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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21 화. 노란오리와 첫사랑
작성일 : 17-07-14 21:48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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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21 화. 노란 오리와 첫사랑

 

 

 

 세희는 다음 날 아침,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로 분주했다.

 

 그녀는 아침도 거른 채로 집을 나섰다. 강 사장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오피스텔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서 사온 식재료들로 만든 반찬을 곁들여, 지금쯤이면 든든한 아침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회사 앞으로 가니, 웬일인지 지원이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일하러 나오라 한 장본인이 슈트가 아닌 편한 차림을 하고 있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은 주말도 반납하고 출근용 옷차림으로 나왔건만. 회사에서 일하는데 사복이 웬 말인가.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실례지만 오늘 일하는 거 맞나요? 사장님은 정장 차림이 아니시네요..."

 

 지원은 전날 세희에게 문자를 준 후. 이 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설렜다.

 

 처음으로 자유롭게 놀러간다는 것 때문인지, 그녀와 함께 어딘가로 간다는 설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가슴이 솜털처럼 가벼웠다.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기분 덕분에, 그는 그녀에게 싱긋 웃어주며 부드럽게 얘기할 수 있었다.

 

 "아, 당연하죠. 오늘은 주말이니까요. 세희 씨도 편하게 입고 오시지 그랬어요. 제가 갈 곳이 있다고 했잖아요. 일단, 차에 타요."

 

 그는 조수석 쪽으로 걸어가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세희는 그의 여유로운 행동에 갸웃거리며 차에 올랐다. 청바지에 붉은 계열의 니트를 입은 탓인지. 그의 분위기가 오늘따라 편해 보였고 들떠 보였다.

 

 그 때문일까, 그녀 역시 행선지가 불분명한 이 상황이 전혀 싫지가 않았다.

 

 

 

 차에서 흐르는 정적의 틈을 비집고, 지원이 조심스레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세희는 정면을 보고 있느라 몰랐지만, 그의 얼굴에 조금 붉은 빛이 돌았고. 눈빛도 그녀와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쭈뼛거리기 바빴다.

 

 "가고 싶은데.. 있어요?"

 

 일 때문에 불러낸 줄 알았더니, 대뜸 그녀에게 행선지를 물어오는 그를 홱 돌아보았다.

 

 "네?"

 

 그녀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솔직한 반응에 조금 기가 죽은 지원은 주먹을 꽉 쥔 채 그녀에게 말했다.

 

 장 비서와 도진에게 한 번도 얘기해본 적 없는 자신에 관한 얘기. 집안 사정이건 속마음이건 남에게 얘기하기를 극도로 꺼리는 그가, 그녀의 앞에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걸음을 내딛어 본다.

 

 그녀라면.. 그냥.. 왠지.. 내 마음 정도는 털어놔도 괜찮을 것 같다.

 

 "제가 어제 갈 데가 있다고 했잖아요. 사실.. 그거 거짓말이었어요. 세희 씨 만나서 세희 씨가 원하는 데 있으면 가려구요."

 

 "아.. 저기..."

 

 망설이는 그녀를 돌아보며 그가 말했다.

 

 "이 얘기를 하자니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제대로 놀러가 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회사일로 바쁘셨고. 그나마 누나들이랑 어울리며 지내서 놀러 가는 것에 대해 별 감흥은 없지만. 요즘은 가까운 데라도 가보고 싶더라구요. 세희 씨랑. 바람도 쐬고.. 우리 밥 친구잖아요? 정말 가고 싶은데 없어요?"

 

 그녀를 돌아보는 그의 눈빛 속에 자리한 무언가를 봤기 때문일까. 그녀는 망설임으로 가득한 마음을 내려 두고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얘기했다.

 

 "석촌호수.. 거기에 가고 싶어요."

 

 

 

 

 

 ***

 

 

 

 

 

 세희와 지원은 차에서 내려 호수로 가는 길을 거닐었다.

 

 "사장님은 러버덕(rubber duck)이 뭔 줄 아세요?"

 

 지금 세희의 얼굴은 왠지 그녀와 놀러 나와 들뜬 그보다 더 들떠보였다.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그가 처음으로 나선 자유로운 시간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그녀 나름의 노력이었다.

 

 "러버덕..이요?"

 

 러버덕이라.. 잠시 고민하던 지원은 '내 사전에 모르는 것이란 없다!'란 표정으로 어색하게 아는 척을 했더니 세희가 키득거렸다.

 

 "네! 근데 사장님 얼굴 보니까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킥킥."

 

 장난스럽게 정곡을 찌른 그녀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길 잃은 아이처럼 이리저리 헤맸다.

