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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63화. 장인어른의 죽음.
작성일 : 20-09-29 16:23     조회 : 292     추천 : 2     분량 : 7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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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장인어른의 죽음.

 

  일을 그만두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집과 작업실. 그리고 병원을 드나드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일상이었다. 장인어른의 병세는 짙어갔다. 몇 차례 시도 했던 방사선과 항암치료는 중단했다. 암 덩어리가 자라는 속도를 어떻게 제어 할 수가 없었다. 진통제가 없이 잠을 잘 수도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점점 절망해 가고 있었다.

  하루는 작업실에서 주현이와 골프 그림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월호 침몰이라는 실시간 검색어가 뜨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금방 전원구조라는 기사가 떴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아무 일이 없는 듯이 점심을 먹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장모님께서 주현이에게 연락이 왔다. 급하니 병원에 와달라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작업하던 것 재료들을 정리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장인어른이 각혈을 해서 놀라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간호사와 의사가 다녀가고 의사 선생님이 주현이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매번 중요한 말을 할 때 마다 장모님 보다는 큰 딸인 주현이를 호출하곤 했었다. 아무래도 장모님이 충격을 먼저 받으실까 봐 젊은 주현이에게 먼저 운을 떼는 듯했다.

  병원에 도착을 해보니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된 상황이라 장인어른은 평온해 보였다. 주현이는 혼자서 의사와 상담을 하러 내려갔다. 나는 심란한 마음에 티브이를 켰다. 근데 아까 전원 구조됐다던 배가 기울어서 가라 앉고 있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구조를 하고 있다고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원들이 구조되는 장면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는 오보였단 말인가?

  “ 장인어른. 세상에 저런 일이 일어났네요.”

  인기척에 잠에서 깬 장인어른도 눈을 돌려 뉴스에 집중하고 계셨다.

  “ 그러게. 세상에 어쩐 일이 당가.”

  힘이 없어서 도통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던 장인어른도 반응 하셨다. 이해가 안가는 게 매일 다니던 길을 다니던 배 일 텐데 어떤 연유로 저 큰 배가 가라 앉는다는 말인가? 라는 의문을 떨쳐 낼 수 가 없었다.

  “ 주민아. 잠깐 나와 봐.”

  의사선생님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주현이가 내게 와서 속삭였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 무슨 일이야? 선생님이 뭐라고 하셔?”

  표정으로 상황을 대충 읽을 수 있었다. 분명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았다.

  “ 아빠를 중환자 실로 옮겨야 된대. 면역력까지 떨어져서 관리를 해야 된대.”

  듣던 중 안 반가운 소식이었다. 병세가 시간이 갈수록 더 짙어지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 그래. 그 말을 하려고 널 불렀구나.”

  병원에 있을 때는 아빠를 간병하느라 집에 돌아오면 시간을 쪼개 그림을 그리랴. 그 사이 주현이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 장모님이 많이 전담 한다고 했지만 매일 같이 장인어른을 돌볼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장인어른은 중환자실로 장소를 옮겼다.

  중환자실이 있는 층에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더 이상 연명 치료도 하지 않고 숨이 넘어갔을 때 심폐소생술도 하지 않는 병동이라고 했다. 보호자와 환자의 동의하에 들어가게 되는 곳인데 더 이상 살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의 선택지였다. 같은 층에 그런 병동이 있다는 것이 좀 찜찜하기는 했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곳 이었다.

 

  장인어른이 중환자실로 가게 되시면서 면회가 쉽지 않아졌다. 그 사이 가라앉던 그 배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지 않은 채 가라앉은 배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시간이 날 때 마다 그림을 그려야 했다. 온라인에서 그림을 파는 곳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골프 그림을 그려서 건네주면 500만원이라는 거액이 들어왔다. 넉 달 정도의 생활비가 되는 돈이었다.

  예전보다 재료 값이 많이 올라 있었다. 바로 바로 그림 값을 받으니 망정이지 공모전과 전시를 많이 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니 그 벌이에 어떻게 유지를 했나 싶었다. 엄청난 의지와 신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장인어른의 병세는 점점 더 안 좋아져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우리에게도 이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게 된 것이다. 호스피스 전단을 수녀님이 오셔서 주셨다. 우리나라에서 이제 시범적으로 운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호스피스의 장점이라면 환자 본인이 죽음을 인식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중환자실로 옮긴지 2주 만에 장인어른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병원에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재밌는 영화를 봐도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있어도 친구를 만나 술을 한 잔 해도 모든 것들이 재밌지가 않았다.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6월의 어느 날, 장언어른을 뵈러 병원에 방문을 했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내 손을 꼭 잡고 10분을 넘게 나를 가만히 쳐다 보시는 장인어른이셨다. 나에게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자네에게 우리 가족을 맡기고 가네. 자네라면 내가 믿고 가는구먼. 잘 부탁 함세.’

