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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밸런스
작가 : 을해
작품등록일 : 2018.11.2

태어나서는 안 됐어야 할 남자의 끔찍한 반란.

세상의 불공평에 맞선 한 남자의 몸부림.

한날한시에 태어난 10명의 사람.각기다른 운명. 최악과 최고의 공존.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 아니다. 운명은 빼앗는 것이다.

 
prologue.
작성일 : 18-11-02 08:18     조회 : 505     추천 : 7     분량 : 1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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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밸런스

 prologue.

 하루에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

 수백, 수천 명.

 

 그 중, 한날한시에 태어나는 10명의 아기.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아기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 부모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귀한 생명에 감동 받아서 일까.

 

 저마다의 운명을 달고 태어난 아기들에게는 아직 낯선 세상.

 

 생명의 탄생은 축복을 받아야 할 일이지만,

 행복함에 빠져있는 건 부모들일 뿐.

 

 누군가에게는 불행의 순간이었다.

 

 **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책상위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자료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쌓여만 가는 사건들로 인해 며칠 동안이나 청소를 하지 못한 상태이다. 오형태는 아까 전부터 똑같은 자료를 수십 번 씩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였다. 무엇인가 고뇌가 있는지 미간의 주름이 갈수록 늘어났다.

 

 “후…….”

 

 짧은 한숨을 내뱉고, 드디어 들여다보고 있던 자료를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훑어 봤는데도 원하는 해답을 찾지 못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 막혀 있는 벽이 사라지기라도 할까. 머리를 매만져 보고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그의 허리가 뒤로 젖혀지고, 우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생각에 빠진다.

 

 피해자는 총 다섯 명.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다섯 명 모두 자살로 판결이 난 사건이다. 그러나 이대로 사건을 종결시켜버리기에는 무시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의문점이 하나 남아있었다. 바로 자살자의 생년월일이 모두 동일하다는 점. 첫 번째 자살 사건이 발생한 후로 약 세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지만, 그 세 달 동안 생년월일이 동일한 사람이 무려 다섯 명이나 자살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 대한민국에서 자살을 택하는 사람은 하루만 해도 수십 명이나 될 텐데, 세 달 동안 다해봐야 다섯 명뿐인 이 사건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한 이유는 오형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본능에 이끌리게 된 것인지.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다섯 명의 자살 사건은 분명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보였다. 분명 숨겨진 내막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며 개인적인 시간을 써가면서까지 억지로 수사를 진행시키고는 있지만, 생년월일이 같다는 점을 빼고는 더 이상 연관이 있어 보이는 단서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감찬욱, 진채영, 조성빈, 김환희, 권영진.

 

 자살자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았다. 그 다음

 

 대구, 서울, 인천, 다시 서울, 부산.

 

 자살자들의 거주지를 살펴보았다.

 

 사는 지역이 달라 서로 일면식 따위는 없어 보였다. 혹시 서로가 믿고 있는 공통적인 종교라도 있을까 하여 주변인들을 탐문해 보았는데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자살을 택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자살자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다는 의견뿐이었다.

 

 “감찬욱씨 부인되시죠? 혹시 자살의 징후 같은 건 못 느끼셨나요?”

 

 “자살이라뇨? 절대 자살이 아니에요! 얼마 전에 신혼여행도 갔다 왔는데… 그 이랑 마지막에 같이 있었던 사람이 직장 상사라던데, 경찰에서 더 조사해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자살을 할 사람이 아닌데 자살이라고 결론짓다니! 다시 철저히 조사 해 보라고요!”

 

 회사 내의 직장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로 인한 충돌적인 자살?

 

 그러나 첫 번째 자살자로 밝혀진 감찬욱의 프로필을 보면, 평소 일처리가 말끔하여 직장상사에게서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걸로 판단되어 보인다. 회사 옥상에서 투신을 했다고 나와 있지만, 회사 일과는 상관없는 다른 이유 때문에 죽음을 택한 것으로 보여 진다. 얼마 전에 신혼여행도 갔다 온 사람이 갑자기 자살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다음으로는 진채영.

