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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51화. 성수기.
작성일 : 20-09-29 15:38     조회 : 306     추천 : 2     분량 : 1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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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성수기.

 

  명절을 앞둔 백화점은 최고의 성수기다. 각 물류마다 평소에 두 세배의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로 인해 검품 장은 거의 전쟁터나 다름없어 진다. 선물세트들도 엄청나게 들어오기 때문에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물류 차들도 순차적으로 들어오면 좋은데 한꺼번에 몰려 들어오는 것도 또한 문제이다. 여기저기 물류회사에서 보낸 용달차 기사님들은 물건 안 받아 준다고 아우성이고 아주 난리도 이런 날 리가 없다.

  영길이와 내가 반품을 챙겨오는 사이 필진이 형이 들어오는 차들을 받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얼마 전에 부족했던 구르마가 4개 정도 늘어서 일하기가 조금 수월해 졌다. 신형 구르마들은 손잡이들을 달아서 끌 때 힘도 덜 들고 방향 컨트롤도 잘 된다. 그간의 경험의 축적이 만들어낸 신형 구르마는 첨단의 기술을 자랑했다.

  각 백화점마다 행사들이 많이 잡히다 보니 매장 간 이동 물량이 넘쳐난다. 전문용어로 점간이동이라고 한다. 점간이동 물건들은 같은 박스로 로테이션이 되기 때문에 몇 군대 돌고 온 박스들은 상태가 난리도 아니다. 여기 저기 터진 박스들을 박스 교환 없이 테이프로 수술을 해서 이동을 하 기 때문에 아무래도 종이 재질보다는 테이프로 감싼 부위가 손에서 잘 미끄러진다. 박스를 놓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박스는 더 빠른 속도로 낡아진다. 그리고 박스 바깥쪽에 수량과 품번을 정리해서 종이에 부쳐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 들은 이동 중에 찢어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박스양으로 물건 양을 보지만 각 매장에서는 그 안의 수량과 품번 까지 체크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우리보다 할일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명절은 앞둔 백화점은 대목을 앞에두고 있기에 어느 곳보다 바쁘다.

  아무리 바빠도 물건을 검수 하는 것은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안 그래도 얼마전에 넥타이 10개 들은 쇼핑백이 잃어버리는 일이 생겼는데 안에 들어있던 제품들은 모두 정상 제품이라 150 만 원 정도 되는 물건이라고 했다. cctv까지 보며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해당 기사님과 우리 물류 알바들이 각출을 해서 메꿔야 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직원가로 우리가 물건을 산 것으로 처리를 해서 75 만 원 정도로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들어올 물건도 나갈 물건도 많아지다 보니 출근을 하는 시간은 빨라져야 되고 자연스럽게 퇴근을 하는 시간도 늦어지게 된다. 백화점에 출근을 해서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움직이다 보면 극한의 허기를 경험을 하게 된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침 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주린 배에 아무리 음료수며 커피를 때려 넣는다고 해도 빈 속에서 울려 퍼지는 꼬르륵 소리는 어디 감출수가 없다. 이렇게 너무 일이 늦게 끝나는 경우에는 너무 배가 고파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안양시장에 들러서 삼겹살과 싸먹을 쌈 채소와 막걸리 몇 병을 사가지고 새로 이사한 우리 작업실에서 벌이는 고기 파티가 그것이다.

  처음에는 뻘쭘해 하던 녀석들도 횟수가 늘어날수록 저마다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준비에 동참한다. 은식이는 취사병 출신답게 상추와 깻잎을 씻고 영규는 돗자리를 찾아서 돗자리를 깔고 가스버너 세팅을 한다. 주현이는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영길이는 수저며 반찬을 세팅을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가 되면 이제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열수 있는 창문들은 모두 열어 제치고 고기를 구우면 허기진 상태의 몸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냄새까지 다 먹어치우는 듯하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고 삼겹살은 진리다.