 

 "러버덕은요, 플로렌타인 호프만이라는 작가의 대표적 공공예술 프로젝트인 러버덕 프로젝트로 설치된 노란색 오리에요. 러버덕은 전 세계에 행복과 기쁨을 전하는 하나의 ‘축제’라고 해요. 홍콩, 타오위안, 북경, 피츠버그, 시드니 등. 지금까지 수많은 지역에서 진행되었던 이 프로젝트가 드디어. 서울에 왔대요! 사랑과 행복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 놀러온 거대한 고무오리! 생각만 해도 귀엽지 않으세요?"

 

 꺅꺅거리며 생각만 해도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는 그녀가 더. 지원의 눈에 귀엽게 보였다. 조금 뒤에 보게 될 오리는 지금 그의 눈에 가득 들어온 그녀보다 더 귀엽게 보일 수 없을 것이다.

 

 그도 그녀의 웃음에 물들어, 그녀에게 웃어주었다.

 

 어느새 그의 웃음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져 갔다.

 

 "언제 그런 걸 다 찾아봤어요?"

 

 "음.. 러버덕이 한 달 동안 전시된대요. 이 귀여운 오리가 한국에도 왔다는 기사를 전에 봤었거든요. 꼭 가보리라 마음먹고 검색 해봤죠. 귀여운 오리를 전시가 끝나기 전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우리 빨리 가서 봐요!!"

 

 

 

 세희가 그의 팔을 이끌자 그는 걸음을 옮겨, 천천히 호수 근처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벌써 세희는 신이 나서 방방 뛰며 저만치 가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러버덕'을 검색해보았다.

 

 “러버덕 프로젝트에는 국경도 경계도 없다.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으며 어떠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러버덕은 치유의 속성을 지닌다. 물 위에 다정하게 떠있는 오리를 보면 저절로 치유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러버덕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의 긴장이 해소될 수 있다고 믿는다.“ - 플로렌타인 호프만 -

 

 피식. 귀엽네.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 몇 장을 본 지원의 입에는 행복한 웃음이 걸렸다. 러버덕이 세계에 행복과 기쁨을 준다면. 지원에게 있어서 행복은 단언컨대, 지금 세희와 함께 있는 순간일 것이다.

 

 강 회장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29살이 된 지금까지 한 길만 걸어온 그는.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은 가슴이 따뜻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순간이 점점 즐거워지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들은 어느새 소중한 것으로 자리잡아갔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을 행복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도 이 행복. 누려볼만 하지 않을까...

 

 그녀라면 내 마음, 다 열어보여도 되지 않을까...

 

 

 

 호수에 가까이 가니, 노란 거대 오리가 호수 한 가운데서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나 보러 왔쪄?

 

 통통하고 동그란 곡선을 가진 몸매와 톡 튀어나온 부리가 매력적이었다. 세희가 좋아할만 했다. 혜빈도 귀엽거나 예쁜 것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흠뻑 빠져버리니. 실제로, 여자들끼리 무리 지어온 그룹이나 커플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

 

 지원에 눈에는 커플들만 보였다. 아직 한겨울도 아니건만 딱 붙어있거나,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몰랐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쓸쓸해 보였다.

 

 "사장님, 저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오리 구경을 끝내고 한참을 세희의 뒷모습만 쫓던 그에게 그녀가 쪼르르 달려와 졸랐다.

 

 "여기, 제 폰요."

 

 그녀가 오리를 배경으로 해맑게 웃는 얼굴로 포즈를 취했다.

 

 두근.

 

 두근.

 

 또 시작이다. 영화관 사건을 이후로 그녀를 보기만 하면 가끔씩 심장 박동이 뜨겁게 요동친다. 그 증상이 또 시작되었다.

 

 왜?

 

 지금 그가 느끼는 감각은 사랑이 만들어낸 결과였으니까.

 

 그는 사진을 찍기 전, 다시 한 번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 역시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을 그녀의 폰으로 찍으면 자신이 그 사진을 가질 명분이 없게 된다. 그래서 그는, 들고 있던 자신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세희가 다시 다가와 그에게서 폰을 받았다.

 

 "다 찍으셨어요? 어? 없는데..?"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동그란 눈으로 핸드폰과 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제 폰으로 찍었어요. 보내드릴게요."

 

 "?"

 

 

 

 1분이 넘었는데, 그에게서 날아온 메시지는 한 통도 없었다.

 

 결국. 그는 쭈뼛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그녀 앞에서 쭈뼛거리는 일이 잦았지만, 그래도 싫지만은 않다.

