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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50화. 다시 안양으로.
작성일 : 20-09-29 15:36     조회 : 285     추천 : 1     분량 : 1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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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다시 안양으로.

 

  전시는 나름 성황리에 끝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갤러리 측은 이번에 전시한 내 작품들을 오는 손님들에게 소개를 시켜준다며 키핑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받기로 했던 빈 왁구만 들고 오게 됐다.

  어김없이 이삿날은 왔다. 이번 이사는 영규와 은식이가 이삿짐 옮기는 일을 도와 주기로 했다. 매번 화실이사를 할 때 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물류에서 같이 일하는 녀석들이 손을 걷어 부친 것이었다. 영길이도 이사를 도와주고 싶어 했는데 강원도에 제사를 지내러 가야한다며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녀석은 집안에서 종손이라 매번 제사에 성실하게 참석을 한다. 제사를 모시는데 키 포인트니 당연한 일일게다.

  일주일 전부터 주현이는 그 누구보다 분주했다. 포장이사가 아니다 보니 책이며 그림이며 모든 것들을 주현이와 내가 한 손에 들기 좋은 정도로 끈으로 매는 일을 틈틈이 해오고 있었다. 주현이는 평소에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편이 아니다. 일을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사 전에는 그 누구보다 분주하다.

  강남 작업실을 얻으면서 소파니 책상 같은 것들이 생겨서 이번 이사는 1톤 트럭 한 대로는 부족했다. 그간 그려 놓은 수 많은 그림들도 차를 한 대 더 불러야 하는 이유가 됐다.

  이번에 이사를 하려고 잡은 날은 이사하기 좋은 날씨였다. 역시 전에 이사를 할 때도 느낀 점이지만 1층으로 짐을 뺄 수 있는 구조여서 역시 이사하기에 수월했다.

 

  일을 부리는 사람은 불러서 일손을 보태는 사람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덜 미안하기 때문이다. 몇 년째 일 년에 한 번 이상 이사를 하다 보니 모아 논 돈을 이사 때마다 다 탕진하는 것 말고는 좋은 경험이었다. 잦은 이사도 이사지만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역시 인생의 묘미이다.

  이삿짐을 다 빼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매번 1층과 연결된 문을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봐왔었던 옆 건물에 있는 생선구이 집이 있었는데 언제나 보면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것이 맛 집 임이 분명해 보였다.

  ‘ 나도 언젠가는 저기서 먹어 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날이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 형. 점심을 먹고 움직이는 것이 맞을 거 같은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짐을 다 싣고 기사님이 그물망 같은 것을 씌우는 것을 다 도와주고 담배를 뽑아 물며 나에게 다가오는 은식이가 말했다.

  “ 그러게. 먹고 움직여야지. 어디가 좋을까?”

  우리 작업실 옆 건물에는 그 생선구이 집을 포함해서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 저기 생선구이 집이 어때요? 아까부터 보니까 점심시간도 아닌데 손님들이 많던데. 저런대가 맛있어.”

  끼우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영규가 담배를 피우는 우리 쪽으로 합류했다.

  “ 그럴까? 내가 기사님들에게 물어볼게.”

  하염없이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며 차 옆에서 끈 정리를 하는 기사님에게 다가갔다. 헬스를 15년 동안 해 오신 기사님은 딱 봐도 다부진 체격이시다.

  “ 기사님. 점심 식사 하시고 가는 것이 낫겠죠?”

  땀을 연신 닦으시며 웃어보이시는데 기사님의 웃음은 언제 봐도 해맑다.

  “ 선생님이 먹고 가자고 하시면 먹고 가야지요.”

  동료 기사님께 눈짓으로 몸짓으로 식사를 하고 가자고 전달을 하신다.

  “ 저기 동생들이 생선구이 집에서 먹고 가자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간판을 가만히 보니 선생 구이만 있는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갈치조림이며 생태찌개까지 갖가지 생선 요리가 총망라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나는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선을 꺼리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질을 잘 하지 못해 생선 가시를 잘 발라 먹지 못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고등학교 때 갈치 가시가 목에 걸려 일주일 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어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기도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에 가면 될 일이었는데 나는 미련하게도 맨 김에 밥을 싸서 먹는 방법으로 결국 일주일에 걸친 시도 끝에 가시를 내려 보낸 기억이 생선 먹기를 꺼리게 만들었다.

