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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53화. 벽화.
작성일 : 20-09-29 15:59     조회 : 295     추천 : 2     분량 : 13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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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벽화.

 

  큰 매형은 다시 부산으로 발령이 났다. 그 사이 큰 누나 네는 집을 팔고 부모님과 가까운 곳으로 집을 다시 사서 이사를 했었다. 아이가 자라는데 더 나은 환경을 주고 싶어서라고 했는데 여러모로 이사를 한 집이 더 좋았다. 단지도 컸고 어린이 집이며 학교들도 초, 중, 고가 다 있었으며 근린생활시설도 잘 되어 있었다.

 언제 다시 발령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집을 팔고 갈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전세를 주고 부산에 전세를 얻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부산의 집값은 예전과 확연히 차이가 있다고 했다. 회사에서 정착금이 나와서 크게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었지만 부산의 집값은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짧은 서울생활을 마치고 큰 누나 내외는 그 작은 조카 녀석을 데리고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조카를 보고 대가로 50 만 원으로 생활비로 쓰셨던 아버지가 붕 떠버리는 상황이 되었는데 작은 누나의 출산으로 아버지는 다시 작은누나의 아이를 보는 상황으로 국면이 전환되었다. 엄마는 계속 식당일을 하며 아버지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누구라도 흐트러지면 깨질 것 같은 얇은 유리 같은 일상의 구조였다. 아찔하게 균열이 나는 것 같았지만 그나마 작은누나의 출산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모양새였다.

 

  잘 타던 엑센트가 갑자기 길을 가다가 섰다. 예민하다고 느꼈던 클러치에 유압이 느껴지지 않아 기어를 넣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근처에 카 센터가 있어서 부탁을 할 수 있어서 렉카를 부를 필요는 없었다. 역시 전문가여서 그런가? 금방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고 운전을 해서 카센터로 가는데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카센터로 들어서서 견적을 내는데 삼바리에 미션에 견적이 100 만 원 가까이 나왔다. 그래서 그냥 녀석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폐차비로 30여 만 원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차가 없이 두 달 정도 보내야 했는데 영길이가 차를 중고로 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녀석 차로 출,퇴근을 할 수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작품에 매진을 하고 있던 터라 집에서 거의 근신을 하고 있었기에 차가 없어도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부모님을 뵈러간다거나 평촌 주현이네 집에 같이 가는 일이 있는 경우에는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다시 차를 사려고 마음을 먹고 안산에 있는 중고차센터로 향했다.

  영길이의 차를 얻어 타고 영길이가 차를 샀다는 딜러와 만나가로 먼저 약속을 했다. 수중에 돈은 150 만 원 정도 있었는데 영길이도 그 정도 돈으로 차를 샀다고 했었다. 산타모라는 차였는데 차안이 넓고 좋았다. 가스차라 연비도 좋았다. 나도 그런 차를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에 그 딜러와 약속을 잡았다.

  “ 제가 그림 그리는 화가라 돈이 별로 없는데요.”

  상금으로 받은 돈에 조금씩 모아온 돈이 150 만 원이 전부였다. 정말 이 정도 돈으로 차를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 그 정도면 제가 타고 있는 차 넘겨 드릴 수 있는데 어떻게 한 번 보실래요?”

  별로 고민 없이 내 뱉는 말이었는데 본인이 사서 싹 수리를 했으니 아마 2 년은 걱정 없이 탈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역시 이 딜러를 만나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서 차를 보니 멀쩡해 보이는 구형 카렌스였다. 이차 역시 가스차로 나온 것이었고 미션은 수동이었다. 엑센트의 수동기어에 익숙한 나로서는 괜찮았다. 바로 딜러와 영길이, 주현이를 태우고 중고차 단지를 한 바퀴 돌아봤다. 속도가 올라갈 때 나오는 소음 말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뒷 좌석이 뒤로 제쳐 지면서 트렁크가 뒷 유리채로 열려서 큰 그림을 실을 수 있는 것도 산타모와 비슷했다.