  라고 말이다. 너무 세게 잡으신 손을 놓는데 진심이 느껴져서 가슴이 뭉클 했다.

  얼마 전에 수녀님이 가족들을 소집해서 작은 행사를 열어 주셨다. 마지막으로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고 장인어른이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심경을 고백하는 시간도 가졌었다. 그때 장인어른이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마웠다는 말씀을 하셨다.

  '자네 덕에 행복 했네.'

  라고. 말씀하시는데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목이 매어 제대로 된 답을 드리지 못했다.

  오늘은 말씀을 드려야 했다.

 “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할게요. 저 한테도 장인어른은 좋은 친구셨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다. 원래도 큰 눈인데 말라서 더 커진 눈을 꿈 뻑 감았다 뜨시는데 잘 알았다고 눈으로 말씀을 하시며 고개를 돌리셨다. 유언을 들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행사를 하고 난 후로 자신의 신변을 어느 정도 정리를 하셔서 그런지 장인어른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렇게 호스피스 생활도 우리에게 익숙해져 갔다.

 

  며칠이 지났다. 주현이가 골프 그림에 매진해 있을 무렵, 나는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팝 아트에 대한 개념으로 신작을 고민하고 있었다. 팝 아트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대중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엔디워홀이 선두에 서서 익숙한 대중스타나 광고를 인용해 판화를 찍어내는 작품을 응용해서 변형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응용해서 ‘like a pop art’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 스타들을 그리고 그 위에 루이뷔통이나 샤넬 같은 명품 로고를 판화로 색색별로 찍는 것이었다.

  작품을 진행하기 위해선 실크스크린을 할 때 꼭 필요한 감광기가 필요했다. 학교를 다닐 때 판화 수업을 했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순서들은 머릿속에 있었지만 비싼 장비를 사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직접 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학교에서 쓰는 장비에는 형광등이 들어 갔었다. 조명 일을 하며 써본 t5 조명을 이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장비를 직접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광등과 다르게 안정기가 들어가지 않아 자리 차지도 많이 하지 않는다. 사이즈와 여러 가지 상황에 맞게 도면을 그려 보았다. 작업실에서 감광기를 만들기 위해 재료와 구조에 대해서 골몰하고 있었던 그때,

  “ 아빠. 아빠!”

  열심히 골프 그림을 그리고 있던 주현이가 혼잣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 무슨 일이야? 주현아.”

  들고 있던 연필을 내려 놓으며 주현이 쪽으로 이동을 했다. 주현이는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 창밖에 아빠가 손을 흔들고 있었어. 진짜야.”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었다. 참고로 우리 작업실은 3층이다.

  “ 잘못 본거겠지. 주현이가 장인어른 걱정을 너무 많이 하나보다.”

  놀란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도 조금 헷갈렸다. 그런데 그때 전화기가 울려왔다. 장모님이었다.

  “ 뭐라고. 아빠가 위독 하시다고!”

  한 동안 곡기를 끊으시고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시던 장인어른이 호흡과 맥박이 약해지고 있다고 가족들을 소집하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리던 그림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하고 그길로 병원으로 향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저녁이 늦은 시간이라 길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계절은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내가 일을 그만 둔지 약 4개월 만의 일이었다.

  병원에 도착을 해보니 장인어른의 병실은 바뀌어 있었다. 호스피스에서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개인실. 이곳에 들어가신 환자는 하루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운명을 하셨다. 이곳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진통제만 주사한다. 모든 장기의 기능이 멈추기를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이 지켜보는 것이다. 어느덧 우리에게도 그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장모님이 다들 연락을 했는지 처제와 손 위 처남과 처남댁도 근소한 차이로 병원에 도착을 했다. 가족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지만 장인어른은 눈을 뜨지 못했다.

  어찌 어찌 하룻 밤을 넘기는가 싶었다. 호흡이 안정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처남은 다들 씻어야 되는데 수건이 없는 거 같다며 용인 집에 들려 수건을 넉넉하게 가지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뜬눈으로 밤을 샐 수 없으니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나와 주현이가 첫 번째 불침번을 자처했다.