  “ 저희는 아무거나 좋습니다. 가까우니까 생선 집으로 가시죠.”

  그렇게 나와 일행들은 생선구이 집으로 향했다. 기사님들은 생태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셨고 동생들과 우리는 갈치조림으로 메뉴를 정했다.

  ‘하필 갈치구나.’

  이상하게 구운 생선보다 물에 빠진 생선이 더 가시를 골라내는 일이 나는 더 어려웠다. 하지만 일을 도와주러온 동생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먹이기 위해 나 하나쯤 희생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갈치조림은 생각보다 비리지 않고 맛이 좋았다. 물론, 이제 생선가시는 예전의 젓가락질이 아니기 때문에 발라 먹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남아 갈치를 먹을 때만 시간이 유독 오래 걸린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목구멍으로 빠른 속도로 넘기는 나도 모르는 습관 때문에 최대한 눈에 보이는 가시는 다 발라내야 한다. 안 그러면 또 예전과 같은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언제나 나를 긴장 시켰다.

  “ 주민이 형 생선 잘 못 먹네.”

  국물이 맛있다며 밥에 국물을 떠 넣어서 한 공기를 개 눈 감추듯 먹어치운 영규 녀석이 내가 먹는 것을 유심히 본 모양이다.

  “ 하하. 예전에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적이 있어서 내가 좀 느려.”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젓가락질을 하는 나는 겨면 적게 웃어 보였다.

  “ 주민이 생선 먹을 때 원래 내가 살 발라줘.”

  무가 맛있다며 갈치조림 보다 무를 더 많이 먹는 주현이도 내 젓가락질을 계속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금 창피 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 고등어 조림으로 시킬걸 그랬나 봐요.”

  두 공기 째 비우고 있던 은식이 녀석도 말을 보탠다. 은식이 녀석은 원래부터 생선 킬러다. 예전 경륜장에서 일할 때도 녀석이 회를 너무 좋아해서 언제나 회식 날이면 횟집을 가곤 했었다.

  “ 하하. 나 신경 쓰지 말고 먹어. 난 내 페이스대로 먹어야 탈이 안나.”

  진심이었다. 나는 밥은 한 공기면 족하고 최대한 가시를 먹지 않는 것에 매진해야 한다.

  마치 시험과 같았던 식사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예상대로 생선 집 메뉴는 대부분 맛이 좋았다. 기사님들도 드시는 내내 엄지를 척하고 내시며 식사를 마치셨다.

  “ 비린 음식 먹었으니까 커피는 제가 대접 하겠습니다.”

  이에 뭔가 끼셨는지 기사님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잰걸음으로 바로 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향하셨다.

  언제나 기사님은 그림을 옮기는 날이면 캔 커피를 사 오셨다. 멘트 역시 늘 비슷하시다.

  정신을 집중해서 식사를 해서 그런지 나만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행히 가시를 먹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스러웠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그래도 잘 해냈다.

  “ 기사님 저는 냉 커피로 부탁드립니다!”

  멀어지는 기사님의 뒤통수에 대고 나는 소리 쳤다. 손을 흔들면서 가시는 게 내 목소리를 들으신 모양이다.

  커피를 시원하게 한 캔 마시고 안양으로 출발한다.

  ‘다시 안양 생활의 시작이구나.’

