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얼마만에 이야기를 꺼내보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도 이제 중년이니 수십년전 이야기입니다.
5남매 막내로 태어나 아무 것도 모르고 자라던 저는 35년전쯤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는데요.
처음 시댁에 인사가던 때가 생각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했을때 시아버지 될 사람이 대뜸 저한테
"그럼 제사는? 제사는 안 지낼겨?"
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제가 우물쭈물하자 시아버지는 대놓고 얼굴에 인상늘 팍 쓰며 갑자기 교인들을 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무슨 근본이 어쩌고 저쩌고 부모가 어쩌고.
당황한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마치 무슨 죄인처럼 눈물이 흘렀는데요.
갑자기 누군가 소리를 빽 지르는 겁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시어머니였습니다.
별 말씀고 없고 조용하신 분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아버지한테 대들고 있었습니다.
"하이고 이 양반아 무슨 지금이 조선시댄줄 아는교? 내 지금까지 시집와서 호강도 못하고 고생고생 바가지만 시키더니 이제는 니가 그리 끔찍하게 아끼는 아들래미 며느리까지 내처럼 고생시킬라고? 됐소 이 양반아. 제사는 내가 알아서 하니까 며느리한테는 고마 하소."
평소의 모습이 아닌 시어머니의 모습에 놀란 시아버지는 별 말도 못하고 헛기침만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다가와서 제 손을 꽉 잡았는데요.
그 때 저는 이 집에 시집오겠다고 맘 먹은 거 같습니다.
"아이고 이래 예쁜 아가 우리 홍식이가 좋다고 하니 나는 아무 조건 없다. 그저 둘이서 잘 살면 됐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사는 동안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동안에도 저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시댁 잘 만난것도 네 복이다란 얘길 들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한 번씩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새벽에 가끔씩 전화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참 새벽에 할 소리는 아닌데 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설치다가 얼핏 잠들었는데 안 좋은 꿈을 꿨어. 거 아범 오늘 공사장 나갈때 조심하고 모자 잘 쓰고 댕기라고 해라."
저는 별 생각없이 대꾸하고 남편한테 말해주면 또 남편은 신기하게 말을 잘 듣는 겁니다.
오히려 더 오바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이게 살다보니 시어머니 말이 맞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조심하라고 전화가 오면 꼭 사건사고나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날도 남편이 다니는 공사장에서 철근 빔이 떨어져서 몇 명이 다쳤는데 마침 남편은 자리를 피해서 화를 면하기도 했구요.
그러던 어느 날 추석때 송편을 빗다가 시어머니의 옛날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시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이랑 술 마시러 나가서 자고 들어온다고 연락이 오자 시어머니는 제 앞에서 막걸리 하나를 깠습니다.
몇 잔 술이 돌고 기분이 좋아진 시어머니께서 한 말은 어린 시절 얘기였습니다.
시어머니의 어머니는 무당은 아니었지만 제법 잘 맞히는 용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집안이 엄해 무당은 되지 않았고 시집가서 어찌어찌 살았는데 신병이 심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하였습니다.
처음엔 동네 사람들이나 지인들 대상으로 재미로 봐주다가 조금씩 용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법 업으로 삼았다고 들었습니다.
하도 옛날이다보니 복채 개념보다는 병아리나 강아지, 떡, 과일같은 게 늘 집에 들어왔고 시어머니는 떡은 질리도록 먹어서 아직도 안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 할머니 영향인지는 몰라도 가끔씩 잠을 자다 이상한 꿈을 꾸는데 그게 잘 들어맞는다는 얘기도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동네 애들이랑 잘 놀다 들어온 애가 저녁 무렵부터 열이 나는게 아닙니까?
해열제를 먹이고 재웠는데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겁니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애들 들쳐업고 신랑이랑 같이 병원에 갔는데 그냥 열병이라고만 하지 의사도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링거 한 병을 맞고 열은 떨어지긴 했으나 그 날 저녁에도 열이 나고 애가 시름시름 앓는 겁니다.
그 다음날 다시 병원을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시어머니가 문 앞에 떡 서있는게 아닙니까?
"아범은 애 데리고 병원가고 어멈은 나랑 방에 들어가자."
뭔가 눈치챈 신랑은 군소리없이 애랑 병원에 가고 저도 시어머니랑 함께 집에 들어왔습니다.
