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인사동.
하루를 더 꼬박 앓고 나서야 나는 일어날 수 있었다. 몸은 3일 밤낮을 앓고 난 뒤 온전한 상태로 돌아왔다.
불현듯 나는 완성도 높게 완성된 유화 작품을 보고 싶어졌다.
‘어디 가면 볼 수 있지?’
막연하게 생각을 해보니 전시장을 가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어디가 좋을까?
국립현대 미술관에 가 볼까?’
아니다. 나는 근대 미술 말고 현대 미술을 보고 싶었다. 전시장이 몰려있는 인사동이라는 곳에 가볼까? 전에 선생님이 인사동 나가신다고 하실 때 종각역에서 가깝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났다. 일단, 나가고 보자.
무작정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내가 가려고 하는 인사동에 가려면 지하철을 갈아탈 일은 없었다. 왠지 모를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지도 모를 그 세계로 떠나 보자.
한참을 달린 지하철은 한강철교를 지나간다. 중천에 뜬 태양이 한강의 물비늘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이는 거대한 한강은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승천을 하듯 꿈틀거리며 거대하게 흐르고 있었다.
몇 정거장을 더 이동한 지하철에서 내린다. 종각역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인사동이라고 쓰여 있는 출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아무대로나 나가보자.
밖으로 나와 보니 사람이 정말로 많았다. 한창때 사람이 붐비는 주말의 안양시내 보다 사람이 많아 보였다.
종로. 서울의 중심. 오늘 나는 여기서 답을 찾을 것이다.
길을 따라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걷는데 길 건너에 큰 정자 같은 것이 보였다.
‘오래된 건물이 있는 것으로 보니 저쪽인가 보군.’
신호등의 신호를 따라 길을 건너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보신각]이라고 쓰여 있다.
‘ 아. 여기가 보신각이구나.’
연말에 타종을 하는 장소였다. 매년 한 해가 저무는 날이면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기억이 났다.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전시장은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었나 의심이 드는 순간 배가 고파왔다. 갑자기 나온 탓에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요기라도 좀 해야겠다. 좁은 골목으로 분식집이 보였다.
‘저기 가서 김밥이라도 먹자.’
라는 생각으로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 이모. 여기 야채김밥 한 줄이랑 라면 하나 주세요.”
김밥이 먼저 나왔다. 참기름이 발라진 김밥. 이 녀석도 참 오랜만이다. 학원 강사 시절에 물리도록 먹던 김밥이었는데 화실 생활을 하면서 먹을 일이 없어졌었다.
몇 알을 집어 먹고 있는데 라면이 나왔다. 서빙을 하는 이모에게 말을 걸었다.
“ 이모. 여기서 인사동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 인사동이 어딘지는 모르겠고 여기는 명동이야.”
이모의 말을 듣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내가 얼마나 멀리 온 건가?’
서울의 지리를 전혀 모르던 나는 명동과 인사동이 굉장히 가깝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인사동은 나오는 거냐?’
절망의 순간 나의 혼잣말을 듣고 계셨던 카운터의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 저쪽 길 건너가서 조기 좁은 골목으로 쭉 들어가다 보면 맥도널드가 보일 거여. 그 짝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인사동 골목이여.”
“ 아. 네. 고맙습니다.”
다행하게도 멀지는 않은 듯 보였다. 길을 알고 나니 조르였던 기분이 한결 편안해졌다. 안양 촌놈이던 나는 혼자서 서울에 나온 일이 이번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종로 쪽은 처음 온 곳이었다.
인사를 꾸벅하고 분식집을 나섰다. 말씀해 주신대로 길을 따라가다 보니 멀리 맥도널드가 보인다.
‘인사동이구나. 반갑다. 인사 동아.’
집을 나선 지 어느덧 3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저기 현수막들이 붙어 있었다.
떡을 팔고 있는 떡집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서니 넓은 골목에 사방으로 전시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드디어 나는 인사동 거리에 도착을 한 것이었다.
‘ 드디어 도착을 했군. 이 길로 올라가 보자.’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뗀다. 고개를 왼쪽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아보며 길을 걷는다. 생각보다 전시장은 정말 많았다.
‘ 어디로 가야 되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 보자.’
라는 생각으로 눈에 띄는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2층 전시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 전시가 유료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잠깐 뒷걸음질 쳐졌다. 문을 열고 전시장 앞에 앉아있는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물었다.
“ 저. 저기. 저. 전시 보려는데 유료인가요?”
“ 아니요. 무료 전시입니다. 필요하시면 팸플릿도 가져가세요.”
전시도 무료인데 전시 자료까지 무료로 준다는 말이었다. 들어서 보니 이 십 여점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류 작가의 2회 개인전이었다. 수채화로 일색이었던 전시였는데 작품의 완성도가 놀라웠다. 지금까지 내 주변에서 볼 수가 없는 완성도에 꼼꼼하게 그려진 그림에서 작가의 고집과 노력이 느껴졌다. 작가 이력을 살펴보니 국전에서 특선까지 한 작가였다.
‘ 이 정도는 그려야 특선을 받는 거구나.’
싶었다.
“ 전시 잘 봤습니다.”
인사를 하고 전시장을 나섰다. 전시를 하나 보고 나니 약간 자신감이 붙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다 돌아다녀봐야겠다.
맞은편에 있는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비구상 작품들이 보인다. 무슨 뜻으로 그린 그림이지 제목으로 알아보자. ‘무제’라고 쓰여 있었다. 작품도 이해가 안 가는데 제목도 없다. 이 전시장은 패스.
몇 군대를 돌아다녔을까? 길 끝에 도로가 보이는 걸로 봐서 여기까지가 인사동 거리인가 싶었다. 거리 끝이 보이는 길에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 000 인물화전 ]이라고 쓰여 있는 전시를 홍보하는 현수막이었다. 전시장 이름을 보니 현수막이 걸려있는 건물이다. 한 번 올라가 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 보다 그림을 훨씬 오래 그려 오신 서양화가의 그림을 만나보자.
2층으로 올라가 봤다. 넓지 않은 전시장에는 제법 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주로 노인들을 그린 그림들이 었는데 노인들의 주름과 인상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 같은 감정들을 색과 구도. 시선처리들로 잘 표현된 작품 들이었다. 높은 완성도의 유화 작품을 찾고 있던 나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전시였다.
‘드디어 찾았다. 열심히 살펴봐야겠다.’
살결과 인상과 표정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화면에 뭘 발랐는지 반짝거렸다. 유화를 경험이 일천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그림이 그려진 과정이 엿 보이지 않았다.
의구심이 경애심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했다.
‘이 큰 그림들을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면서 이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
작품 이면에 깔려있는 작가의 의도가 살짝 보이는 순간이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 그들의 젊은 시절 나라를 구하기 위해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위해 한 몸 바쳐온 작은 영웅들을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이런 감정들을 표현했구나.’
라고 느껴지는 순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몸부림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렇지만 더 중요했던 순간을 경험했다. 나는 그림을 통해 감동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화가가 되어 야겠다 라고 다짐하게 된 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팸플릿을 들고 뜨거워진 가슴으로 전시장을 나왔다. 그림 그리는 일이 소명으로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