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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8.31

문 여는 자는, 영계에서 넘어오지 않아야 할 영들이 넘어오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두 남녀 주인공이 선택되고 모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현대판타지물입니다.
두 남녀 주인공, 민호와 은지는 로마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만난 사이인데, 한국에 돌아와 둘이 같이 해결해야 일을 떠맡게 됩니다.
건너편 세상에서 온 108개의 영혼을 다시 되돌려 보내거나 소멸시키도록 임무를 부여받고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여러 어려움을 무릅씁니다. 그 여정 재미나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 여는 자 1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5
작성일 : 20-09-28 08:41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10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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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소성당 안은 촛불의 빛만으로 어둠을 밝히고 있다. 인공적인 전깃불은 모두 꺼진 채 어둑한 조명을 유지한다. 바깥은 밝은 대낮이라도 그 안에서는 지금 시각이 몇 시인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다. 그 입구 앞 벤치에 함께 앉아있는 민호와 은지는 긴장한 모습으로 가끔씩 누군가 오지 않는지 시선을 돌린다.

  “이거 정말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성당 건물에서 무당이라니.”

  “설득력 있지 않아요? 우리가 진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어, 저기 누가 와요.”

  천천히 힘없이 걸어오는 상미의 복장은 직장에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하얀 운동화에 아래 위 동일한 붉은 색 운동복을 걸친 채 평소에 풀고 다니던 머리도 뒤로 당겨 하나로 묶어 내렸다.

  “민호야.”

  “누나, 오셨어요.”

  조심스럽게 미소를 짓는 민호는 상미에게 다가서며 알은 체를 한다. 민호와 인사를 나눈 상미는 뒤에 서 있는 은지를 발견하고 은지와 민호 가운데서 멈춘다.

  “이 분이시니?”

  “아, 네, 이쪽은 은지 씨.”

  “안녕하세요, 김은지입니다.”

  은지는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상미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 은지를 바라보는 상미의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다. 눈 안에 조금은 적대적인 빛이 의혹 및 불안과 함께 섞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상미라고 합니다. 아직 젊으신 분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신다고.”

  은지는 미리 생각해놓은 대사를 읊듯이 막히지 않고 빠르게 대답한다.

  “집안 내력이에요. 어머니가 신내림을 받았고 저도 원치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민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는 개의치 않고 은지는 가볍게 상미의 팔을 건드리며 소성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는 동작을 취한다.

  “저기, 하도 민호가 졸라대서 나오긴 했는데 이게 정말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상미는 별로 내키지 않는 동작으로 걸음을 조금씩 건물 안을 향해 옮긴다.

  “제가 귀신과 마주했다는 것을 진지하게 들어주셔서 고맙긴 한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상미 씨에게서 그 귀신의 기가 느껴져요.”

  “정말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뒤에서 걸어가는 민호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문을 닫는다. 신자들이 앉을 수 있는 신자석이 좌우로 갈라져 놓여있고 앞 오른쪽에는 성모상, 왼쪽에는 그리스도상이 자리하고 있다. 천장이 낮게 깔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저기, 무당이라는 분이 성당 같은 데 오셔도 괜찮아요? 보통 무당분들 교회 다니는 사람과 마주하는 거 자체를 싫어하던데.”

  자신에게 바짝 붙어 걸음을 맞추는 은지를 향해 상미가 넌지시 건넨다. 은지는 민호를 쳐다봤다 상미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어머니가 신내림을 받은 장소가 바로 교회 옆 건물이었데요. 그래서 아기예수동자를 신으로 모셔요."

  “아기예수동자요?”