 

 "저.. 근데 사진 전송은 어떻게 하는 거죠?"

 

 "풉! 아, 죄송해요. 사장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사장님 그거 모르시죠? 사장님은 지금이 더 보기 좋아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음.. 아! 사진 전송은 조금 이따가 가르쳐드릴게요. 사장님도 저기 가서 서보세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아까 그녀가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했던 장소로 그의 등을 밀었다.

 

 "아.. 저... 사진 안 찍어도 되는데..."

 

 "에이~ 그러지 말고 찍어요.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저 오리, 이제 가면 못 보는데. 그래도 안 찍으실 거예요?"

 

 고무오리가 뭐라고 저렇게 열심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호소하는(-것처럼 그의 눈에 보였다) 세희를 보고서, 그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그녀의 부탁에 따라 오리를 배경으로 섰다.

 

 "사장님 웃으세요~."

 

 세희는 지원의 사진을 찍어주려다, 마음에 들지 않아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까는 그렇게 잘 웃더니,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뻣뻣하게 서 있었다.

 

 "사장님! 한번만 웃어주세요~ 네?"

 

 그녀는 자꾸만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애원하기까지 했다.

 

 

 

 그라고 그녀 말대로 빨리 찍고 가고 싶지 않겠나. 그가 편하게 웃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 그냥 찍고 가도록 하죠."

 

 "싫어요. 사장님 될 때까지 있을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서보세요. 정 안 되면 사장님이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그가 될 때까지 있을 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녀의 말에. 그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굳어버렸다.

 

 결국.

 

 그는 결단을 내렸다.

 

 웃으라는 부탁에 진심으로 웃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어내기 위한 유혹의 미소 정도는 지어줄 수 있었다. 그 정도야...

 

 씨익-

 

 찰칵.

 

 세희는 지원에게 사진 전송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자신의 폰으로 그의 사진을 찍었다. 자신의 폰으로 시범을 보여주면 그도 쉽게 따라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는데.

 

 눈앞에 놓인 그의 미소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만. 그의 사진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론에 나오는 그 어떤 연예인들도 그만큼 강렬한 느낌을 자아내지는 못하리라.

 

 살짝 고개를 비스듬히 한 채 정면을 주시하는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미소. 자꾸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가 뿜어내는 기운에 블랙홀에 끌려가듯 빠져버릴 것 같다.

 

 

 

 원래는 그에게 사진 전송법을 가르쳐준 뒤 지울 계획이었다. 가르침에는 그에 대한 정당한 댓가가 있어야 해. 그렇지.. 아! 사장님한테 이 사진 안 지운다고 말씀드려봐야지.

 

 사진 촬영을 마치고 아쉬운 표정으로 노란 오리와 작별한 그녀는. 러버덕 팝업스토어(pop-up store)에 들려 작은 러버덕 한 마리를 입양했다. 시중에 파는 같은 오리 장난감보다 3배나 비싸지만, 사회에 기부도 된다고 하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서로에게 한 마리씩 사준 오리를 품에 안고 차로 가는 그들에게, 어디선가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반가웠쪄. 행복했쪄. 행복해질 거야.'

 

 

 

 

 

 ***

 

 

 

 

 

 혜빈은 며칠 째. 아니, 몇 주째 거의 매일 지겨울 만큼 자신을 찾아오는 도진을 피해 도망 다니는 중이었다.

 

 한식집에서의 뜨거운 키스 사건 이후로 계속 자신을 쫓아다니는 그의 얼굴을 보자니. 자꾸만 그날의 일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화끈 거렸다.

 

 

 

 .

 .

 .

 .

 .

 

 

 도진의 발칙한 행동에 열 받은 그녀는 그의 팔을 뒤로 꺾어, 자신이 만만한 여자가 아님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행동도 해보기 전에 그의 위에 엎어져 있었다.

 

 야릇한 자세와 함께,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린 그녀는 이어져 들려온 그의 말에 제대로 멘붕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하면 기억해줄래요?"

 

 뭘 하려는지 묻기도 전에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입술을 겹쳐오는 그의 행동에 몸이 바짝 굳었다. 파렴치한 놈이 왜 자신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감싸고 소극적으로 나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을 순식간에 스쳐간 장면이 있었으니.

 

 

 

 고등학교 생활이 마지막인 해에, 그녀는 아버지 몰래 유학 준비를 하느라 힘이 들었었다. 입시가 다가오자, 그 부담감은 배로 늘어 자신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는데. 그때 찾아온 학생이 도진이었다.

