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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44 화. 널 정말 많이 사랑해
작성일 : 17-07-18 12:06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7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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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44 화. 널 정말 많이 사랑해

 

 

 세희와 지원은 그들의 집 근처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헬멧 속에 꼭꼭 감춰두었던 지원의 젖은 눈을 본 순간 속에서 울컥하고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수많은 감정이 담긴 그의 눈에 가슴이 아렸다.

 

 처음으로 지원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그녀는 가슴이 저릿한 한 편으로,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자꾸만 그가 더 좋아진다.

 

 마음을 줘버린 남자의 표정 하나 하나에 마음이 동할만큼.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

 

 

 그녀는 울컥하던 감정을 조금 가라앉힌 뒤,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조금 떨어져 앉았다.

 

 “사장님, 왜 여태까지 저 헬멧 뒤에 숨으셨는지 물어봐도 되요?”

 

 세희의 눈에는 꼭 듣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지원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며 곧 바로 입을 열었다.

 

 “...난 한 번도 누군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 항상 아버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고.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는 감정 없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있더라.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든 상관없이 잘 지냈는데... 어느 날 네가 내 인생에 들어와 그런 나를 흔들어 놓기 시작했어.”

 

 “......”

 

 세희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몰아치는 파도처럼 거침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으려는 지원이 왠지 쓸쓸해 보여, 그런 그의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진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고, 하기도 싫어서 그냥 이렇게 살았는데. 너는 나와 달리 해맑게 웃고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고. 신기했어. 자꾸 너를 눈으로 쫒다 보니 남들한테는 잘 웃어주는 그 얼굴이 정말 보기 좋아서 끌리더라. 내가 처음으로 네 앞에 헬멧을 쓰고 나타난 날. 그 날 나는 처음으로 내 세상을 벗어나서 너에게 다가간 거였어. 헬멧으로 나를 숨기는 일이 있더라도, 네 곁에 가보고 싶었거든.”

 

 세희의 입 안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머릿속이 백지 상태가 되었다. 먹먹했다.

 

 세희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해야 할 지... 사장님은......”

 

 “한 번도 외로움이라는 것은 겪어본 적 없을 것 같고, 속마음 역시 완벽할 거 같지?”

 

 세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나는 완벽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서 그렇게 비춰지는 모습일 뿐. 나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야.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어. 남들이 나를 완벽한 사람, 감정도 없는 사람으로 봤다면 그건 어릴 적부터 엄격하셨던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일 거야. 그 분은 항상 감정을 내보이면 안 된다고 하셨으니까.”

 

 줄곧 마주한 시선을 피하지 않던 지원이 그녀의 눈을 슬쩍 피했다. 여태까지 얘기했던 사실들보다 더 깊은 속마음을 마주하려니 자신이 그녀보다 더 작아 보이는 것 같다.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지만, 털어놓기 시작하니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그였다.

 

 “겉과는 달리 속은 너무나도 외로웠어. 나는... 부끄럽지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 너랑 있으면 자꾸 욕심이 나. 너와 계속 함께 있고 싶고, 너를 만질수록 더 만지고 싶어.”

 

 그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세희가 혹시라도 한없이 약해져 있는 제 눈을 볼까 신경이 쓰인 그는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감아 자신의 옆에 단단히 앉혀두었다.

 

 “네가 내 머릿속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확하게 그어진 선을 좋아했었는데, 그렇지 않은 너에게 빠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널 만나면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 없는 그 선을 벗어나기 시작했어. 후회는 안 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한 채 끝까지 속만 망가뜨리며 살아갔을 테니까. 널 정말 많이 사랑해. 앞으로도 더 많이.”

 

 가슴을 절절하게 울리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울렸다. 세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너른 등을 따뜻한 팔로 감싸 안았다. 그러고서는 천천히 쓸어주었다. 그 작은 몸짓 하나에도 그간 지원이 묵혀두었던 차가운 응어리가 눈 녹듯이 사르륵 녹아들었다.

 

 “나도.. 사장님 정말 사랑해요. 사장님 말이 맞아요. 사람은 완벽하지 못해요. 그리고, 사장님만 그런 게 아니에요. 사람은 외로운 존재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을 받아본 적 없어도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 마요. 사장님은 그냥 있어도 최고에요.”

