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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64화. 다시 그림.
작성일 : 20-09-29 16:26     조회 : 300     추천 : 2     분량 : 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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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다시. 그림.

 

  10월이 되기 전까지 지금 준비하는 작품들을 많이 완성해야 한다.

  조금 투박하긴 하지만 감광기도 만들었다. 이제 사진을 잘 골라서 인물화를 그려야 한다. 10월에 잡지사 인터뷰가 갑자기 잡힌 까닭에 모든 일들을 서둘러야 했다.

  주현이에게 골프 그림을 주문한 대표님은 주현이가 그림들도 많이 그려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양을 그리기는 쉽지 않았다. 너무 많은 수정을 원했고 그때그때 마다 한고비 한고비를 넘는 것 같았다. 역시 의뢰받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쉽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잡지사와의 인터뷰는 포털아트를 나와 새로운 사이트를 만드신 장 이사님이 주선해 주신 것이었다. 영길이도 두 달 전 엔가 인터뷰를 한 곳이다. 영길이 작품은 다행히도 사이트를 옮겨도 잘 팔리는 편이었다.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누나의 간병일이 끝난 영길이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졌었기 때문이었다. 영길이의 누나는 간병인을 쓰는 대신에 영길이에게 일을 맡기면서 일정 부분의 돈을 주고 있었다.

  그 무렵, 한 동안 연락을 하고 지낸지 오래된 영규와 통화를 했다.

  “ 그래. 영규야. 바쁜 일 없으면 안산으로 원정 한 번 와야지.”

  물류 또한 변화가 있었는데 필진이 형은 결국 일을 그만 두었다. 투 잡을 뛰고 있던 필진이 형의 체력은 새벽에 하는 물류 일을 버텨내지 못했다. 그렇게 물류에 혼자 남겨진 영규는 사람을 한 명 뽑아 일을 하고 있었다. 영길이가 들어가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영길이도 누나가 병에서 완전히 완치될 때 까지 곁에 있어줬으니 이제는 제 돈벌이를 해야 했다.

  “ 네. 형. 다 털어내셨나 보네요. 저야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영규를 부르는 이유는 영길이의 직업 청탁을 위해서다. 주변머리가 없는 영길이 녀석은 물류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더라도 제 입으로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일부러 술을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일요일 오후로 약속을 잡았다. 성당에 다니는 영규는 미사를 보고 안산으로 넘어올 것이다. 내가 일할 때만 해도 차가 없어 뚜벅이 신세였던 녀석은 이제는 어엿한 자가용 유저가 되어 있었다. 평소 중국 술을 좋아하던 녀석은 안산 원곡동에 있는 중국 상회에 들러서 이 것 저 것을 사온다고 했다. 뭔 술을 사올지 모르던 우리는 그저 중국요리를 시켜 놓고 녀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영규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을 했다.

  중국요리를 시킬 때 고추잡채와 마파두부를 주문하라고 미리 알렸던 녀석이었다. 우리는 보통 탕수육 세트나 깐풍기 세트를 즐겨 먹었었는데 녀석이 준비한 술과는 궁합이 영 안 맞았던 모양이다.

  형규 녀석은 공부가주와 연태고량주 등등 중국 술을 여섯 병정도 사왔다. 송화단이라고 불리 우는 계란도 사왔는데 녀석의 말에 따르면 삭힌 계란이라고 했다.

  영규 녀석은 독한 술을 좋아한다. 빨리 취하고 빨리 깨서 좋다고 하는데 녀석은 이빨이 부정교합이라 음식을 잘 씹지 못했다. 그래서 늘 소화불량에 시달리다 보니 배가 불러 더부룩한 것을 싫어했다. 반면, 영길이와 나는 주로 막걸리를 즐겨 먹었었는데 다른 이유보다는 오락을 하면서 즐겨 먹기 좋았기 때문이다. 피자 두 판 시켜놓고 축구오락을 하면서 즐기기에 좋았다. 장 시간 게임을 하 기에도 핑거 푸드인 피자가 안주로서 제격이었다.

  “ 귀한 술 많이 사왔네.”