  “ 좋은데요. 이걸로 결정하겠습니다. 딜러님 사신지 얼마 안 된 건데. 저한테 넘기셔서 귀찮은 일 만들어 드린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딜러는 이차를 2주 전에 매입을 했고 수리를 맡기고 본인이 탄지는 열흘 정도 밖에 안 됐다고 했다. 전문가가 싹 수리를 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리 같은 소비자가 수리를 하는 것보다 더 꼼꼼하고 더 저렴하게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 매일 하는 일인데요. 뭘. 그저 잘 타십시오. 한 2년 정도는 아마도 수리 없이 타실 수 있을 겁니다.”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말투와는 다르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았다. 그렇게 번개 불에 콩을 구워 먹듯이 우리는 차를 한 대 구매했다. 건물 일층에서 보험을 가입하면서 나는 다시 자가용 유저가 됐다.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지 모르는 일이여서 이번에는 자차까지 보험을 들었다.

  가스차인 데다가 영길이와 번갈어가면서 운행을 하니 기름 값이 절반으로 줄었다. 가스차는 힘은 약하지만 연비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청담동 갤러리에서 연락이 왔는데 갑자지 인도 전시가 취소 됐다고 했다. 뭄바이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인도는 지금 아비규환이라고 했다. 외신에서 전해들은 내용이 없어서 조금 의아했지만 성장 통을 앓고 있는 인도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년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전시를 기획중인데 그때 참가를 해야 하니 작품은 계속 갤러리에 키핑을 하자고해서 이번에도 역시 그러기로 했다.

  단원미술대전에 낼 그림을 준비하는 도중에 전에 그림을 사주기도 했고 작업실도 같이 쓰자고 제안을 하셨던 대표님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본인이 지금 미술관을 준비중 이라고 하는데 의논을 하고 싶다며 본인의 사무실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최근 작품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내 작품과 주현이 작품을 다 이 메일로 보내드렸다.

  주현이에게는 종종 골프그림을 부탁하셨는데 주현이에게는 작은 부업 같은 일이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골프를 칠 일이 많았는데 골프를 치다가 보면 홀인원이나 이글 같은 샷이 나오게 된단다. 그런 경우에 같이 라운딩을 하는 사람들이 축하의 선물을 하는 관행이 있다는데 그때 선물을 하 기 위함이었다.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었는데 골프그림이 비젼이 있다며 그는 계속해서 주현이에게 골프 그림을 연구해주기를 바랬다.

  우리는 약속 날에 맞춰서 대표님의 사무실로 갔다. 처음에는 나에게만 제안을 했지만 주현이도 같이 하고 싶다고 해서 테스트 끝에 같이 보기로 했던 것이었다.

  “ 주민씨. 제가 트릭아이 미술관이라는 것을 구상중인데 지금 작가들은 거의 다 섭외가 됐어요.”

  ‘트릭아트라는 것은 요즘 한참 유행하는건데 트릭아이는 뭐지?’

  가만히 들어보니 같은 개념이었다.

  “ 주민씨와 주현씨가 직원으로 들어와서 그 작가들의 그림 그리는 법을 익혀서 나중에 일을 맡아서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야기가 된 사람들도 좀 살펴봐주고.”

  섭외 된 작가들의 실력을 다 믿을 수가 없고 바로 옆에서 살펴봐달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잘 그리는 작가 작법을 익혀서 나중에 팀장 같이 사람을 부려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스파이 같은 작가로 들어와서 그림 그리는 작법을 배워서 나중에 내가 사람들을 인솔했으면 하는 부탁이었다.

  “ 근데 하필 왜 저한테 이런 부탁을 하시는 거죠?”

  대표님은 그림을 좋아하셔서 나 말고도 작가들을 많이 알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 주민씨 그림 정말 잘 그리시잖아요. 빨리 그리는 법만 익히면 되실 것 같고 젊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민씨 같이 신체도 건강하고.”