 

 지원의 입가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정말...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은 따뜻해서 좋다.

 

 그녀가 쑥스러운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가다듬은 목을 통해 흘러나온 말은, 다시 한 번 그로 하여금 그녀를 사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되새기는 데 충분했다.

 

 “흠흠... 그래도 외로울 때가 있다면 나한테만 얘기해요. 내가 있잖아요.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들은 앞으로 열심히 사랑하면서 서로 채워나가요. 나는 그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세희가 팔을 뻗어 상처로 눈물진 그의 얼굴을 천천히 쓸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눈에 비장함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 번 쓴 그녀답지 않게 도발적인 인심. 이왕 쓴 거, 한 번 더 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세희의 입술이 지원의 붉은 입술에 닿았다가 재빨리 떨어졌다.

 

 빨리 지나가버린 그 달콤한 순간은, 여운을 가져다주는 대신 지원의 눈에 짓궂은 이채가 돌게 했다. 지원이 눈을 반짝 빛내며 세희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바짝 붙였다.

 

 씨익 웃는 그의 얼굴. 아까 그녀에게 내보였던 깊은 사정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다시 당당하고 숨 막히게 매력적인, 평소의 강 지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갈래?”

 

 이 말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흔히 써먹는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나 다름없는 것이다. 왜 꼭 이런 유혹 아닌 초대로 연인을 집에 불러들여야 하는 건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흔한 수법이 효과가 없을 것 같지만, 이거. 꽤 효과가 있다. 하나의 조건만 더 제시해준다면.

 

 “전에 너 동물 좋아한다고 그랬지? 우리 집 고양이. 소개시켜줄게. 가자.”

 

 이건 뭐 마트에서나 쓸 법한 원 플러스 원 판매법도 아니고.

 

 세희는 그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딱 걸려들었다.

 

 그녀는 전에 몇 번 본 그의 고양이, 레온을 떠올리며 눈을 빛냈다.

 

 

 ***

 

 

 강 회장은 스위스에서 개최한 세계 유명 정재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모임에 부부동반으로 다녀온 뒤 어제 막 귀국한 참이었다.

 

 강 회장은 서재에 앉아 베르디 레퀴엠 중 ‘진노의 날’을 눈을 감은 채로 듣고 있었다. 책으로 가득한 넓은 서재에 분위기를 압도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성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때.

 

 똑. 똑.

 

 강 회장의 개인 비서인 최 비서가 서재의 문을 두드린 뒤 들어왔다. 방해하지 말라던 자신의 말을 무시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싶어, 강 회장은 오디오를 끈 뒤 최 비서를 불러들였다.

 

 그가 무슨 일인지 물을 새도 없이, 최 비서가 먼저 신속히 제 할 말을 다했다.

 

 “회장님, 지난번에 M 호텔 민 회장님 따님께서 회장님을 뵙기로 한 날이 오늘입니다. 준비는 끝난 상태이고, 곧 오신다고 하니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제야 그가 아-하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를 빠져나가기 위해 문가로 다가갔다.

 

 “이런,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나이를 먹었더니 돌아서면 바로 잊어먹는구먼. 식사는 집사람이 준비한다 했으니 최 비서 자네는 지금 이 길로 곧장 주방으로 가, 자메이카에서 수입한 블루마운틴이나 두 잔 내어오게.”

 

 “알겠습니다.”

 

 강 회장은 응접실로 건너가 몇 분 뒤에 곧 도착할 민 지수를 기다렸다. 그의 입가에 아주 만족스런 웃음이 듬뿍 걸렸다. 자신은 오늘 이렇게 그녀를 만난 후 최대한 빨리 지원과의 혼사를 추진해나갈 것이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는, M 호텔이라는 새로운 경영 분야에 눈이 먼 탓에 지원의 배우자에 관한 조건 따위야 중요하지 않았다. 얼굴이 못 생기면 어떻고, 성격이 이상하면 어떠한가. 자신의 회사를 키워줄 버팀목만 되어준다면.

