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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52화. 안산으로.
작성일 : 20-09-29 15:40     조회 : 298     추천 : 2     분량 : 1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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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화. 안산으로.

 

  단원에 전시를 할 무렵,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사를 결심했다. 다시 한 번 여기서 겨울을 맞았다가는 둘 다 입이 돌아가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지난 모임에서 청첩장을 하나 받았다. 미술교육대학원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선을 본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수더분하니 그 작가에게 잘하는 모양이었다. 교육대학원을 졸업을 하면 임용시험을 봐야하는 일을 앞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면서 취직이 아닌 취집을 하게 된 것이었다. 작가를 꿈꾸던 친구는 교사에서 이제 한 가정의 아내 그리고 엄마로 인생의 좌표를 바꾸어 나가고 있었다.

  작가 한 명의 결혼은 작가 모임자체를 흔들만한 일이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마지막 엠티를 끝으로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 갑자기 승무가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된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더 이상 작가의 길을 가지 못하게 되는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모임의 성격과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청년 예술의 힘을 명맥을 이어보자고 갤러리를 차려서 직접 공모를 해보자는 둥. 야심찬 결기가 있었지만 미술계의 침체와 경제의 불확실성이 시장을 교란시키며 우리가 꿈꾸던 모든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었다.

  단원미술대전 우수상을 받은 나는 상금도 받았다. 총 상금은 100만원이었는데 상금에도 세금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전에 대상을 받았을 때는 상금이 적어서였는지 그냥 수표로 그 금액을 줬었는데 단원미술대전은 안산시에서 공무원이 직접 집행해서 그런지 세금을 제하고 상금을 입금해 주었다.

  공모전이 끝나고 일주일 후에 우리는 안산으로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안양에서 작업실을 얻어 보려 했지만 1년 사이에 안양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올라 있었다. 안양에서 집을 얻는 일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세 개의 부동산을 통해 30개의 집을 보고 나서야 우리는 집을 고를 수 있었다. 난방과 안양까지의 거리 그리고 환경까지 생각을 하다 보니 많은 집을 보게 됐다.

  그나마도 자가용이 생겨서 안산행을 생각 할 수 있었다. 내가 일하는 백화점까지 15킬로 정도 떨어진 위치에 집을 계약하게 됐다. 주현이 아버지의 도움으로 대출을 받아 이번 이사는 집을 사서 하는 것이었다. 대출이자는 내가 내기로 했고 주현이 어머니가 계를 잘 이어나면서 몇 년 안에 대출금을 다 갚자는 취지였다. 3천만 원을 보태준 주현이 오빠 명의로 사자는 것이 조건이었다. 나는 더 이상 춥지 않은 곳에서 월세를 내지 않기만 해도 어디냐 라는 생각뿐이었다.

  복잡한 시내에서 살다가 조용한 빌라 촌으로 오는 것도 참 좋았다. 주변에는 공원 조성이 잘되어있어서 우리가 좋아하는 산책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작은 동네였다.

  우리가 안산으로 이사를 한다고 하니 영길이도 들썩이더니 결국 우리를 따라서 이사를 왔다. 아니 우리보다 하루먼저 이사를 했다. 날짜를 맞추다 보니 어떻게 일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처음 이사 온 동네에 이웃사촌이 하나 생겼다. 그렇게 안산 생활은 시작되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자가용으로 백화점까지 출,퇴근 하는 길은 대체로 한산하다. 42번 국도를 타야 하는데 신호도 별로 없고 통행하는 차도 그리 많지 않아 한적하다. 출근하는 시간대는 너무 일러서 차가 없고 퇴근하는 시간대는 모두가 출근을 한 시간이라 또 차가 없다. 한적한 도로를 전세를 낸 듯이 달려 출, 퇴근을 한다. 이제 운전도 익숙해 져서 여러모로 편하다.

