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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36 화. 취중에 질러버린 고백과 늑대의 울음소리
작성일 : 17-07-17 16:46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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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36 화. 취중에 질러버린 고백, 그리고 늑대의 울음소리

 

 

 

 세희가 술에 취해 굳게 잡고 있었던 의식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다.

 

 "히끅."

 

 도진은 그 앙증맞은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어, 싸움을 중단하고 황급히 지원의 팔을 두드리며 말했다.

 

 "야, 야. 우리 싸우는 건 그만하고. 빨리 세희 씨 모셔다드려야겠는데..."

 

 그렇게 얘기하는 도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지?

 

 줄곧 도진이 앉아있는 쪽으로 향해 있던 지원의 얼굴이 세희에게로 향했다.

 

 지원이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어느새 바닥을 들어낸 술병을 들어올렸다.

 

 "세희 씨..? 이건 또 언제 마신 거야... 세희 씨, 일어나요. 집까지 태워다드릴게요."

 

 그가 세희를 부축하기 위해 팔을 뻗자, 그녀가 그의 팔을 탁하고 쳐내며 그를 쳐다보았다. 살짝 풀린 눈빛과 실없이 쏟아져 나오는 눈웃음이 평상시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술로 인해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되어있었다.

 

 "이거 놔아."

 

 짙은 애교 섞인 목소리가 길게 늘어지며 고집을 피웠다.

 

 그렇다.

 

 그녀가 술을 마시게 되면 그녀는 더 이상 그녀가 아니다.

 

 

 

 세희가 초점이 잡히지 않아 어지러운 눈을 가늘게 뜬 상태로 지원을 올려다보았다. 삿대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어? 지원이다아아. 이씨, 이 나쁜 노마아아."

 

 도진과 지원. 그 어느 누구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적응 되지 않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 중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도진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뒷목을 매만졌다. 자신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왠지 일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다. 얌전하고 순한 아가씨가 술을 먹더니, 완전 딴 사람이 되어버렸네?

 

 세희가 지원의 팔을 잡아당기자,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지원은 그대로 자리에 앉으며 그녀에게로 끌려갔다.

 

 "우쭈쭈쭈. 우리 지원이 왜 이렇게 잘 생겨써요? 입술 색깔 예쁘다..."

 

 그녀가 그의 얼굴에 두 손을 올리고서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사실, 술을 먹은 상태라 ‘초롱초롱’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우수에 젖어 남자의, 아니. ‘지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촉촉한 눈빛으로’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지원의 붉은 입술을 천천히 쓸었다.

 

 

 

 도진은 이쯤에서 빠져주기로 했다. 그녀의 웃긴 모습에, 계속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저 아가씨 하는 걸로 봐서는 왠지 무슨 일을 낼 거 같았다. 그녀가 술을 마시면 솔직하고 화끈한 여자가 되리라고는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반전의 아가씨, 오늘 꼭 지원이 잡아요.

 

 그는 혜빈이 생각났다. 누나도 저렇게 화끈하면 좋겠다.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는지라, 배가 아팠다.

 

 "아까 시비 걸어서 미안. 세희 씨한테 나쁜 마음 품고 그런 건 아니야. 나 사과했다? 나 먼저 가볼 테니까 넌 세희 씨랑 잘해봐. 큭큭."

 

 도진은 빠른 속도로 제 할 말을 끝내고 지원에게 윙크를 날려준 뒤, 술값을 치루기 위해 계산대로 갔다.

 

 '기분이다! 강지원의 솔로탈출 선물.'

 

 

 

 

 

 ***

 

 

 

 

 

 지원은 세희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 번도 세희의 성격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입사 초기에 그녀와 조금 마찰을 빚었던 것을 제외하고, 그녀는 밝고 귀여웠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끌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한 사람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본 세희가 그녀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밥 친구를 하며 그녀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의 판단은 틀렸다. 세희는 항상 그의 예상을 벗어나는 여자였다.

 

 하지만, 저 솔직함이 그녀가 여태까지 숨겨두었던 모습이라면. 그녀는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세희였다. 잠시 정신을 놓고 있었던 그는 그녀가 어디까지 가는지 보기 위해 그녀를 계속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흥미로움에 그의 눈빛이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랬더니, 그녀가 그의 입술을 천천히 쓸기 시작한다.

 

 가까이 마주한 그녀의 눈빛에 한 번. 그 야릇한 감촉에 한 번. 그의 입술에서 들릴 듯 말듯. 약하게 끄응하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지원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술기운이라지만, 세희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몰라 혼란스러웠다.

