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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59화. 매일우유.
작성일 : 20-09-29 16:16     조회 : 292     추천 : 2     분량 : 1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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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매일 우유.

 

  그림도 그림이지만 먹고 사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봄에 공모한 전속작가 공모에 선정이 된 나는 안양 예술 공원에 있는 갤러리 대표와 면담을 했었다. 갤러리 대표는 전속 계약을 맺고 갤러리에 위치한 작업실에 1년간 상주하면서 작품을 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인터넷으로 그림도 팔고 있고 대표가 광고 쪽 일을 오래 한 사람이라 방송국에 아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드라마 협찬 같은 일은 쉬운 일이라고 했다.

  광고 대행사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대표는 그야말로 장사꾼이었다. 그런데 나는 정중하게 전속 계약을 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그 당시 기가 막힌 장사꾼과 일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나와 내 작품에 반한 사람이었지 장사꾼은 아니었다. 이미 청담동 화랑을 경함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돈만 너무 밝히는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며 작품을 하는 일은 역시 나에게는 돈만 버는 일이 아니였다. 나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며 나의 성안으로 아무나 들이는 일은 이제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검열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주현이와 건전하게 작품 활동을 잘 할 수 없다고 생각 했다. 그리고 나는 돈 또한 병행하며 벌어야 했다. 갤러리에 서식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를 던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새롭게 찾아온 기회를 나는 타인에게 넘겼다.

  산후 조리원에서 의뢰해서 신생아를 그리기로 한 일도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산후 조리원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잘못 쓰는 바람에 신생아와 산모가 죽는 사건이 발생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이 일이 벌어진 곳이 바로 나와 같이 일을 하려 했던 산후 조리원이었다.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산후 조리원은 문을 닫았다고 했다.

  모든 상황은 그렇게 예측하지 못하는 국면으로 접어 들어갔다.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작업만 한다는 사실을 본가에도 알려 지게 되고 가족들 대부분 내 걱정을 하고 있을 무렵, 작은 매형에게 연락이 왔다. 오뚜기 영업 사원으로 일을 하고 있던 작은 매형이 자주 만나는 업자 중에 매일유업 영업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급하게 직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면접이라도 보겠냐는 것이었다. 수중에 모아둔 돈이 거의 소진 될 무렵이었기 때문에 나는 찬 밥 더운밥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갑자기 면접을 보게 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내가 해야 하는 주된 업무는 경기도 시흥을 중심으로 우유 영업을 하는 것이었다. 주로 사장님은 도매업자들에게 대량의 물건을 값싸게 나온 제품들을 중심으로 영업을하며 배달하는 일을 하였고 나는 그 전에 일을 하던 직원의 거래처를 돌며 영업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일단, 태어나서 영업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먼저 앞섰다.

