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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Off Side
작가 : 지현시
작품등록일 : 2019.9.26

세계적인 축구 스타와의 로맨스,
실종된 아빠를 둘러싼 미스터리,
시간을 매개로 한 반전의 판타지!
페어 플레이 룰을 비웃듯 반칙이 난무하는 그라운드 위에서
오늘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자기만의 경기를 뛰고 있는 중이다.
그 앞에 공을 차 주며,
나도 함께 뛰고 있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이 어려운 경기를 멋지게 이겨 보자고, 응원하는 목소리를 글에 담았다.

운명의 파트너, 시온과 정원이 펼치는 인생 최고의 경기!
휘슬은 불렸다. 원더골(Wondergoal)을 향해 함께 달려 보자, 내일이 없는 것처럼!

 
평가전 : 대한민국 VS 북아일랜드 (2)
작성일 : 19-11-10 19:19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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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리암은 초반부터 강하게 몸을 부딪쳐 왔다. 전반 10분, 리암의 팔꿈치에 명치를 맞은 시온은 가슴을 끌어안고 쓰러졌다. 그라운드 위에 누워 천천히 숨을 고르는데 따가운 오후 햇살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정원의 예상대로 석호가 골을 넣었다. 전반 7분만의 득점이었다. 장우가 올린 얼리 크로스(early cross)의 궤적을 따라 석호가 뒷공간으로 쇄도했다. 시온은 한 발짝 뒤에서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석호가 골을 넣을 거라던 정원의 예언이 적중했다. 설마, 하고 마음 한편에 자리하던 의심이 싹 증발해버린 순간이었다.

 시온은 석호와 함께 골 세리머니를 하는 찬영을 쳐다봤다. 둘 중 하나는 자책골이라고 했으니, 찬영은 이제 상대팀 득점이 자기 이름으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안게 될 터였다.

 “괜찮아?” 주장인 장우가 쓰러진 시온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시온은 다시 일어섰다. 정원이 말한 시점까지 앞으로 10여분 더 남았다. 제대로 피하지 않는다면 필시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

 청준은 흠, 하며 오른손으로 입가를 매만졌다. 깔끔하게 면도를 하지 않은 탓에 까끌까끌한 촉감이 느껴졌다. 정원의 예언은 오늘도 적중했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터진 선제골로 전반 초반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시온에 대한 리암의 견제도 눈에 띄었다. 꽤 관대한 성향의 주심을 만난 탓에 파울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나, 청준의 눈엔 경고가 나와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장면들이 벌써 세 차례나 있었다. 리암이 주심의 눈을 피해 시온의 등을 가격했을 땐 봄날의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어 올랐다.

 그라운드 위에 쓰러진 시온을 가리키며 청준은 부심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부심은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할 뿐, 아무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애 하나 병신 만들어야 정신들을 차리지, 쳇.” 청준은 씹던 껌을 바닥에 뱉어버렸다. 입이 썼다.

 교체 카드를 만지작대는 청준의 시야에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왼쪽 측면에서 다양한 공격 패턴을 가져가야 하는 시온이 백패스를 남발하는 게 아닌가. 공이 그의 발밑에 머무는 시간이 2초를 넘지 못했다. 덕분에 리암과의 충돌 횟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정원이가?’ 청준은 정원이 그에게 미리 언질을 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라커룸에서 무섭게 쏘아붙이던 기세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과연 어떻게 그 상황을 전달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미래에서 다 보고 왔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을까. 아니면 전력분석가란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둘러댔을까, 시온은 그 말을 정말 믿은 걸까. 청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원이 이토록 시온을 챙기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형, 재신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겐 시간 여행을 하면서 품게 된 의심이 있었다. 2002년 재신의 부상에 대해 근우가 결백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시온에게도, 정원에게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청준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세준이 준비 시켜.”

 “지금요?” 일수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누구랑 교체하시게요?”

 “정시온.”

 “네에?” 목구멍 저 끝에서부터 긁어온 목소리가 청준의 귓전을 때렸다. 청준이 눈썹을 구기며 일수를 째려봤다.

 “아, 아니 놀라서 저도 모르게. 왜요? 시온이 어디 불편하대요? 아까 쓰러진 거 때문인가?”

 “괜찮아 보이는데…….”라고 하며 일수가 시온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번 세트 피스 끝나는 대로 교체하게 얼른 가서 준비해.”