  사람은 죽기 전에 크게 한 숨을 세 번 내쉰다고 한다. 그렇게 호흡이 멈추고 나면 심장 또한 1분여를 더 뛰고 이내 멈춘다고 한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다.

  장인어른은 갑자기 숨이 멎는가 싶더니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아. 이제 왔구나.’

  야간근무를 보고 계신 수녀님이 호흡이 끊어지는 거 같을 때 와서 보고를 하라는 전언이 있었다. 숨을 끊어질 듯 쉬는 장인어른을 보고 주현이가 오열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자고 있던 다른 가족들도 잠에서 깨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수녀님에게 가서 기별했다.

  능숙하게 수녀님은 일을 진행했다. 장례식장에 연락을 취하고 장인어른에게 가서 담담하게 서계셨다. 장인어른은 결국 숨을 크게 세 번 몰아쉬고 숨을 거두셨다.

  “ 숨을 거두셨어도 아직 귀가 열려 있으니까 다들 한 말씀씩 하세요.”

  상기되어 있으면서도 차분한 목소리였다.

  “ 잘 가요. 여보. 이제는 아픔 없는 곳에서 편안히 쉬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장모님이 말씀 하셨다. 아무리 아픈 상황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는 장모님이 시다.

  “ 잘 가. 아빠. 너무 힘들어 했는데 이제는 아프지 않은 곳에서 평온 하세요. 아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장인어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주현이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아빠가 아프고 난 뒤부터 줄곧 스킨쉽을 많이 했다. 어렸을 때 너무 엄하게 자식들을 훈육한 탓에 아빠의 사랑을 많이 못 받았던 것이 이내 그런 식 으로 표출되는 듯 보였다.

  “ 아빠 잘 가. 고마웠어. 아빠, 사랑해.”

  평소에 감정 표현을 아끼던 처제도 장인어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속으로 인사를 했다. 목이 메어 와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다. 심장박동이 완전히 멈추면 자신을 불러 달라고 하고 수녀님은 입원실을 나가셨다. 심장이 멈추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인간으로서 남편으로 아버지로서의 삶을 장인어른은 마감하셨다. 새벽 한 시 정도였던 것 같다.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처남은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10분 정도 뒤에 병실로 돌아왔다.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평소에도 아버지와의 관계에 늘 서먹해 하던 아들만이 마지막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장례 절차에 들어가야 했다. 삼일 동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으니 오늘이라도 제대로 잠을 자야한다는 의견에 일치했다. 우리와 처제는 우리 집에서. 처남 가족과 장모님은 용인 집에서 잠을 청하고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했다. 집에 도착을 해서 배게에 머리를 댓다가 바로 뗀 것 같았는데 벌써 아침이었다.

 

  예전부터 엄마가 상조에 들어 논 것이 있다고 서류 같은 것을 준 적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 두 사람 말고 한 사람 서비스로 해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전화를 걸어 장례지도사와 일정을 조율했다. 장례때 입을 의복을 렌탈하고 지도사를 직접 만나 면담을 했다. 화환 장식을 합의 하고 장례식장과 협의하여 음식의 종류를 정하고 연락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고를 띄웠다.

  2주일 전에 장모님의 부탁이 있었다. 장례 때 쓸 장인어른 영정 사진을 확대하는 일이었다. 포토샾을 부탁해서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액자에 반듯하게 넣어 차에 늘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어떻게 보면 장인어른이 호스피스 병동에 입소를 하면서부터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마지막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례식은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입관을 할 때 그렇게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보는 장인어른의 모습이었다.

 3일 내내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주현이 친구면서 내 대학 동기기도 한 명관이가 마지막날에 나와 밤을 새워 주었다. 이런 일에 경험이 나보다는 많은 녀석이었는데 그냥 술 먹고 밤을 새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을 꼬박 새우고 우리는 새벽에 화장터로 떠났다.

  발인부터 화장장 그리고 납골당까지 일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해서였는지 더 정신이 없었다. 모든 일정을 같이한 친 인척들과 친구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눴다. 모든 분들께 감사했다. 끝까지 같이 해주셔서 우리도 장인어른을 잘 보내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장인어른의 영혼이 진짜 주현이에게 날아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간 것일까? 그 일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든 일정이 지나가고 나와 가족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같이 일주일을 보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는데 시간을 썼다. 그간 부족했던 수면시간을 보상해 주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삼우제까지 지내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상을 치루는 동안 동물 병원에 맡겼던 쿠키는 다시 장모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녀석은 혼자 시간을 보내셔야하는 장모님에게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결정이라는데 모두 합의했다. 그리고 각자가 보내던 일상으로 복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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