  “ 다들 소식 들었지? 도우미가 드디어 망했대.”

  아침에 필진이 형과 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를 내가 꺼내놓았다. 몇 달 페이가 안 나와서 아무래도 불안 하더니 결국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 그래요? 불안 하더니. 오히려 잘됐어요. 이제 도우미가 왔네. 안 왔네. 기다리고 전화하고 그런 상황은 안 오겠네.”

  고기가 익자마자 크게 한 쌈을 싸서 먹는 영길이가 받아친다. 도우미에서 받는 돈으로 영길이 페이를 채워줬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필진이 형과 의논도 할 겸 오늘 자리를 마련했는데 형은 바쁜 일이 있다며 참석하지 않았다.

  필진이 형은 이혼을 한 누나와 부모님과 조카들과 같이 사는데 이혼을 하면서 조카가 방황을 많이 해서 그 녀석을 찾으러 다니느라 어쩔 때는 정신이 없어 보일 때가 많았다. 아마 오늘도 조카 문제가 아닐 듯 싶다.

  “ 영길씨 페이 문제도 있고 필진이 형과 의논 좀 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부정교합이라 고기보다는 회나 생선을 좋아하는 영규가 본인이 먹을 만한 고기를 뒤적 거리다 입을 연다. 작은 물류들은 얼마나 돈을 받고 일하는지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영길이 페이를 어디서 충당을 해야 하는지 다 같이 모여 상의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탑코리아 페이와 도우미에서 나오는 페이 중에 20 만 원을 주고 있었는데 그것도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나온 결과이다.

  “ 이번에도 각자 조금씩 양보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사이 스피델 물류에서 갑자지 행낭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면서 페이가 10만원 올랐었다.

  요즘 스마트는 감당이 안 되는 만큼 물건이 많이 들어오는데 담당자와 페이 협상 같은 것을 해봐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알기로 다른 백화점 같은 경우는 용달차로 몇 대씩 들어오면 본사에서 직원을 파견한다던지 무슨 방법을 모색해주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연합으로 한다는 것을 물류회사 마다 소문이 나서 어떻게든 돌아 간다고 여기는지 별 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 내일 필진이 형과 대화 해봐야지. 오늘 우리끼리 말한다고 뭐 뾰족한 수가 나오겠어요?”

  아직 백화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은식이는 탑 코리아 동승 알바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녀석은 여기 롯데 안양보다 평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탑 코리아 물량이 평촌 엔씨 백화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탑 코리아는 동승과 상주 알바를 둘이나 쓰는 것이다.

  “ 그나저나 웰 기사님 바뀐다면서요? 김 기사님은 어디 다른 일 하시나?”

  고기를 먹으면 쌈을 많이 싸서 먹는 영길이가 월 기사님 교체 사실을 들었나보다.

  “ 맞아요. 다른 지역으로 가시는 거 같던데.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평소에 기사님과 사이가 좋았는데 기사님이 바뀐다고 하면 동승 알바는 조금 위축되기 마련인데 영규 녀석은 괜찮은가 보다.

  기본적으로 우리 일을 많이 도와주는 분들이 계신 반면, 백화점에 들어와서는 짐을 내리고는 일을 전혀 안하는 기사님들도 있다. 물건을 내려주는 본인의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맞다. 그러나 진짜 물건이 많아서 낑낑대고 있으면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이번 기사님도 조금 호의적인 분이 오셨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런저런 물류에 대한 대화들로 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이렇게 회식 아닌 회식 같은 만찬이 이루어지는 날이면 일인당 일 만원씩만 각출하면 1차는 문안하게 넘긴다. 각자 일정에 바쁜 일이 있으면 각자 볼일을 보러 가지만 그렇지 않고 별일도 없고 술을 조금 덜 마셨다 싶으면 2차로 이어진다. 2차는 바로 영길이 집으로 가서 오락 게임을 하는 것이다. 영길이는 플레이스테이션 3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럿이 할 수 있는 게임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축구게임이다. 나도 컴퓨터로 간혹 가다가 즐기던 게임이어서 같이 편을 먹고 게임을 하는 재미가 생겼다. 영규와 은식이는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같이 하는 경우도 있고 구경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구경을 할 때가 더 가관이다. 마치 실제 경기를 보는 것 같이 과 몰입을 해서 보기 때문에 욕먹지 않으려면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치 국가 대표처럼.

