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여름방학특강.
“자 깔아!”
그렇게 나는 학원으로 다시 돌아 왔다.
수업을 다시 짜야했는데 현재 전임 급 샘은 우샘 밖에 없었다. 우샘은 배샘과 절친 이었고 노량진의 학원에서 배샘과 재수도 같이하고 강사 생활도 같이한 분이다. 회화를 전공하고 정물소묘도 잘하시는 우샘은 가르침의 방식이 배 샘과는 많이 달랐다.
배샘은 조각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사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구조적이면서 해박한 해부학적 지식으로 늘 소묘를 설명했던 반면, 서양화를 전공하시는 우샘은 사물과 화면을 같이 설명하며 회화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늘 궁금하게해서 학생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을 자극했다. 두 선생님의 조합은 실로 놀라웠다. 우리가 현역이던 작년 우리학원의 진학률은 95퍼센트에 육박했다. 50명 정도의 학생들이 2명 정도 빼고 모두 합격한 것. 그 중에서 나를 포함해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 학생들이 다섯 명 이나 됐다. 이쯤 되면 이들의 능력은 입증 된 것 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배 샘이 학원을 이탈하면서 상황이 조금 어려워 졌다.
손이 빠른 우샘과 조금은 손이 느린 충재가 월, 화, 수반을 맡기로 하고, 철 이와 내가 목, 금, 토를 맡기로 했다. 우 샘은 다른 요일에는 노량진의 다른 학원에 나가야 함으로 더 이상의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미치면 미친다.’
미대입시 잡지를 보다보면 언제어디서나 보게 되는 문구다. 이 문구는 미대입시의 지난한 어려움을 대표하는 문구 이기도 하다.
여름방학특강은 말 그대로 특강이다. 원 강의 외에 한 타임을 더한 강의. 학원수업 4시간에 4시간을 더해 총 8시간을 강의해야 하는 강행군이다. 8시간을 강의하다 보니 선생님과 제자 사이가 각별해 지기도 한다. 매일같이 마주하고 매일같이 시간을 보내는 까닭이다.
“ 철아. 얘기 좀 하자.”
“ 어. 그래. 주민아.”
“ 애들이 형태력이 왜 이렇게 안 늘지?”
“ 그러게. 좀 처럼 늘지가 않네.”
“ 학교 다닐 때, 크로키 수업 들어보니까 조금 도움 됐는데 그거 한 번 응용해 볼까?”
“ 수업을 어떻게 하는데?”
“ 대단할건 없는데 점 점 시간을 빠르게 가져가면서 그리다 보니까 과감하게 그리게 되더라구. 크게 보고 그리다 보면 자잘한 형태들은 나중에 보게 되고 시간이 빨라질수록 리듬감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지.”
“ 그것도 그건데 배샘이 없으니까 해부학 강의 할 사람이 없네. 애들한테 여름방학 특강 때 해부학 강의 해준다고 했었는데.”
“ 어떻게든 해봐야지.”
“ 우리가 전임급도 아닌데. 좀 버겁다. 애들 수가 너무 늘었어.”
“ 그러게 원장 선생님 건물 올리시겠어.”
그때의 우리는 늘 수업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지난해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학원의 합격률은 학원의 성공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부 학교 학생들만 다니던 학원이 입 소문을 타면서 부지기수로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원장선생님이 윗 층 도 인수 하신다는데.”
“ 하긴. 소묘 실 너무 좁아. 그림 그리기 너무 힘들어.”
학생들의 대화가 들렸다. 특강을 시작하면서 학생이 느는 것도 문제였지만 예비반과 고3반을 나누는 것도 급 선무였다. 아무래도 예비 반과 입시반이 같이 수업을 하다보면 분위가가 잘 안 잡히는 까닭이다.