 

 “아니, 그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지 뭡니까? 두 아이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뭐요? 옆집 말로는 부부 싸움 소리가 들렸다고요? 그래요. 그 날 싸우긴 했죠. 그래서 뭐요? 제가 밀기라도 했습니까? 두 아이한테 물어 보세요. 지 혼자 난리 치고 뛰어 내렸다니까요?”

 

 부부 싸움 끝에 홧김에 충돌적인 자살?

 

 진채영은 일찍이 돈이 많은 남자를 만나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한 걸로 보여 진다. 아이가 벌써 두 명. 결혼을 한 뒤, 돈을 많이 버는 남편을 둔 덕에 집에서 놀기만 했다고 전해진다. 남편의 강압적인 성격이 문제되어 보이긴 하나, 인생에 불만이 있어 보이진 않아 보였다. 하기야 돈이 많은 남자를 잡았는데 더 바랄게 있을까. 부부 싸움 당시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고는 하나, 그게 자살까지 이어지지는 않아 보였다.

 

 가족들과 목격자들의 진술을 들어 보아도 자살자들에게서 자살의 이유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중이다.

 

 무엇 때문에 죽음을 택한 것일까.

 

 가열되어있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눈을 감고 생각을 해 볼수록 머리는 더욱 복잡해져갔다. 서로 연관이 없는 개별적인 자살 사건이라고 해도, 자살자들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죽음을 택한 건지에 대해 꼭 풀어내야만 하는 수수께끼였다.

 

 “저기… 선배님?”

 

 그때 누군가 오형태를 불렀다. 눈을 떠서 확인해 보니 어느새 유진한이 옆자리에 와있었다. 광역수사대 팀의 막내로, 오형태와 깊은 우애가 있는 동료 형사였다. 나이차이가 다소 있기는 하나, 끈끈하고 깊은 우정으로 연결 되어 있는 둘의 사이였다.

 

 “어… 그래. 뭐 알아 낸 거라도 있어?”

 

 사실 다섯 개의 자살 사건은 오형태가 홀로 단독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중요한 건 미래그룹의 비리사건 인데, 아무런 단서가 없는 허무맹랑해 보이는 자살 사건에 많은 인력을 쏟을 필요는 없었다.

 

 몇몇은 벌써 포기해 버리고 오직 오형태만이 사건에서 손을 못 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오형태에게 유진한이 찾아 온 것이었다. 무슨 중요한 증거라도 찾아냈는지 내심 기대해 보는 오형태지만, 유진한도 이 사건을 그만 포기해 버리고 싶은 심정인지 기력이 없는 목소리로 오형태에게 말했다.

 

 “아니요. 선배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사건은… 제가 보기에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요? 정말 뭐가 있긴 한 겁니까? 팀장님께서도 그만하라고 계속 눈치를 주는데…….”

 

 존경심에 오형태의 뒤를 따르고 있기는 하나, 유진한이 봤을 때에도 다섯 개의 자살 사건은 서로 연관이 전혀 없는 개별적인 사건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하기야 생년월일이 같다는 점만 빼놓으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했고 피해자들끼리 개인적인 접촉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종교를 믿고 있던 것도 아니라서 언뜻 봤을 때에는 그저 연관이 없는 단순한 자살로만 보였다.

 

 윗선에서는 이제 그만 포기하라며 계속 눈치를 주니, 홀로 사건에 매달리고 있는 오형태가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오형태는 잠시 고민을 하나 싶더니, 책상위에 어질러져 있는 자료 몇 개를 골라 유진한에게 보여주었다. 자살자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자료들이었는데, 빨갛게 동그라미 쳐진 곳에 자살자들의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다.

 

 “다섯 번이야. 다섯 번.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이 연달아 다섯 명이나 죽었어. 이게 과연 우연일까? 피해자들의 나이가 같은 것까진 이해할 순 있어도 생일까지 같은 거면… 뭔가 있긴 한 건데…….”