  이렇게 신나게 놀다가도 해가 떨어지면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우리들은 새벽 일찍부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날 너무 무리를 하면 탈이 난다.

 

  며칠이 지났다. 갑자기 큰 매형에게 연락이 왔는데 본인이 타던 차를 가져가서 타지 않겠냐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초지정을 들어보니 매형은 얼마전에 새 차를 구매했고 오래 타던 차는 버리기 아깝다며 나에게 준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받아놓고 연습이라도 좀 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받겠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큰 그림이 아니라면 청담동 갤러리에 그림을 실어 나르기도 괜찮은 차였다. 엑센트 헤치 백 이었는데 뒤 트렁크가 창문까지 열리는 차여서 뒤 자석을 폴딩하면 물건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모델이었다.

  매형은 삼성에서 나온 차를 샀는데 연말 프로모션으로 60개월 무이자 여서 차를 구매했다고 했다. 집도 새것이 생겼는데 차도 새것을 산 것이다.

  매형이 나에게 준다는 차는 기어가 오토가 아닌 수동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기어 변속을 하다가 시동을 꺼 먹는 일이 잦았다. 그 불편한 차로 매번 명절 때면 긴 시간을 운전하고 다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형은 명절이면 부모님이 계시는 대구와 형제들이 있는 부산을 오고 간다고 했다. 매형 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클러치가 굉장히 예민했다. 자칫 잘못하면 시동이 꺼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차를 받은 다음에도 연수를 하면서 꾀나 고생을 했다. 괜히 받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약간의 세금과 그렇게 많지 않은 보험금을 지불하고 자차를 소유한 사람이 되었다. 매형과 함께 운전 연수를 하면서 시동을 한 20번 정도 꺼 먹은 거 말고는 나는 차에 어느 정도 적응해 가고 있었다.

  청담동 갤러리에 그림을 싣고 다니는 것도 처음 차를 끌고 강남을 나갔을 때도 시동을 대 여섯 번 정도는 꺼먹었지만 그거 말고는 나름 괜찮았다. 그러다가 작은 사고가 하나 발생을 했다. 작업실 앞에서 차를 주차를 하는데 후진을 잘하던 차가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것이 아닌가? 주행 중간 중간에도 클러치를 잘 조작하지 못해 시동을 꺼 먹는 것이 일상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다시 시동을 켜고 미처 하지 못한 후진을 하려하는데 계속 시동이 꺼졌다. 여러 번 반복을 하다가 이상하다 싶어 내려서 밖을 살폈다. 내려서 반대편 쪽으로 가보니 주차 되어있던 버려진 화물차 뒷 부문에 내차 휀다 쪽이 끼어있는 것이 아닌가? 계속 후진을 시도하다가 보니 휀다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시동을 너무 자주 꺼먹다 보니 일어난 참사였다. 어디에 걸렸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상대 차가 버려진 차다 보니 배상을 해야 할 일은 없었지만 하필 내차는 자차 보험을 들지않아 생각지도 못한 차 수리비가 나가게 생겨서 속이 상했다.

  당장에 차량 운행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수리는 나중에 돈이 생기면 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모전이다 이사 비용이다 하루 벌어 하루 아니 한 달 벌어 한 달을 먹고 사는 처지이다 보니 갑자기 생긴 사고를 당장에 해결할 수가 없었다.

