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자연대 앞에서 민서희와 안경식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대운동장에 주차를 하곤 걸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헉 헉 평소에 운동을 할 걸 그랬네요. 대학교가 산에 있을지 헉헉. 너무 힘드네요.”
민서희는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더워서 그런지 가쁜 숨을 내쉬며 걷고 있었다. 땀이 옷을 적시는 느낌도 좋지 않았다. 지난달에 산 새 옷인데 이렇게 땀에 젖어 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허리를 짚고 서서 나무 그늘아래에서 잠시 땀을 식히기로 하였다.
“흐흐 부산이 다 글쵸. 뭐.”
그러나 자연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 그들의 계획은 보기 좋게 꺾이고 말았다. 기자와 언론의 접근을 학교 측에서 미리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학교 경비원들이 학생들이 학생증을 게이트에 대고 들어갈 때, 외부인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거 안 되겠는데요. 서희씨.”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안경식이 민서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민서희의 눈빛은 결연했다.
“그럼, 여기서 잡아야죠. 뭐 어떻게 하겠어요?”
민서희는 스마트폰으로 부산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물리학과 대학원생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노영대, 이영진, 최기영, 박미란, 윤성용, 최태민
그들의 정보는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전화번호도 같이 있으니까, 잠시 인터뷰를 위해 나오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전화를 한 번 해볼게요.”
띠리리리
“여보세요?”
스마트폰에서 낯선 번호를 발견한 노영대는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예 안녕하세요. KCB 방송국의 민서희 PD입니다. 잠시 인터뷰 좀..”
뚜륵
노영대는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휴대폰을 끊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에 있는 대학원생들 모두 들리도록 큰소리로 말을 했다.
“다들 우째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올거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말도 해선 안 되는거 알제? 이건 우리 학교와 우리 과를 위해서다. 우리는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괜히 언론에 입방정 떨었다간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해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이기다. 알긋제?”
저마다 책상에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던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문 입구 근처에 앉아서 몰래 PC로 게임을 하고 있던 3학년 학부생인 윤성용은 이어폰을 빼고 노영대가 하는 얘기를 듣고 나선 친구인 옆자리의 최태민에게 물었다.
“와 저라노?”
최태민은 입을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래 박교수빠 아이가? 이번에 박교수님 잘못 되면 지 앞길도 막히니까 저라는 거지. 뭐. 근데 뭐 솔직히 우리가 뭐 알아야 말할 거 아이가?”
“맞제? 근데 요 근래 교수님도 그렇고 박사 행님들도 좀 이상하지 않드나?”
윤성용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영대가 소리쳤다.
“그 구석에 쥐새끼들. 할 말 있으면 마이크 대고 해라. 하여튼 잡소리 했다간 각오해야 될끼다. 다들.”
머쓱해진 윤성용과 최태민은 다시 고개를 책상에 들이박았다.
“아씨 내 캐릭 죽었다.”
PC화면을 보던 윤성용이 최태민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븅신아 니 때매 우리 망했다.”
최태민이 윤성용에게 말했다.
노영대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이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 어디가노?”
노영대가 이영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화장실도 못 갑니까?”
이영진이 신경질적으로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잠시 후 부산대 앞 커피숍에는 윤성용과 최태민이 민서희와 안경식을 만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KCB 방송국의 민서희 PD입니다. 박민용 교수님과 최기영 학생의 죽음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아 예, 원래 영대햄이 나가면 절대 안 된다 그랬는데.”
“니 때매 내까지 이기 뭐꼬? 아씨 영대햄한테 들키면 죽는디.”
민서희가 인사를 하고 명함을 내미는 순간까지도 윤성용과 최태민은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안경식은 카메라를 조용히 켜고 그들의 몸만 찍고 있었다.
“이거 모자이크랑 목소리 변조 다 되는 거 맞죠?”
