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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55화. 내 작업실.
작성일 : 20-09-29 16:05     조회 : 288     추천 : 2     분량 : 7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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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내 작업실.

 

 

  세종이 녀석이 촬영 전부터 일찍 끝날 거라는 촬영 날이 왔다. 나가는 일마다 거의 밤을 세다 시피 하다 보니 솔직히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잇몸치약 촬영이었는데 연기자는 국민 엄마로 불리는 분이었다. 이 분은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니어서 본인이 오케이를 하면 더 이상 감독이 테이크를 할 수 없는 연기자이기 때문에 촬영이 일찍 끝날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연출 감독도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라 세팅을 하는 일에 많이 관여하지 않아 진행 속도가 무척 빨랐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몇 신을 더 찍더니 거짓말 처럼 촬영은 진짜 끝이 났다. 이렇게 빨리 끝난 촬영은 처음이었다. 일찍 끝난 것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세종이와 술 약속을 했다. 나는 장비를 사려서 사무실에 들려야 했고 세종이는 다른 촬영장소 헌팅 일정이 잡혀 있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안양에 나가면 얼추 시간이 맞을 거 같았다.

 

  광고를 비판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지금은 그 광고판에서 일을 하며 밥을 먹고 살고 있다. 아이러니 하지만 그런 현장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조명일을 시작한 이유였었다.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직접 촬영 현장을 내 눈으로 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사무실에 들러서 내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다시 약속장소인 안양으로 나왔는데 아직 시간은 7시로 일렀다. 세종이와 통화를 해보니 녀석도 헌팅을 마치고 집에 거의 도착을 했단다. 선생님과도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 화실로 향했다.

  같은건물의 지하로 이사를 하신 선생님 화실에 들어서는데 역시 지하여서 그런지 입구에 들어서자 곰팡이 냄새가 피어 올랐다. 컴퓨터로 음악을 켜놓고 선생님은 한쪽에서 그림을 그리시는데 열중이셨다.

  “ 오! 유 박사 얼마만이야? 어서와. 어서와.”

  중간 중간 쉰 목소리가 올라오시는 음성으로 나를 맞아 주신다. 선생님은 말을 한참을 안 하다가 갑자기 말을 하시면 종종 쉰 목소리가 섞여서 나오신다.

  “ 오랜 만이네요. 요즘 저는 일한다고 정신이 없어요.”

  선생님께 세종이가 하고 있는 광고 조명 일을 시작했다고 말씀을 드렸다.

  주현이가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업체를 찾아내어 직접 문구와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인 청첩장이 마침 집에 도착을 해서 가지고 나온 참이었다. 선생님께 안양 화가들과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청첩장을 넉넉하게 챙겨 드렸다. 한 분 한 분 찾아뵙는 일이 맞지만 빡빡한 스케줄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 유 박사랑 주현이가 드디어 결혼을 하는구나.”

  우리가 다시 재회를 한 공간이 선생님 화실이었는데 이제 지하로 자리를 옮기면서 더 이상 그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 아무래도 지하는 좀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작업들도 거의 종이에 그리신 건데 나중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진심 걱정됐었다. 지하실은 아무리 관리를 해도 곰팡이의 공격을 피해갈수 없다.

  “ 이제 화실에 배우러 오는 사람도 한 사람 밖에 없고 동생한테 지원 받는 걸로 연명하려면 어쩔 수 없어.”

  그간 보증금도 다 까먹었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더 나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

  상념에 싸여 있을 무렵, 세종이가 도착했다.

  “ 여어. 오 박사 진짜 오랜만이다. 어서 와.”

  선생님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박사라는 칭호를 붙이신걸까?

  “ 언제 지하로 옮기셨어요? 지난번에는 왔다가 그냥 갔었어요. 선생님도 이제 핸드폰도 쓰시고 그러세요.”