예비 반은 조금 더 수업이 헐렁해도 된다. 예비 반 선생님은 주로 새끼강사들이 하는데, 그림을 시간 내 완성하기 보다는 그림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되도록 수업을 재밌게 해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어차피 내년에 입시 반으로 올라가면 혹독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매일 마주하는 입시 반 선배들이 성토하기에 그것이 어떤 것 인지 정도는 알 것이다. 당장에 닥칠 수험생의 길을 엿 볼 수 있지만 피부에 와 닿질 않기 때문에 수업은 반드시 나누는 것이 좋다.
“ 유샘, 전샘 원장 선생님이 찾아요.”
예비 반 녀석이 원장 선생님의 심부름을 왔다. 원장실로 가보니 원장님은 커피를 타고 계셨다.
“ 와서 들 앉아요.”
미리 타놓은 커피를 건네 주신다.
“ 네, 원장님. 무슨 일이시죠?”
“ 다름이 아니라 위층에 비워져 있잖아요. 그곳을 입시반 소묘실로 해서 쓰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40평 남짓한 3층 공간을 원장실, 소묘실, 구성실로 나누어 쓰고 있던 터라 우리로써는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 예비반 애들이 늘다보니 공간이 감당이 안 된다고 학생들도 학부모님도 원성이 자자해요.”
“ 잘 됐네요. 아무래도 주민이와도 그런 문제점들에 대해서 대화하고 있었거든요.”
“ 예비반이 생기는 것에는 찬성합니다. 그럼 4층을 분할해서 쓰실 생각인가요?”
소묘만 하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적당한 선택이었다.
“ 아니요. 지금 입시반이 정원이 50이 넘잖아요. 그간 구성과 소묘로 나누어서 했는데 여름방학 특강하면서 소묘만 하겠다는 학생들이 늘었어요. 그래서 4층을 입시반 소묘실로 만들어야 할 거 같아요.”
원장님 말을 끝까지 들어보니 구성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다섯 명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인원이 한 쪽으로 쏠리다 보니 큰 공간이 필요했고, 예비 반도 많이 늘어서 3층에 예비반 소묘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 수업은 원장님이 전담하시다 보니, 학원에서 원장님 입지가 예전보다는 많이 좁아져 있었다. 학생들은 원장님보다 소묘 선생님들에게 의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4층 입시반 소묘실이 생기게 되었다. 화장실 옆으로 강사실도 만들어 주셔서 우리는 그곳에서 회의도 하고 쉴 수도 있는 공간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해부학 수업 준비하려면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야겠군.’
해부학 수업은 철이 녀석이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감각은 우리 중에 가장 뛰어난 녀석이었지만, 책을 붙들고 앉아서 자기가 본것을 정리해서 지식을 전달해주는 능력은 다소 떨어지는 녀석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무슨 책을 보고 어떤 자료를 정리할지는 가서 보고 정하자. 배샘이 해줬던 강의가 거의 기억은 낫지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주기 위해서 의학책을 찾아 볼 참이었다. 예전 르네상스 시대 때 의사보다 예술가들이 먼저 해부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도 배 샘이 해준 말이겠지.’
보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는데, 인간의 호기심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주로 그리는 석고상들은 대체로 서양의 것들이고 서양의 역사와도 결을 같이 한다. 서양에서 넘어온 조각상들의 본떠 놓은 석고상들. 이런 것 들을 주어진 시간에 성실하게 잘 그려내야 대학교 합격증을 받아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미대입시의 핵심이다. 완성도가 높은 그림을 그리려면 해부학적 상식은 필수이다. 입시생들을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 교실에 참여하게 할 수 는 없기에 무슨수를 써서라도 부족하지만 해부학 지식을 전달해줘야만 한다.
피부 밑에 위치하고 있는 근육과 골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표현을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번 주는 형태 연습을 주로 하며 크로키를 하는 방식으로 형태 잡는 수업을 하고 다음에 해부학 수업을 한 다음에 얼굴 골격과 빛과 그림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게 어둠을 묶는 연습을 시켜야겠다.
바쁘다. 말로 설명하는 만큼 손이 따라주기에는 너무 오래 쉬었다. 연필하고 지우개랑 더욱 친해 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