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준.
갑자기 행적이 의심스러워졌다.
민서희는 이미 취재를 통해 여러 번 경험을 하였다. 모든 사람이 다 의심스럽지만, 모든 사람이 다 범인은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그는 유력한 용의자였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최진철에게 모두 얘기하였다.
따사로운 오후, 경찰서 앞 등나무가 얽혀있는 흡연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최진철이 말했다.
“확실히 의심스럽긴 하네요. 솔직히 경찰에서도 유가족의 조사요청도 없었고, 평소 행동으로 보아 요즘 세상이 그렇잖아요. 자살 쪽으로 많이 기우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현장에서 발견한 발자국으로 보아 박민용 교수일 줄 알았는데, 최태준이라...”
최진철은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커피를 그리 즐기지 않는 민서희는 코코아를 마시며, 말했다.
“후릅. 아 뜨거. 어쨌든 저도 수상하긴 하지만 솔직히 확신은 서지 않아요. 좀 전까지만 해도 뭔가 큰 걸 발견한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수상하긴 하지만 최태준이 최기영을 죽였다고까지는 생각되지 않아요. 확실한 동기가 없잖아요. 어쨌든 제가 CCTV 복사본을 드릴테니까 한 번 조사해 보세요. 그리고 저는 박민용 교수님 조사를 더 해보려고요.”
“흐흐흐 그러네요. 박민용 교수 취재하러 왔다가 뜻하지 않은 사건까지 조사하고 있네요.”
민서희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최진철의 옆에 털썩 앉으며 얘기했다.
“어휴 그러게요. 저도 지금 제가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조만간 뭔가 나오지 않으면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지금까지 정리된 사항이라도 보고하려고요.”
“흐흐 그러세요. 그리고 좀 전에 얘기하신 것처럼 정말 박민용 교수가 최기영의 성과를 훔친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예전 같으면 확신을 하고 있었을 텐데, 이런저런 사건을 겪다보니까 확신을 못하겠네요. 그냥 여러 가능성으로 남겨두고 보는 거죠.”
최진철이 웃었다.
“하하하하 이거 민서희씨 맞아요? 예전에 봤을 때는 완전 천방지축 아이 같았는데, 어느새 형사가 다 되었네요.”
“그런 일을 겪고도 얻는 바가 없다면 사람이겠어요.”
민서희의 표정에 슬픔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아차 싶은 최진철이 재빨리 말의 방향을 바꾸었다.
“아하하. 그럼 저는 빨리 최태준의 행적을 추적해 봐야겠네요. 혹시 아나요? 민서희씨가 아주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왔을지 말이에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갈게요.”
민서희는 과장된 표현으로 고마움을 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최진철은 잠시 망설이다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고는 외쳤다.
“저기 서희씨.”
“예?”
민서희가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영화 같았다.
그녀가 돌아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감히 근접할 수 없는 동화속의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최진철은 자신의 모습과 처지가 떠올랐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검고 맑게 빛나는 눈망울이 자신의 가슴속에 와 닿았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왜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민서희가 다시 물었다.
잠시 주춤거리던 그는 입을 열었다.
“아니요. 잘 들어가시라고요. 인사를 안 한 거 같아서요.”
민서희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호호호호 진철씨도 수고하세요.”
그녀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최진철이 나직하게 한 마디 하였다.
“데이트 하실래요? 흐흐 바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