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확신
웬 여성이 모니터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니 사람들에게는 재미난 광경이었다. 신재혁은 망가진 자신의 모습이 어찌 보이든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이 모습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웃음거리가 되던 손가락질을 받던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단지 두 눈은 모니터를 떠나지 않고 감찬욱과 관련된 기사를 읽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그게 현실일 줄이야…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된 건데? 나 때문에 죽은 거야?’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A씨는 알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한 뒤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 뉴스기사가 작성되어 있었다. 신재혁은 그건 분명 자신이 한 짓이 맞았다. 꿈인 줄로만 알고 대담하게 행동했는데 그게 현실일 줄 누가 알았을까. 자신이 때렸던 김대리는 물론 그 때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충격에 빠졌을 게 분명하다.
신재혁은 조용히 인터넷 창을 내렸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진 않지만 현실임을 받아 들여야 했다. 자살을 했다고 나와 있는 A씨는 신재혁이 죽인 거나 다름없었다. 감찬욱은 신재혁이 죽인 게 맞았다.
자수를 해야 할까.
사실 이 사람은 자신이 자살을 하는 바람에 억울하게 죽은 것뿐이라고, 이렇게 말하면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분명 옥상에서 뛰어내렸는데, 죽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몸으로 깨어났다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신재혁은 모니터 화면을 끈 뒤, 검은 화면 뒤로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을 감고 뜨면 다시 자신의 얼굴로 돌아갈까,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눈앞에 진채영이라는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깊은 잠이라도 자야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평생 이 얼굴로 살아야 할까. 본래의 모습 보다야 백 번 천 번 나은 얼굴이지만 다른 사람의 몸으로는 살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감찬욱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망쳐놨으니,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다. 어떻게 하면 진짜 진채영이라는 사람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신재혁은 정말로 죽고 싶었다.
‘인터넷에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또 있을 리는 없겠지?’
끄나풀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모니터 화면을 켠 뒤 인터넷 창을 열었다. 검색창에 무어라 쳐야지 비슷한 사례가 나올까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건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인에게만 일어난 특별하다면 특별한 일이었다. 신재혁은 키보드를 강하게 내리쳤다. 또 한 번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더럽게들 쳐다보네.’
신재혁은 더 이상 PC방에서 얻을 정보가 없다고 판단하여 눈치를 보다가 빠져 나가기로 했다.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는 척 하며 기회를 봤다가 도망을 치기로 결심했다. 완벽한 타이밍은 언젠가 나오니까. 기다리다 보면 적당한 때가 보일 거다.
그러나 한 박자 쉬어 가라는 듯이 신재혁의 시야에 실시간으로 바뀌는 인기 검색어가 눈에 띄었다. 그 중 미래그룹 현도민이라는 검색어도 있었는데, 언제 한 번 들어 본 것 같은 기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과 생년월일이 같은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이 사람까지 3명이나 나랑 생년월일이 똑같잖아? 하긴 하루에 태어나는 신생아가 몇 명인데… 근데 이게 우연일까?’
자신과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을 연달아 만날 확률은 과연 어떻게 될까. 비록 날마다 수많은 신생아가 태어나긴 하지만, 서로 만날 확률은 손에 꼽겠다. 두 번으로는 불확실 하지만 다음에도 생년월일을 같은 사람의 몸으로 깨어난다면 그건 정말 소름이 끼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죽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신재혁은 그저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의 몸으로 깨어나는 거라면 현도민 또한 해당되는 사항인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현도민의 몸으로 깨어나지, 왜 아무것도 아닌 감찬욱과 진채영의 몸으로 깨어나느냐 말이다.
‘현도민… 이 사람의 몸으로 깨어난 다면 눈 딱 감고 살 수 있겠는 걸? 미래그룹 부회장이라… 누가 마다하겠어?’
감찬욱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사라져 버린 건지 어느새 신재혁은 흑심을 품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같은 생년월일을 가진 사람의 몸으로 깨어나는 거라면 언젠가 현도민의 몸으로도 깨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신재혁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보다가,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금방 포기했다.
‘아니지… 그렇다고 무턱대고 죽을 순 없잖아?’
게다가 이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감찬욱때처럼 무작정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순 없었다. 두 번이나 겪어봤지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렇게 예쁜 얼굴 가진 몸을 본인의 욕심 때문에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이 몸은 고스란히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몸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냐 말이다.
저 이제 이 몸에서 나갈게요. 잘 쓰다 가요. 하고 멋대로 빠져나올 수는 없지 않나. 신재혁은 영혼이 되어 서서히 몸에서 빠져나가는 상상을 해보지만 그게 될 리는 없었다. 유체이탈이라도 시도해 봐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우선 잠을 푹 잔 뒤, 몸에 변화가 있나 지켜보기로 했다.
잠을 자기 위해서는 집으로 가야하나 싶었지만 그렇게 성질을 내고 나왔으니 되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후불제 PC방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버틸 순 있을지 몰라도 잠을 자기에는 충분한 장소가 아니었다.
원래 본인의 집이었던 지하방은 그렇게 무너져 버렸으니, 마땅히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럴 땐 잊고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이건 역시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신재혁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아까 보니 그 남성, 회사에 다니는 것 같던데. 이른 시간이라 집에 없을지도 모른다.
관건은 PC방에서 무사히 빠져나가야 하는데, 용케도 화장실은 밖에 나가야 있다는 문구를 발견했다. 겉옷을 벗고 나가면 의심이 덜 하지 않을까, 신재혁은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당당히 PC방을 빠져 나왔다.
민감한 피부에 추위가 제법 강하게 밀려왔지만, 이 정도는 참을만했다. 지하방에서의 추위와 비교해 보면 이불을 덮지 않고도 잘 수 있을 정도였다. 여성의 몸이었지만 정신과 영혼은 신재혁, 본인의 것이 맞는지 웬만한 추위에는 거뜬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는 추운 날씨에 미친년 하나가 옷을 얇게 입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