  민호가 이번엔 입을 벌려가며 은지를 쳐다보자 은지는 뒤로 손을 빼 민호에게 어서 자기 할 일 하라며 사래를 친다. 민호는 건물 한쪽으로 움직이면서도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은지를 쳐다보길 멈추지 않는다. 은지는 상미와 같이 민호가 보이지 않을 거리만큼 걸어가더니 먼저 주문을 외워야 한다며 상미에게 눈을 감으라고 요구한다. 상미가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눈을 감자 은지는 민호를 향해 어서 문을 열라며 팔을 흔들어댄다. 그런 은지의 재촉에도 민호는 뭔가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다. 검은 선이 들쭉날쭉하게 그려진 오른손목을 위를 향해 들어올리고 정신을 집중하지만 어떤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다. 민호는 난감한 듯이 은지를 쳐다보고 그런 민호를 은지가 역정이 난 얼굴로 재촉하는 사이 상미가 묻는다.

  “얼마나 이러고 있어야 해요?”

  “잠시만요! 지금 눈 뜨시면 안 되거든요!”

  은지는 눈을 찡그려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민호를 본다. 그러다 상미에게 들리라는 듯 천천히 뭔가를 읊기 시작한다. 민호는 팔을 그대로 허공에 둔 채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한다.

  “옴바라바라사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아기예수동자 땅에는 귀신.”

  큭. 은지가 읊는 주문을 들은 민호가 주체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은지는 난감하게 상미를 바라보고 상미는 눈을 떠 웃음이 난 자리를 찾는다. 그렇지만 상미의 눈에는 민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랗고 두꺼운 문 뒤쪽이 보일 뿐이다.

  “어머, 저게 뭐지?”

  당황하는 상미를 보던 은지는 건너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급히 상미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싼다.

  “자, 이제 무릎 꿇고 절을 하셔야 합니다. 어서요.”

  아직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모습의 상미는 은지의 행동에 맞춰 같이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기 시작한다. 은지는 절을 하고 있는 상미를 봤다 문 너머 건너편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민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음, 저기, 은지 씨.”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미를 두고 은지가 소리가 난 곳을 보자 민호의 옆에 지난 번 만났던 세 사람이 서 있다. 그들의 시선은 반복해서 절을 하는 상미를 향해 아래로 향한다. 하나같이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저, 언니, 이제 그만 하셔도 돼요.”

  어느새 언니라는 호칭으로 상미를 부르는 은지는 절을 하는 상미를 붙잡는다. 상미는 은지의 만류에 하던 동작을 중단하다 앞에 선 세 사람을 발견하고 놀라서 털썩, 엉덩이부터 바닥에 주저앉는다.

  “괜찮아요, 언니? 엉덩이 안 아파요?”

  “지금 엉덩이가 문제겠어?”

  옆으로 온 민호가 상미를 향해 상체를 구부리며 안쓰럽게 살핀다. 상미는 앞에 있는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다 민호에게 묻는다.

  “민호야, 이 사람들은 누구야? 혹시 아기예수동자시니?”

  민호는 차마 웃지 못할 상황이라 반쯤 찡그린 얼굴로 웃음을 참아가며 은지를 본다. 은지가 그 질문에 대신 대답한다.

  “언니, 이 분들이 도와주실 거예요. 도움을 청해보세요.”

  상미가 입을 떼기 전 먼저 말을 꺼낸 건 왼쪽에 서 있는 짧은 검은 머리다.

  “첫 시작은 쉽겠는 걸. 바로 여기에 와 있네. 영이 사납거나 원한에 사무친 것도 아니야.”

  여기에 와 있네. 그 말에 놀라 은지와 민호는 주위를 돌아보지만 둘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다. 보이는 건 본인들과 상미,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세 사람. 먼저 움직이려고 한 건 검은 머리다. 그가 오른손을 들자 손바닥 위로 뭉쳐진 실타래가 모습을 드러낸다. 투명하게 빛나는 은색에 가까운 실 하나가 그 속에서 떠오르려는 찰나 가운데 있는 갈색 머리가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다며 검은 머리를 제지하더니 두어 걸음 정도 앞으로 나서 자신의 오른손으로 주먹을 작게 쥐었다 편다.