 

 술기운이든 아니든, 그녀는 역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는 그녀의 행동은. 그로 하여금 웃음을 참다못한 바람 빠지는 소리는 물론, 손의 근육이 씰룩거리며 그녀를 품에 안고 싶어 아우성을 치게 했다.

 

 그녀가 그의 입술을 만지다 말고 얼굴을 조금 숙이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의 눈이 꼭, 상처받은 강아지 같았다.

 

 

 

 폭발, 10초 전.

 

 10...

 

 "피이~."

 

 "왜요? 이제 집에 갈 마음 생겼어요?"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6...

 

 "우웅.."

 

 5...

 

 그녀가 주먹 쥔 손을 입가로 가져가며 고개를 저었다. 술에 취해 살짝 젖은 촉촉한 눈과 함께, 지원의 심장을 거칠고 빠르게 두드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녀가 너무 귀여워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품에 안아보고 싶은데, 자신 혼자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는 상태니 그럴 수 없었다.

 

 

 

 3...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안되겠어요. 세희 씨, 집으로 돌아가요."

 

 2...

 

 그는 세희를 부축해서라도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1...!!!

 

 그런 그를 그녀가 잡았다.

 

 "우씨, 강지원 이 나쁜 시키야! 앉아!!"

 

 멈칫.

 

 "네..? 방금 뭐라고..."

 

 그녀가 갑자기 그를 쳐다보며 욕을 해대자 어안이 벙벙했다. 한 번도 누군가의 입에서 욕을 들어본 적 없는 그였다.

 

 그리고 갑자기 무슨 이유에선지, 술술 새던 그녀의 발음이 한순간 또렷하게 들려왔다. 비록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할 말은 끝내주게 잘하는 그녀였다.

 

 비록, 그가 그의 상사이기 때문에 그런 그녀의 성격을 모르고 있었던 것 뿐. 술 먹는다고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아니니.

 

 "야 이 도둑놈아! 너 그러면 좋냐? 남의 마음은 이렇게 헤집어 놓고 뒤에서 다른 사람이랑 결혼 준비하면 좋냐고! 친구라면서, 왜 한 마디도 안 해주는데?"

 

 "무슨 말인지..."

 

 

 

 "사람 뒤통수 때릴 준비나 하는 이 나쁜 시키야... 사랑한다고......"

 

 세희의 말끝이 조금 떨리며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그녀의 입술이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희는 지원의 옷깃을 꽉 쥐며 고개를 들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끝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

 

 지원의 움직임이 세희의 키스와 함께 멈춰버렸다.

 

 

 

 믿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뒤통수라니..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그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하는 게 옳은 것 같았다.

 

 솔직하고 화끈한 여자로 바뀐 걸로도 모자라,

 

 사랑한다니...

 

 자신이 그녀에 대한 감정을 깨닫게 된 날부터 줄곧. 자신 혼자 그녀를 짝사랑한다고 생각해온 그였다. 그러니 그녀의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은 믿기 힘든 것이었다.

 

 워크숍에서 세희가 벌주를 마시기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재희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남자는 돌아보지도 말고 자신을 보게 할 거라던 그의 굳은 다짐은 결국 그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자조적인 씁쓸함이 그의 온몸을 지배했다. 그답지 않게 여태껏 허튼 생각만한 자신이 처음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업무를 완벽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면 뭐하나. 정작 자신의 마음에는 둔해 감정만 엇나가고, 그를 좋아하는 여자에게 상처만 주고. 사장 강지원은 만점일지 몰라도, 남자로서의 강지원은 자신이 봐도 한참 부족했다.

 

 

 

 "세희 씨... 고마워요."

 

 세희의 어깨를 살짝 밀어낸 눈물로 젖은 그녀의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준 그녀가 사랑스러워 미치겠다. 자신의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지켜내고 마는 그였지만. 세희는 더욱.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지키고 싶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마주한 세희의 달콤한 입술을 머금었다.

 

 그가 세희의 입술에서 떨어졌을 때.

 

 스르륵-

 

 세희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품으로 무너졌다.

 

 그는 그런 그녀를 품에 안아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

 

 

 

 

 

 도진은 지원과 세희를 그렇게 놔두고서 혜빈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어제 오피스텔로 완전히 들어온 혜빈에게 그는 같이 살자고 제안했었다.

 

 

 

 .

 .

 .