  우리가 이사를 한 뒤 작은 누나는 안산에서 결혼을 했다. 작은 매형이 직장이 안산 쪽이라 식장을 안산으로 잡았다고 했다. 작은 누나는 가정 방문 교사를 했기 때문에 직장동료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됐다. 큰 누나 때와는 달리 한 번의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나는 나름의 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작은 누나와 친하게 지내던 내 친구들도 많이 와줘서 녀석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와서 술 대접을 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녀석들 중에 세종이도 끼어 있었다. 녀석은 조명 일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오랫동안 사귀었던 효민이와 이별을 했다고 했다. 근데 신기한 것이 그렇게 기사로 입봉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조명기사가 될 기회가 갑자기 찾아와서 뜻하지 않게 바로 입봉을 했다고 했다. 그것도 효민이와 헤어진 직후에 말이다. 돈 없이 찌질 하게 그림 그린다고 그 고생스러운 숫한 세월을 다 보내고 막상 빛을 보려고 하는 순간에 헤어지게 된 것이다.

  아홉수여서 그랬나? 효민이는 세종이에게 평소보다 더 강력하게 결혼을 하자고 했지만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세종이는 쉽게 청혼을 할 수가 없었고 입 밖으로 나온 결혼 얘기들은 녀석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렇게 서로 소원해진 녀석들은 어떻게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헤어지게 되었고 나는 그 소식을 1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일산에서 학원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았던 충재는 알고 보니 안산 학원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사 온 우리 집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세상 참 좁다 싶었다. 입시 미술이 바뀌면서 적응을 하지 못한 충재는 중등과 초등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가르치기 보다는 차량 운행을 하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홍선이는 삼성 서비스 센터에서 일을 하는데 차로 가정을 방문해서 티브이나 컴퓨터를 고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까지는 센터 근무여서 편했는데 최근에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출장 기사를 하다 보니 기름 값이며 주차 위반 과태료를 많이 낸다고 했다. 그리고 사귀던 녀석과 내년에 결혼을 할 것 같다며 나에게 형은 언제 결혼을 하느냐며 질문을 해왔다.

  “ 결혼? 오늘 작은 누나 결혼했는데 벌써 무슨 내 결혼 이야기야. 한 해에 두 번 하는 것도 아니라며.”

  좋은 핑계거리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받은 질문에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지금까지 주현이와 살면서 계속 바로 앞에 산재한 문제들만 해결하려 하다 보니 정작 우리 결혼은 뒷전이었다. 그리고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림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었기에 정식으로 결혼을 하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었다.

  “ 형. 주현이 누나 생각 좀 해요. 형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주현이 누나가 엄청 답답하겠네.”

  올해로 나는 서른하나 주현이는 서른둘이었다. 옛날 같으면 결혼이 늦었네. 어쩌네. 말이 많을 나이 였지만 요즘은 다들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였다. 집값도 많이 오르고 결혼식 비용도 예전과 비교하면 많은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를 포함해 준비가 미비한 청춘들에게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 집도 있겠다. 식만 올리면 되겠네.”

  술 잔을 연신 비우던 세종이가 혼자 말을 하듯 읊조린다. 사실 세종이도 충재도 그리고 나도 그 누구도 결혼을 할 준비가 되어있질 않았다.

  오랜만에 모인 술자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색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오랜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싶었는데 마음속에 짐만 생긴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인가? 친구들과의 그 끈끈했던 우정은 온대 간대 없고 하는 일이 잘 되는지 잘 살고 있는지 그런 것들만 서로 살피는 눈치였다. 뭔지 모를 마음속의 이물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불편한 마음은 새로 이사한 동네와 작업실에 적응을 하면서 누그러졌다.

  그래. 이제 작업실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고 불러야겠다. 빌라 4층 골프장 뷰를 가진 고즈넉한 우리 집 말이다.

 

  안양 선생님과 화실 사람들이 집들이 안하냐는 아우성이 들려와서 이사를 한지 오래 되지않은 시간에 집들이를 하게 됐다.

