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르르르르르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조형사님 전화 맞나요?”
“예, 맞는데 누구세요?”
“아… 저 김선우라고 하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누구? 선우…?”
“예, 몇 달 전에 무거운 물건이 떨어진 사고 신고자…”
“아! XX고등학교 김선우! 그 때 사고 목격한 학생?”
“예, 맞아요. 형사님.”
“누군가 했네. 선우 학생이 무슨 일이에요?”
“아… 저… 다름이 아니고요… 저…”
“괜찮아요. 말해요. 선우 학생.”
“예, 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난 형사님에게 내가 본 신발 이야기와 임실장의 의심 가는 행동들을 설명했다. 형사님은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주셨다.
“음… 선우학생. 일단 그 임실장이라는 사람 좀 이상하긴 하네요. 조사할 필요가 있긴 할 거 같아요.”
“그렇죠?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죠? 당장 이사장실부터 수사해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음… 선우학생 잘 들어요. 수색하는 게 선우학생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에요. 수색영장을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혐의가 있어야 돼요. 일단 이건 나한 테 맡겨요.”
“예? 그러다 다른 피해자가 더 나오면 어떡해요?”
“선우학생 말이 가능성이 있는 거 맞아요. 그런데 그건 일단 가능성인 거고… 그것만 가지고 수사를 할 수는 없어요. 일단 나를 믿고 기다려줘요.”
“형사님, 만약 제 말이 사실이면 누군가가 또 저같이 이런 슬픔과 아픔을 겪어야 돼요. 전 이걸 막는 게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수사해주세요.”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음… 그럼 내가 최대한 방법을 생각해 볼 게요. 그 동안만 기다려줘요. 믿을 만한 동료 들 이랑 번갈아 가며 감시도 할 거고. 선우 학생도 지켜보고 이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나에게 알려줘요.”
“음… 알겠습니다, 형사님. 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
“예, 걱정 말고 기다려요. 아, 선우 학생! 그리고 절대… 절대 위험한 일 하지 말아요. 나머지 일은 어른들 한 테 맡겨요.”
“예, 형사님. 그럼 또 연락 드릴 게요.”
그래도 형사님에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그러나 백퍼센트 만족스럽진 않았다. 이러는 사이 누군가 희생자가 더 생길 것만 같은 초조함이 계속 들었다. 그 사람이 느낄 상실감과 고통을 너무 잘 알기에 그냥 기다릴 수 만은 없었다. 그 사람이 지금 나의 친구들, 혜정이 누나, 내 부모님 일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이런 사실을 알면서 가만이 있는 것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집중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증거다. 경찰이 혐의를 가질 만한 증거… 증거… 무엇이 있을까… 난 눈을 감았다.
그 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임실장이었다. 그의 눈은 화가 난 듯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았다. 순간 내 몸은 공중으로 붕 떴다.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아둥바둥 안간힘을 쓰며 소리질렀다.
“밖에 누구 없어요? 엄마! 의사 선생님! 도와주세요!!!”
그러나 밖은 조용했다. 난 엄청난 공포심을 느꼈다. 그는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나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던져졌다. 그가 나를 향해 발길질을 하려했다. 난 그의 발을 필사적으로 잡으며 매달렸다. 그 때 갑자기 내 눈에 무엇인가 들어왔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의 신발이었다. 여전히 깔끔하고 깨끗한 구두… 특히 그의 구두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GXX, 요 몇 년 전부터 한창 인기있는 수제화 브랜드였다. 신문과 뉴스에서 많이 접해서 알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가 나를 뿌리치고 주먹으로 내 얼굴을 가격하려 했다. 그의 커다란 주먹이 빠른 속도로 나의 눈 앞까지 다가왔다. 난 눈을 질끈 감았다.
퍽!
‘응? 뭐지?’ 난 다시 눈을 떴다. 그는 없었고,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 왜 그래? 무서운 꿈 꿨어?”
“응? 나 잠들었었어?”
“응, 자면서 하도 인상 쓰고 뒤척거려서 걱정돼서 지켜보고 있었어. 괜찮아?”
“아, 꿈이었구나… 응 괜찮아.”
뭔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웠다. 그가 나에게 화가 났다는 것은 내가 진실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허탕은 아니었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GXX』
지금 나는 종로의 어느 한 구두매장 앞에 서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휠체어에 앉아있다. 신발을 신을 발도 없는 내가 이 곳에 오다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난 힘차게 휠체어 바퀴를 굴려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 오세요…”
혼자 온 내 모습에 점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영업용 미소를 보이며 내게 다가왔다.
“신발 보러 오셨어요? 선물하시게요? 혹시 아버님 신발?”
“아니요, 삼십 대 남성 구두요.”
“아… 그래요. 손님, 혹시 누가 신으실 건가요?”
이 점원의 당연한 말이 약해진 나의 마음을 뚫고 심장에 날아와 박혔다.
‘그렇지, 난 이제 신발을 신을 수 없지’ 하지만 오늘 온 목적이 상처받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난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수제 구두면 맞춤 제작만 하시는 거죠?”