"애가 저 뒷산에 애들이랑 놀러간 적 있었니?"
"예 맨날 애들이랑 저기서 노니까요."
"저기 약수터 있고."
"예."
"됐다. 일단 거기 가보자."
저는 시어머니랑 같이 동네 뒷산 약수터에 있는 놀이터로 갔습니다.
시어머니는 그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시장에 가서 돼지고기랑 녹두랑, 생선도 좀 사자."
"예."
저는 처음보는 시어머니의 무서운 눈빛에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집에 오자마자 생선을 굽고 밥을 짓고 돼지고기가 들어간 녹두전을 한 다음 다시 뒷산에 올랐습니다.
놀이터 뒤쪽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자 작은 무덤이 보였습니다.
몇 십년은 아무도 찾지 않은것처럼 완전히 방치되어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거기에 음식을 늘어놓고 슈퍼에서 사온 막걸리 하나를 부어준 시어머니는 제 손을 잡고 내려왔습니다.
그 날 밤 열이 떨어진 애를 재우고 나서 시어머니가 해준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내가 밤에 자는데 수철이가 거기 그 약수터 거기서 노는거야. 그러더니 애들이랑 무슨 장난을 치는지 나뭇가지를 들고 가서 그 무덤위에서 노니까 조그맣고 비쩍 마른 할매가 이 조그만 애한테 덥썩 안겨서 죽일듯이 노려보는 거야. 그러다가 내가 잠에서 깼지."
"..."
"그런데 희한한게 그 노친네가 내 방에까지 들어와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거야. 거 내가 물었지. 이제 고만하고 가시라고. 그런데 이 노친네가 눈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자기가 이생에서 고생만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어서 너무 억울하다고 이 애라도 한 명 데리고 가겠다는 거야. 거 내가 오늘 와서 맛난 음식 해줄테니 그만 가시라고 했는데. 어찌될지."
겁이 난 제가 물었습니다.
"귀신이 안 가면요? 우리 수철이는요?"
시어머니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습니다.
"감히 귀신따위가 내 손주를 건드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잡것들은 얼씬도 못하게 할테니 걱정하지마."
하지만 저는 너무 걱정이 되어 잠을 한숨도 못 잘 정도였습니다.
그 다음날이 되자 수철이는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멀쩡하게 일어나 뛰어노는게 아닙니까?
저는 정말 시어머니 손을 잡고 펑펑 울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표정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저보고 시댁에 가서 옷 좀 챙겨달라는 겁니다.
추워서 못 가겠다고요.
제가 시장에 가서 하나 사드린다고 해도 한사코 거부하며 집에 있는 그 옷을 꼭 가져다 달라는 겁니다.
어차피 왕복 3시간 거리라 저는 아무 의심없이 시댁에 갔다왔습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저는 깜짝 놀라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머리를 풀어헤친 시어머니는 피를 뒤집어 쓴채로 쓰러져 있었고 바닥에 식칼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강도 사건임을 직감한 제가 경찰서에 전화를 하려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제 손을 잡으며 만류하였습니다.
"하지마. 이거 내 피 아니야."
"어머님. 괜찮으세요. 어서 병원으로."
"아니야. 괜찮아. 이거 그 할매가 어찌나 독한지."
시어머니는 저를 집으로 보낸 이유를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할매 귀신이 어찌나 독한지 일부러 애한테서 나간 척 하며 집안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답니다.
입으로는 알아들을수 없는 저주의 말을 중얼거렸는데 대강 뜻은 자기는 고생만 하다 억울하게 죽었는데 너희는 잘 사니까 누구 하나 데려가겠다는 뜻이었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자신의 어머니가 하던 것처럼 귀신을 속여 살아있는 닭속에 들어가게 한 다음에 목을 쳤다는 겁니다.
부엌에 가니 정말 죽은 닭이 하나 있었습니다.
"에미야. 이제 다 괜찮아졌어. 나는 이만 가마. 미안하다 정리를 못해서. 근데 나도 몸이 너무 안 좋구나."
그렇게 시어머니를 배웅하고 1년 뒤 시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루는 날 환하게 웃으며 강을 건너는 시어머니를 꿈에서 보았습니다.
가끔씩 막걸리를 보면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시어머니가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