“예 그런 건 당연히 해야죠. 아무 것도 걱정하실 게 없어요. 신변보장은 확실히 되니까요. 그런데 노영대라는 분은 누구시죠?”
민서희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커피 시키도 되죠? 내는 까페라떼 좋아하는데, 니는 뭐 묵을끼고?”
윤성용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아 예? 예 마음껏 시키세요. 경식씨 좀 사다 주세요.”
“내도 까페라떼.”
안경식은 말없이 일어나며 물었다.
“서희씨는 아메리카노 맞죠?”
민서희가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대햄은 박사 과정이고, 우리 실험실 꼰대라예. 언론에 나가서 인터뷰 절대 하지 말라고 캤거든요.”
이번에도 윤성용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인터뷰에 응하셨죠?”
민서희가 다가앉으며 물었다. 뭔가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냥요. 재밌을 거 같아서요.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민서희는 허탈했다. 윤성용이 전화를 받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며 친구인 최태민까지 데리고 나온다고 했을 때는 뭔가 엄청난 정보가 있을 줄 알았다.
“그래요?”
민서희의 실망하는 표정을 본 윤성용이 말했다.
“예 마음껏 물어보세요. 우리가 다 얘기해 줄게요.”
민서희는 수첩을 펴고 사전에 준비한 질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커피를 들고 온 안경식이 그런 그녀의 옆에 앉았다.
“최근에 박민용 교수와 최기영씨 사이에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최근에요. 기영햄이 죽기 전부터 좀 이상한 거는 많았어요. 전에는 좀 자신감 넘치고 그 뭐라카노? 훗까시라 해야 되나? 하여튼 좀 폼도 잡고, 듸게 자기애가 좀 강했었거든요. 남들 말 안 듣고, 좀 무시하고, 강박증 같은 것도 있어갖고, 완전 깔끔하고.”
윤성용이 입을 열자 최태민의 그의 말에 동의하며 말을 이었다.
“맞다. 맞아요. 근데 한 한 달 전부터 좀 이상하게 변했다 아입니까. 씻지도 않고 막 나타나고 눈도 시뻘겋고, 정신병자처럼 혼잣말하고, 밥도 안 묵고요.”
민서희는 다시 질문을 하였다.
“그럼 최기영씨가 그렇게 변한 계기가 있었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아 예.”
민서희는 기대를 한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했다. 빨리 질문을 끝내고 다른 사람을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맞다. 니 그 때 밤에 생각 안나나? 그거 말해도 되나?”
최태민이 윤성용을 보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뭐? 뭐 말하는데?”
“아 씨, 그 때 그거. 밤에 우리 게임하다가 교수님하고 기영이햄 싸운 거 그 뒤로 좀 이상해지지 않았나?”
“아 맞다. 한 달 전쯤이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구미가 당긴 안경식이 물었다.
“박교수님하고 최기영씨가 싸웠어요?”
“예. 한 달 전쯤 밤에 태민이하고 실험실 PC로 게임하고 있었는데, 이어폰 끼고 있었는데도 대빠 큰 소리가 나가 우리가 교수님 방쪽으로 갔거든요. 근데 밖에서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기영이햄이 울면서 소리지르고, 교수님이 처음에 작은 소리로 뭐라뭐라 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막 지르더라고요. 그라고 나서 기영이햄이 문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예 맞아요. 그래서 나랑 성용이가 부딪힐 뻔했거든요. 뻘쭘해서 우리가 인사를 하니까 기영이햄이 우리 보지도 않고, 이상한 책 같은 거 들고, 땀 흘리면서 운 것 같은 모습으로 막 뛰쳐 나갔어요.”
민서희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물었다.
“뭐 때문에 싸운 건지 알아요?”
“글쎄요. 그까지는 우리도 잘 모릅니다.”
윤성용의 대답에 최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민용 교수와 최기영씨 사이에는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나요?”
민서희가 다시 물었다.