“그럼요, 저희 브랜드는 백 퍼센트 수제 맞춤 제작이에요. 발에 꼭 맞춰서 제작하기 때문에 굉장히 편하고 발에 피곤함도 덜 느껴요. 매일 정장 입어야 되는 직장인 분들이 굉장히 좋아하세요.”
“매일 정장 입는 사람들이요? 음…”
“예, 그럼 혹시 형한테 선물하시려구요?”
“아니요… 그럼 혹시 여기서 만들었던 신발도 확인 가능한가요?”
“예? 무슨…”
난 여기 오기 전에 아주머니에게 적당히 둘러대고 받아온 구두를 점원에게 내 밀었다.
“아… 잠시만요… 음…”
그는 구두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천천히 살펴봤다.
“아하! 예, 맞네요. 여기 안 쪽에 보면 시리얼 넘버가 있어요. 이거 저희 매장 거 맞아요.”
“아… 그럼 누가 샀는지도 알 수 있어요?”
“예, 그럼요.”
“그럼 이 신발 구매한 사람 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손님 개인 정보라서 좀 곤란해요… 요즘 이런 것들이 굉장히 민감한 거 아시잖아요.”
“아… 이 분이 사실 우리 담임 선생님이거든요. 졸업 전에 아이들끼리 돈 모아서 서프라이즈 선물 사드리고 싶어서 교무실에서 몰래 가져온 거예요. 선생님 거 맞는지 확인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 아무리 그래도 저는 직원이라 좀… 사장님 오시면 말씀드려 볼래요?”
“예… 언제 오시는데요?”
“근처 나가셨으니 금방 오실 거예요. 오실 때 다 됐어요. 근데 학생인데 학교 막 나와도 돼요?”
“아… 고3이라 수업을 잘 안 해서…”
난 점원의 역 질문에 살짝 당황해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내가 교무실에서 가져왔다는 말도 좀엉터리였다. 그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사장님! 오셨어요? 여기 이 학생이 선생님 신발이 맞는지 확인 좀 해달라는데…”
“응? 선생님? 무슨 소리야?”
하얀 백발, 단정한 감색 정장안에 목폴라를 챙겨 입으신 따듯한 인상의 주인 아저씨가 안경 너머로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학생, 무슨 일이에요?”
“아, 담임 선생님이 이 신발 브랜드를 좋아하셔서 졸업 하기전에 아이들 이랑 서프라이즈 선물 사드리려고요. 몰래 가져온 신발이라 혹시 몰라서 선생님 게 맞는지 확인을 좀 하고 싶어서…”
난 모든 걸 꿰뚫어보는 듯한 사장님의 눈매에 속 마음을 들킬까 조마조마했지만, 학교에서 많이 써먹던 반장, 전교 회장의 신뢰 가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이야~~~ 요즘 세상에 이런 학생들이 있어? 참 기특하네. 요즘 신문을 보면 선생님 대접도 못 받는 일이 수두룩 하던데… 잠깐만, 어디 보자…”
예상외로 주인 아저씨는 사람 좋은 할아버지 웃음을 지어 보이시며 구두를 살펴봤다.
“음? 이 분이 선생님이셨니?”
난 갑작스런 질문에 깜짝 놀라 답하지 못했다.
“혹시 체육 선생님인가? 키 크고 덩치가 있어서 어디 경호원인가 생각했었는데.”
사장님은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내공인지, 연륜인지 통찰력 있는 말을 이어 가셨다.
“신발도 자주 바꾸길래 많이 걷고, 서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어.”
“이 분 잘 아세요?”
“그럼, 엄청 단골이야. 매장 초기부터 줄곧 오셔서 내가 아주 잘 알지. 신발에 굉장히 애착이 많은 분이야. 어릴 때부터 깔끔하고 광나는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게 꿈이었다나.”
“아… 선생님 맞는 거 같아요! 혹시 사진 같은 건 없으시죠…?”
“그런 건 없지, 발 사이즈나 키, 몸무게 이런 것만… 아 선생님 아이디가 있는데 확인해 줄까?”
“예!”
“잠시만…”
조금 후 아저씨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서 나에게 건내 주셨다. 그 곳엔 lim0403 이라고 쓰여 있었다.
“선생님 성이 혹시 임씨 시니?”
“예 맞아요! 감사합니다!”
난 너무 급한 마음에 그 쪽지를 받자 마자 바로 나가려고 했다. 그 때 점원이 말을 걸었다.
“얘, 선물 산다고 하지 않았니?”
“아 맞다… 아 저… 일단 맞는지 확인했으니까 아이들한테 말해주고 다시 올 게요.”
“응? 그게 무슨…”
점원은 허둥대는 나에 말에 뭔가 의심을 느끼는 듯 말했다.
“놔둬, 괜찮아. 이 친구는 절대 나쁜 일 할 친구로 안 보여. 반 친구들한테 말해주고 오렴.”
주인 아저씨가 점원에게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아 참! 선생님에겐 꼭 비밀로 해주세요. 서프라이즈라… 꼭 이에요!”
“그래, 걱정 마라.”
그렇게 난 떨리는 마음으로 휠체어를 힘차게 굴려 집으로 향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이것이 임실장의 진실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어서인지, 휠체어를 빠르게 굴려서 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