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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Impairment
작가 : 쿤호
작품등록일 : 2019.11.9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완벽한 고등학생 선우.
그는 어느 날 참석한 봉사활동에서 삶의 변곡점을 맞게 된다.

 
22화
작성일 : 19-11-09 03:18     조회 : 18     추천 : 0     분량 : 4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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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어제 받은 주소를 찾아갔다. 서울 외곽의 공단이 많이 있는 곳이었다. 물론 난 그곳이 처음이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다.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이 빼곡하게 좁은 골목 양쪽에 서 있었다. 골목 바닥도 고르지 않아 휠체어의 진동이 모두 내 엉덩이에 전해져 너무 고통스러웠다.

  주소지에 적힌 곳은 그 중에서도 더 외진 곳에 있는 한 공동주택이었다. 그 건물의 반지하에는 조그만 방이 줄지어 있었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그 곳이었다. 방으로 가기 위해 길을 살폈다. 하지만 내려갈 수 있는 수단이 계단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내려갈 수 없는 노릇이라 난감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그 앞에서 이십 분 가량을 가만히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종종 있었지만 내게 먼저 말을 걸거나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냥 지나가며 슬쩍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 시선도 결코 따듯하거나 배려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와보는 장소,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곳에서 나는 점점 더 위축되어갔다. 평소 걸어 다닐 때보다 낮아진 내 눈높이가 그 기분을 더 증폭시키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바로 그 때였다. 외국인 한 명이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시선은 그에게 향했다. 꾀죄죄한 모습에 몇일은 세탁하지 않은 듯 보이는 옷을 입은 그는 내 쪽으로 계속 걸어왔다.

  터벅터벅

  그의 발자국 소리가 커질수록, 나의 심장 박동도 덩달아 커졌다. 등 뒤를 타고 식은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는 집 입구에 서 있는 내 쪽으로 다가와 나를 힐끗 보더니 내 옆을 지나쳐 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때 직감적으로 그가 내가 찾던 사람임을 알아챘다.

  서두르지 않으면 그가 금방 방으로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를 뒤에서 불렀다.

  “저기요.”

  “예? 저요?”

  자연스럽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한국말로 그가 대답했다.

  “예, 저기 혹시…”

  그는 대답하지 않고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혹시 라즈X… 씨 이신 가요?”

  그는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놀란 듯 눈이 커졌다. 그러나 그는 바로 정색하며 나에게 답했다.

  “글쎄요… 전 아닌데요.”

  난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이에요? 혹시 XX공업 다니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말하며 그의 팔목을 뒤에서 살짝 잡았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내 팔을 뿌리치고 골목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놓치지 않으려 내 옆을 지나가는 그의 몸통을 잡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를 뒤따라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하지만 포장 상태가 좋지 않은 바닥이라 쉽지 않았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그가 가는 방향을 놓칠 세라 눈으로 계속 그를 쫓으며 바퀴를 열심히 굴렸다.

  그 때 급히 뛰던 그가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에 살짝 부딪혀 넘어졌다. 난 이 때다 싶어 더 빠르게 팔을 움직였다. 드디어 그 남자에게 거의 다다랐다. 넘어진 그는 나를 보며 “죄송합니다” 말을 연발했다.

  ‘분명히 그에게 무언가 있다.’

  난 확신이 들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의 실마리를 드디어 잡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내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 다시 병원이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내가 기절을 해서 누군가가 119에 신고를 했고, 지갑의 신분증으로 신원 확인이 되어 엄마와 통화하고 계속 다니던 병원으로 실려왔다고 했다.

  나는 순간 ‘조금 전의 일이 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기절한 곳이 내가 좀 전에 갔던 곳이었다는 말에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 누가 나를 기절시킨 듯 목 뒤에 통증도 느껴졌다.

  “아들, 거기는 도대체 왜 갔어?”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응…? 친구 잠깐 만나러 갔었어.”

  “친구? 거기에 아들 친구가 있어?”

  “어… 그 봉사하다 알게 된 친구야.”

  “휴… 선우야, 너가 지금 봉사하고 이럴 때가 아냐. 우선 네 몸부터 챙겨야지. 당분간 엄마랑 있자.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서 엄마랑 좀 쉬자. 시험보고 계속 힘들었잖아.”

  “아… 아니야 엄마. 나 괜찮아.”

  “안돼, 넌 좀 안정을 취해야 돼. 의사 선생님도 말하시잖니.”

  “나 진짜 괜찮다니까…”

  “이번에는 고집 부리지 말고, 엄마 말 들어.”

  난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거의 실마리를 잡았는데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한 다니…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형사님 에게는 폐를 끼치는 것 같아 확실한 무언가를 찾으면 말을 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난 형사님에게 지금 일을 말했다. 형사님은 감사하게도 흔쾌히 나의 말을 믿고 그를 찾아 가보겠다고 하셨다. 그 후로 몇일 뒤에 형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그러나 내가 기대한 소식은 끝내 듣지 못했다. 내가 보낸 주소로 찾아갔지만 그 남자는 이미 자취를 감춰버린 상태였다고 했다. 집주인에게 물어보니 그 날 이후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눈 앞에 있던 희망을 손으로 움켜쥐었는데, 그 희망이란 것이 물처럼 내 손을 빠져나가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어두운 터널의 끝에 아주 작게 새어 나오던 불빛마저 사라져버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온통 어둠 뿐이었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느껴지지 않는 어둠.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숨이 막히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차라리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두운 그 곳에 서서히 동화되어갔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 한 손으로 화면을 오픈 했다.