  전에 같으면 한 두 병만 중국 술을 먹고 소주를 먹었었는데 오늘은 아주 작정을 했나보다.

  “ 주민이 형 상 치르고 처음 보는 건데. 힘 좀 줘야죠.”

  그렇다. 벌써 계절은 가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녀석들과 조우한지도 벌써 3 개월이나 흘렀던 것이다. 그간 작품을 한다고 정신도 없었다.

  “ 그랬구나. 아무튼 반갑다.”

  술을 먹기로 한 곳은 새로 이사한 영길이네 집이었다. 전에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 가면서 영길이는 고역을 치뤘었는데 다행히 우선 변제 순위가 높아서 보증금을 다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더 넓은 전세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녀석도 이제 몇 달 있으면 결혼 한다. 그래서 영길이는 더욱 더 고정 급여가 필요했다.

  예전부터 술을 먹는 자리에서 우리는 다양한 차원의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예술부터 종교 그리고 영화.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로 소통했다. 그래서 인지 언제나 술자리는 즐거웠다.

  “ 영규야. 영길이랑 같이 일하는 것이 너한테 훨씬 좋지 않아?”

  내심 고심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술이 어느 정도 올라 와서야 나도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 저야. 영길씨만 좋다면야 당연하죠. 근데 영길씨 작품 때문에 바쁘시잖아요.”

  서로 연락을 잘 안했는지 속사정을 통 모르는 눈치였다.

  “ 영길이 누나. 이제 완치 되가지고 괜찮아. 물류 다니면서 작품 해도 돼. 병원에서 간병하면서도 했는데.”

  이제는 펜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던 영길이는 작은 작품을 할 때 같으면 이젤이 없이도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 맞아요. 영규씨. 자리 있으면 넣어 주세요.”

  영길이 녀석도 술김에 용기가 생겼는지 말을 보탰다.

  “ 그래요? 진작에 연락을 먼저 해 볼걸 그랬네요. 지금 일 나오는 녀석은 공시생이라 별로 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제가 억지로 데리고 일시키고 있는 거거든요.”

  일이 돌아가는 걸 보니 조만간에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을 준비한다면 시험에만 매달리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 그럼. 그 녀석이 금방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 녀석 입장도 입장이지만 최대한 영길이가 되도룩 빨리 물류로 들어가야 했다.

  “ 그렇죠. 다음 주에 가서 진지하게 말해 볼게요.”

  영규와 영길이는 내가 나오고 나서도 계속 같이 물류를 했었다. 이제는 필진이 형도 없고 지저분한 물류도 다 떨어져 나간 상태라고 하니 아마도 일하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수익을 배분하는 문제는 녀석들의 문제이다 보니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이야기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갑자기 녀석들을 모아서 두서없이 말을 했는데 소정의 성과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아 떨어 진 녀석들을 뒤로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큐알아트에 가져갈 그림들을 다 완성했다. 큐알아트는 포털아트에서 따로 나와 장 이장님이 차린 새로운 회사이다. 일산으로 다시 이사를 하면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시는 곳이었다. 우리의 인터뷰가 일정에 있어서 밤을 세다 시피하면서 작품을 준비했다. 인물을 그려놓은 작품들은 많았지만 판화를 찍을 때는 한 번에 찍어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감광을 하면서도 실패를 거듭했기에 시간이 많이 늦어진 것도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정신이 없었다.

  경제지 기자와의 인터뷰를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다른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료하게 기억이 났다.

 ‘우리는 부부 화가로 사는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서로의 작품과 작품세계를 가장 존중합니다. 그렇게 더디지만 우리의 방식대로 길을 찾아 갈 겁니다.’

  정리가 된 언어로 이야기를 하진 못했지만 요지는 그랬다.

  작품이 잘 팔리기를 기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일을 그만 두고 작품에만 매진을 하게 된 것도 반년을 넘기고 있었다. 피곤했던 하루 일과를 겨우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 주민아. 나 심장이 이상해. 뛰다가 안 뛰다가 해.”

  주현이의 맥을 짚어보니 맥박이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얼마 전 부터 걷는 것도 힘들어 하는 것이 주현이의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 아침 먹고 가까운 병원에 가보자.”