  일을 시작하고 삼일 정도는 사장님과 같이 거래처를 돌며 길을 익히고 무슨 물건들을 넣어야 하는지를 눈에 익혔다. 싣고 다니는 물건이 너무 다양해서 며칠 사이에 전부를 익히는 것은 무리였다. 다니는 길도 초행 길이어서 핸드폰 네비게이션 어플을 사용하여 하나하나 입력을 해야 했다. 그나마 스마트 폰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하면 서울 우유가 단연 동종 업종에서 으뜸이 아니겠는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었던 우유도 대부분 서울 우유였고 군대에서 지급 하던 우유 역시 서울 우유였다. 그렇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서울 우유를 기본으로 여긴다. 콜라의 기준이 코카 콜라고 사이다의 기준이 칠성 사이다인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그 맛에 각인이 되어 길들여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서울 우유가 아닌 다른 우유업체들은 종합이라는 묘책으로 영업을 해 왔다. 작은 슈퍼 나 큰 마트 상관 없이 유 제품은 서울 우유제품과 타사 제품으로 나뉜다. 마트에 유 제품을 납품하는 업체는 서울 우유와 경쟁을 하려면 다른 제품사들을 종합으로 취급 해야지만 그나마 경쟁을 할 수 있다. 서울 우유는 시유 제품이 가장 큰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시유는 흰 우유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남양이 뒤를 따르는데 남양은 불가리스라는 제품이 주력 제품이고 시유 제품도 서울 우유를 뒤 따르고 있는 2위 업체이다. 프렌치 카페라는 커피 제품도 인기다. 그리고 빙그레는 업계 3위인데 바나나맛 우유와 요플레가 주로 잘 팔리는 간판 제품이다. 그리고 만년 4위 업체인 매일은 브랜드도 잘 나가는 제품도 별로 없는 회사이다. 그런 매일에 내가 입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조명 일을 할 때 추가 촬영 이라며 제품만 촬영을 했던 적이 한번 있었는데 무슨 화장품 같은 것을 찍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촬영이 끝나고서야 알게 됐는데 매일 유업에서 만든 새로 나온 요거트 제품이라고 해서 놀란 적이 한 번 있었다. 디자인 컨셉이나 느낌이 화장품 같아서 놀랐던 것이다. 그렇다. 잘 못 만드는 광고와 마케팅도 회사가 4위에 머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품은 잘 만들어 놓고 홍보를 잘 못한다. 그래서 좋은 제품도 많지만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수 밖 에 없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출근을 한다. 우리 집과 약 10 킬로 정도 거리를 둔 사무실은 한적한 시골 같은 곳에 사무실이 위치해 있었다. 사장님은 일층은 사무실로 2층은 가정 집으로 건물을 임대해 쓰고 있었다. 물왕 저수지가 근처에 위치해 있어 식당들과 카페가 군데 군데 있는 곳이다. 유원지 같은 느낌도 드는 곳이었다. 건물 앞에 텃밭과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계절별로 작게 농사도 지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한적한 길을 지나 사무실로 들어간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제 사장님이 받은 제품들이 차에 실을 수 있게 정리가 잘 되어있다. 작은 사무실은 공장으로 쓸 수 있게 층고가 높게 설계되어 있어서 제품을 쌓아 놓기에 좋아 보였다. 가장 안쪽에 냉장창고가 있는데 신선한 배송을 요하는 제품들은 그곳에 정리가 잘 되어있다.

  포트에 물을 끓여 커피를 타 마시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다 보면 어느 덧 사장님이 내려 오신다.

  “ 주민이 일찍 왔네? 나도 커피 한 잔 먹자.”

  나보다 네 살이 많으신 사장님은 세 아이의 아버지 이자 매일 유업에 다니는 사모님을 두신 분이다. 사내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한 두분. 그래서 인지 일을 하는 중간 중간에 사모님에게 전화를 거는 일들이 많았다. 삼일 같이 일을 하고 다니면서 느낀 점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다 보니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이 대부분의 육아를 전담하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이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 네. 오늘 부터 혼자 거래처 돌아 다녀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PDA가 있어서 나름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마트마다 어떠한 제품이 들어 가는지 다 외울 필요는 없었지만 삼일 동안 같이 다니면서 들었던 이야기 바로 이것이었다.

  ‘최대한 반품이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이 점에서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먼저 앞섰다. 사장님이 각 마트를 돌면서 어디는 뭐가 잘나가는지 제품을 다 말해 주어서 대충은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일을 해서 직접 경험을 해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장님과 돌면서 관찰한 결과 그렇게 관리를 잘하고 있었는데도 하루에 두 세 박스 정도 의 반품은 꾸준하게 나온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 첫 술에 배 부르려고 하지 마. 다 실수 하면서 배우는 거지. 일단, 몇 달은 네 인건비라도 번다고 생각해. 그리고 영업에는 왕도란 없어. 네 스타일대로 하는 거지.”

  사장님도 처음 부터 우유 영업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매일 유업 사무직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전문대 졸이라는 이유로 인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자 사표를 내고 영업일에 뛰어 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치즈 특판으로 대형 마트에 물건을 넣을 수 있어서 그때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는데 대형마트의 물류가 거대화 되면서 이내 거래처를 잃고 다시 우유 총판으로 일을 새로 시작 했다고 했다.

  “ 서울 우유를 우리가 이길 수는 없지만 적당히 견제를 하면서 장사를 할 수 는 있어.”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처음이라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서울 우유 말고는 다른 우유를 사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서 담배를 다 피우고 나면 이제는 화물차에 물건을 싣고 나갈 준비를 한다. 일단, 첫 번째로해야 할 일은 큰 마트에 행사용으로 들어갈 우유를 두 개입으로 포장을 해야 한다. 이런 것까지 일선에서 일일이 영업사원이 포장을 하는 줄은 몰랐었다. 대형마트에는 의례 행사용 상품을 많이 넣어줘야 한다고 했다. 전단지 행사로 손님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이다. 이 전단 상품은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한 미끼 투척용이다. 당시만 해도 마트들이 무한 경쟁을 할 때였다. 대형 마트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시기였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 가고 있었다.