  안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장 좋은 점을 꼽자면 정말 싼 가격에 장을 볼 수 있는 마트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안산식자재마트이다. 식당이나 가게를 하는 소매상들이 물건을 주로 사는 곳인데 일반인들에게도 물건을 판다. 직접 도축장을 운영하는지 고기 종류들이 정말 싸고 맛이 좋았다.

 

  사람들이 집들이를 오기 전날에 장을 보기로 했다. 만두와 돼지갈비. 그리고 잡채 같은 것들의 재료를 사서 만들기로 주현이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일을 마치고 장을 보기 위해 주현이를 태우고 식자재 마트로 향했다. 우리집에서 자가용으로 10 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식자재 마트는 농수산물 도매시장 안에 위치해 있다. 다른 대형 마트와 마찬가지로 주차시설도 잘 되어있다. 2층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키고 승강기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다른 마트와 비교하면 공산품 같은 경우는 가격이 비슷비슷하다. 유독 고기종류만 유난히 싸다. 돼지 갈비와 만두에 들어갈 고기 그리고 잡채고기까지 빠짐없이 산다. 당면과 내일 먹을 술과 음료수등도 산다. 그러고 보니 야채를 사야하는데 식자재마트에는 따로 야채코너가 없다. 이따가 저녁때 필요한 야채는 동네 마트에서 따로 사야한다. 다른 야채는 팔지 않으면서 신기하게 콩나물과 숙주나물은 또 판다.

  만두를 만들 때 숙주나물은 필수로 넣어야 맛이 좋다. 장을 실컷 봤는데도 지출한 돈은 5 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집들이 장보기인데 약하게 산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원래 만두 만드는 재료비료만 평상시에 그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여기가 고기가 정말 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참 고마운 식자재 마트가 아닐 수 없다.

  이사를 하고 월세를 내는 일은 사라졌지만 대출받은 돈의 이자를 꼬박 꼬박 내야 했고 평소에 들지 않던 기름 값이 들어가게 됐고 도우미가 사라지고 영길이 페이를 맞춰주는 과정에서 나의 페이는 20만 원 정도 줄게 되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안양 작업실을 쓸 때와 비용적인 측면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 달 한 달을 보낼 수 있는 상황에서 가뭄에 단비 같은 식자재마트는 꿀이었다.

  준비하는 요리들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들이다 보니 전날부터 우리는 분주 했다. 일단, 돼지 갈비는 핏물을 두 시간 이상 빼주어야 돼지 비린내를 잡을 수가 있다. 얼마나 사람들이 올지 몰라서 여섯근 정도 사왔는데 행사를 해서 2 만원도 되지 않았다. 대야에 핏물을 빼기 위해 찬물에 돼지갈비를 담근다. 몇 차례 대야에 물을 갈아주면서 고기의 핏물을 뺀다.

  이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만두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만두를 만들어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명절이면 명절이라서 김장김치가 많이 남아서 아니면 손님을 맞을 일이 있어서 등등 여러 가지 만두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냥 집에서 만들어 먹는 만두가 맛있어서 일게다. 아버지의 엄마 즉, 할머니가 이북 분이셔서 만두를 만들어 먹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인데 주로 우리 집에서 만두를 만들 때에 보면 아버지의 손길이 가장 많이 들어갔다. 나도 나와 살면서 만두를 만드는 과정을 전부 손수 해보니 그간 아버지가 얼마나 가족들을 먹이려 고생을 하셨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만두는 재료준비부터 만들어 찌는 과정까지 어느 것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공정이 없다.

