지나쳐가자마자 해가 말했던 것처럼 향수냄새가 훅하며 코를 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내 코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지, 어쩐지 남자 목욕탕에 비치되어 있는 아저씨 스킨의 향이 언뜻 감도는 듯했다. 해는 교수의 손끝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저건 잘 모르겠어. 그냥 색이 예뻐서 바른 게 아닐까?”

 

  “에이…….”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온갖 곳이 다 은밀하고 자극적으로 보였다. 특히 훤히 드러난 곳보다 조금 숨겨진 부분들, 이를테면 자그마하게 문신이 새겨져 있는 목덜미라던가 귀밑부분, 팔목 같은 곳으로 시선이 더 쏠리곤 했는데, 교수가 이를 빤히 짐작했다는 듯 “여기? 여기 보여 줘요?” 하며 그 부위들을 곧장 내보이는 바람에 학생들은 놀라 부인하거나, 당황하여 손사래 치거나, 둘 모두를 다하거나 했다.

 

  “어때? 이제 좀 내가 특별해 보이나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재차 단상위로 올라간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신 같으십니다!”

 

  교수는 웃으면서 “고마워요”라고 말한 다음,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고백하자면, 사실 그리 큰 의미 없이 입고 나온 거예요. 여느 때랑 같은 차림이지. 아까 지나가다 들었는데 맞아, 나 이 매니큐어 그냥 예뻐서 바른 거야. 보라색 좋아해서. 뭔가 막 숨겨져 있는 줄 알았지?”

 

  그러자 당황한 학생들은 처음엔 뭐라 반응을 보이지 못하다가도, 교수가 활짝 웃어 보인 다음에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아, 물론 머리를 한 시간 동안 만진 건 사실이에요. 고데기가 고장이 났는지 잘 안되더라고. 어때요 여러분, 허탈해요? 사실은 별 의미 없다고 하니까?”

 

  “네!” 하고 학생들 몇몇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의미가 있고 없고는 말이지. 거 봐, 좀 전까지만 해도 눈에 불을 켜고 날 보던 사람들이 지금은 또 시시껄렁한 눈빛으로 돌아가 버렸잖아. 내 말 한마디에 말이야. 그게 그렇게나 중요한가?”

 

  강의실은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교수의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능력은 대단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자기의 환상은 스스로가 만드는 법이에요. 나는 그걸 조금 부추겼을 뿐이죠. 내가 고백하지 않았다면 결국엔 모두들 자기만의 모델을 완성시켜나갔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아마 자신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의 모습이었을 거고. 물론, 나를 매개로 해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강의가 끝나는 날 지금과 같은 옷을 한 번 더 입고 올 거예요. 그땐 날 어떻게 볼까 그대들이?”

 

  잠깐 뜸을 들이던 교수는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업종료를 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 학기 동안 많이 배우고, 많이 느껴보세요.”

 

  교수의 하이힐이 단상을 내려와 강의실 문 앞에 다다를 때까지도 누구하나 선뜻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수고 했습니다’란 말 한 마디, 작은 박수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말과 행동이 그토록 짙은 여운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나 강렬한 존재감이 계속해서 우리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는 문을 열어젖히려다 말고 다시 돌아서서는,

 

  “아참, 깜빡할 뻔 했네! 내 이름은 이유정이에요. 과제는 없고 연락처는 강의계획서에. 그럼 다음 주에 봐요.”

 

  그러곤 훌쩍 강의실을 떠났다. 마치 들어온 적도 없었다는 듯 순식간이었다.

 

  학생들은 이유정교수가 이미 나간 뒤임에도 그제야 “수고했습니다!” 하고 외치며 박수를 쳐댔다. 또한 몇몇 이들은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미동하나 없이 제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어쩐지 그녀가 남긴 흔적을 계속해서 곱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희한한 풍경이었다.

 

  “완전 매력적이야!”

 

  이유정교수가 나간 뒤 해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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