 1 리터 짜리 시유 포장을 하는 양은 내가 얼마 만 큼 넣을 건지를 잘 견지해야 한다. 아직 업무 이해 수준이 떨어짐으로 사장님이 결정을 해 준다. 모든 물량은 사장님의 견지로 주문하고 차에 싣는 것도 사장님의 견지로 한다. 아직 내가 결정하고 납품할 능력이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길이나 잃지 않고 잘 찾으면 다행이었다.

  물건을 다 실을 때쯤 되면 남양 영업소 사장님이 오신다. 행사용으로 쓰는 요구르트 두 박스와 불가리스 3 박스를 주시고 바나나 우유 2 박스와 매일 제품을 가지고 가신다. 서로 행사용이나 주력상품을 교환하는 것이다. 긴밀하게 공조하기 때문에 변방의 삼사는 서로에게 협조적이다. 서로의 거래처를 뺐으려 하지 않고 서울 우유와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한다.

  남양에서 물건을 받고 나면 나는 빙그레 영업소로 간다. 거기서 나도 바나나 우유와 요플레 그리고 쾌변 한 박스를 받는다. 전날에 미리 사장님이 오더를 넣은 것들이다. 그리고 우유속의 시리즈 제품과 남양에서 받은 불가르스를 내어 준다. 우유 속 시리지는 그나마 매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이다. 이 물건이 있기에 그나마 공조에 매일도 낄 수가 있는 것이다.

  빙그레 영업소에는 일하는 사람은 세 명이었다. 우리가 소재한 지역은 시흥인데 당시 시흥은 확장되어 가는 도시였다. 아파트가 계속 지어 지며 입주를 계속해서 하고 있어서 거래처가 늘어날 공산이 컸는데 빙그레 사장님은 공격적으로 거래처를 늘리고 계셨다.

  빙그레에서 물건을 받고 나면 본격적으로 거래처 매장을 돌아야 한다. 마음을 다잡고 출발을 한다. 빙그레 영업소를 떠나 5 분 정도 가면 첫 번째 거래처가 나온다. 공장 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작은 슈퍼다. 첫 번째로 가는 곳이기에 언제나 이른 시간이다. 슈퍼 문을 열자마자 방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마트들은 9시 정도에 오픈을 한다. 대형 마트는 10 시 정도에 오픈을 하는데 그 시간도 잘 조절해야 한다. 첫 번째 마트의 특이점은 마트는 작은데 행사용 요구르트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렇게 작은 슈퍼에는 행사 물건을 거의 주지 않는데 여기는 특이하게 사장님이 계속 요구르트를 납품하고 있었다. 행사 제품은 거의 마진이 없기 때문에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PDA를 부팅 시킨다. 전산이 정상화 되면 마트들 이름들이 다니는 순서대로 정렬이 된다.

  마트에 들어가며 사장님과 목례로 인사를 나눈다. 우리 물건이 진열 되어있는 냉장고를 찾아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날짜를 꼼꼼하게 확인을 한 후 얼마나 물건이 빠졌는지 날짜가 쳐지는 물건은 없는지 확인한다. 하나하나 확인을 해보니 요구르트와 바나나 우유 그리고 가공우유 몇 개만 넣으면 될 것 같았다. PDA에서 출력을 한 영수증 하나는 가지고 다니는 집게가 있는 서류노트에 철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 영수증을 들고 차에 들어가서 물건을 찾아 넓은 파레트에 물건을 보기 좋게 담아와 사장님과 물건이 맞게 들어가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영수한 금액을 현금으로 받는다. 받은 현금은 조끼에 잘 넣어 보관하고 그 금액은 일일 정산을 할때 서류에 기입해야 한다. 거래처를 다 돌고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금액을 맞추어 봐야하기 때문에 영수증과 기입장을 따로 잘 관리한다.