  이번엔 홍대에서 작업을 하지만 다음번에는 제주도 그리고 나중에 어디가 될지 아직 모르지만 확장을 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했다. 급여는 시급으로 챙겨 준다고 했는데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다른 작가들 받는 급여 중에 제일 낮은 등급으로 준다고 했고 하루에 8시간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어서 시간을 그렇게 쓰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우리에게 있어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었지만 팀으로 되어있는 사람들 틈에 들어가 우리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해보고 연락을 드리겠다며 사무실을 나왔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집에 도착을 해서도 주현이와 동네를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도 물류에서 일을 하는 순간에도 고민을 했다. 일단, 물류를 그만두는 것이 제일 불안한 요소였다. 언제까지 벽화 일이 주어질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많은 혜택과 관심을 주신 것은 너무도 고마운 일이었지만 불안한 미래는 판단을 하는 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해보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는 인생을 살면서 아무나 겪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언제 그런 작업을 해보겠는가? 언제까지 일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물류를 그만 두었다. 물류하나는 영규에게 다른 하나는 영길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누어 주면서 물류에 다음번에 은식이가 백화점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꼭 모색해보라고 했다. 내가 있는 동안에 그렇게 되기를 바랬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그 사이 주현이 동생은 용인에 있는 학교에 복학을 했다. 학교를 다니는데 통학이 어려워서 부모님이 사시는 집을 전세를 놓고 용인으로 이사를 하셨다. 그간 광고 모델 일을 하며 생활비를 대며 고생을 한 동생에 대한 부모님의 배려였다.

 

  그해 있었던 단원 미술대전에서 나는 대상을 받지 못했다. 특선을 받으면서 나는 추천작가가 되었다. 그러면서 단원 미술대전을 졸업했다. 추천작가가 되면 더 이상 그 공모전에 공모를 할 수가 없다. 특선도 큰 상이었지만 못내 상금이 아쉬웠다. 어찌 보면 대상을 받지 못하면서 벽화 일을 결정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주현이와 나는 내년에 결혼식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식장도 알아봐야 하고 웨딩촬영도 해야 했고 가족들이 입을 한복도 빌려야 했으며 신혼여행도 알아봐야 했고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산적해 있는 문제 중에 물론 돈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중요한 시기에 벽화 일은 그렇게 소명처럼 다가왔다.

  스마트 물류에서 퇴직금이 나오는 바람에 생각지도 못하게 여유 자금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벽화로 일을 갈아탈 수 있었다.

  벽화 일을 하는 선생님들은 우리보다 적게는 스무 살 가깝게 많은 분들부터 부모님 연배 정도 되는 분들까지 계셨다. 평생을 상업 그림을 그려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풍경화를 잘하시는 분들은 풍경을 위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인물화를 잘하는 분들은 인물화 위주로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시다 페이를 받는 만큼 그림을 잡고 완성을 하기 보다 형태를 잡고 초벌작업을 하는 일들을 많이 시키셨다. 총대를 메고 팀장이라며 일을 배분해주며 사무실과의 일정도 조율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처음부터 우리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벽화 작업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었고 벽에 프라즈마를 발라 물감을 입혀나가야 했는데 나에게는 화면의 느낌이 너무나 생소했다. 화면이 미끄러워서 내가 그림을 그리던 기법과 잘 맞지 않았다. 이런대서 경험의 일천함이 들어 날줄은 생각지도 못한 국면이었다. 반면, 평생 그림을 그려 오신 분들은 역시 달랐다. 본인의 할당량을 무리 없이 소화해 주고 계셨다. 미대를 나오신 분들부터 극장 간판을 그렸던 분들. 삼각지 화가까지 본 직업들은 너무도 다양했다. 이분들 중에도 요즘 유행하는 트릭아트를 그리시느라고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분들도 계셨다. 이런 작화를 배워서 나더러 팀장을 해보라는데 정작 진짜 팀을 짜서 들어오신 팀장님은 나와 주현이를 눈엣 가시같이 여겼다. 우리를 대할 때 마치 사무실에서 보낸 세작을 대하는 듯 했고 우리는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벽화 작업을 하는 동안 제일 좋았던 일은 비싼 재료들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언감생심 홀베인이라는 유화물감은 그렇게 맘껏 쓴 적도 사본적도 없는 나였다. 무엇보다 물감은 발색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한 가지 좋은 것을 배웠는데 건조제를 화이트에 섞어 쓰는 요령이었다. 작화를 빨리 해야하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는 보조제였는데 여기 오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물감을 섞다보면 자연스럽게 화이트가 많이 들어가는데 그렇게 시카티브라는 건조제를 미리 징크 화이트에 섞어놓으면 물감도 부드럽게 녹아 있으면서 빨리 건조되는 물감으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페트롤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테레핀을 주로 썼었는데 테레핀은 냄새가 많이 나는 편이었는데 페트롤은 냄새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다. 오래 냄새를 맡아도 후각이 피곤해지지도 않았다.