  아직 선생님이 핸드폰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르는 세종이었다. 선생님도 신변에도 큰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선생님 아버지가 전립선암에 걸리신 것이었다. 노인이셔서 암의 진행이 빠르지 않아 병원에 입원을 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신 눈치였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술을 사와야겠다. 언제나처럼 술은 화실에서 마실 것이다. 어차피 올 사람도 없다고 하니 마음은 한결 편안했다. 술과 안주를 사와야겠다.

  안양 중앙시장은 언제와도 반갑다. 평소에 화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식사를 잘 챙겨 드시지 못하신 탓일까? 선생님은 예전보다 많이 수척해 보였다. 오늘 오랜만에 선생님과 배터지게 한번 먹어야겠다. 되는대로 포장이 되는 것들을 다 사보자. 그렇게 우리는 선생님 화실을 나와 족발에 만두 그리고 전집에 들러서 전도 조금 샀다. 돌아오는 길에 할인 마트에 들러서 술도 넉넉하게 샀다. 그 사이 선생님은 그리시던 그림을 다 정리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 많이도 사왔네. 일루 와.”

  그림을 그리시던 탁자를 어느 정도 정리를 해 논 상태였다. 선생님의 굽은 팔처럼 의자들도 다리가 약간 굽어 보였는데 앉아보니 역시나 기우뚱 거렸다.

  “ 요즘 바쁜가봐? 도통 연락들도 없고 세종이는 돈도 잘 번다며?”

  선생님은 세종이가 감독으로 입봉한 사실을 아시는 눈치였다.

  “ 이제야 바빠진 건데요. 뭘. 지금까지 계속 한가하다가.”

  실제로 세종이는 입봉하기 전까지 한 달에 5일 정도만 일을 했다. 세종이 역시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었는데 희한하게 그림 그리는 일을 포기하고 나니 금방 입봉을 할 기회가 찾아왔다.

  “ 주민이는 8월 말에 결혼을 한다고? 축하한다.”

  결혼식 하기 전에 웨딩 촬영도 해야 하고 예물도 맞춰야 하고 신혼 여행계획도 세워야 하고 할 일이 많았지만 갑자기 잡히는 촬영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준비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 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결혼까지 하는 일에는 화실도 역할을 참 많이 했는데 위치가 바뀌어서 좀 섭섭하네요.”

  “ 선생님이 여기 있는데 뭐가 문제야. 왠지 주민이 결혼하기 전에 오늘 보는 게 마지막일거 같구나. 한 잔하세.”

  결혼식까지 석 달 정도 남았지만 아마도 선생님의 예측이 맞을 것이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스케줄은 앞으로의 나의 일과가 어떻게 될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 근데 왜 갑자기 보자고 하셨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 다름이 아니라 유 박사. 한국미술연합회라고 전에 재명이가 이끌던 단체 기억하지? 거기에 재명이가 죽은 다음에 회장을 하는 윤진씨라고 있어.”

  예전에 작가들이 모였을 때 나와 주현이더러 회원이 되라고 하셨던 분이셨다. 재명이라는 분은 한국미술협회에 버금가는 협회를 만들겠다고 열심히 노력하신 분인데 안타깝게도 작년에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 하셨다.

  “ 알죠. 기억하죠. 윤진씨라는 분은 이번 가을에 전시 같이 하시는 분이잖아요.”

  전에 안양에서 작가들 모임을 갖고 나서 차가 끊겨 집에 가기 애매했던 상황이었는데 윤진씨라는 분이 차를 가지고와서 가는 방향이 같다며 차를 태워다 주셔서 편하게 온 적이 있었다. 나와 같이 안산에 사시는 분이셨다.

  “ 유 박사 기억하는 구나. 그 윤진씨가 유 작가 사는 동네에 작업실이 있는데 그걸 유 작가한테 팔고 싶어 하네. 어떻게 생각해?”