  이렇게 처음 혼자 마트에 들어가서 일을 해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자 다음 거래처로 가 보자. 다시 큰 도로로 나와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시장 골목 같은 곳이 나오는데 그 골목에 거래처가 두 군대 있다. 사장님이 만들어 놓은 동선은 마트 오픈 시간 때를 맞춰 놓았다고 했다. 나는 오늘 혼자 돌아야 하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천동 일대를 다 돌고 나면 기사식당에서 사장님을 만나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시간에 맞게 돌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시간이 안 맞으면 혼자 드시고 가라고 해야지 뭐 별수 있겠는가?

  세 번째 거래처 사장님은 꼭 본인이 운용하고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빼내어주신다. 사장님과 그리고 그 전 직원과 했던 습관적인 일들을 나한테도 똑같이 해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땀을 조금 식히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잠시 잠깐의 여유를 갖는다.

  마트를 나와 다음 목적지로 가야하는 골목에 있는 언덕이 가파르다. 수동 기어를 작동하는 운전자에게는 늘 부담스러운 것이 언덕 오르막길이다. 중간에 멈출 일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반대 쪽에서 차가 오는 일이라도 생기면 차를 멈춰야 하 기 때문에 언덕에서 멈춰진 차를 다시 달리게 하려다가 시동을 꺼먹은 경험이 많은 나로서는 언덕을 넘을 때는 언제나 긴장을 하지 않을수 없다. 예전 액센트를 탈 때 생긴 트라우마는 쉽게 없어지진 않았다.

  높은 언덕을 지나고 좁은 지하도를 지나 다시 가파르게 언덕을 오르고 나면 다음 거래처가 나온다. 도로 위에 좁은 공간에 위치한 작은 슈퍼다. 아주 작은 일로도 전화가 오는 거래처라 신경을 쓰라는 말을 들었는데 80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아주 작은 슈퍼였다. 이 곳에선 200미리 우유와 바나나 우유가 잘 나간다. 운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화물차를 잠시 멈춰 세워놓고 허기를 달래거나 담배를 사는 곳이다.

  동네 우유 영업소 거래처가 모두 마트나 슈퍼인 것만은 아니다. 요즘 커피 전문점들의 창업이 기아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커피숍 거래처도 많다고 했다. 이 작은 슈퍼를 지나고 나면 커피숍 거래처로 가야한다. 신천동에만 커피숍 거래처는 두 군대가 있다. 먼저 가는 곳은 동선은 맞는데 시간이 안 맞아 물건만 납품하고 전에 납품했던 박스를 챙겨 오면 된다. 수금은 알아서 계좌로 보내 준다고 했다.

  이 정도 일을 하고 나면 10시가 조금 넘는다. 이제 대형마트로 가야 할 시간이다. 얼마 전에 오픈을 해서 사장님이 공을 많이 들였다는 곳이었는데 수금이 잘 되지 않아서 고민이 깊어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주변에 대형 마트가 이곳밖에 없어서 우유는 넣기만 하면 잘 빠지는 곳이었다. 당시에 전단 행사로 우유가 빠지면 곤란할 정도였기에 이렇게 잘 빠지는 매장이 있으면 우리 같은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꿀이다. 다른 제품들도 신경을 많이 쓰지만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제품들이 있다. 그것은 1리터짜리 시유와 우유 속 제품이었는데 1리터짜리 시유는 가장 많이 유통이 되는 물건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날짜가 쳐지면 바로 바로 빼서 커피숍 같이 그냥 소진되는 곳으로 물건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우유 속 제품은 제일 잘 나가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마트마다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의 성향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매일 매일 관리를 해야 한다. 사장님은 대학교 매점을 중간에 가는 동 선으로 짜 놓으셨는데 날짜가 쳐진 것들을 이곳에서 판매를 할 수 있게 하 기 위함이었다. 다행이긴 하지만 여기에 날짜가 쳐진 물건을 넣으려면 깐깐한 매점 실장님의 눈을 피해야만 한다고 했다.

  마트에 오는 소비자들은 잘 모르지만 판매를 하는 중간 상인들은 돈을 버는 것도 버는 것이지만 손해가 나지 않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상권과 소비자 성향 파악에 실패를 하면 막심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과점 같은 거래처도 필요하다. 유통 기한이 얼마 안남은 우유를 취급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빵이 더 잘 부풀어 오른다는 이유에서였는데 그래서 내 거래처 중 제과점이 두 군대가 있다. 모든 거래처들이 촘촘하게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느낄 만큼 거리와 용도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 것 같았다.