 

 훗날. 강 회장의 이런 얄팍한 욕심은 다시 그에게로 돌고 돌아,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려버리고 만다.

 

 드디어 민 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 여사가 조심스레 응접실로 들어와 그녀의 도착을 알렸다.

 

 “여보, 지수 양 왔네요.”

 

 강 회장은 조금이라도 더 그와 말을 붙여보려는 그의 아내, 문 여사의 시선을 무시하고 제 갈 길만 바쁘게 걸어가 가운데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여기로 바로 들여보내.”

 

 문 여사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민 지수가 응접실로 들어와 강 회장에게 예의바르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회장님, 안녕 하십니까.”

 

 허리를 조금 굽혔다 펴는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절제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그게 벌써부터 강 회장의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하는 행동과 말투가 다 똑 부러지고 기품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니. 과연 자신의 아들에게 맺어줄 짝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구나.

 

 “아, 어서 와요. 거기 그렇게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앉아요.”

 

 민 지수가 강 회장의 손짓을 따라, 그가 앉아 있는 정중앙의 소파 바로 옆에 위치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회장님께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사정을 했어요. 한 번쯤은 궁금했을 법도 한데... 이유도 묻지 않고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의 겸손하지만, 속에 잔뜩 깔린 환대의 말에 민 지수가 수줍은 듯.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질적인 웃음을 흘리며 조곤조곤 말했다.

 

 “아닙니다. 저야 말로 오늘 저녁 식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 회장이 껄껄 웃으며 바로 제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좀처럼 펴지지 않던 그의 강한 인상이, 눈 꼬리가 곱게 휨과 동시에 잠시 풀어졌다.

 

 “민 지수 양이 아버님을 닮아서 강단 있고 똑 부러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이 정말 보기 좋군요. 난 지수 양이 내게 말을 편하게 했으면 하는데. 초면에 이런 부탁은 너무 무리겠죠? 허허.”

 

 그러자, 민 지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격식을 차리며 깍듯하게 굳어있던 얼굴을 풀어놓았다.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원하시면 편하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장님도 제게 말 놓으세요.”

 

 강 회장의 입가에서 만족스런 웃음이 올라왔다. 그녀를 향해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도 왠일인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지수 양이랑 나랑 왠지 잘 통하는 것 같네요. 지수 양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지수 양이 마음에 드네요. 아직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없다면 우리 아들, 한 번 소개시켜줄까 하는데... 어떤가요?”

 

 강 회장은 품에서 지원의 사진 한 장을 그녀의 앞에 위치한 탁상 위에 꺼내두었다.

 

 민 지수는 잠시 그가 건네준 지원의 사진을 바라보더니 수줍게 웃으며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대학생 때부터 강 사장님을 존경하고 있었어요.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 회장이 의외라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탐욕스런 화색이 가득 피어올랐다. 일이 진행되려고 하니, 적기를 만난 듯. 순차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려나 보다.

 

 “아, 그래? 정말 잘 됐군. 내 오랜 연륜으로 미루어 보아, 지수 양이랑 우리 아들. 왠지 잘 될 것 같네. 이참에 한 번 나를 아버님이라고 불러 주면 안 되겠나?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불러주면 더 좋고.”

 

 민 지수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올렸다. 그들은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오고 가는 눈빛은 이미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말하고 있었기에 감정을 읽는 것에 능한 그들은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그들은 최 비서가 내어온 커피와 다과를 들며 한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잠깐만요!!!”

 

 이제 막 엘리베이터에 오른 연인은 급하게 달려오는 또 다른 커플을 위해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남자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재빨리 자신의 여자의 곁에 딱하고 달라붙었다.

 

 지원은 세희가 도진을 볼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녀의 어깨에 팔을 올린 뒤, 닫힌 문 앞에 서서 어서 빨리 자신의 집이 있는 층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여자는 남자의 뒤에서 아침부터 내내 뚱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 윤 도진은 자신과 인생의 큰 획을 그을 거사(?)를 치룬 뒤로 줄곧. 평소에 늘 밥 먹듯 해대던 스킨십은 고사하고, 그녀와 거리를 두려는 듯 했다.