  식사를 대충하고 가까운 내과에 내원했다. 평소 감기 같으면 혼자 들어가게 했는데 오늘은 같이 들어갔다. 마주한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이야기했다. 의사 선생님은 가만히 청진기로 주현이의 심장 박동을 들었다.

  “ 평소에 부정맥이 있었나요?”

  ‘부정맥이라면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었다는 것을 묻는 것인가?’

  예전에 조명 일을 할 때 욱이형이 협심증이 있다며 부정맥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 적이 있었다.

  “ 아뇨. 외할머니가 부정맥으로 고생을 하신 적은 있어요.”

  의사 선생님을 차트에 뭔가를 쓰시더니 피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바로 검사가 진행 되었고 검사 결과도 바로 받아 볼 수 있었다.

  “ 갑상선 항진증으로 의심됩니다. 혹시 최근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 몇 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는데. 그 후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느꼈어요.”

  극심한 스트레스라면 아마도 그때 받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 수치상 의심스러운데 대학 병원에 가셔서 다시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소견서를 내어 주셨다. 만약에 갑상선 항진증이라면 여기 내과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는 말도 하셨다.

  몇 년 전에 큰 누나가 갑상선에 종양이 생겨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갑상선 제거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누나가 수술을 하고 안정을 찾고 있는 모습을 잠깐 가서 보고 왔을 때가 생각이 났다. 누나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가족들에게 거의 티를 내지 않았었다.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몸이 안 좋고 아파서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그냥 어른스럽게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람은 때때로 괜찮치 않다고 말 할 용기도 필요하다.

  우리는 바로 고대 안산병원으로 향했다. 차를 주차하고 접수처로 향했는데 병원의 풍경을 또다시 접하니 머리가 멍해졌다.

  내분비 내과로 가라고 했다.

  내분비 내과로 가니 검사할 것들이 많았다. 피 검사도 다시 하고 심전도. 그리고 초음파와 x-ray까지 순서에 따라 검사를 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온 거라 대기 시간이 길었다. 두 시간 남짓 기다렸을까? 주현이 순서가 돌아왔다. 그 시간 동안 핸드폰으로 갑상선 항진증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료를 탐독하고 있었다. 갑상선 암만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 갑상선에 염증이 있어서 지금 항진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항진증이란 갑성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과도하게 나와서 몸을 힘들게 하는 증상이에요. 약물로 충분히 조절 할 수 있는 정도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 안정을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날 수 있어요. 이것 역시 갑상선 항진증의 증상 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주현이가 요즘 아무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는 그저 조금 예민해져 있다고 생각 했었는데 질병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 어떻게 치료해야 되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던 주현이가 입을 뗐다.

  “ 일단, 약을 처방해 줄 거 에요. 그 약을 충실하게 드시고 갑상선 항진증은 쉬어야 낫는 병입니다. 마음 속 스트레스도 관리를 잘하셔야 하고요.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몸이 닳아 없어질 만큼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주현이 몸이 그만 좀 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더 많은 부분을 도와줘야 될 것 같았다.

  병원을 나오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 충재냐? 무슨 일이야?”

  오랜만에 충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주현씨 어때? 많이 좋아 졌나하고.”

  근처에 살면서 때때로 술을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가장 잘 알고 지내던 사이다 보니 안부 차 연락을 했나 보다.

  “ 글쎄다.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하자.”

  평소에 거짓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다 보니 편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 이번 돌아오는 토요일에 뭐 일정 있냐? 소주나 한 잔 하게.”

  예전처럼 치고 들어오는 녀석을 쉽게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도 언제까지 침잠되어 있을 수도 없었다.

  “ 그래. 주말에 별일 없으면 보자.”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 사내 녀석들을 전화로 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 그래. 연락하자.”

  오랜만에 걸려온 충재의 전화도 그러하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주현이를 쉬게 했다. 밥도 차려주고 약도 먹이고 잠도 재웠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다보니 갑자기 피곤해 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아침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니 잠이 쏟아졌다.

  장인어른의 투병 생활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현이가 투병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증상이 심하지 않아 약을 먹으면 거의 정상 생활이 가능 하다고 히니 의사 선생님의 말에 위로 받기로 했다.