 

 

 

 “우리, 그냥 같이 살까?”

 

 탄탄하고 새하얀 상체를 훤히 내놓고 있는 그를 차마 제대로 보지 못하던 그녀는 눈길을 자꾸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말했었다.

 

 “ㅁ.. 무슨 소리야.”

 

 그가 그녀의 귓가로 바짝 다가왔다.

 

 “원래는 누나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이 집은 당분간 누나 집으로 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사랑스러우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자꾸 자극하지 마요.”

 

 도대체 그녀가 무슨 자극을 주고 있다는 건지. 혜빈은 그가 귓가에 남기고간 자극하지 말라는 말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낮게 깔려 으르렁 대는 목소리가 그녀를 자극한 탓이었다. 지나치게 유혹적이었고, 탁했다.

 

 아찔한 상황에 휘말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혜빈은 뜨거운 눈빛으로 저를 잡아먹을 듯한 그가 무엇을 얘기하는 지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도망가야 한다. 고백이고 뭐고, 지금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생쥐 신세인데 중요하지 않았다.

 

 도진의 힘이 조금 약해진 틈을 타 그의 품을 빠져나온 혜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의 몸을 가릴 만한 것을 가져왔다.

 

 “ㅇ.. 이거나 입고 나와. 나 할 말 있어.”

 

 졸지에 도진은 혜빈의 품에 들린 자신의 옷을 든 채로 방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내 몸이 그렇게 별론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몸 좋다는 칭찬을 지겹도록 들은 그였다.

 

 지금 아니면 언제 볼지 모르는 만큼 봐두면 좋을 텐데, 그녀는 이 좋은 기회를 뻥 차버린다.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한편으로는 그에게 적응된 그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보였던 어두운 눈빛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게 상황을 빠르게 전환해준 그녀가 고마웠다.

 

 그리고 아까 그녀의 눈빛과 말투.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뭔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모양이었다.

 

 

 

 그는 옷을 다 입고서 방을 나왔다. 혜빈이 방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얘기인지 듣고 싶어요. 해줘요.”

 

 그가 몸을 살짝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그녀와 가까이서 얘기를 나누고픈 그의 마음이었다.

 

 혜빈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가야 했다.

 

 “결혼.. 말인데 네 말대로 난 아직 결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 없어. 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원해. 그래서 집에서 결혼하라고 압박을 줘도 마음이 동하지 않아 도망만 다녔어.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너무 부담스러워.”

 

 도진이 그녀의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려주었다. 그런 그의 눈빛이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 번도 속마음을 제게 털어놓지 않던 그녀의 용기에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기다려주면 안되니?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나도 결혼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할게. 고마워.”

 

 마지막의 ‘고마워’라는 그 말이 왜 그에게는 그녀를 여태까지 기다려준 남자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 걸까.

 

 

 

 “이거... 고백으로 들어도 되죠?”

 

 그의 얼굴 가득 가슴 벅찬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해주지 않아도 좋았다. 지금 그녀가 말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고백이었으니까. 적어도 그녀가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보겠단 말은 자신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발전임이 틀림없다.

 

 “응?”

 

 “그럼, 같이 살자는 제 물음에 대한 누나의 답은 뭐에요?”

 

 “안 돼.”

 

 혜빈은 한껏 기대로 부푼 도진의 기대를 풍선 터뜨리듯 너무 쉽게 터뜨려버렸다. 그의 뒤에서 살랑이던 늑대의 꼬리가 축 쳐진 것 같았다.

 

 그는 집요하게 혜빈을 따라다니며 그녀의 방에 한 발짝도 들이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녀는 동거라고 그들의 관계를 정의하려는 도진에게, ‘동거는 무슨, 너 나 안 건드릴 거라고 했으니까 합숙이야. 합숙. 믿는다?’라며 선을 딱 그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혜빈의 방 맞은편에 있는 작은 방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

 

 

 

 

 

 도진은 욕실에서 씻고 나와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그가 물을 끓이고 다 마실 때까지 웬일인지 혜빈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나? 잠을 자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그녀와 처음으로 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현관 앞에 마중 나와 있어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집이 있는 남자의 로망이랄까.

 

 결혼도 아직 안했건만. 벌써 신혼 분위기를 내고 싶어 하는 그였다.

 

 그는 결국. 혜빈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과 그녀가 잠잠한 이유가 궁금하여 살금살금. 그녀의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

 

 아무리 귀를 바짝 문에 붙이고 있어 봐도 저쪽은 고요하기만 했다.