  대형마트에 물건을 넣는 일은 언제나 30분 이상 소요된다. 금액도 다른 작은 슈퍼에 비하면 10배에 달한다. 이 대형 마트 사장님은 우리 사장님에게 주지 못한 돈이 있어서 언제나 미안해 하신다.

  이 마트를 뒤로하고 가는 곳은 바로 프렌차이즈 커피숍이다. 이곳에 오전에 돌면서 생긴 날짜가 쳐진 우유들을 넣는다. 오늘은 네 박스를 넣어 달라고 했다.

  보통 우리가 생각을 했을 때 유통기한이 일주일 정도 남았다 싶으면 과감하게 빼서 커피숍으로 물건을 돌린다. 불안요소를 일찌감치 제거하는 것이다. 물론, 커피숍 점주도 이 사실을 알고 물건을 받는다. 서로의 상황을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조금 싼 가격에 거래를 한다. 이 프렌차이즈는 본사들끼리 거래를 한 것이기에 시흥시에 생기는 같은 브랜드들이 전부 다 우리 거래처가 되는 구조라는 설명을 들었었다.

  이제 신천동의 마지막 거래처 베이커리로 향한다. 제빵사 같지 않게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장님의 첫인상은 매우 무뚝뚝했다. 손가락으로 우유의 수량을 알려주시는 이분은 날짜가 지난 것도 쓰신다. 그래서 사장님이 이곳에 납품을 할 것들을 미리 아침에 챙겨 주셨다. 여기까지 납품을 마치면 이제 점심시간이다. 시간도 얼추 11시 반 정도로 적당했다.

  기사 식당의 밥맛은 그저 군대에서 먹었던 짬밥보다는 낫고 학교에서 먹던 학식 정도의 수준이다. 그래도 고기반찬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벌써 4일째 먹고 있는데 주력 반찬에서 고기를 빼는 일은 없었다.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인지 고기반찬이 없으면 엄청나게 허전했을 것이다.

  사장님에게 무한으로 업무에 대한 내용을 듣고 헤어지며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신천동 일대에서 정왕동으로 넘어가기 전에 들려야 할 곳이 세 군대 정도 있는데 짜여 진 동선 대로 다니는데 아직 길이 익숙하지 않는 나는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우유 일을 시작한 무렵은 무더운 8월 중순이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는지라 마트에서 날짜가 지나서 뺀 시원한 우유는 나의 갈증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 기에 충분했다.

  반품 중에 혹시라도 쾌변이 나오면 입으로 바로 직행을 한다. 사장님한테 배운 것인데 비슷한 제품 중에 가장 고급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변비에도 탁월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곳들과 동 떨어져 있는 거래처 하나를 돌고 나면 나는 이제 대부도로 이동한다. 이동 시간이 이 삼십 분 정도 되는데 이때가 일하면서 제일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이다. 라디오로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달아올랐던 몸의 열도 식힐 수 있어서 좋다.

  넓은 도로를 내 달리며 대부도로 향한다. 다른 사람들은 주로 놀러가는 곳을 나는 일을 하러 간다.

  이곳에 있는 매장은 나름 마트를 영리하게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사장님이 알려줬었다. 온전히 이 마트를 오기 위해서 30분을 달려 온 것인데 매출이 좋아 사장님이 공을 많이 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일가 친척이 운영하는 곳이 정왕동을 포함해 세 곳 이나 더 있었다. 이 마트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마트가 하나가 있긴 있는데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더 많다고 했다.

  대부도나 정왕동 일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2교대나 3교대로 공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밤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집 앞에 있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사장님이 말씀 하신 적이 있다. 제품 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여기서 밖에 사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왕동의 거래처들은 대체로 마진률이 좋고 제품도 잘 빠진다.

  시장이 멀어서 신선한 야채를 살 곳도 별로 없다. 이 마트는 야채를 핵 가족화 된 손님들이 사기 좋은 양으로 다듬어 팔아서 다른 마트와 차별화를 이루었다. 혁신적인 과정을 거쳐 다른 마트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것이다.

  정왕동 대부분의 마트들은 신천동과는 다르게 대체로 장사가 다 잘되는 곳이 많았다. 오전에 워밍업을 했다면 여기서 부터는 돈을 좀 벌어야 하는 곳인 것이다. 그리고 대학교 매점이 화룡정점을 찍는다.