 

  충재와 약속을 했던 주말이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녀석들은 외식을 하자고 했지만 나는 집에서 음식을 차렸다. 오늘의 메뉴는 돼지 안심 스테이크와 발사믹 올리브 오일 샐러드에 크림치즈 파스타였다.

  집에 먹다 남은 와인도 있어서 직접 소스도 만들었다.

  스테이크를 굽고 난 육즙이 남은 펜에 마늘과 올리브 오일에 와인을 붓고 우스타 소스와 식초, 설탕과 간장을 조금 넣으면 근사한 소스가 완성이 된다.

  충재와 유리가 도착을 했다고 뭐 필요한 거 있냐고 연락이 왔다. 유리는 충재의 부인이 되었다. 내가 우유 일을 그만두고 난 시점부터 많이 친해졌는데 한 동안 녀석들을 보지 못했다.

  “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문을 열어 주자 들어 오면서 충재가 한 말이다.

  “ 오빠. 진짜 오랜만이에요. 언니는요?”

  유리도 인사를 건넨다. 녀석은 친구의 부인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5살이나 어린 동생이어서 마치 친 동생같이 편하게 나를 대한다.

  “어서와. 오랜만이지. 어떻게 바쁘게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 주현이는 주방에서 열심히 상보고 있지.”

  어떻게 된 것이 백수가 더 바쁜 것 같았다. 작품이 돈이 되기 시작 하면서 우리는 직장에 출,퇴근을 하듯이 작업실을 매일 같이 드나들고 있었다.

  뛰어 들어 오듯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보고 싶었나 보다. 충재 내외가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학원을 연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결혼을 하고 그 이듬해에 충재도 결혼을 했다. 신접살림도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얻었다. 안산에서 살고 있는데 친구가 근처로 이사를 올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었다.

  “ 어? 쿠키가 없네? 어디 갔어요?”

  녀석들은 쿠키의 부재를 빨리 알아 차렸다. 쿠키가 있을 때도 유일하게 쿠키랑 잘 섞여 놀았던 녀석들이다. 다른 친구들은 쿠키를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쿠키는 입질을 하는 녀석이었다. 나도 참 많이 물렸다.

  “ 쿠키 다시 용인으로 보냈어. 장모님 적적하실까 봐.”

  쿠키는 용인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원래 거기 살던 놈이었으니 말하면 뭐하랴.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느리지만 우리 모두는 일상으로 제 위치로 돌아오고 있었다.

  “ 오빠. 오늘 메뉴는 뭐에요? 저 배가 등짝에 붙을 거 같아요.”

  메뉴가 뭐냐고 만나기 전부터 계속 물어왔지만 김새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었다. 종종 내가 요리를 해줬던 터라 기대치가 높은 녀석들이다.

  “ 그러게 몇 번을 물어봐도 가르쳐 주지를 않아. 냄새로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충재 녀석은 감이 무디다. 그래서 만나면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나름 기대를 하고 온 모양이다. 녀석들은 평소에 아침식사를 하지 않아 우리 집에 올 때 저녁시간에 이르기 까지 한 끼만 먹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극한의 시장 끼가 해주는 음식을 더 맛있게 먹는 요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그래. 기대를 하고 왔다니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구나. 어서 앉아 식사들 하자.”

  샐러드와 스테이크는 미리 만들어 놓았다. 파스타 면도 먼저 삶아 놔서 미리 만들어 놓은 소스에 볶기만 하면 조리는 끝이다. 오늘의 요리가 이탈이안 식이다 보니 술도 와인을 준비했다.

  “ 와. 오늘 칼질 하는 거 에요? 와 신난다!”

  유리가 메뉴의 반가움에 환호했다. 충재 또한 눈빛을 보니 스테이크가 오랜만 인 것 같아 보였다.

  “ 그래 자 먹자.”