 

 똑. 똑.

 

 그가 살짝 문을 두드렸다.

 

 “누나? 혜빈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가 문고리를 잡고 살짝 돌리자, 끼이익-하며 문이 스르륵 열렸다. 연결 이음새에서 발생한 꺼림칙한 마찰음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가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자,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혜빈이 눈에 들어왔다.

 

 새근새근 내쉬는 여린 숨소리에, 그의 몸을 감쌌던 불안감이 사라지고 안정을 찾았다.

 

 “난 또 뭐라고... 아, 누나. 먼저 자면 잔다고 문자라도 좀 해주지.”

 

 그는 이마에 손을 올리고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리며 그녀의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누나, 방에 들어와서 약속 깬 건 미안한데. 나 걱정시킨 벌이에요.

 

 더욱 가까이 다가가자 이불을 폭 덮고 깊게 잠 들어있는 혜빈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는 침대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녀의 부드러운 볼을 한 손으로 쓸었다. 잠결에 다가온 그의 손길에, 그녀의 미간의 살짝 찌푸려졌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실없이 웃기만 하는 그의 눈빛이 애틋했다.

 

 “잘 자요.”

 

 그는 그렇게 속삭이고 방을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착한 늑대라서 봐준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 윤도진. 이.. 꼬맹이가...”

 

 멈칫.

 

 잠꼬대로 중얼거린 말이어서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정확하게 들었다. 꼬맹이라고...

 

 

 

 꼬맹이란 말은 그녀가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주던 시절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었다. 왜 꼬맹이냐고 투덜거리니까 그녀보다 나이가 어린놈이 꼬맹이지, 그럼 뭐냐고 그랬던 그녀.

 

 어째서 그녀가 저 말을 잠결에 중얼거리는 걸까.

 

 한동안 그의 시선이 허공에 맴돌며 멍하게 있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과 함께 꼬맹이라고 말한 것은 단 한 가지 이유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녀가.. 그녀도... 자신을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가 그녀와 함께 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사소한 걸로 기대하지 말자고, 그냥 별 거 아니라며 흘려버렸던 그였다.

 

 자신이 조금만 더 눈치가 빨랐더라면... 처음 다시 만났던 식당에서 눈치를 챘더라면... 그 당시의 그는 재회의 기쁨에 흠뻑 젖어 능글거리기 바빴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고 할 때는 더욱 새침해진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그가 그녀에게 서운해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 자신을 안다고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했지만, 좋았다. 그녀도 자신을 잊지 않아줘서.

 

 

 그가 천천히 끌리듯이 몸을 숙여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쓸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품에 가두고 혼자만 보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그녀와 결혼을 하고, 이 집에서 같이 사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소원이었는데 그녀의 고백을 듣게 된 순간 필요가 없어졌다. 마치, 온 세상이 구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으로 그동안의 짝사랑에 대한 보상은 충분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애틋하고 간지러운 자극 때문이었는지, 혜빈이 잠자리에서 뒤척였다.

 

 “으음...”

 

 쪽.

 

 그가 그녀의 사랑스러운 입술에 짧게 뽀뽀했다.

 

 혜빈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일상적이지 않은 감촉에 혜빈이 잠에 취해 안 떠지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의 눈을 마주했다. 뭔가 이상한 자세에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 야, 너 뭐야. 안 내려가?”

 

 “싫어.”

 

 그가 투정부리듯 말하며 고집을 피웠다.

 

 “그럼 너, 나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도진을 쫒아내려는 그녀를 양 팔로 가둔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혜빈을 내려다보았다.

 

 “대답해줘요. 나 아까 들었어. 당신 나 기억 못 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 한 거지?”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그를 쫒아내려던 그녀는 졸지에 늑대에게 잡혀버린 먹잇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떻게 알았지? 속으로 뜨끔한 그녀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려다 그의 손에 잡혀버렸다.

 

 “또 내 눈 피하려 하지 말고 날 봐요. 키스 할 거야, 대답할 때까지.”

 

 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으르렁대며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의 갑작스런 침입에 흠칫 놀란 그녀는 그의 등을 미약한 힘으로 때리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집요하게 그녀를 옭아매던 그는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자, 그녀를 다시 놔주고서 입을 열었다.

 

 “아직도 대답 안 할 거야?”

 

 결국. 그녀가 백기를 들었다.