  팀장님의 횡포는 계속 되었던 반면에 다른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팀장님이야 본격적으로 우리를 배격하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다른 분들은 본인들 작업에만 열중했다. 그래서 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많이 관찰할 수는 있었다.

  팀장님은 본인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팀원들의 독려하고 재료 준비를 도와주는 일을 주로 하셨는데 상황이 그렇다보니 본인이 그려야 하는 그림들을 잘 그려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대표님은 팀장님의 자질을 의심하게 됐고 그럴수록 팀장님은 우리를 더 배격했다. 본인이 시켜서 그린 그림을 다음 날 와보면 싹 지워 놓는 일은 다반사였다. 화가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일이었다. 지난하고 어려운 그림들을 시켜놓고 이제 좀 그려볼만하면 다른 선생님들을 시켜서 그림을 마무리하게 했다. 해도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 하던 어느 시점 정확하게 석 달 정도 지났을 시점이었는데 참다 참지 못한 주현이가 대표님에게 찾아가 우리가 할 일은 더 이상 없으니 그만 나오겠다고 말을 해버린 것이었다. 팀장님의 심한 처사가 부른 일이었다.

  밥그릇을 빼앗기기 싫어서 무리한 일을 저지른 팀장님도 그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삼 개월 동안 지켜본 결과 가장 그림을 잘 그리시면서 많이 그리신 분이 팀을 다시 꾸려서 제주도 작업이 시작 할 거라는 후문을 들을수 있었다.

  팀이 되지 못한 우리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혹독했던 따돌림은 끝이 났지만 우리는 다음 일을 찾아야만 했다. 대표님이 처음에 제안을 하셨던 꿈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일은 우리가 예측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게 대표님과는 성격이 다른 부채의식을 서로 나누어 짊어진 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해를 넘겨 겨울이 한창이었다. 삼개월 동안 열심히 일만 했던지라 돈을 쓸 시간이 없어 통장의 잔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을 잘 버텨내고 봄을 기약하기로 했다.

 

  몇 달이 지나 봄이 성큼 다가왔을 무렵, 세종이와 연락이 되었다. 녀석은 얼마 전에 심근경색이 와서 죽을 뻔했다는 말을 했다. 덕분에 담배를 끊게 됐다며 말을 이어 나가는데 조명감독을 하면서 밤샘 촬영이 있는 날이면 서너 갑씩 담배를 피웠다고 말을 했다.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지만 밤을 세서 안 그래도 지친 몸에 그렇게 담배까지 피워 댔으니 몸이 정상일리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났을 상황이었다고 했다.

  “ 별일 없으면 한 번 안산으로 넘어 와. 몸도 많이 축났을 텐데. 몸 보신 한 번 하고 가라.”

  그러고 보니 작년 작은 누나 결혼식 때 보고 한 번도 세종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벽화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바쁘게 살았었구나 싶었다.

  “ 내일 촬영이 있어서 시간 되면 연락하고 갈게.”

  세종이 녀석은 조명감독이 되면서 차를 샀다. 평생을 뚜벅이로 살아온 녀석이었는데 기동력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직업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새 차를 샀다고 자랑을 하는 녀석을 한 번 만나야겠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한다던 전시는 취소가 되었다. 그리고 청담동 갤러리는 그림이 돈이 되지 않는다며 중국에서 건축 사업을 한다며 이사도 건물을 지어 분양을 하는 사람을 새로 영입한다고 했다. 눈부시게 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은 돈 벌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말 뿐이었다. 어떠한 성과도 내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동안 키핑에 놨던 그림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집에 둘 곳이 없어 시간을 점점 미루게 되었다.