  그 손바닥 위로 나타난 건 끝없이 돌아가는 하얀 색을 띈 가루의 소용돌이다. 빛을 받은 것처럼 번쩍이고 있다. 그리고 갈색 머리가 후려치듯 손을 내뻗자 그 소용돌이가 신자석 주변을 향해 공간을 꽉 채우면서 퍼져나간다. 다른 곳은 모두 스쳐지나가지만 유난히 한 부분에만 그 가루가 맺힌다. 그 입자가 점점 사람의 형상으로 모양을 갖춰간다. 갈색 머리가 위를 향해 손을 들자 모습이 더욱 뚜렷해지더니 그 자리에 중년의 여자가 나타난다. 하얗게 위아래를 맞춘 전통 한복에 앞섶을 매듭으로 묶고 그 위로 저고리를 걸쳤다. 얼굴에 묻어나는 주름과 하얗게 센 머리가 그녀에게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보고 있는 민호와 은지, 상미는 신음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굳어버린 채로 멈췄다. 갈색 머리는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뒤로 물러나 동료들 사이로 돌아온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것은 흰 가루를 통해 나타난 여자다.

  “애기야.”

  아아악. 그 소리에 상미는 소리를 지르며 경기를 하듯 몸을 떨더니 뒤로 넘어질 뻔 한다. 다행히 그녀가 넘어지기 전 민호가 잡아 지탱해준다. 상미는 자신의 두 다리로 서 있기 힘든지 민호에게 완전히 기댄 자세를 취한다.

  “저, 저 목소리야! 내가 차에서 들었던 목소리!”

  금발 머리가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고 툭 던지듯이 말을 뱉는다.

  “당신이 결혼할 사람의 어머니야.”

  상미는 자신이 들은 말을 속으로 곱씹는다. 아, 하는 감탄이 터져 나오고 뒤이어 커진 눈으로 은지를 향해 목에서 말을 힘겹게 끄집어낸다.

  “그럼, 이 분이 호준 씨 어머니? 은지 씨가 귀신을 불러낸 거군요?”

  은지는 난감한 표정으로 민호와 다른 세 사람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의식하며 최대한 천천히 상미에게 답한다.

  “상미 언니, 저, 언니라고 부를게요. 사실 아기예수동자 같은 건 없어요. 제가 무당도 아니구요. 저는 그냥 민호 씨 아는 사람인데요, 언니 사정 얘기 듣고 이 분들이 도와주실 수 있을 거 같아 여기까지 오시게 했어요. 여기 이 분들 아마도 천사인 거 같아요.”

  천사? 상미가 그 세 사람을 쳐다보자 검은 머리와 갈색 머리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 금발 머리는 전혀 표정의 변화 없이 시선을 되받는다. 이어서 은지가 간략하게 자신과 민호가 그 세 사람을 만나게 된 사연을 전한다. 은지가 말을 마쳤지만 상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다. 앞에 선 여자가 얘기야라고 다시 부르자 다급히 몸을 움츠린다.

  “그런데 왜 호준 씨 어머니가 여기에?”

  “아마 여기 세상으로 넘어오게 된 영들 중 하나인 거 같아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호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상미에게 민호가 말을 건넨다.

  “매형 될 분 어머니 언제 돌아가셨어요?”

  “호준 씨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어. 아마 중학교 아님 고등학교 다닐 땐가 그럴 거야.”

  상미는 조금 진정된 모습으로 의아하게 묻는다.

  “그렇다면 호준 씨가 아니라 왜 나지? 어머님께서 더 보고 싶으신 건 내가 아니라 호준 씨 아니겠어?”

  그 말을 받은 건 갈색 머리다.

  “보고 싶은 건 자기 자식이라도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건 그쪽이야.”

  “저와 얘기를?”

  “지금도 계속 그쪽을 부르며 얘기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거든.”

