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군대.
충재가 입대를 했다. 내가 춘천까지 가서 배웅을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입시를 한 번 더 해 보겠다는 녀석의 계획은 군 입대와 함께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충재가 매고 갔던 가방과 핸드폰을 가지고와 충재의 어머니께 가져다 드렸다. 보충대로 사라지는 녀석의 뒷 모습 보다 녀석이 남기고 간 녀석의 물건들이 충재의 부재를 증명하는 듯 했다. 입시를 할 때부터 강사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늘 함께 해온 녀석이었다.
나도 두 달 후면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된다. 나의 청춘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오늘도 하루를 보냈다.
동네에 있는 호프집에서 동네 친구가 술 한 잔 하자며 나를 불러냈다.
“ 여기야. 주민아. 여기.”
수현이 녀석이다. 이 녀석하고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사이다. 고등학교를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이 녀석은 체대 입시를 준비하다가 실패하고 재수 때 법학과로 전향해 지방에 있는 법학과에 입학을 한 녀석이다.
“ 그래. 오랜만이다.”
“ 어. 그래. 학교 가기 전에 한 번 보려고 불렀지.”
“ 주문하시겠어요?”
호프집 알바가 물었다.
“ 치킨하고 호프 500 두 잔이요.”
수현이가 주문했다. 이집은 치킨과 맥주가 진리다. 작년에 처음 와보고 치킨 맛이 좋아 가족들이나 동네 친구들하고 종종 오는 곳이다.
“ 법학과는 다닐 만 해?”
“ 한문이 많아서 힘들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 좀 열심히 해 둘걸.”
중, 고등학교 시절에 체대를 간다고 운동만 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 공부는 결국 체력 아니겠냐?”
“ 그치. 체력하면 또 나지.”
수현이는 권투 프로자격에 태권도, 합기도, 격투기까지 합이 공인 7단이다. 경호학과 진학을 위해 열심히 운동한 녀석인데 그때 길러진 체력으로 이젠 공부를 해야 한다.
“ 저기. 혹시 양명고등학교 나오지 않았어요?”
호프집 알바가 대화에 끼어 들었다. 머리를 길러 언뜻 보면 여자 같이 보였던 알바는 자신이 양명고등학교를 나왔고 우리랑 동창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문과여서 많이 봤다고 하며 인사를 하는데 나는 아무리봐도 처음 보는 녀석 같았다. 그 정도로 학교생활을 조용히 했다는 녀석과 우리는 갑자기 친해지게 됐다. 맥주를 좋아해서 이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게 됐다는 녀석은 호탕한 성격에 기타를 잘 치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정말 잘 모르는 녀석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동창들 이름을 대는 것을 보니 같은 학교를 다닌 것이 분명했다.
“ 알바 몇 시에 끝나?”
“ 10시에 끝나.”
“ 우리가 최대한 천천히 먹고 있을게. 알바 끝나면 같이 한 잔 하자.”
“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따가 같이 한 잔 하자.”
그렇게 약속을 하고 녀석을 돌려 세웠다. 동창인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녀석이 음악을 한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이렇게 내 주변에 음악 하는 인간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 그나저나 주민아. 입선 한 거 축하한다.”
수현이 녀석은 축하를 하는 것이 어색한지 웃음소리가 어색했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축하해주는 일이 우리 사이에서는 늘 어색했다. 내가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을 했을 때 수현이는 대학에 떨어져 실의에 빠져있었던 터라 녀석 앞에서 좋은 티도 못 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두 달이나 지나고 나서야 축하를 건넸던 녀석이었다.
“ 그래. 고맙다.”
“ 근데. 주민아. 상도 상이지만 그림을 너무 잘 그린 거 같더라. 화가 친구 하나 생겼네.”
이런 칭찬도 늘 어색하다. 더군다나 이 녀석이 하는 칭찬은 더 적응이 안 된다.
“ 그래. 고생 좀 했지. 그거 완성하느라.”
“ 이제 너도 군대 갈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 너는 언제 가려고 하냐?”
“ 나는 2학년 1학기 마치고 해병대 갈라고. 머리 잘 돌아갈 때 공부 좀 더 해야지.”
이 녀석 입에서 공부 얘기가 나오는 것이 아직 적응은 안 되지만 그래도 법대를 가긴 갔나보다 싶었다. 제법 유식해 보이는 언사와 학교 다니면서 가치관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던 녀석이었다.
