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학원으로 가던 중 나는 평소와 다르게 택시를 탔다.
"기사님, 강남은혜학교로 가주세요"
그렇다. 나는 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의 불안한 마음의 근원이 무엇인지 꼭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기분 탓인지 인적이 드물어서 그런지 평일 저녁에 그 곳은 조금 더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에 도착하여 우선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아이들 이랑 잠깐 논다고 양해를 구했다. 희수와 몇 명의 아이들이 나를 반겼다. 난 애들과 간단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희수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할 때, 이때다 싶어 같이 갔다.
"희수야, 오늘 재밌어?"
"예... 선생님"
"다행이다. 선생님한테 저번에 해준 얘기 혹시 기억나?"
"으... 예, 그 검은 아저씨 얘기요?"
"응, 기억하고 있네. 역시 희수는 똑똑하구나. 그 얘기 선생님한테 더 해줄 수 있어?"
"예."
"그 때 그 아저씨가 왜 무섭다고 했어?"
"그... 그 아저씨가 때렸어요."
"응?! 너를?"
"아... 아뇨."
"그럼 누구? 다른 아이들?"
"아뇨."
"그럼 누군데?"
"으... 어... 어떤 아저씨요..."
"아저씨? 어떤 아저씨?"
"모... 모르겠어요. 근데 그 사람이 잘못한 거라고 했어요."
"맞은 아저씨가?"
"예... 거...검은 아저씨가 그 사람이 맞을 짓을 했다고 했어요. 나쁜 사람이라고."
"경호원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어?"
"예..."
"그럼 희수를 때린 게 아니네? 근데 왜 경호원 아저씨가 무서워?"
"표... 표정이 너무 무서웠어요. 때리는 것도 무섭고..."
"그 아저씨 얼굴을 봤어? 선글라스는 안 쓰고 있었어?"
"벗겨졌는데 눈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랬구나, 무서웠겠다."
"예... 근데 괜찮아요. 우린 나쁜 사람 아니니까 괜찮다고 했어요."
"그래?"
"예."
희수와 대화를 나눈 후 나의 궁금증은 오히려 커졌다. 도대체 경호원이 때린 사람은 누구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요한 건, 누군가를 때렸던 간에 그건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애들이 보는 앞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이 일을 그 학교의 선생님들은 알고 계신 건가? 얘기를 들어보면 희수 혼자 목격한 거 같은데, 괜히 얘기했다가 희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어디에 어떻게 말해야 될지 판단이 되질 않았다.
'아! 혹시 그 여자애라면 뭐 라도 좀 알고 있지 않을까? 봉사활동 한지 오래된 것 같은데...'
순간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던 그녀가 떠올랐다.
'선생님들 과도 친분이 있어 보이고, 애들도 다 잘 알던데... 그런데 어떻게 물어보지? 말 걸어도 대꾸도 잘 안 하던데...'
난 조금 꺼려졌지만 궁금증이 더 컸기에 다음에 기회가 오면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 했다.
그리고 다음주, 다시 봉사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나도 이 시간을 기다리는 건지, 풀리지 않은 호기심의 해답에 목 말라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번에도 봉사에 참가했다.
두리 번, 두리 번
나도 모르게 오자 마자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뭐지? 오늘 안 나왔나?'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쉬움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응? 누가 안 나왔어요?"
누군가 내 등 뒤에서 외쳤다. 난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김 선생님이 나를 보며 말을 했다. 저 선생님은 참 이곳 저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아, 애들이 안 보이길래요."
"응? 어떤 애들이요? 선우 학생 반 학생들이요?"
"예, 예 맞아요."
"애들 저기 다 있는데?"
"어! 그러네요. 저기 있었네요. 하하... 못 봤네요.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아까부터 계속 있었어요. 선우 학생이 이런 빈틈 있는 모습도 있네요. 귀엽게 호호."
"눈이 나빠서 잘 못 봤나 봐요."
'저 선생님은 왜 갑자기 나타나서 귀찮게 하는 건지...'
당황한 나는 대충 말을 얼버무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봉사하는 내내 나의 눈은 그녀를 찾았다. 매번 보이더니 왜 찾을 때 이렇게 안 보이는 건지... 실망감인지 짜증인지 모를 기분이 점점 쌓여갔다. 그러던 그 때 내 눈에 뭔가 하얀 빛이 보였다.
'응? 뭐지?'
난 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피부의 그녀였다. 평소에도 하얗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은 왠지 모르게 창백 하리만큼 더 하얗게 느껴졌다.
난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애타게 찾았던 간절한 마음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라 생각한다.
"왜 그러세요?"
내가 갑자기 그녀를 향해 다가가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놀란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그 소리에 난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왔다.
"어... 어 그러니까요..."
아무 준비 없이 다가가던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 소리가 혹시 그녀에게까지 들리면 어쩌나 생각이 들어 얼굴도 빨개졌다.
"어... 그러니까, 저기... 내일 시간돼요?"
'이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난 순간 나온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랐다.
"예? 아... 예 왜요...?"
"아... 시간되면 잠깐 볼래요?"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아무 말이나 막 내 뱉었다. 이미 내 머리 속은 새하얗다 못해 시커메졌다. 그러면서도 '거절당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요동쳤다.
"내일 시간이 되긴 하는데... 왜요?"
"그럼 내일 봐요! 내일 만나서 말할게요. 핸드폰 좀 줘봐요."
난 그녀의 핸드폰에 내 번호를 찍고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이건 꼭 마음에 들어서 대쉬 한 것 같잖아. 누군가 봤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왕 이렇게 된 거 만나서 자세히 물어보자' 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