  상미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여자는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드디어 응답을 받는가 하는 기대하는 모습이지만 그런 여자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상미는 아직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있다. 죽은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여자가 한 걸음 다가서자 상미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난다. 여자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상미는 주변을 둘러본다. 꽤 많은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에 그래도 용기를 얻었는지 이번엔 상미가 여자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선다. 여자는 반가운 미소를 띤 채 상미의 얼굴 구석구석을 훑는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우리 호준이 색시 될 사람이지요?”

  상미는 머뭇거리다 어렵게 대답한다.

  “네, 어머님.”

  “곱기도 해라. 요즘 아가씨들은 어찌 이리 이쁜지.”

  호준의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상미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 정작 그들을 떨어져서 바라보는 은지의 눈이 젖어간다. 은지가 손을 들어 입을 가리자 민호가 걱정스럽게 안색을 살피고, 그런 민호에게 신경 쓰지 말라며 고개를 젓는다.

  “나 때문에 많이 놀랐다면 미안해요. 놀라게 할 건 아니었는데 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뭔데요, 어머님?”

  호준의 어머니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들어 상미의 얼굴을 쓰다듬어 볼 것처럼 움직이지만 차마 건드리지는 못한다.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호준이 좋게 봐주고 이제 평생을 함께 해주려 하니까 너무 이쁘고 고맙고 그래서…….”

  민호는 흘러내리고 있는 은지의 눈물을 보고는 당황해서 은지의 안색을 살핀다. 왜 그러는지 묻지 못한 채 소리 죽이며 우는 은지를 보고만 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다 조심스레 한쪽 어깨에 손을 얹으려 하는데 알지 못하는 사이 뒤에 와서 서 있는 갈색 머리를 발견하고 흠칫 떨어진다.

  민호가 물러서자 갈색 머리는 은지의 귀 가까이 얼굴을 대고 다른 사람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어떤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바짝 붙어있는 두 사람을 민호는 별로 달갑지 않게 쳐다보고 있는데, 그 멜로디가 끝나고 갈색 머리가 물러서자 은지는 조금 전보다 차분해진 모습으로 옷소매를 들어 얼굴에 번진 눈물을 닦는다. 은지가 안정을 찾자 갈색 머리는 민호에게 손짓을 해서 가까이 오도록 하더니 두 사람이 호준의 어머니 뒤를 보도록 가리킨다.

  “저기 보일 듯 말듯이 뒤에 매달려있는 게 눈에 들어오나요?”

  “어라?”

  “어머, 정말, 뭔가 달려있어요.”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가는 선이 호준의 어머니 등 뒤로 시작해서 어딘가를 향해 길게 연결되어 있다. 건너편이 보일 만큼 투명해서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흡사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는 우주인의 복장에 매달린 공기주입구 같다. 느슨하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그 끝은 건물을 지나쳐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저게 뭐죠?”

  민호와 은지는 둘 다 예기치 못한 발견에 상당히 궁금해 한다.

  “108개의 영을 데리고 넘어온 그 주범이 자신과 다른 영들이 연결되도록 묶고 있는 접선 같은 겁니다. 저렇게 이어져서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게다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요.”

  “중요한 역할요?”

  민호가 질문을 던지며 은지를 보는데 은지는 갈색 머리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다음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영들은 살아있을 때와 달리 육체가 없어서 그 몸을 지탱할 에너지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기억과 감정만은 그대로 지니고 있어요. 특히 강하게 남아있는 기억과 관련된 감정은 저 하늘 너머까지 품고 갑니다. 저렇게 이어진 선을 통해 다른 영들이 드러내는 감정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감정을 빨아들인다구요?”

  은지와 민호는 누구의 목소리가 먼저인지 알기 어렵게 거의 동시에 내뱉는다.

  “그게 다른 영들을 데려온 이유에요. 그 감정에 실린 에너지를 통해 스스로를 지탱하고 세력을 키워가는 겁니다. 사람의 감정은 그 감정만으로 다른 대상을 죽이거나 살리기도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어떻게 감정만으로 죽이고 살리나요?”