  미리 준비해 놓은 와인 잔에 와인을 따랐다. 비싼 와인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를 살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돼지 안심은 너무 두꺼워서 절반을 저며 크기를 더 크고 간이 잘 밸 수 있도록 했다. 소고기와는 달리 완전히 익혀서 먹기에 적당했다. 고기 육수로 만든 소스도 짜지 않고 감칠맛과 단맛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배가 많이 들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에 바쁜 녀석들이었다. 주현이도 옆에서 잘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도 한 잔하고 근황도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주민아. 나도 조만간에 유화를 한 번 도전해 볼까해. 네가 조금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떤 연유라고는 말해주진 않았지만 그림을 다시 그려 보고싶다는 말로 들렸다.

  “ 그래? 내가 재료 준비 도와줄 수 있지. 뭐 그리고 싶어진거 있어.”

  강사 이후 충재 녀석은 줄곧 연필만을 고집해 왔기 때문에 그 점이 의아했다.

  “ 그냥 자동차 같은 거 그려 보려고. 내가 원래 공업 디자인 하고 싶어 했잖아.”

  단순한 대답이었지만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 가장 그림을 그리는 일에 큰 동력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러려니 했다.

  “ 나중에 재료 사러 갈 때 같이 가보자.”

  재료를 사서 그림을 그리는 환경을 준비하는 것이 그림 그리는 일에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번 방학 끝나면 우리 일본 여행 다녀오려 구요. 친한 동생 커플이랑 가기로 다 예약했어요.”

  배가 좀 찼는지 유리 녀석도 대화 끼어 들었다.

  “ 그래? 돈 좀 벌었나본데. 해외 여행도 가고.”

  “ 요즘 가면 제주도 여행보다도 싸거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본 여행 뿐만 아니라 동남 아사아 여행 상품도 싼 것들이 많았다.

  “ 후쿠시마 원전 때문에 일본 여행은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2011년에 쓰나미에 직격탄을 맞은 후쿠시마 지역의 안전은 그 누구라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 거기서 먼 지역이라고 들었어요.”

  “ 그래도 조심 해야지.”

  토양과 수질까지 오염이 됐다고 가정 한다면 어디라도 위험 할 수 있다.

  “ 그나저나 지난번에 언니가 알려준 한의원가서 약 지어 먹고 있어요. 몸에 잘 맞는 거 같아요.”

  자궁이 좋지 않았던 유리는 아이를 금방 가지고 싶어 했지만 자궁 탓인지 쉽게 임신이 되지 않았다.

  “ 그래. 잘됐네. 왠지 유리가 나보다 먼저 엄마가 될 거 같아.”

  갑상선염에 걸린 주현이는 약을 먹고 있었고 호르몬이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당장에는 임신을 생각할 수 없었다.

  “ 무슨 소리에요. 언니. 비슷하게 가져서 비슷하게 낳아야죠.”

  유리는 주현이와 손 뜨개질 이라는 취미가 같았다. 같은 관심사를 갖게 되면서 두 사람은 급격하게 친해졌다.

  “ 근데. 얘들아. 할 말이 있는데. 주현이 갑상선 염이래. 그래서 항진증 때문에 몸이 요즘 힘들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마냥 즐거울 것만 같던 오늘 만남에 불운의 기운이 뻗치는 것을 느낀 것이다.

  “ 어떡해요? 언니.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많이 힘들었겠다.”

  유리가 감정이 올라왔는지 말을 잊지 못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보는 자리였다.

  “ 약 먹고 관리만 잘하면 금방 낫는다고 했어. 주민이가 많아 케어해 주면 금방 나을 거야. 걱정하지 마.”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유리를 주현이가 위로한다. 좋은 일에 기뻐해주고 슬픈 일에 서로 보듬어 주는 사이가 어느 덧 되어 버렸다.

  “ 주민이 오빠. 와인 말고 다른 거는 없어요?”

  갑자기 술이 당기는지 다른 술을 찾는다.

  “ 야. 너 한약 먹는 애가 술 마시면 안 돼.”

  일단 예의상 말려보기는 해야겠다. 원래 맥주를 좋아해 충재와 내가 소주를 마시고 있으면 언제나 옆에서 맥주를 따로 마시던 녀석이었다.

  “ 오랜만에 언니랑 오빠도 봤는데 술 같은 술 한 잔 해야겠어요. 김충재씨 맥주 부탁해요.”