“ 오래 기다렸지? 그래도 사장님이 너희들 기다린다고 하니까 30분 일찍 끝내 주셨다.”
남원이가 어느 덧 일을 마치고 오백 한 잔을 들고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왔다.
“ 어떻게 3년을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처음 보는 거 같을까?”
“ 내가 지금 머리를 길러서 더 그런 거 아닐까?”
“ 3 학년 때 몇 반이었는데.”
“ 나 12반이었는데.”
“ 12반이면 지운이 반이었는데.”
“ 그래. 내가 지운이 바로 뒤에 앉아 있었는데.”
지운이를 아는 것 보니까 우리 학교 놈이 맞긴 맞다. 지운이는 우리학교 전교 1등이었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어서 농구를 하며 좀 친하게 지냈던 녀석이었다.
“ 맞네. 우리학교. 반갑다. 친구야.”
수현이가 악수를 건넨다.
“ 군대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친구 하나 생겼네.”
“ 어. 주민이 군대 언제 가는데?”
“ 나 10월에 가.”
“ 난 12월에 가는데.”
“ 그래. 너도 얼마 안 남았구나.”
남원이 녀석도 음악을 하느라 입대가 늦어 졌다고 했다.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하고 기획사 찾아다니며 오디션보고 앨범 낸다고 했다가 무산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단다.
서로에 대하여 전혀 몰랐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 야. 문 닫을 시간이다.”
시간은 12가 넘어 있었다. 다들 걸어서 집에 갈 정도의 거리에 살았기 때문에 귀가가 걱정 되는 것은 아니었다.
“ 나가자. 여기는 내가 계산 할게.”
“ 아니야. 친구들 생긴 기념으로 내가 직원 디시 받아서 낼게.”
“ 그럼. 2차는 내가 사지.”
우리가 떠드는 사이 밤은 깊어 있었다. 남원이 집을 물어보니 충훈부에 산다고 했다. 그럼 남원이네가 제일 머니까 석수시장에서 한 잔 더 하고 헤어지면 되겠다 싶었다.
“ 석수시장 곱창 집으로 가자. 지금 이 근방에서 술 마실 곳은 거기 밖에 없을 거야.”
“ 오늘 한 잔 하면 수현이랑도 군대 가기 전에 마지막이겠다. 너 내일 강릉 내려간다고 했지?”
“ 그렇겠지. 아마도 학기 중 이니까 올라 오기가 쉽진 않을 거야.”
“ 잘 됐네. 가자. 어딘지 나도 구경 좀 하게.”
군대 갈 날을 받아놓은 우리들은 저 마다의 시간을 자신만의 속도로 보내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다.
먼저 군대를 간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306 보충대로 영장이 나왔다. 입대 하는 날은 작은누나와 홍선이가 나를 배웅해 주었다. 나도 친구들 배웅을 두 번이나 갔었는데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면 신병 교육대의 기억일 것이다.
교육대의 프로그램은 역시 빡샜다. 작은 실수도 조교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틈만 나면 시키는 얼차려는 몸에 있는 지방을 가만 두지 않았다.
각개전투와 사격 그리고 수류탄 투척, 유격 훈련을 거치는 기간 동안 체중은 15 킬로나 빠져 있었다. 6주차의 훈련을 마친 나는 완전히 건강한 몸이 되어있었다.
입대하기 전에 때려 마신 술 때문에 나는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나와 입대한 3000 여 명 중에 2명이 혈액 이상 판정이 나왔는데 그중에 하나가 나였다. 혈액 이상의 원인은 급성 지방간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의무관이 나는 따로 불렀다.
"너 집으로 돌아갈래? 아니면 그냥 머물래?"
군의관의 질문에 답해야 했다. 군의관은 짧은 기간에 많은 술을 마셔서 그런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혈액 이상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 가기는 너무 싫었다. 다시 입대하기까지의 지난한 시간이 지옥 같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군대에 머물기로 마음 먹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잘 먹고 잘 자니 몸은 저절로 건강해 졌다.
부대 배치가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사단에서 교육장교가 우리 교육대로 방문을 했었다. 그가 나를 불러내서 면담을 하는 일이 생겼다. 의아한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단 교육장교는 경기대학교 선배님 이었다. 동문이라 사단에 계원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었는데 내가 컴퓨터를 전혀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교육 장교님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단으로 복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