 알았다며 떨떠름하게 대답한 뒤 일수는 벤치로 걸어갔다. 몸도 안 푼 애를 어떻게 집어 넣겠다는 건지, 청준의 생각을 종잡을 수 없다.

 골대로부터 20m 떨어진 지점에서 북아일랜드 선수들이 프리킥을 준비했다. “밑으로 간다, 밑으로!” 청준이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정원의 눈을 빌려 얻은 정보는 대개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에 선수들에게 전달되었다. 그게 가장 자연스럽고 또 효과적이었다. 90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세세히 가르쳐줘 봤자, 그걸 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의심만 사게 된다. 어차피 뛰다 보면 다 잊어버릴 거, 감독의 지시에 머리가 아니라 몸이 반응할 때 휙휙 던져주면 그만이다.

 청준의 지시에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은 감독의 말처럼 낮고 빠른 패스로 순식간에 수비벽을 지나쳤다. 공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찬영이 골문으로 돌진했다.

 “아이쿠야!” 청준이 이마를 탁, 쳤다. 정신이 없어, 찬영에게 주의를 준다는 걸 깜박했다. 이번 골도 정원이 예지한 대로 되겠구나 싶은 찰나, 시온이 번개처럼 나타나 찬영을 앞질렀다. 그리고는 공을 골라인 밖으로 밀어냈다. 자칫하면 시온의 자책골이 될 뻔했던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코치진들이 모두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청준은 달랐다. 그의 가슴은 전보다 더 격하게 요동쳤다.

 “야! 교체하지 마, 아직!” 청준이 일수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그럼 그렇지. 일수는 씩 웃으며 세준더러 가서 몸이나 풀라고 말했다.

 경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이제 공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정시온 선수의 호수비로 대한민국이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각도가 조금만 틀어졌어도 정시온 선수 발 맞고 들어갈 뻔했어요.

 -킥 감각이 누구보다 좋은 선수 아니겠습니까? 자신 있게 걷어내는 저 모습 좀 보십시오.

 -공에 관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타났어요. 빠른 판단과 그보다 더 빠른 속도, 정확한 볼 처리까지 정말 완벽하네요!

 정원은 대기실에서 미성의 극진한 간호를 받고 있었다. 그가 정원의 주치의라는 말이 퍽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나서지 말라니까…….”

 스마트 폰으로 경기 중계 영상을 챙겨 보며 정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시온의 플레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거 그만 들여다보고 눈 좀 붙여.”

 미성이 스마트폰을 빼앗아 자기 주머니에 쏙 집어 넣었다.

 “줘, 봐야 돼.”

 “네가 봐서 할 수 있는 게 뭐야. 정시온은 이제 네 손 떠났어.”

 겉으론 냉철해 보였으나, 미성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감정적이었다. 정원이 시온 걱정에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벌벌 떨고 있는 꼴을 더는 참고 봐줄 수가 없었다.

 “왜, 정재신처럼 될까 봐 겁나?”

 “오빠!” 정원이 덮고 있던 담요를 꽉 쥐며 소리쳤다.

 “설령 고모부가 그때 그 사고를 묵인했다손 치더라도, 너랑은 아무 상관없어. 오늘도 마찬가지야. 넌 할 만큼 했고,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네 책임 아니야.”

 미성의 차가운 말에 정원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담요를 머리끝까지 올려 덮으며 미성과 자신 사이에 벽을 세웠다. 벽 쪽으로 돌아누운 정원의 등을 보며 미성이 비로소 표정을 풀었다. 이제 좀 자겠구나, 싶었다.

 

 그 시각, 시온은 그라운드 위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반칙이 아니고서야 막을 수 없는 시온 쪽으로 수비수들이 대거 몰렸다. 정원은 리암만 언급했지만, 공을 가지고 적진에 침투하는 시온의 앞엔 다양한 등 번호가 보였다. 시온은 최대한 몸을 사리려 노력했다.

 이보다 더 험한 경기들을 숱하게 겪으며 다치지 않는 노하우를 터득한 그였다. 공중 볼 경합엔 될 수 있는 한 참여하지 않고, 확실한 기회가 생겼을 때만 움직여 체력을 안배했다. 안 그래도 대표팀에만 오면 희생적인 플레이를 해야 한단 강박에 사로잡혀, 주위의 동료들에게 볼을 자주 넘겼는데 오늘은 그런 장면이 유독 많이 보였다.