“예 그라고는 기영이햄이 좀 이상해졌거든요. 교수님도 잘 안 만나고요. 원래는 기영이햄이 졸라게.”
아차 하는 표정으로 윤성용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괜찮아요. 어차피 욕이나 비속어는 우리가 편집하거나, 삐 처리 하니까요.”
“예. 흐흐 그러니까 기영이햄이 진짜 천재거든요. 그래서 교수님이 영대햄이 훨씬 연장잔데도 불구하고 기영이햄을 더 아꼈어요. 그런데 싸운 뒤로는 가까이 있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요. 태민이 니는 교수님하고 기영이햄 같이 있는 거 본 적 있나?”
“아니 그러고보니까 그렇네. 그 뒤로는 교수님이 영대햄하고만 일하고, 기영이햄을 완전 제낀거 같던데.”
“아 그래요?”
“예 박민용 교수님이 원래 똑똑한 사람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기영이햄이 진짜 천재라서 완전 아꼈는데, 어느 순간 영대햄만 찾더라고요. 영대햄은 처음부터 교수님빠였거든요. 교수님 일이라면 던전이 아니라 진짜 헬게이트도 갈 겁니다.”
민서희는 재빨리 노트에 노영대와 최기영의 관계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그럼 그 일 말고는 다른 일은 없었나요?”
민서희의 관심을 끌게 되자 그들은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 말고는 아 맞다. 우리 실험실에 영진이 누나가 있거든요. 원래 영대햄이랑 기영이햄은 안 친한데, 영진이 누나가 성격이 좋아서 둘 사이에서 조율을 잘 했거든요. 그리고 교수님이랑도 친하고요. 기영이햄이 이상해진 뒤로 기영이햄 잘 챙기주고, 교수님일도 같이 많이 도와줬거든요. 근데 기영이햄 죽고 난 뒤로 완전히 교수님하고 영대햄한테서 등 돌렸어요.”
윤성용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태민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테이블을 치면서 말했다.
“그라고 며칠 전에 밤에 실험실에 뭐 가지러 갔는데, 막 영대햄이 영진이 누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 들었어요. 그 뭐라캤지? 말 함부로 하면 니랑 나랑 다 죽는다고 하고, 나중에 잘 되면 다 책임진다고 하는 것도 들었어요. 내가 문 밖에서 살짝 듣고 들어가니까 갑자기 내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리고 영진이 누나는 완전히 표정이 팍 굳어가꼬 와 살벌하던데요.”
“원래 노영대씨와 이영진씨가 박민용 교수님을 도와서 일했었나요?”
민서희가 그들에게 다가앉으며 물었다.
“아니요. 원래는 교수님이 거의 기영이햄이랑 일했었는데, 기영이햄이 이상해지니까 그 때부터 영대햄하고 일했고요. 영진이 누나는 영대햄이 같이 델꼬 다닌 걸로 알고 있어요. 근데 교수님이 세계 7대 난제를 해결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진짜요. 와 그런 거 하는 줄 알았으면 내도 좀 일 시키지.”
“니 시키면 다 망한다. 니가 안 끼어서 교수님이 성공한 거 아이가. 븅아.”
최태민이 웃으면서 윤성용을 놀렸다.
“니 조디 좀 닥치라. 니는 뭐 있나? 똥이나 무라.”
윤성용이 그런 최태민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응수했다.
“그것 말고는 다른 일은 없었나요?”
민서희의 질문에 서로 마주보며 생각하던 윤성용과 최태민은 고개를 저었다. 민서희는 안경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인터뷰는 무의미할 것 같았다.
“그럼 뭔가 생각이 나면 명함에 있는 이 번호로 연락주세요. 그럼.”
“예 알겠습니다.”
윤성용이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였고, 최태민은 엉겁결에 같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민서희는 박민용 교수와 최기영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기 위해 이영진에게 접근하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노영대는 힘들 것 같고, 그나마 이영진에게 접근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민서희의 말에 안경식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