 

 그에게 잡혀버린 이후 줄곧 그를 피하기만 하던 그녀의 눈빛이 그의 눈을 마주했다.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나오는 거친 숨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 하아... 알고 있었어...”

 

 

 

 나는 이미 너에게 취해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무리였다. 이미 그가 알아버린 이상, 아니 그 전부터 그녀는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고등학생 시절의 그 남학생은 첫 키스로 한 여자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으니까.

 

 그녀의 눈이 불빛에 일렁이며 하염없이 흔들렸다.

 

 “쉬잇, 거기까지만. 더는 안 물을게요.”

 

 더 묻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어요.

 

 

 

 1980년대에 유행했던 영화처럼. 성우들의 끈적한 목소리가 꽃을 피운다.

 

 혜빈, 우리 마음 깊기만 한데 밤 한 번 뜨겁게 불태워 볼까?

 

 그가 다시 고개를 내려 그녀의 이마에 한 번. 콧등에 한 번. 입술 자국을 남긴 뒤 그녀의 붉은 입술로 향했다.

 

 아이참, 몰라!

 

 혜빈이 촉촉한 눈빛으로 도진을 올려다본다. 부끄럽지만 싫지는 않은듯. 얼굴을 붉히며 솜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때린다.

 

 마주한 그들의 입에서 야릇한 숨소리가 나올 때까지 그들은 계속 서로의 숨결을 탐했다.

 

 

 혜빈의 목덜미에도 뜨거운 자국을 남긴 그는, 쇄골로 입술을 옮겨가며 짙게 젖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

 

 

 

 착한 늑대로 그녀의 방에 들어온 그는 유혹적인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나쁜 늑대가 되어버렸다.

 

 그날 밤, 늑대의 울음소리가 겨울 밤 공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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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 45 화. 어차피 씻을 거, 같이 씻을까? 2017 / 7 / 18 28 0 6687   
45 제 44 화. 널 정말 많이 사랑해 2017 / 7 / 18 24 0 7847   
44 제 43 화. 굳게 닫혀있던 문이 활짝 열리다 2017 / 7 / 18 25 0 6897   
43 제 42 화. '오빠'라고 한 번 불러봐요 2017 / 7 / 18 24 0 7755   
42 제 41 화. 사랑은 믿음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2017 / 7 / 18 27 0 7188   
41 제 40 화. 왜 이렇게 예쁜 거예요? 2017 / 7 / 18 24 0 6654   
40 제 39 화. 더 좋은 기억들만 가득하게 해줄게… 2017 / 7 / 18 23 0 8072   
39 제 38 화. 오늘부터 사귑시다 2017 / 7 / 18 24 0 8337   
38 제 37 화. 부끄러워서 두 번은 못 하니까 잘 들… 2017 / 7 / 17 25 0 7411   
37 제 36 화. 취중에 질러버린 고백과 늑대의 울… 2017 / 7 / 17 26 0 9132   
36 제 35 화. 그녀가 술을 마시면.......? 2017 / 7 / 17 22 0 6451   
35 제 34 화. 새하얀 차림으로 그녀를 반겨주면 … 2017 / 7 / 17 26 0 6131   
34 제 33 화. 입가에 묻은 팥앙금을 훔쳐간 남자… 2017 / 7 / 17 26 0 7756   
33 제 32 화. 달빛과 함께한 두 사람 2017 / 7 / 17 24 0 7189   
32 제 31 화. '오빠'란 단어가 귀에 거슬린… 2017 / 7 / 17 24 0 5734   
31 제 30 화. 사랑은 마음 가는대로 2017 / 7 / 17 25 0 5977   
30 제 29 화. 누군가의 결심 2017 / 7 / 17 31 0 7116   
29 제 28 화. 사랑은 간절한 마음이 필요하다 2017 / 7 / 17 21 0 6776   
28 제 27 화. 초보 늑대도 엄연히 남자다! 2017 / 7 / 15 24 0 7070   
27 제 26 화. 엉큼한 늑대와 초보 늑대 2017 / 7 / 15 26 0 7108   
26 제 25 화.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2017 / 7 / 15 23 0 6909   
25 제 24 화. 둔한 예비 커플과 뜨거운 커플 2017 / 7 / 15 27 0 9707   
24 제 23 화. 봄바람을 실은 도둑 입맞춤 2017 / 7 / 14 27 0 8617   
23 제 22 화. 이 감정은 뭐지? 2017 / 7 / 14 27 0 9937   
22 제 21 화. 노란오리와 첫사랑 2017 / 7 / 14 26 0 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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