  만두를 만드는 것을 아버지께 직접 배운 것은 아니다. 그저 어깨너머로 계속 보면서 해오다 보니 할수있게 되어버린 것이다. 일단, 무수한 과정 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밀가루 반죽을 하는 것이다. 밀가루 반죽이 숙성이 되는 동안 만두에 들어갈 소를 준비할 것이다. 밀가루를 반죽 할 때 익반죽을 하는 것이 중요한대 익반죽을 해야 만두를 만들 때 만두피가 잘 늘어나면서 만들기가 용의해진다. 반죽을 할 때 약간의 소금과 계란 흰자 약간 그리고 식용유 두세 큰 술 정도 넣어서 반죽을 한다. 손님들에게 조금씩 손에 들려 보내야하니 오늘 만들 양은 약 250개 정도준비를 했다. 이 정도를 만드는데 필요한 밀가루의 양은 3킬로그램 정도다. 부모님 집에서도 언제나 이 정도의 양으로 만두를 만든다. 두고두고 먹기에 적당한 양이다. 적당히 치댄 반죽은 비닐에 싸서 냉장 보관한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숙성을 시켜주면 적당하다.

  이제 만두소를 만들어 보자. 내가 반죽을 하는 동안 주현이는 만두에 들어갈 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대파 한단을 주현이가 써는 동안 나는 물을 끓여 숙주나물과 당면을 삶는다. 녀석들을 순서대로 삶아내는 동안 나는 만두에 들어갈 고기를 칼로 썬다. 아버지 같은 경우는 고기를 잘게 써시는데 나는 입에서 더 많이 씹히라고 크게 썬다. 최대한 비개 부분이 없는 고기를 써야하는데 사태나 앞 다리 살이 적당하다. 고기가 생고기여서 썰기 좋으라고 살짝 냉동실에 얼려놓았더니 썰기가 용의하다. 손이 시릴 수 있기 때문에 목장갑을 끼고 작업을 해야 한다.

  내가 고기를 다 썰어갈 무렵, 주현이도 대파를 한 단 다 썰었다. 재료들 한 대 섞는다. 숙주나물과 당면도 찬물에 식혀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는데 숙주나물은 너무 잘게 자르면 안 된다. 숙주나물이 만두소를 서로 뭉쳐지게 하는 역할도 하 기 때문이다.

  이제 두부 세모를 손으로 짠다. 두부에 있는 물기를 빼주기 위해서다. 양파도 2 개 정도 채를 쳐서 양파 망으로 물기를 짜낸다. 이제 마지막으로 김치를 썰어야한다. 김치의 양을 정할 때 대체로 고기에 비례하게 준바하면 그 양이 적당하다. 고기가 3킬로 정도 들어갔으니까 김치는 여섯 쪽 정도 들어가면 될 것이다. 주현이가 김치를 잘게 썰어주면 나는 손으로 김치를 짠다. 너무 많이 짜면 만두소가 깔깔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짜서 다른 재료들과 한 대 섞는다. 참기름, 맛소금, 후추와 약간의 미원을 넣는다. 감칠맛을 내는 대는 역시 미원만한 것이 없다. 이렇게 준비를 하다 보면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지금까지 준비하느라 고생을 했으니 이제 보상의 시간만이 남았다. 아까 장을 보면서 사지 못한 야채를 사러 동네 마트를 가야했다. 돼지갈비에 들어갈 감자도 필요했고 잡채에 들어갈 목이버섯과 팽이 버섯도 사야했다. 음식의 색깔을 담당해줄 당근과 붉은 고추도 사야했다. 내일 디저트로 먹어야 할 사과도 사야했다. 그리고 아까는 생각을 못해서 막걸리만 사놨는데 만두를 만들 때는 소주병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만두피를 밀때 소주병으로 반죽을 미시는데 어깨 너머로 본 게 그거라 나도 소주병이 편했다. 나무로 된 홍두깨를 사서 안 해 본 것이 아니다. 평생 봐와서 그런가? 나 역시 소주병이 편했다. 그리고 만두를 만들면서 바로 바로 나오는 진짜 뜨거운 만두는 그 맛이 정말 일품이다. 맛이 소주를 부르는 맛이어서 만들면서 먹을 소주도 역시 필요했다. 두 병 정도면 충분하다.