  안양 선생님 화실을 중심으로 같이 단체전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스페인에서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선생님 친구 분이 기획을 하는 일이었는데 안양시민신문사가 주관을 하는 전시였다. 전시가 조인되는 과정에서 신문사 임원들, 기자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가 있어서 몇 차례 술을 마시게 되었다.

  “ 그래서 안양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안산으로 이사를 하게 된 계기가 뭡니까?”

  술이 많이 취한 기자가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그래? 내가 안산까지 가게 된 이유가 뭐였지? 어쩌다가 이사를 하게 됐을까?’

  술에 취한 나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글쎄요? 더 이상 월세에 살수도 없었고 집같이 쾌적한 환경도 필요했고요. 정확한 이유라면 다 돈 때문이겠죠.”

  이렇게 말을 하기는 싫었지만 사실이었다. 더 이상 주현이를 고생 시킬 수도 없었다. 그 고생이라는 것도 달콤한 성공이 기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림에 대한 기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내 몰리고 있었다. 제 2의 한국의 미술시장의 르네상스라는 시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결혼식도 올려야하고 가장으로 주현이와의 생활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내 어깨에 걸머쥐어 있었다.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인가? 아니면 돈을 작심하고 벌 것인가?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기로에 서있었다.

  “ 가슴이 아프네요. 주민씨 같이 훌륭한 화가가 안양 사람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

  술이 취한 기자님은 원래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니 과거의 그는 글 작가로서 삶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이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 엿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 인생을 뼈 아파 하는 것은 아마도 자기 같아서였을 것이다.

  “ 민망하게 계속 왜 그러세요?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벽화 일을 그만둔지 삼 개월. 나는 무슨 일이던지 간에 시작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림 보다는 돈을 벌어서 우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 시간이 늦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갈 길이 머네요.”

  술 자리는 안양이 었기에 버스가 끊기기 전에 먼저 일어나야 했다. 영길이 녀석도 동행을 해서 길 동무가 있었다. 일찍 서둘러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수가 있었다. 화가들 끼리 잘 지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하는 전시였기에 참여의사를 밝혔지만 잦은 모임은 나를 피곤하게 했다.

  다음날이 되었다. 세종이가 오늘 저녁에 온다고 연락을 해왔다.

  나는 벽화일이 끝나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질리게 그림을 그려온 것도 문제였지만 다른 관심사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요리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리 채널을 틀어놓고 하루 종일 보다가 저녁 때 요리를 해먹는 일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요리 채널을 보다가 보면 여러 나라의 요리법이 나오는데 다른 것들은 다 해볼 수 있었지만 해산물 요리는 피했다. 생선을 손질하는 것이 싫은 것도 있지만 나나 주현이나 서로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여러모로 한 동안 연구한 음식들을 세종이에게 맛 보여주고 싶었는데 세종이는 여자 친구도 데리고 가니 어디 대부도 같은 곳에 가서 조개구이나 먹자고 했다. 차를 두 대를 끌고 갈 필요가 없으니 그냥 세종이 차로 움직이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 그리면서 가난하기만 했던 우리는 제대로 된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 어디 휴양지 같은 곳으로 여행 한 번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지는 현실을 자각히고 나니 씁쓸했다.

  세종이 녀석은 온다는 시간에 맞추어서 우리 동네로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 야. 차 좋다. 새 거로 뽑은 거라고 했지?”

  오던 길에 세차를 했는지 차는 금방 공장에서 나온 차처럼 광택이 흘렀다.

  “ 무슨.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연비 좋아서 산거야. 어서 타.”

  차에서 내리면서 꺼낸 말이었다.

  “ 제수씨 소개 좀 시켜줘야지.”

  세종이 여자 친구는 차에서 내리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 안녕하세요. 세종이 오빠 여자 친구 김효정이라고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라고 들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키가 170 정도 되어 보이는 세종이 여자 친구는 날씬한 몸이었는데 모자를 눌러써서 얼굴은 잘 보이지가 않았다.