 그러는 사이, 정원이 경고했던 23분이 되었다. 시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든 이 1분을 버텨 보자, 마음을 다잡았다. 그를 주시하고 있는 청준의 손에도 땀이 찼다.

 공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가고, 북아일랜드의 스로인(throw-in)이 선언되었다. 힘껏 던진 공이 골문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북아일랜드의 장신 선수가 뛰어 올랐고, 공이 그의 이마에 맞았다. 약속된 플레이처럼 보였다. 다행히, 골키퍼의 선방으로 골이 먹히지 않았다. 펀칭으로 쳐낸 공이 한국 선수에게 연결되었다. 역습의 기회였다.

 장우가 하프라인 근처에 서 있던 시온을 발견했다. 그는 롱킥을 찼고, 시온은 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스피드로 내달리는 시온의 오른쪽에서 다른 이의 숨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시온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리암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 순간, 리암이 발을 높게 든 채 시온 쪽으로 몸을 던졌다. 경고를 각오한 태클이었다.

 “……!!”

 시온은 방향을 왼쪽으로 급히 꺾었다. 속도가 붙은 후라 무게중심이 흔들렸고 결국 앞으로 고꾸라졌다. 잔디 위에 얼굴을 파묻은 시온이 몸을 들썩였다.

 찬영이 달려가 시온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허허거리며 웃고 있었다.

 “……피했어.”

 무릎이 좀 까이고, 몸 여기저기가 쑤셨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주심은 무리한 플레이를 한 리암을 향해 카드를 꺼내 들지 않았다. 장우가 대표로 항의해 보았지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선수간의 접촉이 없었다-.

 “Hey!” 시온도 그 판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침을 튀기며 리암이 경기 내내 얼마나 자신을 괴롭혔는지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다. 심판 옆에 서 있던 리암에게 손가락질도 했다. 이럴 때 갈기를 세우지 않으면 상대가 얕잡아 볼 수 있다는 걸 시온은 너무도 잘 알았다.

 청준도 격노하여 부심에게 열심히 따졌다. 이번엔 부심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수긍하는 듯했다. 그러나 주심의 결정이 번복되는 일 따윈 발생하지 않았다. 심판이란 족속들은 대체로 그랬다. 인간이기에 범할 수밖에 없는 실수들을 바로 잡으려 VAR(Video Assistant Referees)이 도입되기 전까진, 그들의 판정에 도전할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개중엔 생글생글 잘 웃거나, 친절한 설명으로 항의하는 감독들을 달래는 등 기존의 권위적인 심판의 모습에서 많이 탈피한 인물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근본까지 달라지진 않았다. 휘슬 불린 그라운드 위에서 그들은 목이 곧은 재판관이요, 독선에 빠진 군주였다.

 한바탕 벌어진 소동이 지나가고, 결국 경기가 재개됐다. 그러나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야비한 플레이를 지속하던 리암이 또다시 시온과 충돌했고, 주심은 망설임 없이 옐로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신음하는 시온의 곁으로 태극전사들이 성난 코뿔소처럼 콧김을 뿜으며 몰려들고 있었다. 상황이 격해지기 전에 서둘러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시온이 희생한 대가로 대한민국이 프리킥 기회를 가져왔다. 그가 리암과 충돌해 넘어진 지점에 공이 놓였다. 페널티 박스와의 거리가 제법 가까웠다. 청준은 시온과 석호에게 신호를 주었다. 준비한 세트피스를 시험해 볼 차례였다.

 휘슬이 불렸고, 장우가 한 손을 높이 든 뒤 달려갈 준비를 했다. 장우의 발을 떠난 공이 박스 위로 날아가는 동안 한국 선수들은 미리 연습한 오프 더 볼(off the ball) 움직임을 그대로 가져갔다. 시온 쪽으로 두 명의 수비수가 붙었다. 상대 팀 선수를 원하는 위치까지 유인하자, 박스 중앙에 빈 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 주인공이 나타나지 못했다. 선제골의 주인공인 석호에게도 밀착 수비가 들어간 까닭이었다. -골! 윤찬영!-

 노 마크 찬스의 주인공은 찬영이었다. 그는 침착한 헤딩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선수들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득점이었다. 기쁨을 포효하는 찬영을 따라 선수들이 한쪽으로 몰려갔다. 그들을 보며 시온이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윤찬영, 황석호. 뭐야, 결국 둘이 해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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