  다른 집과 다르게 우리 집은 만두피를 밀때 하나씩 민다. 밀가루를 가늘게 쭉 늘어뜨린 후 적당한 크기로 떼어낸 후 양손으로 돌돌 말아 둥근 구 형태로 만들어 밀가루를 묻힌다. 한 40 개 정도의 양으로 나누어서 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버리면 수분이 날아가 마르기 때문에 양과 속도를 어느 정도 맞추어 가면서 만들어 가야한다. 그리고 찜 기에 20 개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양을 그 정도로 하는 것이 맞다.

  둥근 구 형태로 만든 만두피를 손바닥으로 하나하나 눌러 밀기편한 형태로 만들어준다. 이때 대충 형태를 생각하지 않고 누르게 되면 밀었을 때 모양이 비뚤어지기 때문에 쉬운 일이지만 나름 신경을 써야 한다.

  깨끗하게 빨은 면천에 밀기전의 만두피를 덮어 주고 하나씩 꺼내어 밀어내기 시작한다. 동그랗게 잘 밀어진 만두피에 숟가락으로 모양을 대충 잡은 만두소를 안에 넣어 만두를 빚는다. 주현이도 몇 번 만들다 보니 이제 도사가 다 되었다. 만두소를 너무 많이 넣으면 피를 접을 때 소가 밖으로 밀려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찜통에 물을 끓여 만들어 놓은 만두를 찐다. 만두를 찌는 일은 주현이의 몫이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만두끼리 붙어서 만두 옆구리가 터지는 일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제법 잘 찐다.

  만두를 만들면서 한 김 난 만두를 먹는 일은 중노동의 피로감을 싹 날리는 일이다. 가장 맛있는 만두는 금방 쪄서 낸 만두다. 뭐라 설명의 여지가 없다. 그냥 제일 맛이 좋다. 그래서 만두를 만들다 말고 막 쪄낸 만두가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소주를 따야한다. 최고의 안주가 나왔으니 소주 한 잔을 해야 제격이다.

  “ 주민아. 만두 나왔으니까 맛보고 조금 쉬었다가 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들고 오면서 함박웃음을 지어보이며 나에게 일용한 양식을 가지고 오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언제 부터였나? 나 못지않게 만두를 좋아하게 된 그녀와 같이 지내온 일상은 고된 일도 많았고 이겨 내야할 일들도 많았지만 모두 다 좋았다.

  “ 만두 맛있겠다. 이럴 때 소주가 빠지면 안 되지.”

  평상시에는 막걸리를 주로 마시지만 만두를 먹을 때는 만두를 많이 먹어야하기에 배가 쉽게 불러오는 막걸리는 쥐약이다. 벌떡 일어나 아까 사온 소주를 챙겨온다. 빈병을 홍두깨로 삼았던 터라 소주는 물통에 부었더랬다.

  주현이가 가지고 온 만두를 한입 베어 문다. 고기의 육즙과 참기름의 향긋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 아 이 맛에 만두를 만들지.’

  주현이도 지금 먹는 만두가 제일 맛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처음에 우리 집 만두를 먹을 때 세 개 정도 밖에 먹지 못했던 주현이는 이제 열 개도 거뜬하게 먹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기본 30 개 정도는 먹는다.

  “ 주민이가 만들어도 아버님 만두 맛이 나네.”

  ‘고사리 손으로 초딩 때부터 만두를 만들어 왔는데 당연히 그 맛이 나야지.’

  아버지는 만두를 만드는 날이면 밖에서 외부 일정을 보던 식구들을 불러들이곤 했는데 대단한 이유가 되지 않고서는 만두를 만드는 일에 참여를 하지 않은 가족의 일부는 나머지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 정도로 노동이 많이 들어가서도 그 이유가 되지만 가족의 결속을 저해했다는 이유도 크다. 이쯤 되면 만두로 대동단결되는 가족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그럼. 내가 이 정도는 해야지. 근데 주현이도 이제 만만치 않게 도움이 된다.”