  “감정에 팔, 다리가 달린 것도 아닌데요.”

  두 사람의 반응이 꽤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던 갈색 머리는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상미와 호준의 어머니 쪽을 넌지시 쳐다보고 나서 대답한다.

  “혹시 두 사람, 신문이나 뉴스에서 이런 실험내용 본 적 없어요?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과 겨울에 내리는 눈을 실험대상으로 해서 두 부류로 나눈 후, 한쪽에겐 계속 좋은 말만 듣게 하고 다른 쪽엔 나쁜 말만 듣게 합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고 그 식물의 조직과 눈의 결정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전혀 다른 결과를 얻었다고 하죠. 말은 감정의 결과물이에요. 이렇게 감정만으로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 심지어 식물이나 생명을 가지지 않는 물체마저도 달라지게 만들 수 있어요. 감정이 가진 에너지가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아, 그런 기사, 잡지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그저 말만 들려주었는데 눈의 결정 모양이 바뀌었다는 내용이었죠, 아마.”

  은지가 대답하자 민호는 그게 가능하냐며 은지에게 되묻는다.

  “민호 씨, 그게요, 과학적으로 그런 사실이 검증되었다네요.”

  갈색 머리는 상미와 호준의 어머니를 주시하며 말을 잇는다.

  “민호와 은지가 할 일은 저렇게 묶여있는 영들을 우리에게 데려와 그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갈색 머리를 따라 은지와 민호도 시선을 돌린다.

  “어머님, 저 호준 씨 정말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람 많이 아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그 말을 들으니 어찌나 좋은지. 우리 호준이가 어릴 때 집안 살림이 넉넉지 못해서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고 컸어요. 내가 돈을 벌어야 해서 누가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고. 제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건 내 평생 한이야.”

  “아버님이랑요? 어머님, 호준 씨 어릴 때 얘기 좀 해주실래요?”

  “호준이 어릴 때 이야기?”

  “아버님이랑 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거죠?”

  호준의 어머니가 지난 일을 생각해내려고 앞이마를 찡그려가며 기억을 더듬는다.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미 말머리부터 기분이 동요됐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울먹인다. 은지와 민호는 갈색 머리가 소리 없이 턱짓으로 민호의 어머니 등 뒤를 가리키자 눈을 그곳을 향해 돌린다. 호준의 어머니가 얘기를 이어가는 동안 그 연결된 선 안에서 뚜렷한 형체가 없는 탁한 색을 가진 솜뭉치 같은 것이 흘러나와 하나씩 차례로 지나간다.

  “저게 감정덩어리군요. 지금 어딘가로 빨려가고 있는 거네요?”

  은지가 묻자 갈색 머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호준이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 사는 게 힘들고 하는 일마다 잘 안 되니까 그때는 계속 밖으로만 나돌았어. 어떻게든 가족들 먹여 살리겠다고 애를 쓴 건데 어린 호준이가 뭘 알았겠어. 집안일부터 해서 돈 벌어오는 것까지 내가 다 맡아서 했지. 그러니 내가 지쳐서 힘들어 할 때마다 공연히 제 아빠를 더 미워한 거라네.”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호준의 어머니가 울먹이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가고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앞에서는 바라보는 상미의 눈도 붉게 충혈되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결된 선을 주시하는 은지와 민호의 눈에는 더욱 빨라진 속도로 빨려가는 덩어리들이 흘러나왔다 어딘가로 사라지곤 하는 장면이 들어온다. 그때 호준의 어머니 등 뒤로 빠르게 다가선 금발 머리가 성가신 듯 내뱉는다.

  “일단 끊어놓고 봐야겠군. 영 마음에 안 들어.”