 

 그가 다짜고짜 자신에게 그림을 배운다고 해서 조금 황당했지만, 자주는 아니라도 그녀에게 찾아와준 그에게 고마웠다.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재잘재잘 떠들어 대는 그 덕분에 즐겁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매번 그에게 고마움이 가득해서 조금 더 가르쳐주려고 준비해 갔던 날.

 

 그녀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아직도 그날의, 자신에게 쪽하고 도둑뽀뽀를 남기고 간 그 남학생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윤도진.. 그 학생 이름이 윤도진이였는데. 어머, 내가 왜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그 장면이 떠오른 거지? 얼른 이 상황을 벗어날 생각은 안 하고. 미쳤나봐!'

 

 

 

 혜빈이 눈앞에 있는 도진을 단번에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도진이 그녀를 기다리며 열심히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위한 한량 놀이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한량 놀이를 하며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뼈를 깎는 노력 덕분이었다.

 

 혜빈에게 입술 도장을 남기고 간 고등학생 윤도진은 얼굴이 통통한, 어찌 보면 조금 귀엽게 보일 수도 있는 얼굴이었고.

 

 지금 그녀 앞에 있는 윤도진은,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에 살이 빠져 훨씬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였으니까.

 

 정신을 차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이제는 더 대담해져 자신의 입을 가르고 말캉한 그것이 들어오려고 했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급습 당한 그녀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의 어깨를 팡팡 내리쳤다. 그러나. 아무리 그에게 온 힘을 다하여 저항해봤자, 도진에게는 그저 솜방망이일 뿐인 저항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어서 그녀를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여태까지 계속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흠칫.

 

 잠시간 그의 얼굴과 고등학생의 윤도진이 겹쳐져 보였다.

 

 '아니야. 아닐 거야. 순수한 애가 이런 발칙한 놈이랑 동일인물일 리가 없잖아?'

 

 사실, 그녀가 대학생이 된 이후로 30살이 된 지금까지. 남자를 만나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윤도진이였다. 한 살 어린 후배가 갑자기 고백을 해오고, 처음 봤던 소극적인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당돌하게 그녀의 입술을 훔치고 간 그의 행동이 두고두고 떠오르면서 은연중에 그를 기다리게 된 것이었다.

 

 눈앞에 닥친 위기(?)는 뒤로한 채 고민에 빠진 그녀는 갈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혹시..'하는 묘한 기대감이 부풀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왜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선처를 베푼 사람치고는 과하게 친절했고, 보통 구해주고 가면 그만인 것을. 굳이 식사 자리를 만들어서 이렇게 만나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얘기하는 그가 왠지 자신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저항을 포기한 채, 눈을 감고 그가 이끄는 대로 있었다. 왠지 익숙한 목소리와 손짓이 그녀의 날카로운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순간이었다.

 

 부드럽게 쓸고 나갔다, 진하고 농밀하게 다가오는 그의 그것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일었다.

 

 짜릿했다.

 

 눈을 감고 그를 느끼니, 감각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눈을 더욱 질끈 감으며 그의 옷깃을 꼬옥 움켜쥐었다.

 

 키스는 이런 느낌인 걸까.

 

 온몸의 힘이 구름 위에 뉘인 것처럼 스르륵하고 빠져나갔다.

 

 한참동안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지 않던 그가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보고 놓아주었다.

 

 "우리, 연애할래요?"

 

 그의 그 말에, 그녀는 후다닥 그의 어깨를 밀치고 일어섰다. 그에게 등을 보인 채 선 그녀는 손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얼굴을 붉혔다. 입술을 만지는 그녀의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혹시 모르는 기대감이 기대감으로 끝이 나버릴까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그녀는 키스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뒤로한 채. 도진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은 후 입을 열었다.

 

 "너무 다짜고짜 들이대시는 거 아닌가요? 저는 아직 그쪽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몰라요. 우리, 통성명이 먼저인 거 같은데요?"

 

 결국. 누나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그녀에게 키스하면 조금은 기억이 나겠거니 했던 그의 기대는 처참하게 부서졌다. 그는 씁쓸해진 입을 물로 적셨다.

 

 "윤.."

 

 '아직이야. 윤씨란 성은 얼마든지 있는걸.'

 

 섣부른 생각은 하지 말자고 절제하려는 마음에. 그녀는 잠자코 그가 말을 마치기까지 기다렸다.

 

 "도진입니다."

 

 쿵-

 

 그녀의 눈앞에 있는 건장한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간 그 윤도진이였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저는..."