  참 만두일꾼으로 거듭난 주현이와 함께 소주를 한 잔하며 우리 집 만두예찬을 한껏 한다. 그렇게 만두를 만들며 소주를 한 잔 하며 만두를 다 만들었다.

  주현이가 만두를 찌는 동안 나는 돼지갈비찜을 준비한다. 아까 핏물을 빼놓은 갈비를 마늘과 된장을 크게 한 술 떠서 물을 어느 정도 채운 냄비에 끓인다. 한 30분 정도 끓이고 난 뒤에 끓인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끓인다. 돼지고기 잡 내를 잡기위해 하는 방법이다. 다시 물을 끓이는 냄비에 고기를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1:1 비율로 넣고 계속 끓인다. 돼지갈비가 익어가는 동안 감자와 양파, 파, 고추 등등을 손질해 놓는다. 1 시간 정도 끓이고 나면 국물위로 기름이 뜨는데 국자로 싹 걷어낸다. 감자와 양파를 국물 속에 넣고 40 분 정도 더 끓인다. 그 정도 되면 감자가 익는다. 이제 거의 완성이 되어 가는데 파와 고추를 넣고 10 분 정도 더 끓인다. 이때 간을 마저 하는데 이때 국간장으로 간을 한다. 시골 이모네서 공수해온 조선간장으로 맛을 더하면 우리 아빠 표 돼지갈비가 완성된다.

  잡채는 조리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음식이 아니므로 내일하기로 하고 주방을 정리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이사 온 빌라는 총 세 개의 방이 있는데 문 앞에 있는 방은 서재로 주방 옆에 있는 방은 그간 그린 그림을 쌓아 놓는 창고로 안방은 우리가 취침을 하는 방으로 거실은 작업장으로 꾸며 놓았다. 안방 안쪽에 화장실이 하나 더 있어서 생활은 무척 편리해졌다.

 

  다음날이 되었다. 예전에 화실에 잠깐 다녔던 선생님 주변에 작업실을 낸 여성분이 계셨는데 차를 같이 운행을 해주셔서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손님들을 전부 모실 수 있었다.

  오늘 초대된 사람들은 선생님 화실에 골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안양 작업실에 있을 때 크고 작은 일들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시간을 보내준 사람들이다. 그중에 물류에서 같이 일하는 은식이와 영규도 같이 있다. 영규는 얼마전에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선생님 화실로 작업실을 옮겼다. 벌이에 비해 월세가 부담스러웠을 게다. 내가 선생님 화실로 와서 작업을 하라고 강력하게 권하기도 했더랬다. 영길이도 집을 이사하면서 선생님 화실과도 작별을 했다. 전에는 지하 단칸방에 살았었지만 누나들의 도움으로 볕이 잘 드는 투룸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큰 방을 작업실로 쓸 수 있었기에 더 이상 선생님 화실에 나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안양과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었는데 집값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대중교통이 다소 불편하다면 불편하지만 자가용만 있다면 크게 불편할 것도 아니었다.

  주현이와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움직였기에 집으로 손님들을 몰고 돌아 왔을 때 이미 상 한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 상 차리느라 고생 많이 했겠네. 주현아. 이사 축하한다.”

  4층이라 걸어 올라오는 게 힘이 드셨는지 선생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을 이어 가셨다.

  “ 생각보다 집이 깨끗하고 좋아 보이네. 잘 얻은 것 같구나.”

  신혼부부가 오랫동안 살기 위해 수리를 싹 해놓은 집이었는데 이혼을 하면서 급하게 내놓은 집이었다. 신혼부부는 싸우며 부순 문 두 짝을 시트지로 교묘하게 가린 노림수를 시전하시기도 하셨다.