 

  청담동 갤러리는 온라인 갤러리 오픈에 한창이었다. 전에 부탁한 작품 사진들을 모두 이 메일을 통해 보내 주었는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 개인전을 했던 소품들 중에 여섯 점을 한 분이 사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덕에 찌그러진 엑센트는 그림과 함께 강남을 향해 출발을 해야 했다. 일을 마치자마자 그림을 싣고 출발을 했다. 시간이 늦어지면 낭패를 볼 것 같아서 점심도 먹지 않고 길을 잘 모르니까 스마트 폰을 쓰고 있던 영길이 핸드폰을 네비로 삼아 영길이와 함께 강남을 향해 출발 했다. 초행길 인데다가 길을 헤매는 바람에 두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다른 것보다 도착을 해서 보니 배가 너무 고팠다. 배가 너무 고팠던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근처를 둘러보았다. 뭐 간단하게라도 먹을 것을 찾지 위해서였다. 멀지 않은 곳에 편의점이 하나 보였다. 들어가보니 샌드위치가 딱 두 개 남아 있었다. 일단, 영길이에게 먼저 먹으라고 하고 나는 그림을 갤러리에 올려 놓았다. 인사를 나눌만한 사람이 없어서 나도 급히 갤러리를 빠져 나왔다. 나오고 나서 바로 출발을 해야 하다 보니 영길이가 운전하는 나에게 샌드위치를 먹여주는 일이 발생했다. 젠장. 나도 내손에 들고 샌드위치를 먹고 싶었지만 운전이 미숙한 나는 양손을 다 써야 운전을 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클러치도 너무 민감했기에 민망하지만 먹여주는 샌드위치를 아기 새 마냥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으로 판매가 된 작품은 5:5로 수익을 나누기로 사전에 이야기가 됐었다. 나에게 있어 의미 있는 일이었다. 돈도 필요했지만 소품을 더 열심히 제작을 해야 할 구실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주로 대작이 많았던 내 작품들은 쉽게 팔 수 있는 크기나 가격이 아니었는데 소품들은 한 점 한 점 팔기에 가격이 적당했기 때문이다.

  작품 판매대금 입금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입금이 된 날 청담동 갤러리에서 전화가 왔다. 내년에 중국에서 열리는 경매와 아트페어에 내 작품을 출품하고 싶다는 내용과 이번에 베이징에 오픈하는 갤러리에 상시로 전시를 해놓을 그림을 선정해서 가지고 와달라는 것이었다. 꿈인가 싶었다. 경매에 아트페어까지 그것도 중국에서. 알겠다고 하며 작품을 떠들러 보니 작품이 많지가 않았다. 일단, 베이징에 오픈하는 갤러리에 상시로 전시를 할 그림만 가져다 주기로 했다. 안양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부터 청담동 갈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그간 갤러리는 이사를 한 번 했다. 알고 보니 전에 건물은 대표님 본인이 직접 지은 건물이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판매가 된 모양이었다. 이사한 갤러리는 전시 공간이 더욱 더 갤러리 같았다. 이관 기념 전시도 했는데 전시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작품을 옮기지 못하고 갤러리에 키핑을 해놓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계속 해서 이어지는 일정들 때문에 작품을 계속 옮기는 일은 너무 소모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일정들이 정해지면서 나는 내년 봄이 되기 전까지 꼼짝도 못하고 그림만 그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통장에 들어온 돈은 고스란히 작품을 하는데 들어갔다. 나는 나대로 주현이는 주현이 대로 열심히 작품을 하다가 보니 재료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고 있었다. 계절은 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계절이 겨울로 향하다 보니 역시 난방이 문제였다. 되는 대로 옷을 끼워 입고 덧신을 신고 장갑이 끼워도 추워서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해 겨울은 그 어느 때 겨울보다 추웠다. 장판을 틀어도 파카를 입고 자도 벌벌 떨면서 잠을 청해야 했다. 이건 아니다 싶을 때마다 다시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그렇다고 부모님 집에 가서 그때마다 잠을 자기도 싫었고 어떻게든 버텨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너무 추웠던 어느 날 강남 화실에서 산 온풍기 네 대를 찾아 틀었다. 따뜻한 바람이 나왔다. 그저 그 따뜻한 바람이 좋았다. 그렇게 며칠 따뜻하게 지낸 것이 다였는데 다음 달에 전기세 요금 폭탄을 맞아야 했다. 소비 전력이 3000와트가 넘는 것들을 4 개씩이나 몇 시간씩 틀다가 보니 가정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20만원이 넘는 요금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한전에서도 이상했는지 한전 직원이 작업실을 방문해서 어떻게 된 건가 하고 직접 찾아와 물어 오기도 했었다. 추위를 버터 내는 것도 인내심의 인계 점을 넘기고 있었다. 다음 겨울이 오기 전에 반드시 보일러가 들어오는 작업실을 얻겠노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을 했다.