  금발 머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그가 몸에 지니고 있는 세 가지 무기가 눈에 들어온다. 허리에는 어두운 색으로 빛나는 돌들로 장식된 손잡이를 가진 검을 차고 있고, 등 오른쪽에는 머리 위를 지나 위로 삐쭉 솟아있는 황금색 창이 매달려 있다. 왼쪽 어깨에는 완전히 둥글진 않고 타원형처럼 약간 옆으로 벌어진 방패가 들렸다.

  그가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에 놓인 방패를 집어 들어 던지자 호준 어머니 바로 등 뒤를 향해 회전하며 날아간다. 그렇게 날아더니 길게 이어진 연결선을 아무런 멈춤 없이 지나쳐 끊어놓고 주인에게로 되돌아간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호준의 어머니는 갑자기 무언가를 느낀 듯 말을 멈추고 허리를 곧추세운다.

  “저 건너편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겠는 걸, 크크.”

  검은 머리가 말을 꺼내자 금발 머리가 탄식하듯 받는다.

  “밖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금방 끝낼 일을 그러질 못하니 이게 무슨 시간 낭비야.”

  호준 어머니는 가슴께로 손을 모으더니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면서 아, 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그리고 무릎을 구부리며 바닥 위로 주저앉더니 목구멍 밑바닥에서부터 울리는 깊고 처연한 소리를 내며 오열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상미와 은지, 민호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누구도 뭐라 말을 꺼내지 못한다. 상미는 조심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다. 호준의 어머니는 끓어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해 연신 꺼억,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의 흔들리는 상체를 상미가 가만히 쓸어내려준다. 호준아, 호준 아빠. 호준의 어머니는 울음에 섞인 그 두 단어를 자꾸만 반복한다. 그들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민호의 어깨에 살짝 기대듯 은지가 팔을 올린다.

  “난 여자들 울 때 정말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진짜 곤란하다니까요.”

 은지는 그 말에 물기 섞인 소리로 작게 웃어준다. 그 옆에서 갈색 머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빼앗기고 있던 영은 마약에 취한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지. 슬픔, 불안, 두려움, 고통 등 일체의 감정이 차오르기 전에 바로 빠져나가 버리니까 그걸 느끼고 알아챌 사이가 없어. 그러다 지금처럼 그걸 한꺼번에 느끼게 되면 감정이 폭발해버리는 거야. 아마도 어떤 영들은 차라리 계속 그렇게 빼앗기고 있는 상태를 더 원할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한참을 오열하던 호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다. 통곡하는 그녀를 자신도 모르게 거의 안다시피 한 상미는 한 손은 등 위에 올리고 다른 손은 호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힘겹게 고개를 들던 호준의 어머니가 옆에 있는 상미를 보더니 얼굴에 번진 울음자국이 무색하게 웃음을 짓는다.

  “고맙구나, 얘기야. 너한테 너무 감사하단다. 네가 있어서 내가 우리 호준이 잘 맡기고 갈 수 있을 거 같구나.”

  검은 머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문 옆으로 다가선다.

  “흠, 바닥까지 털어내고 다시 올라온 건가. 인간들은 변화무쌍한 게 아주 재미나겠어.”

  금발 머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갈색 머리에게 눈짓을 한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군.”

  갈색 머리가 호준의 어머니 앞으로 다가간다.

  “우리와 같이 돌아가도록 하지.”

  상미는 손을 굳게 잡으며 호준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머님.”

  “애기야, 우리 호준이가 너같이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 다행이구나. 제발 잘 부탁한다, 호준이.”

  일어서는 호준의 어머니를 향하는 상미의 얼굴이 눈물로 젖었다. 은지는 어떡해라며 안타까워하는 소리를 낸다. 호준의 어머니는 갈색 머리와 함께 문으로 향하다 뒤를 돌아보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연신 절을 한다. 민호는 같이 맞절을 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찰나, 순식간에 셋만 남았다. 방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 표정의 상미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르고 은지는 민호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재촉한다.

  “상미 언니 데리고 나가요, 어서.”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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