  안양 시내 한 복판에 작업실이 생긴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이삿짐을 부리는 일은 사다리차를 써서 생각보다 금방 끝이 났다. 짐 정리를 대충 마치고 고생한 녀석들을 데리고 시내에 나와 시원한 맥주를 사주었다. 피곤했는지 두 녀석 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작업실로 돌아와서 짐을 마저 정리하고 사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책장과 책들 그리고 침대를 이 안에 넣었다. 방처럼 쓰기 위해 방처럼 꾸몄더니 영락없는 그냥 방이 되었다. 난방이 안되서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어떻게든 전에 작업실 같이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과 이제는 서울로 먼 길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했다. 이제 맘 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우리도 안양으로 이사를 했는데 또 이사를 한 집이 있었다. 그 집은 바로 큰 누나 집이였다. 새로 지은 아파트를 분양을 받았는데 매형이 다시 본사로 발령을 받게 되면서 그 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전세를 내주었던 집이었는데 새집을 살아보지도 않고 전세를 내주어 속이 상하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다시 본사로 발령이 나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건설사가 망하는 바람에 조합원들끼리 다시 건설사를 선정하고 다시 공사를 하는 지난한 일을 겪은 집이었다. 큰 누나 내외는 이사를 이 집으로 한다는 것을 참 좋아했다. 조카 녀석이 두 돌이 지나기 전에 다시 안양으로 온 것도 내심 좋았다. 녀석이 커가는 모습을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큰 누나는 미용을 계속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부산에 있을 때는 큰 매형의 누나. 즉 조카에게는 고모에게 육아를 맡겨야 했다. 수고조로 50만원을 준다고 했었다.

 누나가 안양으로 오게 되면서 조카를 보는 사람은 아버지로 낙점이 된 상태였다. 이제는 나이가 많으셔서 건설현장에서 하는 목수 일을 그만 두게 될 즈음이어서 아버지도 꽤나 오랜 시간 고민한 것으로 안다.

  엄마는 그간 개인에게 빌린 돈을 거의 다 갚았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식당일을 해 오신 엄마는 무릎부터 다리가 휘어지더니 이제는 걷는 것이 문제가 될 정도로 몸이 많이 망가져 있었다. 보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게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가 없는 상황의 못난 아들은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이번 국전에서 나는 또 입선을 했다. 영길이는 작품 준비만 한창이었는데 하늘이 그 노력을 가상하게 여겼는지 특선을 받게 되었다.

  처음 낸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을 받는 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사위원을 알고 있지 않는 이상으로는 특선 이상의 상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보면 된다. 다들 자기 식구들에게 상을 나누어주는 공모전의 특징을 알면서도 입선으로라도 받으려고 내는 것인데 심사위원 중에 누군가가 영길의 작품에 특이성과 노력에 큰 점수를 준 것 같아 보였다. 아무튼 영길이 개인에게도 선생님 화실에도 이번 일은 큰 경사였다. 한 화실에 대한민국미술대전에 특선을 받은 작가가 둘이나 되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작년 국전에 특선을 받았었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 영길이가 오늘 크게 한 턱 내야지. 암. 주민이도 입선했더라. 축하해.”

  화실 선생님이었다. 침을 막 튀기며 신나하시는 화실 선생님이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전화를 걸어 오시자마자 한 말이었다.

  선생님은 기분이 진짜 좋아 보였다. 내가 거의 10년 전에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입선을 했을 때처럼 말이다. 갑자기 그때 기억이 났다. 지금 현재 영길의 기분은 세상이 다 내 것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 아마 그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영길이도 이번 작품을 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었는데 상까지 받게 되었으니 아마도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나도 이제 어엿한 화가라는 자신감. 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우지도 못해서 내세우지 못한 나는 화가라는 아주 짧은 말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 편하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 영길이한테 전화 해봤어요?”

  당사자가 살 마음이 있어서 사는 것이지 우리끼리 아무리 이야기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 당연히 해봤지. 지금 씻고 나온다고 하더라. 유 박사도 슬슬 넘어와. 주현이랑.”

  목소리에 아주 신이 나셨다. 제자들이 승승장구하니 신이 나실 만도 하시겠다.

  선생님은 얼마 전 부터 장애인 미술 협회 일을 보시는 경우가 잦아 지셨다. 나름 협회에서 각별한 대우도 받고 계셨다. 장애인 미술대전에서 대상도 받으신 대다가 선생님 같이 공모전이 많은 작가도 드물어서 인 것으로 보였다.

  밖으로 내세우기도 좋은 것이 몸을 완전히 못 쓰는 작가들은 대내 활동을 하는 일이 제한 적일 수밖에 없는데 선생님은 장애수준이 경미해 외형이 일반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서 요즘 들어 선생님을 부쩍 찾는 눈치였다.

  “ 그럼 슬슬 넘어갑니다.”

