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상미가 덕만의 집 앞 입구를 향해 천천히 들어설 때 덕만은 평상에 앉아 한 손으로 누렁이의 귀 뒤를 긁어주며 달을 보고 있었다.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부르며 집 안으로 내딛자 덕만은 처음에 헛것을 본 것처럼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저어댄다.
“아니, 어째 여길 다시 온 것이여?”
“아버님, 제 잘못으로 그만 버스를 놓쳤지 뭐예요. 여기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으면 하는데 저희 내쫓지는 않으실 거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상미가 이유를 설명하자 아이구, 이거 집이 난장판인데 어쩔까나라며 덕만이 일어선다. 뒤이어 들어서는 호준을 발견하자 긴장한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다. 별 말이 없는 호준을 대신해 저희 배고파요, 아버님이라는 말을 상미가 건네자 덕만은 얼른 상 차릴 테니 방에 들어가서 쉬라며 둘을 방으로 밀어 넣고 부엌으로 들어가 부산을 떨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 그릇들이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님, 우리가 여기서 자고 간다니까 긴장하셨나봐요.”
“아버지, 나 어릴 때도 항상 저랬어요. 뭔가 해도 영 시원찮고 손이 놀아서 불안불안 하달까.”
상미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벽 한쪽으로 기대어 앉는다.
“나는 그런 아버님이 너무 귀여워 보이는데. 호준 씨도 아버님처럼 덜렁거리기도 하고 허점도 보이고 그러는 게 어때요? 그럼 내가 엄청 귀여워 해줄 텐데.”
어이없어하는 힘 빠진 웃음이 잠깐 나왔다 사라진다. 지붕 위 달이 바람 잦은 밤 풍경에 어울려 허연 빛을 퍼뜨리고 있다. 간간이 푸드덕, 하는 오리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잠기고 그 사이 누렁개가 길게 내빼는 처연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렇게 여름밤이 깊어가고 있다. 오랜만에 머물렀다 가는 손님을 맞이한 이곳에는 은밀한 생동감을 배경으로 풍경이 함께 어울려 곰실거린다. 삶이 그림이라면 이것은 익살맞은 풍속화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그 주변을 감싸는 자연에 깃대 널려있으니까. 그 안에 탄식이 있고 한숨과 감탄이 자리한다. 어디에든 자리를 잡고 뿌리를 뻗고 가지를 뻗치는 우리네 삶의 모습 중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게 살아왔고 지나고 있으며 겪어갈 것이라는 걸 알려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