 

 “그럼… 오형사님 생각으로는 특정한 사람만을 노리는 연쇄살인이란 말씀이신가요?”

 

 “그건…….”

 

 자살이 아니면 누군가의 살인일까.

 

 그렇다고 그건 아니었다. 자살자들이 투신을 할 때 목격자들이 항상 곁에 존재했었다. 직장 상사, 부부 싸움 중이던 남편 등.

 

 왜 하필 죽은 이들 모두 생년월일이 같은 건지 의문이지만, 현재로선 자살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다섯 명 모두 명백한 자살의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동일한 날에 태어난 사람들이 죽음을 택한 건지 오형태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단지 이유가 궁금했다.

 

 잠깐,

 단순한 궁금증.

 

 어느 순간 오형태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보다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자들에게 무슨 연민이라도 있는지 다른 이들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지만 본인에게는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 듯이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세 달 동안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이 자살을 할 확률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게 다섯 명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살자들 중에서 서로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은 분명 또 있을지도 모른다.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날마다 죽어나가는 사람이 허다한데, 그럴 확률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형태는 순간 허무함을 느꼈다. 서로 연관되어 있는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애초부터 서로 연관이 없다는 뜻이란 걸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하루에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만 해도 수백, 수천 명이나 될 텐데. 그들 중 같은 날에 죽는 경우도 분명 있을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섯 명의 자살 사건은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죽음을 택한 이유는 알지 못하겠지만 더 이상 수사를 해 봤자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수사는 여기서 종결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형태는 다른 이들처럼 포기해버리니 한결 편안해진 마음이었다. 그러나 유진한의 눈초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덤덤해 보이지만 완전히 놓지 못한 그 표정. 쌓여있는 자료들만 보아도 다섯 명의 자살 사건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왜 때문에 유독 이 사건에 매달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속사정이 있는 듯 했다.

 

 흩뿌려져있는 자료들을 하나 둘씩 정리하는 오형태의 표정을 보니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정말로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걸까. 계속 지켜보던 중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유진한이 소리쳤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빨갛게 동그라미 쳐진 자살자들의 생년월일이 보였다.

 

 “어라? 선배님! 그러고 보니 자살자들의 생년월일… 선배님이랑도 똑같네요?”

 

 자료를 정리하던 오형태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유진한이 눈치 챈대로 자살자들의 생년월일은 오형태와도 똑같았다. 그에 따른 연대감 때문인지 사건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오형태의 마음도 어림잡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네 말대로 나도 피해자들하고 생년월일이 똑같긴 하지. 내가 이래서 사건을 포기하지 못하나봐. 나랑 같은 날에 태어난 사람이 다섯 명이나 있는데, 모두 자살이라니… 기분이 좀 그러네.”

 

 비록 오형태의 실제 지인, 친구는 아니지만 같은 날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 가지의 공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그 날 태어난 사람들은 다섯 명 보다야 훨씬 많겠지만 왜 젊은 나이에, 아직 이룰 게 많은 삶 속에서 자살을 택한 건지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1986년 04월 17일 생인 다섯 명의 자살자들. 그리고 오형태.

 

 사실 때때로 과거를 돌이켜보면 오형태도 인생의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어쩌다 태어나게 됐으며 어떻게 형사가 될 수 있었는지. 인생의 길은 정해져있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거라고 하던데. 오형태는 스스로 개척을 해서 형사가 된 건 아니었다. 누군가가 목적지를 정해 준 것 마냥 어느 순간 형사의 직업을 갖게 되었다.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정의감이 특출 난 것도 아닌데, 왜 본인이 형사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언젠가 의문을 갖은 적이 있었다. 직접 시험을 치루고 광역수사대에 지원을 해서 들어온 것 맞지만, 이 자리는 자신이 아니어도 언제나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는 그런 자리. 본연한 자신의 자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계속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성실한 회사원이지만, 현실은 한 낱 일개미일 뿐인 감찬욱의 삶.

