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최진철은 쌀쌀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는 오영숙을 만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최진철 형사를 매우 불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몇 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왔습니다. 뭐 형식적인 거니까 너무 부담은 안 가지셔도 될 겁니다.”
“여기 찾아온 자체가 저에게는 매우 부담이네요.”
최기영의 새엄마인 오영숙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진철은 늘 겪어왔던 일인지라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신발을 벗으며 물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죠?”
“...”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최진철은 전에 와본 적이 있지만 괜히 멋쩍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드님은 지금 집에 있나요?”
“지금 방에 있을 거예요. 왜죠?”
최진철은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하하하 뭐 별 건 아니고, 그냥 형식적인 거 몇 개만 물어보려고요.”
“...”
“하하 하.”
최진철은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얘, 태준아. 나와 봐.”
“...”
하지만 태준의 방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얘 태준아.”
“...”
“어휴 얘가 또 게임하나보네.”
오영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태준의 방으로 걸어갔다.
똑똑
오영숙은 짐짓 교양 있는 사람인양 방문에 노크를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덜컥
더 이상 참지 못한 오영숙이 방문을 열었고, 열린 틈 사이로 PC 게임을 하는 최태준이 보였다. 헤드폰을 끼고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어휴, 이제 게임 좀 그만해. 그리고 밖에 나와 봐. 형사님이 와 있으니까 뭐 몇 가지 물어본대.”
오영숙은 게임을 하는 최태준의 등을 한 대 때리고는 헤드폰을 벗기고 말을 하였다. 상당히 불쾌해 보이는 표정으로 오영숙을 흘겨 본 태준은 고개를 돌려 거실에 앉아 있는 최진철을 슬쩍 훔쳐보았다.
“아이씨.”
탁탁 탁탁
거칠게 마우스를 움직이며 키보드를 치던 최태준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을 지은 채 거실로 걸어 나왔다.
“뭐 차라도 드릴까요?”
오영숙은 부엌으로 가며 최진철에게 물었다.
“예 그럼 커피 한 잔 부탁드립니다.”
“엄마 난 됐어.”
최태준은 최진철의 옆에 앉아 거실 창밖을 바라보며 그를 유령 취급하였다.
“태준씨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최기영씨 사고 이후에 말예요.”
최진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 뭐.”
고개를 돌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최태준은 여전히 창밖을 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경찰에서 최기영씨 사고를 조사하다가 몇 가지 의문점이 생겨 물어보려고 찾아왔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며 최진철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도 그렇고 대학교 때 남자들은 온갖 사고를 치기 마련이었다. 멀쩡한 사람들도 술로 인해 개망나니 같은 일을 벌이기도 하였으니까 말이다.
“예.”
여전히 최태준의 목소리는 심드렁하였다.
달그락
어느새 커피 두 잔을 가져온 오영숙은 소파에 앉아 자신의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최기영씨의 사고가 있던 날 밤. 정확히 어디에 계셨죠?”
최태준은 시선을 휴대폰에 고정한 채 말했다.
“집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러 나갔어요.”
“예. 그리고요.”
“저녁 9시인가 그 때 집에 들어왔었죠. 그리고는 잤어요.”
최진철은 거실 창 밖에 있는 빨래건조대를 보았다. 민서희가 얘기한 후드티가 보였다.
“예 그러니깐요. 그 후에요. 어디 나간 적은 없나요?”
최태준이 고개를 들어 최진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찰나였지만 그의 얼굴에 스쳐지나가는 당황스런 표정도 보았다. 형사만이 잡아낼 수 있는 의혹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게 무슨 뜻이죠? 제가 어디 나갔었나요?”
“흐흐 별 거 아닙니다. 말 그대로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것뿐이에요.”
최진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최태준의 눈빛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집에 와서 잤어요. 그리고 그 뒤로는 어디 나간 적이 없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미란다 원칙 아시죠. 형사 앞에서 하는 모든 증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거요.”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최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휴대폰을 잡은 그의 오른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최진철은 그의 모든 행동을 바라보았다. 최진철이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깨닫자 태준은 황급히 자신의 오른손을 뒤로 숨겼다.
“흐흐 그냥 하는 말입니다. 그런 게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웃으며 넘어가려고 하는 최진철을 최태준은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그거는 범인들 검거할 때 쓰는 말이잖아.”
최태준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있어났다.
“허허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오영숙도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서는 태준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어머 너 왜 그러니? 그냥 형식적인 질문이라잖아. 왜 그래?”
최태준은 자신이 행동이 너무 충동적이었다는 것을 느끼곤 이내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신체 반응은 숨길 수 없었다. 최태준의 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다.. 당 당신 어서 가. 가 이제 더.. 더 이상 하 할 말이 없으니까.”
최진철은 야비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현관으로 걸어갔다.
“예, 그럼 수고하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만간 만날 수도 있겠네요. 참 그리고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거실밖에 화초가 너무 예쁘네요.”
이름도 모르는 빨간 꽃이 핀 화초를 찍으러 거실 창으로 간 최진철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빨래건조대의 후드티를 몰래 휴대폰으로 찍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다시 현관으로 나갔다. 여전히 최태준은 흥분하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그런 그를 이상하다는 듯 오영숙은 바라보며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어머. 얘 왜 그러니? 너 어디 아프니? 어서 방에 들어가.”
“그럼 수고하세요.”
최태준은 능글맞게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가는 최진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철커덕 삐리리리
최진철이 나가고 아파트 도어락이 잠겼다.
그러나 여전히 최태준은 손을 떨며, 무서운 표정으로 닫힌 아파트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