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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더럽(The Love)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9.9.3


"나, 다른 사람 같이 좋아해도 돼?"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관계와 사랑
그것의 시작,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하여.

#대학생 #캠퍼스물 #악의꽃 #섹슈얼리티 #조별과제 #폴리아모리

 
4. 가을 하늘이 맑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맘때쯤 지상엔 마땅히 눈 둘 데가 없기 때문이다(7)
작성일 : 19-10-01 14:55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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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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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걔가 나 찾아왔었어.”

 

  “아…… 언제?”

 

  “어제. 수업 끝나고 나가려는데 강의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 혜리가 알려줬다면서.”

 

  쉽게 상상이 가는 그림이었다. 우물쭈물 말을 걸어오는 남자와 당황해하는 해, 그리고 그 옆에서 웃고 있는 해의 친구. 갑작스레 가슴이 조금 갑갑해졌다.

 

  “뭔가 되게…… 저돌적인 친구네…… 사람은 어떤 것 같아?”

 

  “잠깐밖에 못 봤는데 뭐. 근데 나쁜 애 같지는 않았어.”

 

  하긴 만나자마자 나쁜 놈인 걸 들켜버릴 정도로 멍청한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나는 질문부터가 글러 처먹었다고 생각했다.

 

  “환타 좀 줄까?”

 

  내가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걸 보곤 해가 음료를 내밀며 물었다.

 

  “……아니.”

 

  어디선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불쾌함을 가라앉히기 위해 들이킨 것인데, 청량감이 들기는커녕 거북함만 배가 됐다.

 

  그때였다.

 

  “넌 안 해?”

 

  “뭘?”

 

  “소개팅.”

 

  대뜸 그러고 묻는 것이었다. 해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걸 왜 해.”

 

  말을 내뱉곤 스스로도 놀라 움찔했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짜증을 냈던 것이다. 내 말투는 어떤 둔한 이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뾰족하게 서있었으므로, 해 또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을 닫아버렸다. 기분이 상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 테이블 주위로 날선 긴장감이 맴돌았다.

 

  “다 먹었어요?”

 

  때마침 다가온 사장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앞으로 세 번은 더 오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지금 주변에 돌리고 남은 개업 기념 떡이 있는데 그걸 좀 드릴까?”

 

  나는 괜찮다고 했고, 해는 “그럼 떡 맛만 보여주세요” 하고 말했다.

 

  곧이어 사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주방에서 한 접시 가득 백설기를 내왔다.

 

  “우와, 맛있다!”

 

  “맛있죠? 내가 아는 가게에서 특별히 신경 써 만든 건데 생각보다 많이 남아서…… 학생이 좀 가져갈래요?”

 

  “네! 저야 싸주시면 고맙죠.”

 

  해는 활짝 웃으며 사장에게 대답하곤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였다. 해의 기분이 다시금 좋아진 듯 보였기에 겨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따라 웃자 해 역시 만족한 듯 더욱 활짝 웃었다.

 

  사장이 백설기를 포장하러 들어가자 해가 “완전 대박!” 하고 말하며 어깨춤을 췄다. 진심으로 기쁜 모양이었다.

 

  “아! 수업 가기 싫다.”

 

  “가지마. 나랑 놀자 그냥.”

 

  내가 은근하게 말하자 해는 나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짓더니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어떻게 그래, 이제 2주찬데” 하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진짜 신기하다 너 오늘 휴강한 거. 진도도 완전 어긋날 거 아냐? 가뜩이나 이번 중간고사 빨리 친다고 난리들인데.” “지금 진도가 문제가 아니야…….”

 

  “응? 왜?”

 

  “내가 아까 난감하다고 했잖아? 지금 아예 강의를 취소해야 할지도 몰라. 이건 소문이긴 한데…….”

 

  나는 해에게도 설이누나 때와 마찬가지로 교수의 관한 소문을 간략히 정리해 들려주었다. 해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는 듯 두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끝이야?”

 

  “응. 근데 확실한 건 아니야. 나도 들은 거고, 그걸 말해준 사람도 들은 거고. 어쨌거나 모두가 전해들은 것에 불과하니까.”

 

  “그래도 무단결근 중이라는 건 사실이겠지?”

 

  “그건 그렇겠지. 아마도.”

 

  “네가 잘 아는 교수님이야? 완전 매력남이야?”

 

  해는 어쩐지 신이 난 듯 보였다.

 

  “뭐, 나름 괜찮은 분이긴 한데…… 글쎄, 솔직히 남자로서의 매력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 내가 남자라 그런가. 아, 똑똑하긴 엄청 똑똑해. 공대 교수하시다가 이쪽으로 넘어오신 거거든.”

 

  “우와! 그럼 박사학위가 두 개야? 엄청 지적이신가 보네.”

 

  “근데 뭐 외형적인 건 그냥…… 그냥 그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중년 남성?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닌. 까무잡잡한 피부에 안경 쓰고…… 어떤 느낌인지 알겠지? 아, 그래도 배가 나오거나 하진 않았어. 따로 운동은 하시는 것 같더라고.”

 

  “그런 거야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네가 그 교수님을 괜찮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뭔데?”

 

  “나?”