 

 "알아요. 강..혜빈씨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녀의 이름에. 그녀는 탁자에 가려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두 손을 맞잡았다. 정말.. 날 잊지 않고 있었어.

 

 고등학생의 풋내가 가득한. 한낱 한순간의 짧은 감정 정도라고 생각했던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첫사랑은 어느 그 누구도 함부로 가늠 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잊어버린 줄 알았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하고 싶은 말,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그 순간이 닥쳐오니 떨리는 가슴을 주체 할 수가 없어 그 말들은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멤돌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를 기다려준, 나를 잊지 않은 너에게. 그녀는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살짝 깨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녀는 도도한 표정으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아직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너는 몰랐으면 해.

 

 그것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더 사랑받고 싶고, 괜히 튕겨보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었다.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식사를 목적으로 만났으니, 식사하도록 할까요?"

 

 도진은 순순히 그녀의 제안에 응하며 그녀에게 먼저 식사를 권했다. 그녀가 한국에 있는 이상, 그녀는 그의 품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기억나지 않는다면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가슴의 떨림일 지라도. 다시 처음부터 그녀에게 기억 시켜주면 되는 일이니.

 

 그렇게 마음을 내려두자 한결 여유로울 수 있었다.

 

 "제가 너무 찐하게 키스하느라 맛있는 음식들이 다 식어버렸네요. 하하. 그래도 식었지만 맛있으니 사양 말고 많이 드세요."

 

 "......"

 

 

 

 혜빈과 도진이 서로를 마주보고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하는 동안, 혜빈은 도진 몰래 그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을 보며 입을 여는 도진의 행동에, 놀란 마음을 숨긴 채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하마터면 들킬 뻔 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그냥 식사하시면서 흘려들으셔도 좋아요."

 

 "10년 전에요..."

 

 흠칫.

 

 "10년 전에 제가 고등학생 2학년이었어요. 그때 복도에서 우연히 보게 된 한 그림에 끌려, 미술실에 뛰어갔어요. 왜 그 그림에 끌린 걸까 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으며 미술실에 들어갔는데, 선배 누나가 계시더라구요. 햇살이 비치는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정말 예뻤어요... 그때부터였어요. 매일 그 누나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려고 미술실을 안방 드나들듯이 다녔던 게. 그러다..."

 

 "서로 안 지 얼마 안 되었고. 그 선배한테 점점 호감이 깊어지기 시작한 시기에 그 누나가 유학을 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처음 가져본 첫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나 싶어서.. 그래도 그 선배의 미래를 위해서는 유학만큼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잠시 놓아줬어요. 기다림의 뜻으로 입술에 도장도 찍고 보내줬어요. 매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누나 생각을 했어요.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정말 있나봐요. 저는 다시 그 누나를.. 만났어요."

 

 그 말을 마친 후 혜빈을 바라보는 도진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다가가 얼굴을 쓸어주고 품에 꼬옥 안아주고 싶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

 

 '쟤는 저런 말을 왜 저렇게 잘 하는 거야?'

 

 당사자 앞에서 뻔뻔해 보일 수 있는 고백이었지만,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예전의 가벼웠던 한량 윤도진은. 한 여자에게 마음을 다 바친 일편단심의 남자였다.

 

 그리고.

 

 "약속한대로 이제 안 놔줄 거예요, 누나. 기억나지 않는다면 옛날 기억들은 저 혼자만 간직하고 있어도 돼요. 누나는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세요. 제가 누나 행복하게, 나 만나는 거 후회하지 않게 노력할게요."

 

 마지막에 들려온 진심이 가득 흘러나오는 담백하고 애절한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먹고 있던 음식을 삼킨 후 수저를 내려놓았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다간 조금 더 튕겨보지도 못한 채. 그의 품 안에 사로잡혀 버리고 말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의 마지막 말 한 마디에 감성 여린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눈물을 들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잘 먹었어요. 이만 가볼게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방을 나가려던 그녀의 팔을, 도진이 뒤에서 잡았다.

 

 "도망가지 마요. 누나가 어디에 있든 내가 찾아갈 거야. 내일 봐요, 혜빈 누나."

 

 "..사랑해."

 

 

 

 방을 완전히 빠져나온 그녀의 눈에서는 이제.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녀를 모르는 누군가가 본다면, 애절하고 슬픈 사연을 가진 여자들이 흘릴 수 있는 눈물처럼 엄청 슬프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감성이 여리고, 평소 영화에 나오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장면들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어서 감동 받은 것이었다.

 

 '어머, 어쩜 저렇게 로맨틱하니!'

 

 그녀에게 찾아온 봄날에, 기대하고 설레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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