  언제나 부탁을 할 때는 정색을 하면서 김충재씨라고 하는 유리다. 부탁을 받은 충재는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일어나서 맥주를 사러 나간다. 1도 귀찮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커플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 사오는 김에 우리도 소주로 주종을 바꾸자. 충재야?”

  “ 그래. 넉넉하게 사올게.”

  충재가 돌아오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 주현이와 유리는 손 뜨개질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주현이는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손 뜨개질에 매진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30대의 시간을 저장할 만한 적당한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잉여물이 남다 보니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손쉬운 장치라는 것이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집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함이 아니라 시간을 저장한다는 말이 왠지 모르게 철학적으로 다가 왔다. 여성들이 뜨개질 삼매경에 빠져 있을 무렵, 우리는 술을 마시다가 잘 치지도 못하는 당구를 치려 밖으로 나왔다. 그저 술만 마시는 것이 싫어서 나왔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당구여서 승부가 나기도 전에 당구장을 나왔다.

  “ 주민이 네가 게임을 좀 할 줄 알면 이럴 때 피시방가면 딱 좋은데. 워낙 할 줄 아는 것이 없지?”

  충재가 혀를 찬다. 고등학생 때부터 강사를 하는 시절까지 철권 오락은 같이 많이 했지만 나는 피시방에 가서 오락을 하는 것은 꺼려했다. 그 시간에 되도록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러하다 보니 그 흔한 스타크레프트도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친구들과 모이면 술만 마시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 그러게 한참 할 때 나도 좀 할걸 그랬다. 하하.”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며 집으로 향했다. 낙엽을 밟으며 돌아가는 길은 제법 가을 같았다. 소소한 재미로 채워지는 일상들이 다시금 나를 미소 짓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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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캐리커쳐. 2020 / 9 / 29 295 2 6357   
64 64화. 다시 그림. 2020 / 9 / 29 301 2 10415   
63 63화. 장인어른의 죽음. 2020 / 9 / 29 285 2 7079   
62 62화. 영업이란? 2020 / 9 / 29 287 2 5162   
61 61화. 장인어른. 2020 / 9 / 29 275 2 5105   
60 60화. 영업. 2020 / 9 / 29 294 2 6513   
59 59화. 매일우유. 2020 / 9 / 29 289 2 12048   
58 58화. 결혼과 추락. 2020 / 9 / 29 294 2 6725   
57 57화. 밤샘촬영. 2020 / 9 / 29 294 2 8110   
56 56화. 세트장 촬영. 2020 / 9 / 29 286 2 13331   
55 55화. 내 작업실. 2020 / 9 / 29 283 2 7651   
54 54화. 조명막내. 2020 / 9 / 29 279 2 9320   
53 53화. 벽화. 2020 / 9 / 29 289 2 13871   
52 52화. 안산으로. 2020 / 9 / 29 293 2 12180   
51 51화. 성수기. 2020 / 9 / 29 301 2 11036   
50 50화. 다시 안양으로. 2020 / 9 / 29 280 1 11929   
49 49화. 전속작가. 2020 / 9 / 29 289 1 8768   
48 48화. 아트페어. 2020 / 9 / 29 290 1 13354   
47 47화. 다시 물류. 2020 / 9 / 29 282 2 7504   
46 46화. 물류. 2020 / 9 / 29 291 2 13402   
45 45화. 굿바이. 경륜장. 2020 / 9 / 29 288 2 6926   
44 44화. 이사. 2020 / 9 / 29 283 2 9707   
43 43화. 졸업. 2020 / 9 / 29 286 2 5936   
42 42화. 4학년. 2020 / 9 / 29 300 2 13231   
41 41화. 중국집. 2020 / 9 / 29 294 1 7374   
40 40화. 반갑다. 은식아. 2020 / 9 / 29 289 2 5263   
39 39화. 경륜장 알바. 2020 / 9 / 29 315 2 8130   
38 38화. 또 다시. 작품을 하라. 2020 / 9 / 29 304 2 13604   
37 37화. 학교생활. 2020 / 9 / 29 296 2 3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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