  대부도를 나와 마트 하나를 돌고 커피숍 하나를 더 돌고 나서 대학교 매점으로 향한다. 다른 곳보다 가격이 조금 싸게 들어가지만 학생들이 빵과 함께 우유를 2000원에 먹을 수 있어서 우리 제품뿐만이 아니라 유 제품들이 날개 돋친 듯 잘 나가는 곳이다.

  시흥에 위치한 직업전문 대학교였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지만 학생들로 붐비는 틈을 뚫고 들어간다. 그 무리 틈에 끼여 꼼꼼하게 살핀다.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제품들을 이 곳에 넣기 위해 오전부터 고군분투를 했었다. 물론,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모아온 제품들은 여기서 안 팔리면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날짜가 임박한 것들이기 때문에 도 아니면 모라는 식으로 모험을 걸어야 한다.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그렇지 유통기한 지난 제품을 판매해서는 안 되지만 먹는 것은 괜찮다. 몇 날 며칠이 지났어도 보관만 잘 되어 있다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제품이 유 제품이다. 요거트나 치즈 같은 것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우유 종류도 관리만 잘 되어 있다면 괜찮다.

  유통기한이 짧은 수많은 제품 중에서 유난히 신경을 써야 할 품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공 우유이다. 가공 우유는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아도 변질 될 우려가 가장 크다고 한다.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서 이기도 하고 소비자들이 먹을까? 말까? 하며 만지작거리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교육을 받았다. 잠깐 집었다가 놓는 그 짧은 순간에 온도차이가 쌓이면 변질이 될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민하게 살펴야 한다. 상한 우유라면 눈으로 보아도 팩이 부풀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반품 할 것과 가져올 것들을 정리해서 챙기는 대에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역시 가장 애를 써야하는 곳이 맞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전에 사장님이 너무 날짜 짧은 것만 가지고 와서 내가 뭐라고 한 적이 많았어요.”

  헐~~ 나도 지금 그거 하느라고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연 됐는데 어쩌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하. 그러셨죠. 영업을 하다가 보면 어쩔 수 없게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개미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 당신도 물건을 그렇게 가지고 오시면 우리 같이 일 못해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었는데 오전부터 해온 나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었다. 죄송하다며 날짜가 좋은 물건들로 다시 물건을 가지고 와야 했다. 이 문제는 내가 혼자 겪어내야 할 문제였다. 그리고 실장님에게 무엇보다 신뢰를 쌓는 것이 앞으로 뭔가를 도모 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 잘 봐주세요. 날짜는 정말 제가 신경 많이 쓰겠습니다.”

  흰 우유는 2주 정도 가공우유는 열흘 남짓한 것이 유통 기한이다. 신선 제품에 들어가는 유 제품을 관리하고 유통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물건을 다시 넣어주니 실장님의 굳었던 표정은 밝게 변했다.

  그렇게 나의 첫 날 절반 정도의 영업의 결과는 세 박스가 넘는 반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시점에서 시작이 되었다. 마음이 처음 보다 많이 다급해 졌다. 남은 다른 거래처에서 만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왕동은 신천동보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들이 많다고 했었다. 그나마 그것이 나에게 희망이었다. 남은 거래처를 돌며 열심히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우유 속 제품들을 넣었다. 그리고 사장님이 가르쳐 주신 마지막에서 두 번째 마트 중에 가장 잘 된다는 매장에 많은 양을 넣을 수 있어서 반품을 한 박스 정도만 들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대학교 매점 이후로 얼마나 고군분투를 했는지 사무실에 도착을 해보니 저녁 7시였다. 사장님과 둘이 다닐 때는 4시 반 정도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오후 일에 스텝이 꼬이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긴 걸렸나 싶었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 몸보다도 내일이 너무 걱정이 되는 상황이 나를 괴롭혔다.

  ‘제발 다 팔리기만 해라.’

  유쾌한 성격의 사장님은 늦게 들어 온 나를 놀리기에 바빴고 그 와중에 반품이 많지 않다며 당분간은 꼭 자기가 체크를 할 것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 주민이 너를 따라 다니며 일을 잘하는지 볼 필요가 없는 것이 반품 나오는 거만 봐도 다 안다. 우리일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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