  “ 다른 것보다 바닥이 강화마루여서 너무 좋아요”

  강화마루를 깔아놓은 바닥은 다소 딱딱하긴 했지만 청소와 작업을 할 때 용의했고 이젤이 잘 구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은 손님들을 모신 날이라 대형 이젤은 베란다 신세가 되었다.

  “ 오신 분들 너무나 고맙습니다.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많이 드세요.”

  차분한 목소리로 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잊지 않는다. 주현이와 작업실 이사를 숫하게 해왔지만 이렇게 손님을 초대해서 거하게 상을 차려 보기는 처음이었다.

  “ 진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놨네요. 누나 고생하셨네요.”

  가장 가장자리에 앉으며 은식이가 연신 감탄을 한다. 녀석도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드는 취사병의 경험이 있었기에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사람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안다. 경륜장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 음식에 대한 상식을 나에게 심어준 것도 은식이의 산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묘사하는 능력이 나름 탁월했던 은식이여서 말로 전해들은 것들이 고스란히 상식이 된 것들이 많았다.

  “ 많이들 드시고 가실 때 만두도 한 봉지씩 가져가세요.”

  어제 우리는 실컷 먹었으니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그걸로 족하다. 먼 길을 오셨으니 융숭한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진심을 다해서.

  둘러않아서 술을 한 잔 두 잔주고 받으면서 그 동안 잘 몰랐던 근황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한동안 인터넷 동우회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들이 잦아졌다고 했는데 그 덕에 화실 식구들이 많이 나갔다고 했다. 자리에 계셔야 하는데 선생님의 부재는 화실 경영에 균열을 가게 했다. 그나마 은식이와 영규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얼마 전에 화실에 다니시던 교장 선생님께서는 퇴임을 하시면서 그 교장 선생님도 화실 선생님 화실을 나가셨단다. 본인이 운영하시는 서예실을 차리시며 독립을 하셨다고 했다. 오래 다니시던 분들까지 하나 둘씩 선생님 화실에서 빠져나가는 모양새였다.

  영규는 일 년을 다닌 대학원을 휴학하였다. 비젼도 보이지 않았고 늘어난 빚 때문에 더 이상의 학업은 무리라고 했다. 반면, 은식이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은식이도 조만간에 화실을 나간다고 선언했다. 다들 독립하는 것은 좋은데 선생님의 고정 수입원들이 이탈하는 것은 선생님 입장에서 뼈 아픈 일이었다. 선생님의 화실이 흔들리고 있었다.

  10 년 전 부터 종종 오시는 선생님 초등학교 선배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하던 사업이 망해 부인과 이혼을 하고 중앙시장 근처에 월세 방을 얻고 아파트 경비 일을 나가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도 취업을 할 수 있을 거라며 선생님을 꼬신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화실 선생님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절대 경비일은 안 하신다고 목청을 높이셨다. 하지만 화실의 쇠락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었다.

  남편이 대기업에 차 시트를 납품하는 정옥이 누나네도 갈수록 일이 잘 안 된다고 했다. 경기는 미국 발 글로벌 경제위기에 빠져 회복될 기미는 엿 볼 수 없었고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미국은 제로금리로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로 돈을 마구 찍어내는 양적완화로 죽어가는 경제에 심호흡을 하고 있었지만 경제는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누구 랄 것도 없이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부부작가의 꿈을 꾸는 우리는 열심히 살며 하루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그림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두 어 달에 한 번씩 전시를 하던 시기였다. 작품과 그림 그리는 사람들과의 조우만이 우리의 일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림 얘기들로 꽉 채워진 우리 집 집들이가 끝나고 온 손님들에게 어제 만든 만두를 싸서 들려 보냈다. 버는 벌이는 같았는데 뭔지 모르게 윤택해진 삶을 사는 것 같아 좋았다.

  작품 준비 잘해서 내년에 단원에서 대상을 받고 후년에는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목표가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단원미술대전의 대상은 상금이 무려 3000만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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