 

 뭐야, 이미 잡은 물고기 밥 안 준다더니.

 

 자신의 남자만큼은 남의 연인처럼 그러지 않을 거라는 헛된 믿음이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그 남자도 ‘남자’다.

 

 저가 좋다며 다짜고짜 달려들어 덮쳐놓고. 이제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작 도진의 사정은 다른 얘기였지만 말이다.

 

 도진은 이미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안 주는 것이 아니라, 못 주는 것이었다. 그 날, 자신과 혜빈의 역사에 길이 남을 거사(?)를 치루며 유리 인형을 안듯이 정말 소중하게 보듬어주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말 소중하게 사랑을 나누어도 모자란 것이 제 마음인데.

 

 제 욕심만 채우기 급급하여 그녀를 건드렸다가는 그녀가 다칠까봐 겁이 났다.

 

 혜빈은 그들의 걸음을 늦추게 한 커플들을 보기 위해 도진의 앞으로 고개를 살짝 길게 뺐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후다닥 제자리로 돌아간 뒤, 그것도 모자라 도진의 너른 등 뒤에 감쪽같이 숨어버렸다.

 

 상대 커플 중 한 명이 자신과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아, 젠장. 저 놈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자신이 지원이 알지 못하는 외간 남자와 있는 사실을 동생에게 알리기 싫은 혜빈은 혹시라도 그가 자신이 있는 쪽을 쳐다볼까봐 심장이 벌렁거렸다.

 

 지원은 그녀가 아직 호텔에서 지내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자신이 생긴 거와는 다르게 왈가닥인 성격이었지만, 연애만큼은 딱딱한 사고를 고집했기에 그에게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이면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동생아, 언젠가는 네게 소개시켜줄 거지만 아직은 아니란다. 그러니까 고개는 정면이나 열심히 보고 있으렴.

 

 왜 보지 말라고 속으로 외쳐대면, 상대방은 반대로 행동하는 걸까.

 

 지원은 곁눈질로 도진이 꼭꼭 숨기고 있는(도진은 혜빈이 자신의 뒤에 숨은 사실 조차 아직 모르고 있다) 여자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의 몸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짧은 머리에 굵은 컬이 들어간 머리를 보니 둘째 누나인 혜빈이 떠올랐다. 저 여자인가? 저 놈이 그토록 기다렸다는 사람이.

 

 이상하게도, 그가 도진의 뒤로 시선을 주자 상대방이 그를 피하는 것처럼 숨어버린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숨지?

 

 이 모든 것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 지 불과 30초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들킬까봐 심장이 조마조마한 혜빈은 혼자 몸이 달아올랐다. 집요하게 들러붙는 동생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지금 이 상황에서는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 그거 다 필요 없을 것 같다.

 

 혜빈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도진의 뒤에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도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이유로 그녀를 쳐다보며 ‘왜?’라는 입모양을 지어 보인다.

 

 내가 이러는 건 네가 나한테 밥을 안 줘서가 아니야. 나 살고, 너 살기 위해서야.

 

 크게 심호흡을 내쉰 혜빈은 도진을 돌려세우며 그의 몸을 순식간에 제 얼굴로 당겨왔다.

 

 “?”

 

 이 순간을 무사히 벗어나기 위한 그녀의 모든 행동들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졌다.

 

 그녀가 도진의 목에 팔을 두른 뒤, 도톰한 입술을 겹쳤다.

 

 그녀는 몰랐다. 작은 불 끄려다 더 큰 불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읍...!”

 

 어이쿠. 보는 눈이 둘이나 되는 엘리베이터에서 혜빈이 도진을 덮쳤다!

 

 도진은 갑작스레 훅하고 들어온 혜빈의 움직임에 놀라 뻣뻣하게 굳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를 능숙하게 이끌기 시작했다.

 

 이유야 어떻게 됐건, 이런 식의 도발은 두 팔 벌려 환영이지.

 

 질척한 소리와 함께,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뜨거운 공기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너무 달아오른 둘을 어찌해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지원은 세희의 두 귀를 꼭꼭 막은 뒤 엘리베이터의 도착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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