  새로 이사한 작업실은 선생님 화실과 정말 거리가 가까웠다. 걸어서 5분 거리라고 하면 아마도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이사를 하고 나서 선생님 화실과의 교류가 잦아지게 되었다. 오늘 같은 경우도 그것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류를 시작한 은식이까지 선생님 화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된 것이다.

 영길이도 은식이도 우리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고 형한테 배우고 싶다고 온다는 녀석들을 나는 선생님 화실로 돌려 보냈다. 내가 지나가다가 들러서 작품에 대해서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만 녀석들을 우리 작업실로 들일 생각은 1도 없었다. 선생님께 화실 비를 내고 다니라는 의미도 있었고 주현이와 둘이 쓰기에도 좁은 장소다 보니 녀석들이 아무리 부탁을 해도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갈비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 물론, 오늘 같은 날 소주도 빠질 수 없다. 오늘 같이 화실 식구들과 회식을 하는 경우는 원래는 잦은 일이지만 밖에서 먹는 경우는 오늘 같이 크고 작은 경사가 있는 경우 일 때 만 있는 일이다. 1년에 많게는 대 여섯 개 정도 공모전을 내고 있다 보니 축하를 할 일도 위로를 할 일도 그 만큼의 숫자만큼 생긴다.

  선생님 화실에서 제법 연차가 된 사람들도 있다. 공모전도 다수 입상을 하고 나 처럼 독립을 해서 나가서 본인이 제자를 양성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 영길아. 진짜 축하한다. 발표보고 너무 깜짝 놀랐잖아. 사고 한 번 크게 쳤다.”

  고기가 다 구워졌을 무렵, 선생님께서 말을 하셨다.

  “ 우리 화실에서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을 받은 작가가 또 배출이 됐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축하를 하는 마음으로 건배를 제안합니다. 위하여!”

  점잖은 톤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선생님도 참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화실에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정옥이 누나와 영길이 그리고 나와 주현이 선생님이 오늘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매일 같이 일상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제자리 걸음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성장을 하는 서로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이다.

  “ 위하여!”

  “ 브라보. 정말 잘했다. 영길아.”

  축하의 건배를 하고 소주를 한 잔 들이킨다.

  예전에 군대를 제대한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세종이가 이런 저런 공모전에서 상을 탈 때마다 나는 배가 아파서 제대로 된 축하 한 번 해주지 못한 적이 있었다. 나만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것이 부끄럽고 내 자신에게 화가 났으며 그 분위기 또한 너무도 싫었다. 당시의 정신 상태로는 나는 낙방을 해서 속이 상한데 누군가에게 그 자신의 노고가 가져다주는 행복과 성취에 박수를 쳐줄 정도로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나의 성공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정도의 아량과 타인의 성공에 진심어린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성숙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 쑥스럽네요. 제가 잘해서라기 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축해해 주셔서 정말 고맙네요.”

  지나치게 겸손한 대답을 하는 녀석은 원래 어법이 그렇다.

  “ 오늘은 코가 비뚤어 질 때까지 마시는 거다. 영길이 오늘은 빼지 마.”

  작품을 한다는 핑계로 어지간한 술자리는 피하던 녀석에게 선생님이 엄포를 놓으셨다. 엄포를 놓으시나 마나 영길이 녀석은 술을 잘 마시는 편도 아니고 평소에 술을 즐겨 마시는 녀석 또한 아니다.

  “ 끝까지 마셔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만화를 오랜 시간 동안 한 녀석이 공모전도 그것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을 받았으니 영길이 녀석도 정말 기쁠 텐데 그 마음을 많이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 정옥이하고 주현이는 떨어졌지만 심기일전해서 다음 번 공모전을 기대해 보자. 선생님 봐봐.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데. 실수와 실패를 해봐야 성공을 할 수 있는 거라고.”

  패자의 마음도 어루만져 주신다. 그렇다. 작은 성공보다 작은 실수와 실패들이 쌓여서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비로소 성공을 하게 만들어 주는 디딤돌이 된다.

  마신 술이 각 2 병 정도 되었을라나? 여성분들은 두 분 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남자들이 마신 술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안주도 다 되어가고 더 시켜 먹자니 그렇고 이제 2차를 갈 때가 되었나 싶어질 즈음.