 

  나는 해의 질문이 조금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그의 강의가 괜찮은 편이라고 인식한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었으니 나의 관점을 통해 그 어린 여학생의 마음을 추리해 보려는 건, 아무래도 꽤나 무리가 있는 추적법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냥 말을 좀 재밌게 해. 제법 설득력도 있고. 가르치는 일 말고 약 같은 걸 한번 팔아 보시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도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뭐랄까…… 자기만의 비전 같은 게 뚜렷한 사람이야. 그런 걸 학생들 앞에서 꺼내 보이는 걸 주저하지도 않고. 뭐, 그런 사람이니 공대에서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었겠지만. 그냥 그 정도?”

 

  해는 무척이나 감명을 받은 듯 두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뭐야…… 매력 있네!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해? 유머감각에, 미래에 대한 비전 뚜렷하고, 결단력 있는데다, 심지어 그걸 실행해내기까지! 그만한 열정을 오롯이 한 사람에게 쏟는다고 생각해봐. 나이고 외모고 눈에 들어오겠어?”

 

  “……그런가?”

 

  해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부분들이 제법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생각보다 외형적인 것에 깊이 매몰되어 있었구나 싶어 잠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즈음 사장이 자그마한 종이봉투 두 개를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맛있게들 먹어요. 많이 넣었어.”

 

  “와아! 사장님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신나!”

 

  “와…… 고맙습니다.”

 

  나는 내 것까지 따로 챙겨준 그 마음에 감동하여 앞으로 다섯 번은 더 와야겠다고 고쳐 생각했다.

 

  “아까 누나하고도 이 얘기 했었어.”

 

  우린 파스타 가게를 나온 뒤 학교 앞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누나? 아, 네가 좋아하는 네 살 연상의 절세미녀?”

 

  해는 그러고 실실 웃으며 놀리듯 말했는데, 이젠 아주 능글맞은 미소가 얼굴에 착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 자기도 몇 번 고백 받은 적 있다고.”

 

  “그랬을 것 같아. 엄청 예쁘잖아.”

 

  해는 별로 놀라워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나한테 진지하게 그게 잘못된 것 같으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지. 나이가 뭐가 상관이 있겠냐. 다만 처자식이 있으니 그게 문제라고.”

 

  “……그랬더니 뭐래?”

 

  “자기도 나랑 똑같이 생각한다고. 근데 그때 딱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혹시 누나한테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유달리 진지해진 거고?”

 

  “흠…… 모르지. 그랬을지도.”

 

  그즈음 머릿속으로 이상야릇한 상상이 찾아들었다. 설이누나가 올백교수와 함께 있는 장면이었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는 한 차례 눈을 마주한 뒤, 곧바로 찐한 키스를 나누었다. 썩 그리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위화감이 들지도 않았다. 왠지 모르게 현실감이 느껴지는 상상이었다.

 

  “근데 아내하고 자식은 왜?”

 

  가만 생각에 잠겨있던 해가 갑작스레 물어왔다. 해는 어느새 차분해진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뭐?”

 

  “그건 왜 문제가 되는 건데?”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그랬잖아. 처자식이 있으니 그게 문제라고. 그건 왜 그런 거냐고.”

 

  솔직히 말해 질문의 의도가 잘 파악되지 않았다.

 

  “아니 뭐, 당연한 거잖아. 아내하고 자식이 있는데 바람을 핀다는 게…… 잘못된 거잖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어? 아니…….”

 

  황당함에 뭐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마치 ‘엄마는 왜 엄마고 아빠는 왜 아빠야?’와 같은 질문을 받은 느낌이었다.

 

  “자기 삶 자기 멋대로 살면 본인이야 좋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게 문제인 거지.”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내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야?”

 

  나는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근데…… 그건 뭐랄까……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수많은 묵시적 합의들이 죄다 생략된 채 나온 질문 같은데? 기본적으로 부부간엔 져야할 의무 내지는 책임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 그런 것들을 깡그리 다 무시하는 건 아무래도 좀 곤란한 처사지. 그럴 거면 차라리 이혼을 하든가.”

 

  “그래도 사회적 결합이니, 약속이니 하는 것보다도 두 사람의 사랑이 먼저 아니야? 그리고 네 말은 그런 이혼 절차를 거쳤다면 별 문제될 것도 없다는 거네. 행위 자체보다는 순서가 더 큰 문제다?”

 

  “에이, 그런 건 아니지. 그냥 그것 자체로도 문제라고 생각해. 아내 입장에선 얼마나 괴롭겠어?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건 둘째치더라도, 모욕을 받았다고까지 생각할 것 아냐. 십 수 년을 함께 했는데 그 배신감이 얼마나 클까. 아마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그럼 그 교수님은 계속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거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그건 또 다른 고통이고 상처 아니야?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해가 느닷없이 교수에게 감정이입한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그 존재를 알게 된 중년의 한 남성을 위해 저토록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까닭을 말이다. 내가 딱 하나 알 수 있었던 건, 해가 나와는 분명하게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그래, 네 말도 맞아. 어찌되었건 사람 감정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냥 보편적인 인식이 그렇다는 거지 뭐.”

 

  나는 굳이 이런 문제로 해와 다툼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대충 정리할 요량으로 말을 마무리했다. 해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더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만 “사랑이란 건 제 뜻대로 안 되니까 사랑인건데 너무 가혹한 거 아냐……” 하고 작게 중얼거렸을 뿐이다.

 

  잠시 뒤, 해가 수업에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데려다 주겠다고 했으나 해는 괜찮다며 혼자 가겠다고 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해의 뒷모습을 보며 어쩌면 오늘 밤 해에게서 연락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는 갑작스레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거나, 혼자선 풀기 힘든 문제에 직면했을 때 종종 내게 전화를 걸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밤 내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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