 

  이듬해 봄에 공모가 있었다.

  팀 프리뷰라는 대안공간에서 기획한 작가공모 였는데 나와 주현이 그리고 영길이까지 선정이 되었다. 성곡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를 오래한 기획자는 신인작가들의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많은 전시들을 기획했고 또 실천했다. 그 덕에 우리 셋은 내 클러치가 예민한 엑센트를 타고 압구정동이며 홍대며 신촌 등등을 누비고 다니며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수 많은 기획전은 작품을 열심히 하는데 동기 부여가 됐다. 소품들은 팀 프리뷰 전시를 통해 계속 전시 되어지고 있었고 대작들은 청담동 갤러리에 계속 가져다 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단원미술대전 공고가 떴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선정 작가전으로 기획을 했고 많이 뽑지 않는 대신에 주어지는 점수가 꽤나 컸다.

  다른 공모전과 달리 선정 방식이 많이 달라졌는데 작가 인터뷰도 있었고 작품수도 많아야 했다. 선정이 되면 부스 개인전이라는 특전이 주어지는 공모전이었다. 오랜 시간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파격적인 공모였다.

  주현이와 나는 올해는 이 공모전에 주력하기로 결심했다. 작품들도 대작들 위주로 준비를 했다. 지난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트베이징에 출품할 작품들도 해야 하고 단원미술대전도 따로 준비를 해야 했으며 그때그때 마다 있는 팀 프리뷰 전시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도중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방송뉴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족사 됐다고 떠들더니 나중에는 유서가 발견 됐다며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언론에서 쏟아져 나온 일이었다.

  정신없이 물류 일을 하고 있던 오전에 라디오를 듣고 온 기사 형들의 말로 처음 소식을 접했는데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되고 투표권이 처음으로 생겨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한 그것도 군대에서 부재자 투표로 선거에 참여를 해서 당선된 나의 첫 투표 대통령이셨던 분이다. 부대를 나와 줄을 서서 투표를 해서 당선된 내가 처음 투표를 한 대통령이 자살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나는 작품을 하며 그 동안 그림만 그리느라 평소에 뉴스도 따로 챙겨 보지 않았고 작업실에는 텔레비전 또한 연결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인터넷 뉴스로 논두렁이니 뭐니 하며 가족들까지 검찰조사를 받는다는 기사를 접했던 게 다였고 그나마도 기사를 잘 읽지 않아서 사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본인도 검찰조사를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다. 작업실 생활만 해온 나는 티비나 뉴스도 잘 보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이나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눈물이 났다. 외로웠을 그를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그날은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니 나는 그저 그전과 다를 바 없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멍해진 채로 그저 하던 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아트 베이징에서는 별다른 성과는 없었는데 중국내 3대 옥션이라는 폴리 옥션에 출품한 내 작품들은 모두 낙찰이 되었다. 갤러리를 통해 확인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사이트에 접속을 해서 본 결과였다. 기분도 좋았지만 뭔지 모르게 조금 꺼림직했다. 다른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은 전혀 낙찰이 되지 않아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작품은 실제도 낙찰이 된 것이 아니라 낙찰을 시도해서 다른 입찰을 유도 하 기 위해 일부러 첫 번째로 관계자가 낙찰을 한 것처럼 유인한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든 내 작품을 낙찰 시키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내가 느껴야하는 아쉬움과 허무함은 오롯이 내 몫이 되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저 중국 경매에서도 잘나가는 작가가 되어야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류가 잦았던 화가들이 나를 처음에는 존중하는 척해주었지만 나중에는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작품은 드라마에 협찬을 하는 일도 생겼다. 드라마를 찍는 와중에 작품을 몇 번씩 옮기고 나르느라 고생 꾀나 했다는 큐레이터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알았다. 홍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돈을 받는 일은 없었다.