  “ 여기서 그만 먹고 일어나자.”

  연신 움직이던 젓가락을 테이블위에 내려 놓았다. 술도 적당히 올랐으니 이제 입가심을 하러 가야겠다.

  정옥이 누나는 남편 밥을 차려줘야 한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주현이도 그림을 마저 그리겠다며 남자들끼리 술 한 잔 더하고 들어오라며 작업실로 향했다. 우리는 화실 앞에 있는 작은 호프집으로 향했다. 화실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가 보면 꼭 한 번씩 들러서 한 잔을 하게 되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사장님이 호프를 내어 주시는 곳이다. 그간 선생님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가 시사되는 지점이다. 오늘은 뭐라도 시켜서 한 잔 마셔야겠다.

 

  “ 영길아. 너도 네오룩에 들어가서 전시 작가 공모 같은 거 좀 해봐.”

  호프를 시원하게 한 목음 쭉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축하를 해주는 것은 축하를 해주는 것이고 녀석이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조언도 해줘야 한다.

  “ 네오룩이요? 그게 뭔데요?”

  미대를 나오지 않는 녀석은 아직 네오룩을 알지 못했다. 네오룩은 미술 전문 커뮤니티인데 전시 홍보부터 구인 구직까지 미술인들의 열린 정보의 장이다. 요즘은 갤러리에서 젊은 작가들을 공모로 뽑아 개인전과 단체전을 해주고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 전에도 내가 말해줬었는데 주현이랑 형 골든아이 아트 페어도 여기서 공모 보고 도전해서 된 거잖아.”

  전에도 말을 해주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해주어서 그런지 녀석은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다.

  “ 아직이에요. 작품 숫자가 너무 안 되서 작가 공모 같은 거는 꿈도 못 꿔요. 소품이라도 많이 해야 할까 봐요.”

  본격적으로 작품을 한지 몇 달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작품의 양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작품 양을 말하자면 나도 갈 길이 멀었다. 작은 작품이든 큰 작품 이든 간에 작품을 완성 하는 것 자체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 내 작품의 단점이었다. 영길이 녀석도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그림이라 아직 재료며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이며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 많았다.

  “ 그렇겠구나. 올해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에 도전하면 되지 뭐.”

  영길이도 작품으로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번 작품은 연필로 묘사를 했는데 연필로 하는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면 보존에 우려가 있다. 정착액을 뿌린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연필의 흑연은 종이에서 서서히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재료에 대한 연구와 연작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작품이란 한 점 한 점 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컨셉이 생기고 연작을 하는 힘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기 부여인데 이번에 큰 상을 받았으니 영길이는 동기까지 부여된 셈이었다.

  “ 형. 저 여자 친구와도 기쁨을 나눠야겠어요. 금방 온다니까 여기까지만 마시고 갈게요.”

  영길이 여자 친구는 백화점에서 함께 일하다 만난 사람으로 영등포에 소재한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종 종 영길이네 집에 놀러오곤 하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 그래? 그럼 가봐야지. 내가 계산 할 테니까 어서 가봐.”

  낮술을 마셔본 경험이 많지 않은 영길이는 이미 많이 취해 보였다.

  “ 아뇨. 제가 사야죠. 계산 하고 갈 테니까 선생님한테 말씀 좀 잘 해주세요.”

  들고 온 가방을 둘레매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는 영길이는 술집을 나갔다. 화실 선생님은 술집에 들어오는 길에 근처에 계신 다른 화가 선생님을 데려 오겠다며 그곳으로 향하셨다. 그래서 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 했다. 영길이는 그만 마시고 여자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도 데리고 오려던 선생님은 다른 일정이 있다며 고사를 했다고 했다. 그러게 그냥 셋이 간단하게 먹다가 가면 될 일인데 꼭 이럴 때 보면 누구를 부르려고 하신다. 그저 화가들 끼리 더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하시는 행동인데 화가라고 해서 그저 막 친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서로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른데 그저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친해질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아니. 안 오려고 했으면 진작부터 거부를 하지. 헛걸음을 하게 만드는 건 또 뭐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돌아온 선생님은 맥주를 들이키며 혀를 차셨다.