  지나가는 말로 작업실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다. 흥미 있는 제안이었다. 우리도 올해 결혼을 하면 작업실과 집을 분리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집은 조금 집 답고 작업실에서는 맘대로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벌이가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보증금에 월세까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 오. 주민이 이제 작업실도 생기는 거야?”

  세종이도 신기한 듯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 근데 작업실이면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저 돈 없어요.”

  4 개월을 꼬박 벌어논 돈으로 버티고 나니 앞으로의 생활비 말고는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 아니. 잘 들어 봐. 그 작업실을 동생이랑 경매로 싸게 샀던 모양이야. 그리고 누군가 한테 잠시 쓰라고 내어 줬는데 제 집처럼 쓰면서 나가지도 않고 아주 골치가 아픈가봐. 그래서 주인이 바뀌면 나갈까 싶어서 판다고 하니 아마 가격도 조정이 가능할 거야.”

  경매로 샀지만 지금은 본인이 쓰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뺏긴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그분도 돌파구가 필요해 보였다.

  “ 그러면 나중에 한 번 뵙는 걸로 하죠. 주현이랑 같이.”

  안 그래도 전시 때문에 안양 중심으로 작가들이 종종 모이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윤진이 누나는 언제나 자리를 같이 했다.

  “ 그리고 말이야 원호알지? 이번에 전시 진행하고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인터넷으로 그림을 파는 업체를 아는 모양인데 우리들이랑 언제 같이 가보자고 하더라고. 거기 가서 상무라는 사람이랑 상담도 한 번 하고 그러 자네. 이름이 뭐라 했더라. 아 맞아. 포털아트라고 했어.”

  포털아트라면 예전에 잠깐 역삼동에 살 때 버스를 타고 자나가다 보면 볼 수 있었던 미술품 경매회사가 아닌가? 나는 언제 저런데 캐스팅이 되나 싶었는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 포털아트요? 잘 알죠. 인터넷 경매로 승승장구 하고 있는 회사잖아요.”

  “ 역시 유 박사는 알고 있었구나. 거기 언제 영길이랑 주현이랑 같이 가보자고.”

  무슨 영문으로 부르셨나 싶었는데 진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동안 일만 하느라고 그림은 뒷전이었는데 이제 다시 열심히 작업을 해야 할 구실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얼마 전에 굶어 죽었다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살던 곳이 안양이었다며. 그것도 석수동.”

  내가 살았던 석수동에는 석수시장이 있었는데 상권이 죽어가는 석수시장을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와서 동네를 살리겠다고 아트마켓이며 다양한 시도를 한 곳이었다. 학교를 다니며 이론수업을 들었을 때 관련된 내용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 그렇다고 하더라고 대내외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충무로에서는 기대주였다고 했다던데.”

  선생님도 그 소식을 들으신 모양이었다. 갑상선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고 있던 작가는 김치와 밥을 나누어 달라는 메모를 집 앞에 남기고 허망하게 죽어 갔다. 21세기에 그것도 한국에서 내가 나고 자란 고향 같은 석수동에서 그것도 예술을 하는 사람이 이런 쓸쓸한 죽음이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퍼졌다. 이야기가 우울해 지면서 술자리는 파했다. 시간이 지나 그 작가의 죽음은 예술인 복지법이 만들어지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아직 5월이 다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5월 초에 일을 시작한 나는 열흘을 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오버 차지까지 생각하면 적당한 정도로 일을 한 것이다. 이제 5월에 남은 날들은 다른 일에 집중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작업실은 주현이와 상의 끝에 사기로 결정을 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은 다 쓰고 없었다. 하지만 주현이 동생과 오빠가 신혼여행을 가라고 보태어준 돈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주현이와 이야기 하는 도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신혼여행을 가라고 보태준 돈이었지만 우리는 그 돈으로 작업실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신혼여행이야 나중에 여유가 더 생기면 가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집을 살 때 도움을 받았던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써주었다. 주현이가 윤진이 누나와의 협상에서 가격을 많이 낮춰 합의점을 찾았다. 이 누나도 얼마나 이것을 팔고 싶었으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줬을까 싶었다.