 

 수려한 외모 덕분에 돈이 많은 남자를 곁에 두었지만 정작 본인의 것은 없는 진채영의 삶.

 

 혹시 자신의 삶에 대해 허망함을 느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된다면 사건의 결론은 자살이 맞게 된다. 수많은 자료들이 있지만 역시나 결론은 자살이 맞는지 여태껏 쏟아 부은 시간들은 물거품이 될 뿐이었다. 자살자들의 주변인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절대로 자살의 징후 같은 건 없었다고 하던데, 하긴 죽음은 정해져 있지 않는 일이니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속마음은 헤아릴 수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살자의 가족들에게 자살 사건에 가려진 비밀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장담을 했는데, 수사 결과 단순한 자살일 뿐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괜한 연대감 때문에 괜히 일을 크게 벌인 건 아닐까 하고 후회가 들었다.

 

 “그나저나 너… 내 생일 기억하고 있었구나?”

 

 걱정은 뒤로 하고, 오형태는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 유진한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말을 했다. 본인조차 챙기지 않는 탄생일 인데, 가족도 아닌 후배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제가 존경하는 최고의 형사님이신데! 그런데요. 당연히 오형사님도 제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하고 계시겠죠?”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유진한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오형태에게 물어보았다. 끈끈한 우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둘의 사이였기 때문에 당연히 오형태도 유진한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어? 어… 당연히 기억하지! 그… 그때 같이 술 마시러 갔잖아!”

 

 누가 봐도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는데, 조금 이해가 가긴 했다. 평소 날짜를 잘 헤아리지 않는 오형태의 성격 상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물어봐도 모를 게 뻔했다. 날짜 개념이 없는 오형태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유진한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꽤나 당황했는지, 황급히 대화의 주제를 다른 곳으로 넘기는 오형태였다.

 

 “야! 그나저나 네 동생 있잖아? 요즘 잘 나가더라? TV만 틀면 네 동생이 나와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고 생각하는지. 오형태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평소에 심각한 얼굴로 자료들만 들여다보고 있더니, 인간미 넘치는 얼굴을 보니 유진한도 이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의 말에 맞장구 쳐주기로 했다.

 

 “하하. 꼴에 유명해 졌다고 요즘 연락이 잘 안되긴 하더라고요. 철이 없는 아이라 말실수만 안하면 걱정할 게 없는데…….”

 

 유진한에게는 요즘 잘 나가는 연예인 동생이 하나 있는 듯 했다. 갑작스레 유명세를 탄 덕에 여동생이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철이 없기로 소문났는데, TV에 나와 혹여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매일매일 노심초사 가슴을 졸였다.

 

 “걱정은 무슨! 걱정할 게 뭐가 있어? 요즘 연예인 되는 것도 힘든데, TV에 나와서 잘 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철이 들다 못해 어른이 됐을 거야. 언제 싸인 하나만 받아줘. 연기 잘 하더라.”

 

 “물론이죠!”

 

 그래도 연예계에서 몇 달 동안이나 잘 생존하고 있는 걸 보면 알아서 잘 하고 있는 듯 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오형태의 말에 유진한도 무거운 마음을 살짝 내려놓기로 했다.

 

 오형태는 잠시나마 동료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휴식을 갖고 쉬어가니 복잡한 머리가 차츰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섯 명의 자살 사건은 이제 그만 놓아주고 요즘 화제인 미래그룹의 비리 사건에 신경을 쓸 때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알리듯, 사무실 안에 대차게 울려 퍼지는 전화벨 소리가 신경을 곤두세웠다.

 

 수화기를 들은 다른 형사가 통화를 하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전화 내용을 알 수 없음에도 좋지 않은 소식임을 짐작했다.

 

 “오… 오형사님!”