  “선우야, 뭐해?”

  “응, 누나. 오랜 만이네?”

  “응, 뭐하고 지냈어? 요새 연락도 자주 안하고.”

  “아, 그냥 좀 바빴어.”

  “아… 그래?”

  답장을 하고 나니 갑자기 깨달았다. 누나를 만난 지 너무 오래 되었다는 것을.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누나를 만날 생각도 못했다. 내 상황을 모르는 누나가 내 속마음을 알 리도 없었다. 난 누나에게 빨리 답장을 추가했다.

  “미안, 내가 몸이 좀 안 좋았었어, 누나 오늘 뭐해?”

  “별거 없어.”

  “그래? 그럼 우리 오늘 볼까?”

  “그래, 어디서 볼까?”

  “누나 우리 집으로 와줄 수 있어?”

  “그럼, 밖에 나오기 힘들어?”

  “아니, 그 반대야. 누나가 우리 집에 와서 엄마한테 말 좀 해줘. 안 그러면 난 여기서 숨막혀 죽을지도 몰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하하 뒤에 말은 농담이고, 엄마가 지금 외출을 잘 못하게 하셔서, 누나가 와서 말 좀 해줘. 누나랑 나간다고 하면 엄마가 허락해줄 것 같아.”

  “그래, 알겠어. 그럼 이따가 보자.”

 

  오랜만의 데이트다.

  ‘그래, 오늘은 복잡한 생각 하지 말고 누나 만나서 머리나 좀 식히자.’

  누나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본다고 말을 한 것 같다. 엄마가 흔쾌히 나갔다 오라고 허락하셨다. 난 누나의 도움으로 간만에 집에서 탈출했다.

  약속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잠시 후에 저 멀리서 누나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난 자연스레 누나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다 멈칫했다.

  ‘이 장면 왠지 익숙한데?’

  난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누나에게 다가갔다. 누나도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더 빠르게 내 쪽으로 걸어왔다. 우리 둘은 만나서 눈을 마주보고 섰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내가 임실장 관련된 일에 몰두하며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었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계산도 되질 않았다. 난 어색한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먼저 말을 꺼냈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야, 연락 한동안 못해서 미안해.”

  “괜찮아, 바빴어? 그 동안 뭐 했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집중하느라 연락할 정신이 없었어.”

  “그래? 그래서 다 풀고 해결했어?”

  “어느정도는… 아직 완벽하진 않아.”

  “그래? 그럼 시간 더 필요하겠네? 얼마나 더 걸릴 거 같은데?”

  “그게… 정확히 모르겠어.”

  “선우 너 똑똑하잖아. 빨리 풀어버려.”

  “응? 으…응 노력하고 있어.”

  “예전 당당했던 모습은 다 어디갔어! 어깨 펴고 당당하고 멋지게 말하란 말야!”

  “알겠어! 내가 한 달 안에 해결하고 너 데리러 갈게 기다려!”

  나도 모르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말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 뱉었다. 누나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 것을 알아챈 후 나도 당황스러움에 같이 얼굴이 달아올랐다. 수습하기위해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그 모습이 너무 바보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누나도 같이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린 좀 전의 어색함은 찾아볼 새도 없이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다시 예전의 모습을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난 그 동안 이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을 잊고 있었다. 이 달콤하고 따듯한 느낌…

  “우리 오늘 데이트 제대로 하자.”

  누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그러고 너 문제 해결하는데 집중해. 그리고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와. 그 다음에 우리 진하게 연애하자.”

  “응?”

  난 누나의 제안에 당황했다. 두 개의 말 중에 어떤 것 때문에 당황했는지는 분간이 안 갔다. 사실은… 둘 다였다.

  이 누나는 가끔 모든 걸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도 임실장의 일이 해결되기 전에 누나를 마음 편히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누나의 말에서 느껴지는 배려심에 감동했다.

  ‘그래… 빨리 이 어두운 곳에서 벗어나 밝고 따듯한 누나의 품으로 돌아가자’

  난 굳게 먹었던 마음을 한번 더 다잡았다. 종점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사실 거의 내 손에 들어왔었다. 그리고 진하게… ‘응? 내가 지금 이런 중요한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선우야!”

  “응?”

  “무슨 생각해! 왜 대답이 없어!”

  “아, 아니야.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

  “야한 생각했지?”

  “무슨 소리야! 어떻게 해야 문제를 빨리 해결할까 그 생각했어.”

  “그래? 정말이지? 그래서 대답이 뭐야?”

  “난 당연히 예스지! 고마워 누나! 그리고 아주 조금만 기다려줘, 아주 조금만… 내가 금방 해결하고 돌아갈게!”

  “응 알겠어, 대신…”

  “대신…? 뭔데? 무슨 조건이 있어?”

  “아니, 대신 너무 늦지는 마. 나도 기다리는데 힘드니까.”

  “알겠어…”

  난 누나의 말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대답했다. 그리고 누나를 꼭 안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휠체어에 앉아있기 때문에 누나가 내게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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