  10 년 전에 900만 원 정도에 경매에서 낙찰을 받은 것을 우리에게 650만원에 팔기로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쏟아 부어야 만들 수 있는 돈이었다. 우리가 열심히 하는 젊은 작가니까 거저 준다는 생각으로 파는 것이라고 했다. 정말 진심으로 고마웠다.

  기분 좋게 계약서를 쓰고 법무사에게 넘겼는데 상상도 하지 못한 세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산 가격으로 산정된 세금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공시지가가 높으면 세율이 공시지가에 맞게 산정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이런 홍두깨는 없었다. 수임료와 세금을 합쳐 300 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피눈물을 흘리며 내야 했다. 수중에 있던 모든 돈을 쏟아 부었기에 세금을 낼 돈이 있을리 없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현금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주현이가 오랜 시간 부어온 주택 청약이 있었다. 그 청약을 깬다면 그 돈으로 세금을 낼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청약을 깨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업실은 생겼지만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 맘 놓고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 작업실이 있는 건물은 건설사가 짖다가 망하는 바람에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건물 내부나 외부가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쓰기에는 너무 좋았다. 외관이 그래서 그렇지 입주해 있는 회사나 사무실도 많았다.

  일이 없는 날이면 나도 작업실에 나와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포털아트에 그림도 가져가야 되고 해서 한 동안 통 연락이 없었던 청담동 갤러리에 전화를 했다. 전에 통화를 자주하던 큐레이터는 이직을 했고 대표와 전화를 하려고 여려 차례 시도를 해도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없는 시간을 내서 청담동 갤러리 자리에 가보니 짐을 다 빼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내 눈 앞 에 벌어지는 일에 나는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내 피 같은 그림들. 전시 때문에 키핑을 하자고 해서 무심결에 계속해서 동의 해줬는데 이제 나는 어디가서 내 그림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막내 큐레이터와 통화가 이루어 졌는데 그녀는 이직을 한 상태여서 전 직장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더 적극적으로 뭘 알아보려 해도 잡히는 스케줄은 나를 주저 앉혔다.

  ‘부동산으로 중국에 투자를 한다고 하더니 뭐가 잘 안됐나?’

  그저 그렇게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기다려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어차피 포털아트에서 팔수 있는 그림들은 소품 같이 작은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판매 동향을 보니 대체로 작은 사이즈의 그림들이 잘 팔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그림을 그려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에 실핏 줄이 터지도록 그림을 그려야 했던 그 시절의 나는 지금까지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밀어부쳐 왔다. 하지만 미국 발 경제 위기에 연일 터지는 미술계의 악재 앞에 종이 장 같이 가벼운 무게로 무너졌다. 의지도 의식도 모든 것은 흐려지고 있었다. 솔직히 이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절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실망스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꼬여버린 상황이라도 이룰수 없는 꿈 일지라도 꿈을 꿀 수 있었고 그 꿈으로 향해 주현이와 같이 걸어가는 길은 나에게 있어 축복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성공과 실패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작은 실수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시간이 날 때 마다 소품 작업을 해야 했다.

  조명일은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그 전날부터 시간의 구애를 받기 시작한다. 집합 시간이 이른 새벽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일찍 잠에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야행성 인간이었기 때문에 술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대체로 새벽 4시 반 정도 집합인 경우가 많았는데 9시 정도 쯤에는 늦어도 10시 정도 에는 잠에 들어야 했다. 적당히 나를 재워줄 정도라면 막걸리 두 병이면 족했다. 술도 술이지만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도 중요하다. 예전부터 나는 속이 비어있으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여차하면 밤을 새는 직업의 특성상 수면 관리를 잘못하면 일을 나와서 좀비 같은 몸으로 일을 할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기민하게 수면을 관리해야 한다. 아직까지 관리하는 방법이 술밖에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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