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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Off Side
작가 : 지현시
작품등록일 : 2019.9.26

세계적인 축구 스타와의 로맨스,
실종된 아빠를 둘러싼 미스터리,
시간을 매개로 한 반전의 판타지!
페어 플레이 룰을 비웃듯 반칙이 난무하는 그라운드 위에서
오늘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자기만의 경기를 뛰고 있는 중이다.
그 앞에 공을 차 주며,
나도 함께 뛰고 있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이 어려운 경기를 멋지게 이겨 보자고, 응원하는 목소리를 글에 담았다.

운명의 파트너, 시온과 정원이 펼치는 인생 최고의 경기!
휘슬은 불렸다. 원더골(Wondergoal)을 향해 함께 달려 보자, 내일이 없는 것처럼!

 
Seat Number 591 (2)
작성일 : 19-11-08 22:32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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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강도 높은 두려움이 정원을 삼켰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외삼촌을 찾는 것뿐이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 저 자식 진짜 못하네! 안 그러냐, 김열민?” 그때 옆자리의 청년이 정원의 어깨를 치며 말을 걸었다.

 “어?”

 “경기 안 보고 정신을 얻다 팔고 있어?”

 ‘나한테 하는 말인 거야? 나를, 알아?’

 “누구…….” 정원은 누구냐고 물어보려다 멈췄다. 낯선 사내의 굵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뭐?” 청년은 정원만큼이나 당황한 기색이었다. 정원은 오른손으로 목을 만졌다. 불룩한 뭔가가 만져졌다. 문득 어릴 때 엄마가 침대 위에서 자기 전에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이 하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었어요. 근데 그건 먹으면 안 되는 열매였어. 아담이 큰 잘못을 저지른 거야. 아니나 다를까, 아담은 열매를 먹다가 목에 걸려 켁켁 댔지? 근데, 목 한가운데가 점점 부풀어 오르는 거야. 꼭 벌에 쏘인 것처럼. 결국 아담은 목이 부은 채 에덴에서 쫓겨났어. 그 후로 그의 아들도 또 그의 아들도, 전부 목이 부풀게 되었단다. 우리 정원이랑 엄마는 봐봐, 밋밋하니 아무것도 없잖아. 근데 아빤 목울대가 불룩 튀어나와 있다? 남생이도 크면 그렇게 될 거야.”

 아담의 사과. 이게 왜 여기에.

 정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보다 일어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갑자기 높아진 눈높이에 어지러웠다. 팔도 다리도 길어졌다. 아무리 뒤집어 봐도 부채만 한 손바닥은 줄어들 줄 몰랐다. 속이 울렁거렸다.

 “뭐해, 앉아. 벌써 취했냐?”

 시야를 가린 정원을 나무라는 뒷사람들의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나 지금, 다른 사람 몸에 들어온 거야?

 “골……!!”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이 죄다 일어나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대한민국의 선제골이 터졌다. 전반전 9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혼란한 상황을 틈타, 정원은 자리를 벗어났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 복도에 다다랐다.

 ‘뭐야? 이 몸 대체 누구 거야? 나 지금 꿈꾸는 거야?’

 머리가 무거웠다.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무시하려고 애써도 다리 사이에서 뭔가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무심결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화장실 표시가 보였다. 정원은 지금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습관처럼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이다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거울 앞에 섰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처음 보는 남자가 거울 속에 있었다. 180을 훌쩍 넘는 남생만큼 키가 컸다. 아니, 그보다 한 뼘쯤 더 큰 것 같았다. 눈썹은 진했고 턱엔 자잘한 수염도 나 있었다. 누가 봐도 운동을 좋아하는 젊은 사내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어? 누가 좀…… 맞다, 삼촌!’ 잊고 있던 청준의 존재가 정원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줬다. 일단 삼촌을 찾아야겠다, 이 황당한 얘기를 믿어줄지 말지는 찾고 나서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 먹고 정원은 지체 없이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냅다 달렸다. 삼촌의 자리가 있는, E구역을 향하여.

 경기장 밖을 반 바퀴 돌아 정원은 처음에 들어갔던 입구를 찾았다.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 티켓에 적혀 있던 자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45열 29번. 45열 29번.’ 정원은 열과 행의 숫자를 신중히 셌다. 좁은 길을 지나면서 다른 이의 발을 밟기도 하고, 중요한 상황에 앞을 가려버리기도 했다. 여기나 저기나, 다른 관객에게 민폐를 끼치긴 마찬가지였다.

 아직 적응되지 않는 몸뚱아리를 열심히 굽혀 걸으며 정원은 드디어 찾던 자리까지 다다랐다. 비어 있었다. 29번뿐 아니라 청준이 앉아 있어야 할 30번자리도.

 ‘나를 찾아 다니고 있나?’

 굳이 평가를 하자면, 청준은 좋은 삼촌은 아니었다. 정원 남매를 그저 집에 데려다 놨을 뿐, 조카들을 챙기는 일은 모두 아내인 선희에게 맡기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딱히 서운하진 않았다. 그는 좋은 아빠도 좋은 남편도 못 되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사라진 조카를 두고 축구나 보고 있을 위인은 아니었다.

 “거 좀 앉지? 하나도 안 보이는데.”

 “등치는 산만 해가지고, 진짜.”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히 사과한 뒤, 정원은 29번 자리에 얼른 앉았다.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길이 엇갈리지 않으려면 한자리에 계속 있는 게 나았다. 혹시나 하고 청준이 다시 오면 그때 다 얘기하면 된다.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당신의 조카딸, 정원이라고.

 축구 경기는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정원은 5분에 한 번 꼴로 힐끔힐끔 뒤를 쳐다보았다. 그런 상태가 40여분 지속되자 고개가 결리기 시작했다. 좀처럼 보상 받지 못하는 고통이었다. 청준은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88분, 정규 시간이 다 지나갔다. 정원의 동공에 차츰 불안감이 서렸다. 경기가 끝났는데도 청준이 안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혼자 집 못 찾아갈 나이는 지났다. 주머니엔 지갑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잠깐 펼쳐 보니, 신분증과 신용카드, 만 원짜리 지폐와 천 원짜리 지폐 네댓 장이 들어 있었다. 이름은 김열민, 75년생이었다. 돈도 있겠다, 택시를 잡아 타고 집까지 가면 될 일이다. 경기장 앞엔 교통편이 없는 손님들에게 바가지 씌울 택시 기사들이 즐비했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때까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유정원은 물론이고 김열민이란 청년의 인생까지 엉망이 된다. 친구와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그대로 실종된 아들. 그를 걱정하는 가족들 심정이 어떨는지 누구보다 정원이 잘 알았다. 어떻게든 열민을 집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끙끙대는 정원이 다시 힐끔 뒤를 돌아봤다. 있다! 청준이 팔짱을 낀 채 정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청준에게 달려갔다. 자기 쪽으로 뛰어오는 게 이상해선지, 청준은 열민의 몸을 한 정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기…….” 떨리는 숨을 고르며 정원이 삼촌, 하고 말하려는데 청준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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