  “ 그 스페인에서 돌아 오셨다는 분이요? 선생님 예전에 말씀하시는 거 보면 그분 별로 안 좋아 하셨던 거 같던데. 요즘은 부쩍 친해지신 거 같아요.”

  상업화가 라고도 많이 불렀고 삼각지 그림. 그리고 쫑쫑이라고도 불리 우는 상업화가. 한참 상업그림이 돈이 되던 시절. 스페인까지 건너가 그림을 그리며 살아오신 분이다.

  “ 맞아. 그 친구. 그 친구도 세월에 풍파를 많이 겪다보니 많이 변했어. 이젠 말도 잘 통해. 술도 잘 사주고.”

  내가 안양을 1년 정도 비운 사이 두 분은 많이 친해진 것 같아 보였다. 선생님이 공모전에 목을 매고 있을 때 이 선생님은 그런 그림 다 필요 없다고 그림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지 전업 작가라며 자신의 목청을 높이시던 통에 의견 충돌이 잦았다고 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미술 이론을 많이 공부했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선생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 대중의 미술에 대한 인식의 대부분을 보면 상업그림을 그리는 작가라고 해서 화가가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각자의 인생을 부정 하는 듯한 격한 논쟁은 서로에게 소모적일 게다.

  “ 만나시면 맨날 싸우시는 건 아니구요?”

  앞에서도 열거 하였듯이 두 분이 술을 마시다가 감정이 격해지는 일은 한해 두해가 아닌 이야기다.

  예전에 계셨던 안 실장님도 상업 그림이고 중간에 잠깐 작업실에서 생활을 하셨던 극장 간판을 그리셨고 대전 엑스포에 대부분을 그림을 그리셨다는 간판 쟁이 아저씨도 방금 만나고 오신 삼각지 쫑쫑이 화가도 모두 자신의 생계를 담보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공모전에 상이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어차피 돈이 안 되면 말짱 꽝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생각이 바뀐 것도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일이었다.

  “ 이제 그렇게 의견 차이로 싸우지 않는다니까 그러네. 많이 친해졌어. 어떻게 보면 내가 원호 선생보고 배우는 점이 많지. 그 친구는 하루에 한 점씩 그림을 그린다니까. 또 잘 팔고.”

  이렇게 말하시는 거 보니 선생님과 현실과 많이 타협을 하신 거 같았다. 하긴 나도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상업적인 것과는 담을 쌓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예술을 통해 대중과 소통을 하며 예술에 대한 담론을 펼쳐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을 녹록치 않았다. 작년에 중앙미술대전에 세종이와 같이 낙선을 경험하고 나서 마음이 달라졌다. 주현이 미술학원 동생 중에 서울대 조소과를 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그 해에 최우수상을 받았다. 학력과 인맥으로 통하는 우리나라. 나는 그저 지방대를 나온 그림은 제법 그릴 줄 아는 그저 그런 작가 지망생일 뿐이었다.

  “ 그래요? 그래요. 선생님도 이제 그림도 좀 팔고 그러셔야죠.”

  선생님도 나도 그림을 판매하며 생계를 책임져 본적이 없다. 아니 나는 그건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경매에서 그림을 팔고 전시에서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림을 판 경험이 생겼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부정하고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지를 의심해 봐야하는 시간이 온 것이었다.

  “ 그래야지. 두고 봐라. 주민아. 선생님은 반드시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 작가가 될 거야. 그때부터 그림을 제 가격에 팔면 되는 거야.”

  이 말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다. 선생님의 가족 대부분의 이 지점에서 희망을 갖고 있다. 그래. 그때가 되면 선생님도 저 지긋지긋한 가난과 작별을 할 수 있겠지?

  선생님은 내가 안양에 없는 사이 화실 보증금을 다 까먹고 월세까지 몇 달 밀린 상태였다. 내가 화실을 나가고 나서 선생님 화실의 식구들은 많이 줄어 있었다. 친절하게 그림을 가르쳐주는 젊은 사람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선생님의 잦은 출타도 문제였다. 전시를 제법 많이 하시게 되면서 전시다 뒤풀이다 외부 일정들이 많아지다 보니 있던 취미 생들도 본인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남아나질 못했다. 선생님의 화실은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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