  “ 그래요. 반가워요. 유주민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여자 친구 강주현. 언니겠네요.”

  전에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보다 세 살 어린 친구라고 설명을 했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는 말을 해주지 않아서 알 수는 없었다.

  “ 안녕하세요. 강주현이라고 해요. 잘 부탁 드려요.”

  어색한 인사의 시간은 흘러갔다.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세종이가 운전을 하는 것도 어색했지만 녀석의 운전이 생각보다 거칠어서 더욱 놀랐다. 평소에 행동이 느리고 느긋한 성격 이었기에 더욱 놀라운 지점이었다.

  “ 세종아. 브레이크 밟을 때 조금만 천천히 밟아줘. 주현이 놀란다.”

  평소에 내가 운전을 하는 차만 주로 타봤던 주현이는 운전 중에 조금이라도 속도를 내거나 급 브레이크를 밟으면 많이 놀라하기 때문에 지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 그래? 나 정도면 스마트 한 거 아닌가?”

  본인의 운전이 난폭하다는 것을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녀석은 대수롭지 않게 듣는 눈치였다. 세종이의 난폭운전 때문에 우리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할 수가 있었다.

  “ 가까운 조개구이 집으로 가자.”

  나는 원래 조개구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조개구이와 술을 마시면 속이 좋지 않아 구토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개구이는 굽기 전에는 양이 많아 보이지만 먹다 보면 그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밥 같은 탄수화물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술과 함께 먹고 나서 속이 좋았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나의 기호에는 맞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조개구이 먹고 싶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먹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 저기 좋겠다. 모퉁이에 있는 집.”

  세종이가 가자고 한 집은 유난히 간판의 빛이 밝은 곳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들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 오늘은 여가가 낙점이다. 가게에 들어서 보니 가게 주인은 오픈을 한지 얼마 안 되었는지 장사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 대부도에 왔으니 조개구이랑 바지락 칼국수 정도는 먹고 가야되지 않겠어? 사장님 조개구이 中자하고 바지락 칼국수 2 인분 주세요.”

  대부도에 자주 와 봤는지 주문을 하는 모습이 좀 다녀본 것 같은 세종이었다.

  “ 여기 자주 다녀본 주문솜씬데.”

  어디 돌아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세종인데 의아했다.

  “ 이 근처 촬영하러 자주 오는데 이동하느라고 매번 칼국수만 먹어봤지. 조개구이 한 번 정말 먹어 보고 싶었다.”

  촬영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다 보니 칼국수만 먹어봤다는 녀석은 원래 예전부터 조개구이를 좋아했다. 녀석의 취향이어서 예전부터 의견을 존중을 해줘서 종종 같이 먹었었는데 이상하게도 조개랑 소주를 먹고 나면 나는 속이 좋지 않아 가게를 나오자마자 구토를 한 경험까지 있었다.

  세종이가 그렇게 기다리던 조개 구이가 나왔다. 저 마다의 시간이 맞춰 잘 익었다고 입을 척 척 열어 보인다. 가만히 안에 들어 있을 때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녀석들은 입을 열어 보이며 잘 익은 살을 보이며 내어준다.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손질을 하며 주현이 앞 접시에 놓아준다.

  “ 조개가 익어가니까 이제 술 한 잔 해야지?”

  잘 익은 조개들을 먹기 좋게 손질을 해놓은 세종이 녀석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신다. 술이 먹고 싶은 건지 조개가 먹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오랜만에 외출이라 신이나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연애를 해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신이나 보이는 녀석이다.

  익어가는 조개와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덧 이야기가 많이 익어가고 있었다.

  “ 그래서 지금 벽화 일 안하고 쉬고 있다는 거야?”

  최근에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를 설명하는 와중에 세종이가 말했다.

  “ 물류로는 다시 돌아 갈수는 없고?”

  “ 무슨 염치로 돌아 가냐. 다른 거 알아 봐야지. 원래 벽화일 잘되면 동생들하고 같이 하려고 했었는데.”