 

 통화를 마친 형사가 오형태에게 곧바로 전화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어제 오후 3시 경. 자살로 추정되는 피해자 한 명이 추가로 발견 됐답니다. 조사 도중 피해자의 생년월일이 앞서 발생한 피해자들과 같아 이쪽으로 넘길 예정이라는데요?”

 

 생년월일이 같은 자살자가 추가로 발견 되었다는 소식. 숨겨진 비밀이 있을 거라는 의심의 끈을 놓기로 다짐했지만 신이 아직 그러지 말라고 답을 내려주듯 뜻밖의 소식이었다.

 

 사실 의심이 확신이 되기 위해 다음 자살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마냥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세 달 동안 생년월일이 같은 여섯 명의 자살자.

 

 이제는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다.

 

 여섯 번의 우연?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건의 갈피를 못 잡던 오형태는 드디어 결심을 한 듯 결론을 내렸다.

 

 이건 절대 단순한 자살이 아님을.

 

 **

 

 대형마트 안 전자제품 매장.

 

 한 남성이 진열되어 있는 TV를 보고 있다.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한 듯 산발이 된 머리와 주름이 심하게 져있는 옷차림인 남성. 누가 봐도 거지꼴이었다. 그 남성의 뒤에서 직원 한명이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남성의 몸에서 나는 악취로 인해 다른 고객이 불편을 겪고 있어 당장이라도 남성을 내쫒고 싶었지만, 일개 직원의 권한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저 사람 좀 내보낼 순 없나요?”

 

 계속해서 들려오는 고객의 소리에 직원은 당혹스러웠다. 대놓고 냄새가 나니까 밖으로 나가달라고 하면 얼마나 무례할까. 아무리 노숙자 차림이라지만, 가만히 서서 TV를 보고 있는 것뿐이라 별다른 트집을 잡아 건드리기도 애매했다.

 

 “어휴! 노숙자가 웬 마트?”

 

 자신의 모습을 헐뜯는 목소리가 들릴 법도 했지만 남성은 신경도 쓰지 않고 진열되어 있는 TV만 볼 뿐이었다. 직원은 끝내 남성에게 말이라도 붙여보기로 했다.

 

 “저기… 고객님?”

 

 그러나 애초에 귀머거리인지. 직원의 부름에도 남성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정면에 있는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재미난 거라도 방송하나 싶었지만. 진열이 되어있는 TV에서는 어제 방송한 뉴스만 재방송 할 뿐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 사건. 요즘 화제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피해자의 생년월일이 모두 동일하다는 정보가 입수 되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경찰에서는 의문을 갖고 수사에 들어갔지만 아직은 별다른 진전은 없는 걸로 판단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 사건과. 피해자들의 생년월일이 모두 동일하다는 의문점.

 

 남성은 이와 관련 된 똑같은 뉴스를 벌써 10번이나 보고 있는 중이었다. 직원은 고개를 저으며 불러도 대답 없는 남성을 포기하기로 했다. 때마침 TV 화면 속 앵커의 마무리 멘트가 끝났고, 화면이 잠시 깜빡거리더니 뉴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첫 번째 소식입니다. 미래그룹의 회장 현대철…….]

 

 “그게 과연 우연일까?”

 

 그때 드디어 남성이 입을 열었다.

 

 “예?”

 

 직원은 작은 말소리에도 놓치지 않고 방향을 돌려 다시 남성에게 다가갔다.

 

 “뭐, 도와드릴 거라도 있습니까. 고객님?”

 

 직원은 최대한 공손해 보이도록 두 손을 모아 말했다. 언제 한 번 노숙자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기 때문에 조그마한 실수라도 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처음부터 공손하게 대해주면 노숙자들도 온화해 지는지. 반응이 없던 남성이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직원을 바라보았다. 덥수룩한 머리에 가려진 얼굴이 살짝 보일 듯 말 듯 했지만, 누런 이빨만은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남성은 직원을 보며 웃고 있었다. 기분 나쁜 표정이었다. 직원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이러면 안 되는데. 혹시 불쾌함을 느끼진 않았을까. 직원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다행히 남성은 직원의 뒷걸음질을 보지 못했는지 간단한 질문을 하였다.