  경매에 나갔던 작품들이며 아트 베이징에 나갔던 작품들도 일단은 갤러리에 키핑을 해놓기로 했다. 수시로 드나드는 바이어들에게 보여 주기도 하고 내년에 있을 뭄바이 전시에도 작품이 나가야 하 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단원미술대전에 내야하는 작품들은 기존 몇 작품 말고는 다 새로 그려야 하는 것이었다.

 

  잠을 많이 잘 수가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작품에 노예가 된 듯했다. 그 숫한 나날들이 보내고 난 나는 단원에서 우수상을 주현이는 입선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모든 상의 수상자가 50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이룬 쾌거였다.

  우리는 열심히 그림을 그려 굵직한 경력들을 쌓아나가고 있었지만 미술계며 자본시장의 흐름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박수근씨 위작사건부터 한국미술협회 비리 사건에 이중섭 작품 위작 등등의 사건들로 미술계는 악재의 연속이었고 미국 발 금융위기는 미술품 거래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를 위기로 몰고 있었다. 제2의 한국미술계의 르네상스니 뭐니 하던 말들도 쏙 들어갔다. 그저 힘이 없는 일개의 화가는 그저 하던 그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나와 주현이의 선정 작가전 선정 소식을 작가 모임 친구들이 축하해 주었다. 작년 말에 치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같이 하면서 주현이도 우리 작가 모임에 회원이 되어 있었다.

  KYA의 모임이 그러던 중 잡혔다. 서울 시청 근처에 있는 새마을 식당이라는 프렌차이즈 주점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불고기가 맛있다고 했다. 총무를 맡고 있는 승무는 요즘 커피숍 프렌차이즈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색약이 있어서 그림을 더 그릴 수 없다고 말한 승무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리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아는 형님 중에 프렌차이즈 사업을 몇 개 하고 있던 분이 계신다고 일전에 말을 했었다. 커피 전문점도 이제 막 시작을 했다고 했다. 오늘 가는 식당도 그분이 하는 계열사라나 뭐라나.

  올해 들어 험악한 일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는데 올 초에는 용산에서 경찰과 시위하는 사람들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일부 시위 참가자와 경찰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고 얼마 전에는 쌍용자동차 노조들을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을 당하면서 사상자들이 속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바뀌어서 그런가? 흉흉한 일들로 나라를 어수선하게 했다. 작년에는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는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하기도 했었다. 나는 뉴스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는데 오늘 시청역에서 내려서 작가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는 시위대와 경찰들 차벽을 보면서 공권력과 시민사회의 첨예한 대립각을 난생 처음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 왜? 무슨 이유로 집회를 하는지 나는 그때도 잘 알지 못했다. 모임에서 만난 작가들의 이야기에도 사회적 이슈는 없었다. 대학원에 진학을 한 친구들은 전시며 진로에 목을 매고 있었고 개중에는 결혼을 앞둔 친구도 있었으며 각자의 삶과 영달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시청 앞 시위대가 그리 멀지 않은 호프집에서 2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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