  주현이도 다시 물류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알아보면 어떠냐고 물어 오기도 했지만 이제 그 정도 벌이로는 힘들다고 더 벌어야 한다고 말해 줬었다.

  “ 너 하루 일당이 얼마라고 했지?”

  감독으로 입봉한 세종이는 다른 사람들은 상상 할 수 없는 정도의 일당을 받고 있다고 했다. 광고 조명일은 매일 매일 규칙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촬영 일정이 잡히면 일을 하는 것이어서 언제 어떻게 일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 나 지금은 90정도 받고 있지. 감독치고는 적게 받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나 입봉한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한번 호되게 아프고 난 뒤 운동을 열심히 해서 예전보다 얼굴은 수척해 보이는 세종이었지만 몸은 운동으로 다져져서 탄탄해 보였다.

  “ 밤새서 일 하려면 체력도 좋아야 돼.”

  연신 조개를 먹는 녀석은 예전보다 음식을 더 잘 먹는 것처럼 보였다.

  “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입봉하게 된 거야? 조금 빠른 거 같기도 해 보이는데.”

  갑자기 입봉을 했다는 녀석의 퍼스트 시절을 떠올려보면 감독 입봉은 불가능해 보였다. 모시고 있는 감독이 자기를 입봉 시켜줘야 감독이 될 수 있다고 말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조명 감독은 세종이를 입봉 시킬 생각이 별로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 예전에 내 위로 있던 형이 있었는데 이 형이 회사를 차리면서 일이 많아지다 보니까 나를 불러서 쓰게 된 거야. 잘나가는 카메라 감독 5명이 투자를 같이 한 화사라 일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게 된 거지. 그 형은 한 달에 몇 천씩 벌어.”

  말을 들은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벌 길래 한 달에 몇 천 만원씩 번다는 말인가?

  “ 며칠씩 일을 하는데 그렇게 벌 수 있지?”

  세종이 말로는 한 달에 열흘 이상 일하면 굉장히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 그 형은 한 달에 20일 넘게 일할 걸. 본인이 정 못할 것 같으면 나한테 넘기는 일도 많아.”

  하긴 같이 일하는 카메라 감독이 5명이나 되니 그것도 업계 탑10위 안에 들어가는 감독들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살인적인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하는 걸까?

  “ 네가 하는 일하면서 그림도 그릴 수 있을까?”

  주어가 없는 질문을 해봤다. 예전에 막내 인건비가 10 만 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얼마나 주는지 궁금했다.

  “ 요즘 막내 인건비가 12 만 원 정도 한다고 하는 거 같던데? 왜? 조명일 해볼 생각 있어?”

  그 사이 막내의 일당이 2 만 원 정도 오른 거 같았다. 한 달에 열흘 정도 일을 하면 20일은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지금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닌 거 같아서. 올해 주현이랑 결혼도 해야 하는데.”

  예전부터 세종이가 하는 일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일을 하면 돈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고민만 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적어도 석 달은 기다려야 입금이 된다는 말에 그때그때 마다 포기를 했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로부터 나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석 달은 버틸 수 있는 돈이 있으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힘들 텐데. 하긴 노가다도 한 놈인데. 생각 있으면 내가 그 형한테 말해볼게.”

  “ 일단은, 너 일만 해보면 안 될까? 일 좀 배우고 나서 그 형 일도 같이 하는 걸로 하고.”

  “ 지금은 내가 일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는 네가 생활이 안 될 거야. 같이 병행해야 할 거야. 우리 팀도 막내가 시급했는데. 잘 됐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었는데 세종이를 만나서 문제가 해결이 될 줄은 몰랐다. 써드, 세컨 까지만 가도 돈을 어느 정도 벌수 있다고 하니 열심히 일을 배워서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이를 입봉 시켰다는 그 형은 한 달에 20일 정도 일을 한다고 하니 그 형은 초인 같은 힘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2차로 노래방을 가자는 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슨 초면에 노래방이냐며 다음에 가자고 했다. 그리고는 각자 여관방을 잡아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이 되어 우리는 우리 동네로 자리를 옮겨 해장을 하고 헤어졌다.

  며칠이 지나고 세민이 퍼스트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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