 

 “여기 옥상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죠?”

 

 “옥상이요? 마트 옥상은 일반인 출입 불가입니다만… 위층으로 올라가시면 하늘 정원이라고 옥상이랑 비슷한 곳이 있습니다. 흡연을 하실 생각이라면 그곳으로…….”

 

 “아… 감사합니다.”

 

 흡연을 하기 위해 옥상을 찾는 것이라고 판단한 직원은 위층에 흡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남성은 그의 말에 감사하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뒤따라 다니는 악취들이 매장 안을 들쑤셨다. 남성을 지켜보니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직원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휴… 탈취제 좀 많이 뿌려야겠는 걸?”

 

 남성이 사라졌지만 그가 남기고 간 악취는 아직 자리에 맴돌고 있었다. 냄새를 사라지게 하려면 탈취제를 한 통 다 써야 할 정도였다. 직원은 창고에서 탈취제를 들고 와 악취가 나는 매장 곳곳에 뿌려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장은 향긋한 냄새를 되찾게 되었다. 겨우 일을 해결 해 낸 직원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는 마트라서 때때로 노숙자들이 들어오는 탓에 이러한 일은 허다했다. 그래도 오늘은 별 다른 일 없이 지나가게 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시간은 저녁때가 되었고 마트도 슬슬 정리할 때가 되었다. 전자제품 매장 안의 직원은 켜져 있는 TV들을 끄기 위해 전원 스위치를 내렸다. 아직 퇴근을 하기에는 멀었지만 늦은 저녁 제품을 보러 오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전력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으로는 사각지대에 가서 혹시 사람이 있나 확인해 보았다. 밤을 보내기 위해서 지하철역의 노숙자들이 스멀스멀 몰래 들어와 숨어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닌 매장 안을 어질러 놓기 때문에 문을 닫기 전 모두 밖으로 내쫒아야 했다.

 

 다행히 오늘은 없는 듯 했다. 직원은 의자에 앉아 맘 놓고 퇴근시간이 되기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짧은 휴식을 방해라도 하듯. 천장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막 마감을 할 시간이라 서둘러 달라는 목소리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아, 알려드립니다. 현재 7층에 있는 하늘 정원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해 확인 중에 있습니다. 매장 안에 있는 직원들은 고객들의 안전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사고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마트 안에 남아있던 몇몇 고객들의 목소리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7층에 있는 하늘 정원이라 하면, 옥상처럼 되어 있는 작은 쉼터일 뿐인데. 일부로 뛰어내리려고 하지 않는 한 막혀 있는 벽에 의해 쉽게 추락사고가 벌어지지 않는 구조인데 어찌된 일인지 의아했다.

 

 궁금증에 일찍이 전자제품 매장의 문을 닫고 직원은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가보았다. 밖으로 나가보니 벌써 구급차가 도착해있었다. 7층이라는 높이에서 추락한 탓에 현장은 참혹했다. 누군가 놀다가 추락을 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죽을 마음으로 뛰어내린 것인지.

 

 하늘 정원의 구조 상 후자의 의견이 맞아 보인다. 그곳에서 실수로 추락하는 일은 절대 발생할 수 없었다. 직원은 들것에 실려 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순간 아차 하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얀 천으로 덮여져 있는 들것 위의 시체. 그의 옷차림. 피비린내와 함께 풍기는 익숙한 악취.

 

 얼마 전까지 전자제품 매장에서 TV를 보고 있던 노숙자가 분명했다.

 

 옥상을 찾은 이유가 흡연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투신을 하기 위해서였나.

 

 남성의 죽음에 자신도 모르게 기여를 했다는 사실에 직원은 큰 충격에 빠졌다. 마지막을 앞둔 그에게 죽을 장소를 친절히 알려준 것과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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